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문

宋成文
1931 ~ 2011

1 소개

대한민국의 출판인이자 영문학자. 그리고 성문영문법성문영어의 창시자. 영포자들에게는 이름만 들어도 두려웠던 대상 비슷한 시기에 수학에는 홍성대수학의 정석을 창시했다.

1.1 생애

1931년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이다. 이북에서 그의 본명은 송석문(宋錫文). 자음동화 때문에 '송성문'이라고 불리자 남한에 내려온 후 가호적(假號籍)을 만들며 아예 개명하였다고 한다.

고교생 시절 북한의 영향으로 소련어(語)를 배웠던 적이 있었다. 정주중학을 3년 반 만에 마치고 정주고급중학에 1기로 입학해 우등 졸업했다. 그의 원래 목표는 김일성대 영문과였으나 결과는 탈락. 아버지가 천도교 청우당원이라 성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는 2년제 신의주교원대에 들어가 교사로 6.25 전쟁을 맞는다.

그 해 11월 미군이 신의주에 진주하자 그는 집으로 찾아온 미군 앞에서 중학교 영어교과서를 읽어댄다.[1] 미군 병사는 그를 통역으로 데리고 평양으로 갔다. 그러나 평양에서 중공군의 역습에 당황한 미군은 그를 내버려두고 혼자 도망간다. 그는 평양에서 차를 얻어타고 구걸해가며 부산까지 내려가 부두에서 '체커'일을 하며 먹고 산다.[2] 그 후 1952년 입대해 통역장교로 근무한다.

군복무 중 동아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야간과정을 이수하였고 중학교 영어교사 자격을 취득하여 마산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활동하며 고교 영어를 가르쳤다. 당시 제자 가운데 한 명이 안상수 한나라당 전 대표.

1965년에 영어 연수를 목적으로 뉴질랜드로 유학을 떠났다가 1967년에 자신의 이름을 본딴 성문출판사를 설립하여 성문영문법성문영어를 발행하여 기초영어 교육에 힘쓰게 되었다. 영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가지고 있을 이 성문영문법이나 성문영어에 나오는 성문이 바로 이 사람의 이름을 본딴 것이다.

2003년에 간암 발병으로 장기간 병고생활을 해오다가 2011년에 향년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1.2 대인배

엄청난 수집덕후로 평생을 고서와 고문서 수집에 열을 올려서, 자신의 성문영어로 벌어들인 인세의 대부분을 고서와 고문서 수집에 쏟아부었다. 덕분에 국보 4점, 보물 22점이 포함된 질과 양 모두 어마어마한 수집품을 자랑하였으며, 죽기 전에 이들을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대인배이기도 하다.

1.3 기타

영어를 배웠던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성문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알듯도 하겠지만 그냥 출판사 상표인줄로만 알고 모르는 경우도 있다.
  1. 후일 그의 회고에 의하면 자기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면서, 결국 팔자였던 것 같다고.
  2. 화물이 선적되는 것을 감시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