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선언


유신독재시절이던 1974년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101인 선언> [1]

時局宣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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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당면한 국내 및 국제 정세나 대세, 그 나라의 시대상황, 특히 정치나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있거나 뭔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 교수들이나 재야인사들 같은 지식인, 종교계 인사들이 우려를 표명하며 어려움을 해결하기를 촉구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시국선언문을 발표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거나 하지는 않지만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집권계층이나 문제를 일으킨 집단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된다.

2 시국선언의 역사

사회의 뜻 있는 인사들이 모여 선언문을 발표하는 건 인류가 있고 나서 단 한번도 그친 적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시국선언이라 함은 대개는 박정희 정권시절부터를 더 이르게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 4.19 당시를 가리킨다. 군사독재 시기인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의 집권 시기에 지식인, 학생, 종교계 위주로 독재정권의 탄압에 저항하는 시국선언문 발표가 많았다. 한국전쟁 이후 민주주의의 싹이 트는 이 시기에, 엄혹한 군사독재체제와 모순을 일으키면서 진중한 시국선언문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과거의 시국선언은 요즘과는 달리 굉장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선언문 작성은 물론 동의한다고 자기 이름 올리는 것도 결단이 필요했다. 왜냐면 구속, 고문, 해직, 사찰 등등이 기다리고있는데다 자신의 가족이 당할 고통까지도 각오해야했기때문이다. 게다가 결단을 내려 시국선언했음에도 탄압은 탄압대로 당하고 보도는 신문 귀퉁이에 날까말까하는 언론통제까지...

하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할 수 있는 환경도 양상도 많이 달라졌다. 언로가 확장되고, 이슈도 다양화되었으며 선언 주체도 지식인이나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만이 아닌 일반인영역으로도 확대되었다. 그 예로는 블로거학생들 같은 경우가 있다. 즉 시국선언문 발표가 그리 부담스럽지않은 일이 되었다 (공직자 신분만 아니라면). 기자들을 불러 단체 사무실, 캠퍼스, 카페에서 발표하는게 전통적인 방식이었으나 이제는 시위중인 현장[2]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발표한다.

아울러 시국선언문에 종종 추가되는 일반인들의 동의 서명. 예전엔 작정하고 각오한 운동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이슈에 동의하며 자기 이름 석자 쓰는 건 불가능했는데 불이익을 당할거라는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도시의 번화가나 시위현장에 탁자를 놓고 정치적인 이슈에 쉽게 동의를 받는다. 이 역시 민주화된 이후에나 가능해진 풍경.

2016년 10월 26일, 여러 대학교에서 시국선언을 했으며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둘러싼 시국선언이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JTBC 뉴스룸이 이를 처음 보도한 지 2일 만의 일이다.
  1. 당시 긴급조치 1호로 구속된 지식인·종교인 및 학생들의 즉각 석방,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신앙 사상의 자유의 보장, 서민 대중의 기본권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와 노동법의 민주적 개정을 요구하였다.
  2. 80년대 말만 해도 한군데 장소에서 수십분 이상 시위가 거의 불가능했다. 시위는 곧 불법이고, 곧 진압을 위해 경찰이 투입되기 때문. 시위대 쪽수가 많으면 일시적으로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