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불결하고, 잔인하며, 짧다.ㅡ『리바이어던』
1 개요
Thomas Hobbes
1588. 4. 5. ~ 1679. 12. 4.
근세 이래 모든 정치철학자는 이 사람의 영향하에 있다.
17세기에 활동하던 영국의 철학자로, 대표적인 저서로는 리바이어던이 있다. 리바이어던은 근대 국가 체제의 사상적 시발점으로 평가되는 중요한 사상을 담고 있다.
- 국내에선 알려지지 않았지만 근대 성경주석자로 유명했다.
2 일생
엘리자베스 1세 때, 에스파냐의 무적함대가 영국 상륙을 시도하려한 1588년에 출생했다. 당시 그의 모친은 임신 7개월 중이었는데 무적함대가 마을 근방까지 올지 모른다는 소문에 그만 놀라 조산하고 말았다.[1] 이른바 칠삭둥이. 운좋게 목숨은 구했지만 아버지 토머스[2]가 천하의 난봉꾼 개먹사 목사라 주먹 다짐끝에 교구에서 쫓겨나게 되어 편부가정으로 유년시절을 보냈다.
다행히 부유한 삼촌의 후원으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옥스퍼드에 진학해 이후 추천으로 캐번디시 가문에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인생이 조금은 피게 된다. 거기서 평생 후원자를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장서 그리고 여러 고위층 문객들을 직간접으로 접하면서 깊은 학문적 소양을 쌓게 된다. 그 중 하나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비서로 일하게 된 것으로 이때 경험론적 학풍에 영향을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2번 정도 유럽으로 여행가게 되는데 그때 말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만나기도 했다. 베이컨, 갈릴레오 라는 당대 명사들과의 만남은 그의 학문관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한편 그 와중에 르네 데카르트, 피에르 가상디 등의 인물들과도 교류했는데 특히 데카르트와는 학문 접근 방식과 철학과 광학이론 등을 가지고 견해 차이 키배를 보였다.[3] 홉스는 데카르트를 "기하학만 했으면 위대한 수학자가 될 것을..."이라고 깠고, 데카르트는 저 듣보가 좀 놀아주니까 뭐래 그냥 무시했다. 그 외에도 3대 작도 불능 문제 중 해당 항목 4에 해당하는 문제를 증명했다면서 존 윌리스라는 수학자에게 키배를 걸었다가 개털린 일이 있었다..
후원자 캐번디시 가문이나 스승 베이컨 그외 친한 지인들이 왕당파였던지라 아무래도 그런 성향이 있다 여겨졌고, 실제로 그의 정치사상은 그렇게 평가되기도 했다. 그래서 프랑스로 망명을 가 거기서 집필활동에 몰두한다. 리바이어던도 이 시기의 산물인데, 리바이어던의 급진성으로 인해 왕당파들에게도 크롬웰에게 아부떠는 이론을 전개한다며 경원시되었다. 어쨌든 이후 1652년 2월에 와서야 귀국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찰스 2세의 귀환 환영식 때 그 자리에 차세대 사회계약론을 이을 존 로크[4]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조용히 집필작업에 집중하면서 167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 고령에도 이웃집 소녀에게 연애감정을 느껴 연서를 쓰기도 했다고. 다만 생전부터 그의 사상은 배척을 받게되어 홉스의 사상에 조금이라도 호의적 경향을 비치면 '호비스트'라 낙인찍혔다고 한다. 홉스의 말년 집필 중엔 이런 자기 사상에 배척과 반발에 대한 반박 작업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