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연도 | 1919년 |
설립 목적 | 모든 아동이 생존·보호·발달·참여의 권리를 온전히 누리는 세상 건설 |
주요 활동 | 어린이 보건의료 사업, 빈곤아동 지원 사업, 교육 사업 |
회원국 | 30개국 |
본부 소재지 | 런던 |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
"We can be sure that those whom we help today will help us tomorrow.(오늘 우리가 도운 사람이 내일 우리를 도울 것이다.)"[1]-세이브더칠드런 창립자, 에글렌타인 젭(Eglantyne Jebb)
1 소개
세이브더칠드런은 1919년에 에글렌타인 젭(Eglantyne Jebb, 1876~1928)이 여동생인 도로시 벅스톤(Dorothy Buxton)과 함께 설립한 NGO로 아동 관련 NGO 중에선 가장 오래 됐다. 아동보호기구 중에선 최대 규모이기도 하다.
2 역사
1919년 당시에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 안 된 시기였기 때문에 모두가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기근에 빠져서 상황이 더 심각했다. 거기서 아이들이 겪은 참상을 본 에글렌타인 젭은 구호 기금을 모아서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초창기 반응이 그리 좋지가 않았다. '적국의 아이들을 위해 돈을 모으려 하는 배신자'라는 비난과 함께 사람들이 몰려오기도 했었다. 다행히도 창립 대회는 성공적이었고, 그녀에게 적대적이던 사람들로부터도 지지와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잔뜩 굶어 영양 실조에 걸린 6살 여아의 사진이 담긴 전단지를 광장에서 배포했다가 전시 국토방위법에 걸려 체포도 당한다. 하지만 판사는 그녀의 의도를 이해하여 벌금으로 5파운드만을 선고했다.[2]
1년 뒤에는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국제 세이브더칠드런 펀드 연합(Save the Children Fund International Union)을 출범했고, 나중에 그리스-터키 전쟁과 러시아 대기근 때 모금 행사를 벌이기도 한다.
1923년에 에글렌타인 젭은 아동권리선언문을 작성했고, 이는 나중에 UN아동권리협약의 기반이 된다.
1977년에는 국제 세이브더칠드런 연맹(Save the Children Alliance)을 설립하며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세우고, 1997년에 런던으로 옮겨간다.
3 활동
스페인 내전부터 시작해서 중일전쟁이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의 전후 복구, 또 한국 전쟁을 비롯해 피폐해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가서 구호 활동을 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르완다 내전이나 시리아 내전처럼 위험한 곳은 물론이고[3] 남아시아 대지진이나 2010년 아이티 지진 같은 자연재해 현장에서도 열심히 활동을 벌이고 있다.
4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1953년부터 한국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한국과의 인연은 매우 오래 되었는데, 당시 피란민촌을 둘러본 세이브더칠드런의 한 영국인 직원이 먹고 사는 것도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교육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는 한국인들의 교육열에 감탄하여 이곳에는 희망이 있다고[4] 보고서를 쓴 것이 계기가 되었다. 전쟁 고아 등 한국전쟁 피해자 구호 활동으로 시작하여 1950년대 말부터는 지역개발 사업으로 확대되었다.
1996년에 내몽골 교육 사업을 시작하며 세이브더칠드런 역사상 최초로 수혜국에서 원조국이 되었다. 이후로도 현재까지 세이브더칠드런의 여타 회원국들과 함께 개발도상국 아동들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아동 지원 사업도 실시하고 있다. 국내 거주 위기가정 아동 및 난민아동, 탈북자가정아동, 이민자가정아동 등이 주로 지원대상이 되며 전반적인 아동권리 증진을 위한 캠페인도 실시한다. 2004년 한국어린이보호재단과 합병하여 난치병 아동도 지원하고 있다.
5 여담
- 국내 인지도에서는 유니세프한테 밀리는 감이 있지만, 모자뜨기 캠페인으로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켠김에 왕까지의 출연진 중 한명인 류경진이 하는 뜨개질이 바로 이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 인턴을 모집하면서 턱없이 낮은 시급을 책정해 논란이 된 바 있다.아동을 구호한다는 단체가 정작 대한민국 청년들을 착취한다는 것이 씁쓸한 부분
- 2016년 2월 GS 홈쇼핑을 통해 모자뜨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판매한 발렌타인 고백 키트의 홍보 문구에 '개념녀 인증', '여자인증' 등의 문구를 사용해 논란을 빚었다. 비록 취지 자체는 봉사활동을 독려하는 것이라고는 하나, 해당 상품 홍보 문구의 개념녀라는 표현이 자칫 여성들이 남성에게 인정받기 위해, 남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는 의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논란이 된 것. 또한 구성품 중 하나인 손뜨개 메시지 카드의 '한땀 한땀 여자인증'이라는 홍보 문구도 메시지 카드를 써야 여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읽힐 수 있어 성 차별적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결국 항의가 지속되자 문제가 된 표현을 삭제하고 공식 트위터에 짤막한 사과문을 올렸다.
뭐든지 코리아가 붙으면 논란이 많아진다
세이브더코리안
6 홍보대사
7 캠페인 대사
- ↑ 이 말을 실현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 과정에서 한국은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여러 국가들의 도움을 받는 국가였지만, 수십 년만에 오히려 다른 나라를 돕는 후원국이 되어 한국전쟁 당시 한국을 도왔던 에티오피아, 전후 한국을 원조한 아이티 등을 지원하고 있다.
- ↑ 그녀를 기소했던 검사도 그 뜻에 동참하는 의미로 5파운드를 기부했다.
- ↑ 심지어 북한에서 활동을 한 적도 있다!
- ↑ 아동을 교육시키려 하지 않는 가정이나 국가에 대한 도움은 일시적인 도움에 불과하며, 빈곤을 끊는 원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을 원조하는 것이 가장 큰 효과를 불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