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惡說
1 개요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무릇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상 사람들이 선이라고 말한 것이란 올바르고 질서 있고 공평하게 다스려진 것이었으며, 악이라고 한 것은 치우치고 음험하고 어긋나며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이것이 선과 악의 구분이다. 지금 진실로 사람의 본성을 올바르고 질서 있으며 공평하고 다듬어진 것으로 여긴다면 성군은 무슨 소용이 있고 예의는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순자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관점이다.
악하기 때문에 선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포하는 극단적인 비관주의를 견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고 위에서 보이듯이 악하기 때문에 법과 같은 제도적 장치 등을 통해 계도해야 한다는 입장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2 상세
성선설에서 본성이 선함을 이야기 하기 위해 대가가 없음에도 자발적으로 행하는 선행을 예로 드는 것에 비해 성악설에서는 인간의 부조리함을 예로 든다. 설령 선하게 행하고 싶어 한다고 해도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은 원래부터 인간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성악설은 의지에 의한 행동보다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지적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불이 났을 때 갑작스럽게 사람들이 입구로 몰려 압사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성악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당연한 것이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질서를 잘 지키면서 차분하게 현장을 빠져나간다면 그것은 그들이 질서를 지키는 것이 결국은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교육이나 훈련을 받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성악설에 대한 오해는 인간이 잔악한 짓을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성악설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란 기본적으로 혼돈에 질서가 부여된 상황이기 때문에 질서가 미치지 못하는 곳은 곧 혼돈이며, 딱 그 부분만이 악한 것이고 그렇지 않은 곳은 선이 지배한다. 즉 선한 관념이나 규칙에 지배 당하고 있다는 관점을 사상 속에 깔아두고 있다면 그것은 성악설로부터 출발한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그런 관점을 고수하는 사람은 성악설을 지지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을 전제로 사상을 전개시켰던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저서에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혼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국가라는 거대 권력과 계약을 해 자기 자신을 지킨다고 보았다. 권력의 일방통행적인 지배구조를 전제했던 고대의 그것으로부터 상당히 진보된 사상이지만 그 근저에는 성악설이 있었던 것. 현대에 와서도 성악설은 알게 모르게 사고의 틀 속에 토대로서 자리를 잡고 있기도 하다.
또 많은 종교가 성선설이 아니라 성악설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쫓겨난 것은 타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성경에서도 인간 본성을 악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기본적으로 번뇌하는 존재로서 여기는데, 불교에서의 번뇌의 입지 상 이쪽도 성악설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질서가 잡히지 않은 혼돈 상황을 전제하면서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여정이 나오고, 결국 선으로 회귀하더라도 선하지 않은 채로 태어난다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를 주장하는 '성선설'과,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를 주장하는 '성악설' 둘 다 아닌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중립적 상태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는 告子의 '성무선악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