선농단

先農壇
Sunnongdan


1 개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조선시대 때의 제단(祭壇).

한국 음식 중 하나인 설렁탕의 어원이 생긴 곳이기도 하며 본래 '선농탕(先農湯)' 이라 불렸던 것을 설렁탕으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선농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신라시대로 신라에 중국의 제례 제도가 들어오면서부터이나, 국가 제사로 완전히 정착한 것은 조선시대부터다.[1]

조선왕조태조 이성계동대문 밖 전농동(現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일대에 제사를 지낸 뒤 임금이 직접 이 곳에 농사를 지어서 농사의 소중함과 농민의 고마움을 알리는 의식이 열려서 임금과 농민들이 함께 밭을 갈며 농사를 지었던 장소로 잘 알려졌던 곳이다.

태조를 시작으로 역대 임금들이 이 곳에서 중국 전설에 나오는 농사의 신 신농과 후직을 모시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祭)를 올렸으며 이후에도 임금들이 농민들의 도움 아래 친히 농사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일제 때 폐지되었다.

7차 교육과정 중1 국어 교과서에 실린 '국물 이야기'라는 수필에 관련 내용이 있어 해당 교과서를 사용하였던 사람들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비슷한 것으로 사직단(社稷壇)이 있다. 이곳은 토지신인 후토[2]에 제사하는 사단과 곡식의 시인 후직에 제사하는 직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시 중국에서 들어온 제례며, 제사하는 신의 직능이 확연히 다르기에 낮은 담장 안에 제다이 하나인 선농단과 달리 단이 2개로 확연히 나뉘어 있다.

1.1 설렁탕의 시초(始初)와 어원

본래 이 곳은 설렁탕의 어원이 생긴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가설에 따르면 당시 행사 및 제사가 끝나고 나서 참여했던 사람들의 허기와 공복(空腹)을 채우기 위해 우골(牛骨)을 고운 뽀얀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었던 국물 음식을 나눠주게 되었던 것이 시초로 이를 통해 사람들이 선농단에서 만들어져서 먹었던 탕(湯) 음식이라 하여서 선농단의 선농(先農)을 본따서 '선농탕(先農湯)'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후에 '설렁탕' 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해당항목 참조.

2 특징

현재는 선농단 본단(本壇)과 천연기념물인 오래된 향나무가 있으며 문인상이 있다.
바로 옆에 선농단 역사문화관이 있지만 방문하는 사람들은 다주 드물다(...)

고려대학교안암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물론 이 사실을 아는 고대생은 별로 없다... 안암로터리 뒤에 있다고 말하면 그런게 거기 있었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1. 조선시대 성리학적 이념에 의거하여 국가의례를 정비하고, 여말선초부터 시작된 민간신앙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본격화되기 전에는 국가의 제례도 불교/도교/무속적 성격이 짙었고, 민간신앙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형식의 제례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다.
  2. 중국의 토지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