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고쿠 히데히사

仙石秀久
1552~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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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정발된 만화 '센고쿠'를 통해 알려진 전국시대의 무장.
시나노 코모로번(小諸藩)의 초대 번주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대단한 무장은 아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각각 섬긴 전적이 있는 등 전형적인 일본 전국시대 무인의 삶을 산 인물이다. 아마도 전국시대 3대 위인을 함께 섬긴(노부나가, 히데요시-> 히데요시-> 이에야스) 점이나 그와 관계된 민간 설화 때문에 당시 시대를 보는 '관찰자'로서의 주인공 역으로 채택된 게 아닐까 싶다.

1552년에 미노의 호족인 센고쿠 히사모리의 4남으로 출생으로 처음에는 에치젠 호족 후지와라 쿠니미츠의 양자가 되지만, 연이은 형들의 죽음으로 인해 본가로 돌아와서, 센고쿠 씨의 가계를 이어받았다. 이후 미노 사이토씨의 가신이 되지만 사이토씨가 노부나가에게 멸망당하자 노부나가의 밑에서 두각을 드러내던 하시바 히데요시(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 된다.

그 뒤 꾸준히 공을 세우고 출세하여 히데요시가 시바타 가츠이에를 물리치고 패권을 잡은 뒤인 1585년에 오랫동안 그를 섬긴 점 등이 고려되어 히데요시에게서 10만석의 영지를 수여받는다. 그러나 이듬해 규슈 정벌에서 시마즈 이에히사를 상대로 무리한 작전을 펼치다 헤츠키가와 전투에서 참패[1]하고 단신으로 도주하는 추태를 보여 그 벌로 영지를 몰수당하고 고야산에 추방당했다.

그랬던 것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중재해주어 1590년에 오다와라 정벌 때에 임시 무장으로 참전, 필사적으로 공을 세워 그 전공으로 다시 5만석의 영지를 받고 신분을 회복한다. 아마도 이 때의 인연으로 인해 일찍부터 이에야스에게 심정적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보인다.

결국 히데요시의 사후에 도쿠가와 측에 가담하여 훗날 쇼군이 되는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군세에 합류했다. 사나다 마사유키의 계략으로 세키가하라 전투에는 참가하지 못하였으나, 이 때의 인연으로 총애를 받아 1609년에는 천황의 히데타다 쇼군 임명 축하식을 수행하고, 1611년 정월의 신년 축하식 때에도 참석했다.

그리하여 시나노 코모로 번의 번주로 임명되어 그의 삽질로 마을 하나가 망하거나 반대로 전마제도나 숙박업소거리 정비 등에 힘쓰는 등 영지를 다스리다가 1614년에 6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정사의 기록은 보잘것 없지만 민간 설화가 많은 인물로 막 오다 노부나가의 진영에 투신했을 적에 노부나가가 그의 무용을 마음에 들어하여 황금 한 정을 하사받았다고 하며, 오다와라 정벌 당시 진바오리(갑옷 위에 걸치는 덧옷같은 것)에 방울을 붙이고 분전하여 '방울소리 무사'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또한 후시미 성에서 전설적인 대도 이시카와 고에몽을 체포했다는 전설(공식 체포자는 당시 교토의 치안유지 책임자이며 오봉행중 한 사람인 마에다 겐이라고 되어있지만 '잇시키군기'에서는 센고쿠 히데히사가 체포했다고 되어있다)이 있다. 이 때문에 센고쿠 히데히사는 강담(재미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연의 일종)에서 흔히 괴력무쌍의 호걸로 등장하며, 죠잔기담에서는 시노비로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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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만화 센고쿠의 영향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친애무장으로 등장. 능력은 그냥 B급도 못되는 잡장이다.

  1. 총대장인 히데히사의 오판으로 소고 가문의 당주 소고 마사야스와 쵸소카베 가문의 후계자 쵸소카베 노부치카가 전사하는 등 시코쿠 세력은 이 전투에서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