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련 문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범죄자/목록/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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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31일 검찰 출두 당시.
2016년 12월 19일 법정.[1]
2017년 1월 25일 박영수 특검 사무실에 강제 구인 되는 사진. 문제의 염병하네 사건이 발생한 그 장면이다.
목차
1 개요
"우리나라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 씨가 1위, 정 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 박관천 前 경정[2] 기사 아카이브
"최 선생님에게 빨리 컨펌[3](확인) 받아라."
- 박근혜 대통령,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조선일보' 기사
대외적으로 없는 사람. 이사람이 존재하지 않고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도와주는 사람
정호성 전 비서관이 박근혜 탄핵 심판에서[4]
"VIP, 이 사람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VIP가 믿는 사람은 소장밖에 없어"
고영태의 녹취록에서 경향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범이자 만악의 근원이다.
사실상의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이자, 박근혜와 함께 탄핵이 인용되어 파면당한 인물.
본명은 최서원이다.[5] 1956년 6월 23일생, 현재 만 61세다.
부친인 사이비 교주[6] 최태민[7][8]의 대를 이어 박근혜 대통령과의 혈육 이상의 친분 관계[9][10]를 이용하여 축재[11]를 하고 대통령을 정신적으로 통제하여 국정에 개입해 민주국가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숨겨진 비선 실세로 지목받을 만큼 베일 뒤에 숨어서 아무런 통제와 감시도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고 사실로 밝혀졌다.
실권을 휘두른 스케일에 비하면 소소하게 보이는 비리 역시 많이 저질렀다. 예를 들자면, 2016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자발적으로(?) 수백 억 원의 돈을 걷어 만든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의 설립에 깊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 있다. 여기서, 전경련이 수백억 원의 돈을 걷어서 만든 K스포츠 재단의 이사장으로 갑자기 선임된 정동춘은, 최순실이 평소 단골로 드나들던 스포츠 마사지 센터의 원장이었다고 한다. 현재 K스포츠 재단은 개점 휴업 상태였다가 결국 해산했다.
그리고, 이화여자대학교에 입시 비리를 저지르도록 공작하여 공부도 못하는 자신의 딸 정유라를 이화여대 체육학과에 입학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곧 사실로 밝혀졌다. 그 외에 '팔선녀'라는 사우나 모임을 만들어서 재벌 사모님들로부터 극진한 접대를 받고, 틈틈이 호스트바에서 꽃미남을 품고, 조직폭력배에게 폭력을 사주하고, 대통령과 함께 회춘 시술, 중독성 전신마취시술을 받기도 하는 등, 사방팔방을 휘젓고 다녔다.
2016년 9월 처음 언론에 의혹이 터져나온 후 10월까지 약 1달 만에 이 사람이 만들어낸 각종 의혹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최경희 총장이 사임하고, 대통령이 직접 엄정 수사를 언급할 정도가 되었다.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탓에 얼굴이 제대로 드러난 사진조차 구하기 힘들었고, 인터뷰를 시도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나마 의혹이 터진 지 한참 뒤인 10월 27일에야 최초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2016년 11월 3일 (목) 오후 늦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 독방에 구속 수감 되었다. 구속 수감된 동안 자신의 형량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모양.기사 최순실은 독방에 수감되면서 면회의 경우는 수사에 도움이 될 인물 이외의 면회는 전면 금지된 상태이며 TV시청 및 신문 구독, 독서 등 모든 종류의 여가 활동이 완전히 금지된 상태다.
그러나, 문제점은 독방 수감 그 자체가 상당한 특혜이며 구치소 생활도 윤택한 지원을 받고 있고 원칙상 금지된 TV 시청마저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황제 수감상태라는 의혹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심지어, 구치소 국정조사에서는 구치소장이 나서서 현장 취재를 거부하고, 과거에 제시한 공황장애 등 건강상 불출석 사유가 진실인지에 관한 기록도 은폐하는 등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안민석 의원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과 법무부 라인을 통해 지시가 내려오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감 상태에서도 최순실 라인의 실세 정동춘이 K스포츠재단에서 인사 전횡을 하는 등, 여전히 사태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 1월 16일, 헌법재판소에 증인으로 출석하였다.
2 사건 이전의 생애
"도대체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누구이관대, 나라를 불신과 불통의 아수라장이 되게 해놓고 정작 당사자는 말 한마디 없는가? 아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인가?"
-- 최순실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참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어떻게 봐야 할까.
-- 욕심이 많았던 사람인가.
▲ 욕심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욕심이 없었다면 그런 일을. 그런데 주변에 사람이 굉장히 많지는 않다. 주변에 폭넓게 사람이 있었다면 인사 농단이 없었겠지. 너무 대통령하고 너무 가까웠다 그럴까. 사람이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아버지 때부터 그렇게 인연 있어서 도와주고 그렇게 하면. 안타까운 사건이다. 나는 최순실이 좀 국민 앞에 죄가 어떻든 제 불찰로 이렇게 잘못했다, 사죄하는 것이 더 좋았을 텐데 안 하니까 그게 안타깝다.
- 박영수 특별검사#
1956년 6월 23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아현동에서#, 최태민과 임선이[13][14] 사이에서 최태민의 5녀로 태어났다(즉, 박근혜 대통령보다 4살 연하). 본명은 최필녀이지만, 1979년 최순실로 개명했으며 그 이후 2014년 2월경 최서원으로 개명했다고 한다.[15] 하지만 최순실로 부르는 것은 아마 최서원으로 활동한 날보다 최순실로 활동한 날이 훨씬 많아 최순실로 부르는 게 편하기 때문인 듯. 초기에는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로 보도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최서원이라는 이름의 언급이 꼭 필요한 경우[16]를 빼면 무조건 최순실로 보도한다. 해외언론까지 포함하여 거의 100%의 언론이 최순실로만 그녀를 거론하고 있는 상태.[17]
최순실이 이렇게 잦은 개명을 한 것은 자신의 신분을 최대한 노출시키지 않기 위함도 있지만, 성명수리학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 역시 알 수 있다. 최순실만 그런 게 아니라 그 부친 최태민 역시 이름을 7개나 갖고 있으며 딸 정유연도 정유라로 개명했고, 조카 장유진도 장시호로 개명했다. 최태민 일가는 1인당 최소 3개 이상의 이름을 보유하고 있다.
최순실의 부친 최태민은 1975~1994년에 육영수의 혼령과 통한다고 주장하면서 무려 20년 동안이나 박근혜와 매우 가깝게 지내왔던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예지몽을 꾸는 능력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데 당연히 증명이 불가능한 관계로 믿거나 말거나다.[18]
최태민은 6명의 아내[19]로부터 9명의 자녀를 뒀다. 최태민은 그 중 다섯째인 최순실을 특히 총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호의 사실은>은 ‘태자마마 최태민이 최순실을 총애한 이유’에 대해 “아버지의 현몽(現夢)[20], 꿈을 통한 예지력을 이어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댓글 성지순례행 “박근혜에게 최순실이 꿈 이야기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했다”고 증언한 사람들도 있다.#
1975년 단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청강생으로 등록했다. 그런 주제에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장이다 학부 수업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하며, 수료증을 받고 졸업 후 같은 과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그러나 수료는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학위를 취득한 게 아니라면 고졸인 셈이다. 일설에 의하면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 위치한 퍼시픽스테이츠 대학교에서 4년만에 석사 학위를, 2년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하며 이를 기반으로 유치원 원장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취재 결과 미국에서 유아교육 관련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하는 기간 동안 대한민국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참고로 미국 퍼시픽스테이츠 대학교는 경영학 관련 학위 과정만 있는 대학교로, 박사 학위도 경영학 박사(Doctorate of Business Administration) 과정만 있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학력위조 의혹을 받고있다.# 결국은 학력위조로 확인되었다.#
1978년 당시,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 회장이던 최순실이 kbs와 인터뷰한 영상이 독점공개 되었다. 70년대 영상을 방송국에서 공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며, 당시 옛날 말 억양이 나온다. 영상 대한뉴스 영상도 나온다.
1979년 6월 10일 한양대학교 운동장에서 박근혜 새마음 봉사단 총재가 축사를 한 '제1회 새마음 제전'에서 당시 대학원생으로 이 날 행사를 주최한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의 회장[22]이었던 최순실이 그날 ’새마음 제전’의 개회 선언을 한 일이 당시 언론에 보도되었다. 하지만 그때에는 그녀가 최태민의 딸이라는 사실까지 보도되지는 않았다. 여기서 당시 박근혜와 경호원의 제지도 없이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23] 인터넷 뉴스 '뉴스타파'의 심층 보도
동영상을 보면, 마치 연예인처럼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손을 흔드는 박근혜 총재의 옆을 최순실이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있다.당시 박근혜 총재의 나이는 불과 27세, 최순실의 나이는 23세였다.
1979년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암살당하고 이듬해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박근혜가 6억 먹고 떨어져야 했던[24] 인생 최대의 시련기를 보낼 때도 최순실은 충실하게 박근혜의 옆을 지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박근혜는 1984년 6월 좋은 환경을 버리고 성북동 집을 판 후, 삼성동에 있던 최태민의 집 앞으로 이사했다. 박근혜와 최태민의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최순실의 집이 있었으며, 이 주변은 최태민, 최순실, 박근혜의 부동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25]
시사저널이 입수한 문건에 의하면, 1982년 김영호(최순실보다 연하)와 결혼해서 1983년 김○대를 낳았고 1985년 이혼했다고 한다. 아들에 대한 친권은 김영호가 갖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26] 그런데, 같은 잡지의 취재에 의하면, 공교롭게도 김○대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청와대 총무구매팀에서 근무했다고. 문제는 김○대가 공무원도 아니고, 정치권 출신도 아니고, 일반 직장 경력이 화려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
그러다가 1986년 3월에는 육영재단 부설 유치원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그 무렵 최태민과 최순실이 육영재단 사업에 개입해 전횡을 일삼았고, 이로 인해 140여 명의 육영재단 직원들은 최태민의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직당했다. # 당시 최태민의 사촌인 김창완이 어린이회관 관장에 임명됐고, 육영재단 이사진에 영남투자금융 비리의 핵심인 김정욱이 임명됐으며, 새마음병원 사무국장, 명덕재단 사무국장 등에도 최태민의 친인척 및 하수인이 임명되었다. 이로 인해 1990년 육영재단 분규 때 직원들이 최태민과 최순실의 전횡을 비판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데모를 한 일이 있었다.[27] 이에 대해 2007년 6월 17일 당시 한나라당 당원이었던 김해호는 이렇게 주장했다. #
"최태민의 로열패밀리는 육영재단을 재산 증식의 장으로 이용했고, 박 전 대표는 육영재단 이사장이었지만 아무런 실권도 행사하지 못하고 최태민과 그의 딸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측근에 의해 작은 재단 하나도 소신껏 꾸려가지 못하고 농락당해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된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 지도자가 되고 험난한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넘어갈 수 있겠나?"
육영재단 유치원에서 나온 1988년 3월, 대구광역시에 있는 영진전문대학 유아교육과 교수 및 병설 유치원 부원장으로 임용되어 1993년 2월까지 근무하였다. 위에 설명한 가짜 학위로 교수 직함까지 달게 된 것이다. 그런데 대구로 이사를 간 것도 아니고, 서울에서 주 1회 내려와서 달랑 2시간 수업하고 돌아간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이는 '주 7시간 이상 강의를 하여야 한다'는 당시의 학칙까지 어긴 것.# 달랑 2시간 수업만 할 사람이 교수로 임용된 것, 교수직을 그만 둔 이듬해인 1994년에는 정윤회가 같은 학교에 시간강사로 위촉된 점, 비리사학임에도 교육부의 사업에 참여한 점, 박근혜가 대통령 재임기간 중 유일하게 방문한 전문대학이라는 점에서 영진전문대학은 박근혜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으며, 그 덕에 최순실이 교수까지 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1993년에는 압구정동에서 초이유치원을 설립,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최순실 명의의 상당한 재산이 박근혜의 차명 재산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최순실은 "유치원 사업이 잘 되어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고 해명한 바 있는데, 실제로도 사업이 잘 되기는 하였다고 한다. 초이유치원은 주로 금수저들이 다녔던 유치원이었으니.
1994년 아버지 최태민이 사망하였을 때 아버지에게서 수백 억 원의 재산을 물려받았다는 소문이 있다. 실제로 최순실의 자매들은 최태민에게서 거의 그 정도의 재산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최태민과 최순실은 박근혜를 만나기 전까지 아무 자산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박근혜를 만나기 이전에는 최태민과 그의 가족들은 단칸 방을 전전하며 살 만큼 가난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를 만난 이후 최태민은 순식간에 수천 억 원대 준재벌 급 부동산 자산가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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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최태민 사망 이후 최순실이 최태민의 후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사인 주진우 기자는 2016년 10월 14일자 한겨레 TV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최태민은 교주였는데, 최순실이 현몽을 물려받았다고 해서 최태민의 후계자가 되었다"고 말했다.[28][29]
여성 잡지 <우먼센스> 1994년 8월 호에 가명의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다. 인터뷰 내용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지는 미상이지만 (최태민에 대한 의혹을 부인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하여간 본인 말로는 박근혜와 처음 알게 된 것은 1976년경이었다고 한다. #
1995년 정윤회[30]와 재혼했다. # 그리고 1996년, 딸 정유라[31]를 낳았다는 것이 공식 기록이다.
1998년 오랜 은둔의 시기를 마친 박근혜가 정치계에 입문했을 때에도, 박근혜의 곁에 그림자로서 자리하고 있었다. 남편 정윤회를 박근혜의 비서 실장으로 밀어넣은 것이다. 2008년 이후 박근혜 정부의 국정을 좌지우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 역시 그때 정윤회에 의해 발탁된 인물들이었다.
2006년에 박근혜가 서울특별시장 선거 유세 현장에서 피습을 당했을 때 박근혜를 간호했다고 한다.2007년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한나라당 경선에서도, 박근혜 캠프를 비선에서 지휘한 것은 최순실의 남편인 정윤회였다는 얘기 역시 떠돌아 다녔다.
MBN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2007년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인지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다고 한다. # 또, 자신이 쓴 논문에서 영재 교육을 찬양하는 글이 있다.#
대략 2006년~2012년 경에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고영태를 만난 것으로 추측된다. 고영태는 전직 펜싱 국가대표 선수로 한때는 호스트#s-3 생활을 한 적도 있었고, # 마약사범으로 형벌을 받은 적도 있는 자였다. # 20세 연하인 호빠 출신 고영태와 서로 ‘반말’을 하는 사이로서 매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고영태와 가까워진 후, 고영태가 만든 가방 브랜드 빌로밀로를 박근혜에게 소개하였는지, 박근혜는 2013년 초 당선인 신분으로 빌로밀로 가방을 자주 들고 다녔다. 평소에는 고영태를 "조카 같은 아이"라고 소개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선거 운동원으로 등록하지도 않고 사실상 비선 선거 캠프의 본부장 노릇을 한 것으로 보인다. jtbc의 보도에 따르면, 후에 청와대 행정관이 되는 김한수의 태블릿에 담긴 박근혜의 대선 유세 연설문들이 최순실 또는 정유라에 의해 최종 수정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 이밖에 대선 TV 토론이나 홍보 영상 신문 광고까지 모두 최순실에게 전달됐고 이후 수정한 흔적도 여러 부분 나타난다. 법적 논란도 예상되는 부분. # 어쨌든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에 큰 공로를 세웠다.
떠도는 루머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도록 한 것도 최순실이라고 한다. 새누리를 한자어로 바꾸면 신천지인데, 신천지는 최태민이 만든 영세교의 분파로서 최태민의 제자가 만든 사이비 종교의 이름이라는 것. 우연히도 미르재단의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K를 합치면 미륵인데, 미륵은 최태민의 자칭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얘기는 어디까지나 루머로서 믿거나 말거나. 관련 글
박근혜의 당선 이후인 2014년에 정윤회와 이혼하였다. 개명 직후에 최순실이 정윤회를 상대로 가사 조정 신청을 했고 조정이 성립되어 이혼했다고 하며, 신청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매우 특이한 것은, '결혼 기간 중에 있었던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하고, 이혼한 뒤 서로 비난하지 않는다'라는 조정 조항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까닭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윤회는 황당하게도 '남들도 이혼할 때는 다 그렇게 한다고 들었다.'라는 해명(?)[32]을 한 바 있다. 위장 이혼 의혹을 제기하는 이도 있었으나, 주진우에 의하면 정윤회와 사이가 나빴던 것은 사실이고, 딸도 부친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다고 한다. # 팟캐스트 <김용민 브리핑>에서 주진우가 한 말에 따르면, 최순실과 정윤회는 ‘프라이팬과 식칼을 들고 싸울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 참고로 박정희와 육영수는, 박정희의 엽색행각 때문에 재털이가 날라다니며 직접 주먹질로 치고 받을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 이 때문에 청와대 경호실에서는 육씨와 박씨의 싸움이라고 하여 '육박전'이라고 불렀다. 박근혜의 마음이 황폐해졌던 것도 부모의 사이가 나빴던 것을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2014년 2월 조응천 청와대 비서관이 최순실 관련 내사를 벌이기 시작하면서, 잠시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4년 4월 15일 저녁에 조응천이 청와대의 누군가로부터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통보를 받는 것으로 최순실 관련 내사는 종결되었다. 바로 다음 날인 2014년 4월 16일에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당일 세월호 7시간 동안 박근혜의 행적이 묘연하여 당시에 여러 가지 의문을 자아냈다.
2014년 여름에는 딸 정유라가 현역 고등학생 신분으로 임신하는 등 파란이 많았다. 낙태를 하라고 했으나 정유라가 말을 듣지 않는 등 맘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 어쨌든 정유라를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승마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로 만들었고,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과에도 입학시키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2015년 10월 27일에는 미르재단을 출범시켰다. 미르재단 이사장으로는 차은택의 대학원 은사인 김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원장을 선임하였다. 당시 고영태와의 관계는 아예 사업을 같이 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하였다. 최순실의 개명 후 이름인 최서원과 고영태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따서 ‘고.원.기획’이라는 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이성한 전 미르 재단 사무총장 증언에 따르면, 최순실의 진짜 핵심 측근은 고영태라고 한다. #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시가 30억 원짜리 117평 주상복합 아파트인 피엔폴루스에 거주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해당 주상복합 아파트 지하주차장에는 최순실 소유의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차량과 벤츠 S500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
3 사건 이후 행적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당시 독일에 있었으며 계속 연락두절 상태였다. 그러다가 10월 30일 급거 귀국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종신형을 피하기 위함'이었다는 견해가 있다. # 독일 검찰에 의해 자금세탁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독일에서 자금세탁을 한 자는 종신형에 처한다는 것.[33]
귀국 당시 독일 공항이 아닌 영국 히드로 공항을 통해서 들어왔다. 그러나 대한민국 검찰은 최순실을 인천 국제공항에서 체포하지 않았다. 그 후 최순실은 33시간 동안 국내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녔다.[34]
2016년 10월 31일, 드디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출석 당시 검은색 현대 에쿠스 차량을 타고 등장했으며, 취재진을 피해서 이동하던 중 넘어지면서 신고 왔던 프라다 신발이 벗겨지기도 했다.[35] 순데렐라 검찰 수사를 받고, 저녁 식사로는 인근 식당에서 배달한 곰탕코렁탕을 거의 다 먹었다고 뉴스에 나왔다.
2016년 12월 26일, 사상 유례없는 옥중 청문회를 했다.# 홍남식 서울구치소장이 최순실에게 청문회에 출석하라고 요구했지만, 최순실이 계속 거절하는 바람에 아예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이 구치소로 찾아가서 청문회를 실시했다. 참으로 독한 년이로다. 청문회 거절은 전두환도 노태우도 안 하던 짓이다.
2017년 1월 25일 11시 경,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검 사무실에 업무방해 협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강제 출석하였다. 특검 수사가 강압적이라는 이유로 특검 수사를 거부하려고 했지만 결국 강제 출석하게 된 것이다. 들어갈 때까지도 "이 특검은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 "자백을 강요당하고 있다."라 하면서 큰 소리로 들어갔다고 한다. #[36]
4 논란
4.1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너무 길어서 아예 따로 작성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문서 참조.
최순실과 박근혜 사이의 잘못된 친분이 원인이 되었다.친분이 과격화돼서 크나큰 사건이 벌어졌다. 청와대와 조선일보 사이의 공방에서 시작된 이 사건은 당초 미르재단 등은 일해재단처럼 대기업에 대한 청와대의 삥뜯기(?) 정도 였으나 차은택, 고영태 등의 인물들이 속속들여 밝혀지면서 더 블루 K, 이화여대 등 그 파장이 점차 확대되어 청와대 핵심 기밀 문서가 최순실에게 미리 보고되고 최순실이 수정까지 했다는 등 관련된 폭로들이 화수분처럼 매일매일 나오고 있다. 관련된 취재는 JTBC, TV조선 같은 종편이나 한겨레, 조선일보 정도만이 했으나 박근혜의 "엄정 처벌" 발언 이후 지상파 방송사들도 취재에 나섰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스캔들의 장본인인데도, 기자들이 어디 사는지도 못 알아냈고 연락처도 구하지 못해서 본인의 입장을 인터뷰할 수조차 없는 실정이었다고 한다. # 해당 기사에 따르면 이런저런 불명의 카더라는 많이 들어오지만, 최순실 측이 미리 뜬소문을 퍼뜨리는 함정을 파 놓고 언론사들이 오보를 냈을 때 반격할 가능성이 있어서 가능한 한 조심해서 취재 중이라고 한다.
해외 도피 및 자금 세탁 중이 아닌가하는 야권의 의혹이 제기되었다. 독일에 딸 정유라와 외손자와 함께 있는 것으로 추측했고, 2016년 10월 30일 입국했다. 검찰 소환을 기다리는 중이다. 결국 11월 3일 구속되었다.
인터넷에서는 '순siri' 아이폰 시리야 미안하다. 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디시인사이드에 최순실 갤러리까지 생겼다! #
2010년대 사진. 그리고 마지막 사진은 최순실이 9월 독일로 출국 전에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찍힌 사진이다.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선 후보의 선거 유세문, 당선 소감문, 대선 TV토론 자료 및 홍보 동영상 등에 깊이 개입하였다. 이런 사실은 2016년 10월 24일 JTBC의 뉴스룸 보도가 있기 전까지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었다. (유세문 보도, TV 토론 보도)
2013년 박근혜가 대통령 취임식 당시 입었던 한복도, 최순실이 직접 주문해서 지어줬다고 한다. # 박 대통령이 2013년 7월 저도에서 휴가를 보내는 모습을 찍은 사진에서 박 대통령이 입고 있던 옷은, 공교롭게도 최순실이 전에 입고 다니던 옷과 똑같이 생겼다는 보도도 있었다. 2014년 우병우의 청와대 입성도 최순실이 관여했다고 한다. #
사실 2016년 10월 이전까지 청와대의 비선 실세로 주목 받은 것은 최순실이 아니라 전 남편인 정윤회였지만 2016년 10월 이후에는 야권에서도 '진짜 실세는 최순실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대통령과의 관계가 얼마나 좋으냐에 따라 권력의 강도가 결정된다는 이야기가 떠도는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 실세 중의 실세였다고 보는 시각들이 많다. 심지어 청와대 안팎에 "문고리 3인방은 생살이고 최순실은 오장육부다. 생살은 피가 나도 도려낼 순 있지만, 오장육부에는 목숨이 달려 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
일각에서는 최순실이 청와대 비밀 통로를 통해 청와대를 본인 집처럼 자주 드나들고 있으며, 이는 청와대 경비를 서는 직원들도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참고로 박근혜는 "불필요한 구설수를 피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여동생 박근령과 남동생 박지만 EG 회장조차도 청와대에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걸로 알려져 있었다.
4.1.1 연설문 첨삭
2016년 10월 19일, 고영태가 이렇게 증언했다.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고쳐 써주는 걸 즐겨 했다고. 또한 국무회의 내용도(!!!) 박근혜보다 먼저 받아 보았다고.
이에 대해 2016년 10월 21일 청와대 이원종 비서실장은 "정상적인 사람이면 믿을 수 있겠나.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2016년 10월 24일 JTBC 취재팀은 최순실의 태블릿 pc를 입수해서[37] 분석했고,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을 받아봤다는 사실을 결국 확인해냈다. 물론 최순실이 연설문 44개를 파일 형태로 받은 시점은, 모두 대통령이 연설을 하기 이전이었다. #
2014년 3월 28일의 드레스덴 선언도 최순실의 작품이라는 게 드러났다. 최순실 pc의 파일을 보면 누군가 붉은 글씨로 수정한 흔적이 나오는데, 그 유명한 '통일은 대박'이란 워딩 역시 최순실의 손을 거친 것으로 추측된다. # 그런데 이렇게 별 맥락도 의미도 없이 최순실이 걍 집어 넣었을 것으로 보이는 ‘통일은 대박’이란 말 한마디에, 한동안 우리나라 관료들과 경제인들은 이게 뭔말인지 머리 싸매고 고민하며 ‘통일대박 대잔치’ ‘통일대박 대학생 논문공모전’ ‘통일대박 심포지엄’ 따위의 난리법석을 떨어야 했으니... 창조경제는?
사실 박근혜의 연설문은 유난히 구어체의 비속한 표현이 많고, 주술관계가 어긋난 문장이 허다했으며, 사실관계도 많이 틀리는 편이었다. 원래 대통령 연설문은 전문 비서관이 따로 관리하여 문법과 사실관계가 잘 맞아야 하는데, 유독 역대 대통령의 연설문 중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만 그 모양 그 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까닭을 모두가 알고 싶어 했는데, 최종 오케이 교정을 최순실이 했다고 하니 그제서야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따라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었던 강원국 씨의 행적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그의 저서인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결국 최순실은 이 일로 인해 '순Siri'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이 부분 역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참고.
4.1.2 행사용 의상 담당 업체 선정
TV조선이 10월 28일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 행사에 나갈 때 입는 의상에까지 관여했다고 한다. 청와대 내에서 공정한 경매를 거치지 않고 자신과 개인적인 관계가 있는 의상실에 맡겼다고 한다.
이것만 해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한 큰 문제지만 그나마 의상을 담당한 '강남 샘플링'은 직원 수준이 개판이라 의상실에서 치킨을 먹고 흡연을 하며 술판을 벌이는 직원들이 가득했으며, 기름 묻은 손으로 의상을 작업했다고 한다. #ⓐ
4.1.3 육영수 유품 밀거래 관련 의혹
2016년 10월 24일, 육영수가 생전 즐겨 두르고 다니던 '흰여우 목도리'를 최순실이 암시장에서 팔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
육영수의 유품이면 그녀의 자식인 3남매, 즉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회장이 차지했을 텐데, 최순실이 이것을 팔았다. 그리고 최순실은 육영수와 직접 엮이지 않는다. 저 보도문에선 최순실이 소유하고 있다가 매각하였다는 것은, 박씨 일가가 최순실한테 합법적으로 증여하지 않았다면, 최순실이 육영재단에 있으면서 육영수 관련 유품을 불법 절도/장물거래 한 것이라는 추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서술하고 있다 .
4.1.4 대한항공 인사 개입
2016년 10월 22일에는 국제공항에서 장관급 의전을 받았고 대한항공 인사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실제로 최순실은 자신에게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이용할 때마다 편의를 봐준 대한항공 지점 부장을 박근혜에게 "매우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해줬는데,[38] 그 부장은 최순실에게 보통 장관급에게 하는 의전을 대접해줬다고 한다.
이후, 청와대에서 "윗분의 뜻"이라며 그를 "특별히 배려"해달라고 2차례 연락이 왔고, 대한항공 측은 그 부장을 대한항공 직원들 사이에서 가장 선호되는 국내 제주지점으로 인사발령 냈다.
4.1.5 정부정책 결정을 위한 비선 모임
2016년 10월 25일에는 한겨레신문에서 최순실이 거의 매일 청와대로부터 30cm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건네받아 검토했다는 특종보도를 했다. #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증언에 따르면, 최순실은 거의 매일 청와대 정호성 비서관으로부터 30cm 두께 대통령 보고자료[39]를 받았고, 자신의 논현동 사무실에서 각계 전문가와 ‘비선모임’을 가졌으며, 국정 전반을 논의했다고 한다.[40]
이 전 총장은 비선 모임의 참석자와 관련해 “적을 때는 2명, 많을 때는 5명까지 모였다. 나도 몇 번 참여한 적이 있다”며 “모임에 오는 사람은 회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지만 차은택씨는 거의 항상 있었고 고영태씨도 자주 참석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순실 씨는 모임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이 자료를 던져주고 읽어보게 하고는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며 “최씨의 말을 듣고 우리가 사업 계획서를 작성해 올리면 그게 나중에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 청와대 문건이 돼 거꾸로 우리한테 전달됐다”고 말했다.
비선 모임의 논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한 10%는 미르, 케이스포츠 재단과 관련한 일이지만 나머지 90%는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 정책과 관련된 게 대부분으로 최순실씨는 이를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사항’이라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모임에서는 인사 문제도 논의됐는데 장관을 만들고 안 만들고가 결정됐다”고 밝혔다.
덧붙여서 이성한은 “이런 얘기는 통념을 무너뜨리는 건데, 사실 최씨가 대통령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시키는 구조다.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다. 최씨한테 다 물어보고 승인이 나야 가능한 거라고 보면 된다. 청와대의 문고리 3인방도 사실 다들 최씨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4.1.6 청와대 비서관들을 직접 지휘
2016년 10월 25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2014년 11월 3일 정오쯤 청와대 3급 행정관 윤전추와 청와대 2부속실 행정관 이영선이 청와대와 최순실 씨 측을 오가며 심부름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애초에 박근혜와 절친한 사이조차 아니라던 최순실에게# 무려 청와대 행정관이 시중을 들고 있다니, 그것도 박근혜의 추후 해명에 따르자면 보좌 체계 완비 이후엔 국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그녀에게# 2014년 11월까지 잔심부름을 하고 있었다니 국민들 입장에서는 정말 충격적인 장면.
4.1.7 호칭으로 본 '최순실 권력'
[박 대통령은] 수십년 알고 지낸 언니동생 사이지만 '최 선생님'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대통령 취임 전부터 함께 일한 박 대통령과 문고리 3인방 등 최측근들 사이에선 최씨가 특별한 지위가 없다보니 '선생님'이라고 적당히 부른 듯 합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최씨를 일컫는 말이 '최 회장님'입니다. 정동춘 케이스포츠 이사장 같은 경우에는 처음엔 '건물 가진 강남 아줌마'로 보고 '원장님'으로 불렀다가, 재단에 들어간 뒤엔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회장님'이라고 급히 호칭을 바꿨답니다. 재단 이사진은 최씨의 이름조차 모르고, 그러니까 감히 묻지도 못한 채 '회장님'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 기업 관계자들은 '여사님'이라는 호칭을 붙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카 장시호씨조차 메모에 '대빵'이라고 이모를 표시했고, 차은택씨는 '회장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주변 사람에게 지칭할 땐 '보스'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정작 최순실은] 안종범 청와대 수석을 '안' 이나 '안 선생'으로 지칭했고 김종 전 차관도 '미스터 판다'라고 했습니다.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도 직책이 아닌 대선 사무실 시절의 호칭인 '정 과장'으로 낮춰 불렀습니다. 최씨가 상전으로 군림하며 비서처럼 부렸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씨를 '[풍문을 전해주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생각했다는 박 대통령 주장은 설득력이 크게 떨어집니다. 특검 수사나 법정에서 밝혀지고 있는 상황과도 너무 동떨어져 있는 거죠.#
4.2 이화여자대학교 정유라 특혜 논란
딸인 정유라와 찍은 사진.
2016년 10월 26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은 이미 2014년 4월 29일에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에서 만든 체육특기자 입시 관련 문건을 입수하였다.[41] 보고서가 만들어진 당일 청와대의 누군가가 최순실에게 관련 문건을 통째로 팩스 송신한 것이다. #
물론 이것만으로 이화여대의 체육특기자 선발에 청와대의 협조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최순실이 정유라의 체육특기자 입시를 미리부터 준비했으며, 그와 관련하여 청와대의 도움을 상당히 얻었다는 정황이 포착된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그 문건을 입수한 때로부터 6개월 뒤인 2014년 10월 30일, 정유라는 이화여대 체육학과에 승마특기생으로 합격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이화여자대학교 정유라 특혜 논란 문서를 참조.
4.3 폭력 사주 논란
조직폭력배에게 폭력을 행사해달라고 청탁한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2016년 11월 8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딸한테 붙은 남자[42] 좀 떼내줘" 달라고 '주먹'을 찾아가 부탁을 했다는 것.
시점은 2015년 7월이었다고 한다. 서울 강남 학동사거리 근처의 한 굴비 음식점에 언니 최순득과 함께 찾아가서 폭력조직 간부 A씨에게 '딸이 집을 나가 서울 신림동 근처에서 남자 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는데 1달에 2,000만 원도 넘게 쓰면서 속을 썩인다'며 '온갖 수를 써봐도 헤어지게 할 방법이 없으니 당신이 떼어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 덧붙여서 A씨에게 '도와주면 큰 사례를 하겠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당시 최순실과 최순득은 자매관계라고 자신들을 소개했으며, 명품 옷을 입고 명품 가방을 들었고 언행에 거침이 없었다고 한다. 이에 A씨는 소개한 지인의 체면이 있어서 그 자리에서 단번에 거절하지 못하고 '생각해보겠다'고만 한 뒤 자리를 떴는데, 최순실과 최순득에 대해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한눈에 봐도 이상했다.'고 진술했다.
만약 조선일보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때 최순실은 폭행교사죄를 저지른 셈인데 다만 미수에 그친 셈이라 이것만으로 형사처벌까지 받지는 않을 듯하다.
5 가계
- 조부 최윤성(1892 ~ 1945)
- 조모 미상
- 부 최태민(1912 ~ 1994)
- 외조부 미상
- 외조모 미상
- 시조부 미상
- 시조모 미상
- 시부 미상
- 배우자 김영호(? ~)
- 장남 김 모씨(1983 ~)
- 배우자 김영호(? ~)
- 시부 미상
- 시조부 미상
- 시조모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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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메라가 돌아갈 때는 작은 목소리로 의기소침한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카메라가 꺼지자 목소리가 커지고 고개를 들고서 사진과 같이 주위를 째려봤다.
- ↑ 2014년까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인물이다. 해당 발언은 2015년 1월에 동아일보에서 보도한 내용으로,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 당시 수사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동아일보는 박 前 경정의 말을 '황당한 권력 서열 강의' 정도로 치부하였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 ↑ 영어 단어인 Confirm 이라는 뜻이다.
- ↑ 이에 국회측은 최순실을 비선실세라고 인정하는 것이라고하였다.
- ↑ 개명 후 이름으로 법원, 헌재 재판 등에서는 본명을 많이 사용하나, 국회 국정 조사에서나 언론, 일반인 등에게는 개명 전 이름인 최순실을 압도적으로 많이 기억하고 사용한다. 공적인 영역에서도 재판 및 심판 자체에서만 법적인 이름 최서원으로 불릴 뿐, 검찰과 특검, 변호인 등 수사 관련하는 사람들에게도 호칭은 최순실이다. 헌재에서도 최순실로 불리는 경우가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의 공식 수사 명목 또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 규명 수사"라, 특검의 공식 발언에서도 최순실이라 부른다. 특이한 점은 이와 달리 그녀의 딸과 조카는 법적 상황이건 다른 상황이건 개명 후 이름으로 불린다는 부분이다. 이는 최순천, 최순득과 이름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 '비선 실세' 최순실 아버지 최태민 씨가 창시한 '영세교'는 어떤 종교?
- ↑ 2007년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본국으로 보낸 보고서에 '최태민이 박근혜의 몸과 마음(body and soul)을 완벽히 지배했다(had complete control)'는 내용이 있다. 주한 美대사관, 2007년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 "최태민은 한국의 라스푸틴… 朴 후보를 지배" 이 보고서와 그간의 정황 김종필과 김현철의 최태민 사생아 발언 등으로 2007년 경선 청문회에서 사생아가 있느냐는 핵직구 질문이 던져질 정도로 박근혜와 내연관계라는 의혹도 있어 왔다.
- ↑ 박근혜 친동생들인 박지만, 박근령 1990년 "누나(언니)를 최태민에서 구해주세요" 대통령에 탄원서
- ↑ 박근혜의 남동생인 박지만이 '피보다 진한 물도 있더라'는 2014년 정윤회 게이트 때 한 말이 유명하다. 여기서 물은 최순실 "박지만도 '최순실 통하라'는 말 듣고 살았다" 박지만 “누나, 최순실-정윤회 얘기만 나오면 최면 걸려”
- ↑ 최태민에 대한 얘기를 듣고 박정희 대통령은 노발대발하여 "그 놈을 거세시켜 버리고 근혜 주위에 접근도 시키지 말라"고 했다는데 이루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도 박정희에게 여러 차례 최태민을 내치게 할 것을 진언했다고 한다.
- ↑ 미르·K재단으로 이름만 바꿨을 뿐 기업에 헌금 강요, 후견인 자처 등 부친인 최태민의 수법 그대로라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 40년 전 최태민 수법 그대로
- ↑ 대통령을 감싸고 도는 여당인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이 이랬다.그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물론 김용태 의원은 친박계와 많이 다투었으며, 유승민 의원과 더불어 대표적인 비박의 강경파이긴 하지만 같은 당원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고 말았다. 이것은 여당도 옹호가 힘들다는 뜻이며 2016년 11월 22일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 ↑ 최태민의 5번째 아내다. 나중에 박근혜의 정치 입문에 많은 힘을 썼고, 사위 정윤회에게 박근혜의 비서 실장으로 들어가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 ↑ 임선이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조순제(즉, 최순실의 의붓 오빠)를 두었다. 조순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영남대 비리 4인방을 아느냐'라는 질문에 박근혜 후보가 김정욱만 알고 나머지는 모른다고 대답하자, 박 후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한나라당에 진정서를 제출한 일이 있다.#
- ↑ 일부 언론에서는 "최서연"으로 개명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으나, 그 후에 모든 언론이 다 '최서원'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오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 ↑ 공식 문서에 최서원으로 서명돼 있거나 하는
- ↑ 썰전에서 이에 대해 한번 농담삼아 의문을 던지기는 했다. 여기서는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이미 공공재가 된 것 아닌가로 해석하였다.
- ↑ 김형욱 중앙정보부장도 회고록에서 최태민의 ‘예지력’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최태민이 청와대로 보낸 편지에는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 박근혜가 우매해 아무 것도 모르니 가서 그를 도우라고 했다’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 ↑ 그 중 일부는 정식 혼인신고 없이 사실혼 관계였다 헤어진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단, 최순실의 모친 임선이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 ↑ 죽은 사람이나 신령 따위가 꿈에 나타나는 것
- ↑ 최순실 옆에 앉은 남자는 이명박이다.
- ↑ 최순실의 아버지인 최태민은 ‘새마음 갖기 운동본부’를 창설한 뒤 스스로 본부장을 맡았고, 박근혜는 ‘새마음 봉사단’ 총재를, 최순실은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 ↑ 여담으로 박근혜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남자는 다름 아닌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다. 이 두 사람이 훗날 대권을 위해 양보 없는 싸움을 벌였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흥미로운 장면이다.
- ↑ 현재 물가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70년대 6억이다! 70년대 당시 부동산 최고로 꼽히는 은마아파트 31평 30채 가량을 구매할 수 있는 거액이었다.
- ↑ 2007년 6월 17일 당시 한나라당 당원이었던 김해호가 주장한 내용이다. #
- ↑ 정윤회의 아버지와의 인터뷰에서 '전 남편과 사이에 다른 자식이 있다'#라고 하여 딸 정유라가 실은 재혼 전에 태어난 것 아니었느냐는 억측이 있었다.
- ↑ 최태민이 1987년 재단 직원들에게 반감을 산 이유는 당시 <어깨동무>, <꿈나라> 등 어린이 잡지 편집에 딸 최순실을 관여시키는 등 육영이 목적인 어린이회관을 수익 사업체로 전환시키려 한 데 있었다. 어쨌든 이 일로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는 육영재단에 경찰 2개 중대를 파견하는 등 육영재단 ‘정상화’를 시도하였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는 육영재단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 ↑ 주진우 시사인 기자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최순실 곁을 봐준다는 무속인을 2명 만났다”며 “정윤회 씨를 봐주는 무속인도 있었고 최순실의 딸을 봐주는 점쟁이도 있었다”고 밝혔다. 주 기자는 “최태민 씨는 교주였다”며 “최순실 씨가 현몽을 물려받았다고 해서 (최태민의) 후계자가 된 것으로 듣고 있다”고 말했다. #
근데 이 인간은 현몽능력씩이나 물려받았는데 왜 다른 무속인한테 점을 보냐 - ↑ CBS 표준 FM 시사 자키 정관용입니다, 집중 인터뷰 "최순실 쫓는 '악마 기자' 주진우" - 주진우 기자 (시사IN), 유튜브 링크
- ↑ 훗날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다.
- ↑ 2015년 6월 12일경 정유연에서 정유라로 개명함.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대회 진행 문서에 나오는 그 정유연이다. 단체 마장마술에서 금메달을 땄다. 아시안게임 전의 국가대표들 인터뷰 때 방송에 잠깐 나온 바도 있다. #
- ↑ 참고로 정윤회는 최순실과 결혼하기 전에 결혼도 했고 자식도 낳았고 이혼도 했다. 처음 이혼할 때는 그런 적도 없는 사람이, 2번째 이혼 때만 "남들도 다 하는 줄 알고 했다"니… 이 말에 대한 진실성 여부는 위키러 각자가 잘 생각해서 판단해 보자.
- ↑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의 제보에 따르면, 독일 검찰은 최순실에 대해 매우 열심히 수사를 했는데,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검찰에서 아무런 협조 요청이 없다”면서 “한국 검찰에서 협조요청이 오면 기꺼이 적극적으로 협력을 할 텐데 왜 한국 검찰이 아무런 협력 요청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 ↑ 그 시간 동안 돈 찾고, 입 맞추고, 증거인멸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 ↑ 아마도 가장 값이 싼 신발을 신고 왔을 텐데, 그 신발이 프라다였다. 어쨌든 그렇게 로비에 남겨진 시가 72만원 정도의 프라다 신발은, 나중에 최순실에게 전달되었다고 한다.
- ↑ 이 때 청소아줌마가 "염병하네." 라고 맞받아친 영상이 인터넷에 올려지는 바람에 포털사이트 검색어에는 최순실과 청소아줌마가 연신 오르내렸다.
- ↑ JTBC 취재진이 더블루K 사무실에 남겨진 고영태의 책상 서랍에서 발견했다.
- ↑ 공교롭게도 그 이전에는 자기 딸이 라이벌한테 국내 경기에서 지고 나서 심판들을 겁박했다는 사실을 파헤치던 문체부 국장을 "참 나쁜 사람"이라고 일러바쳐서(...) 해당 국장이 좌천된 적도 있다.
- ↑ 그 자료는 주로 청와대 수석들이 대통령한테 보고한 것들이었다고 한다.
- ↑ 이런 진술은 최씨와 가까웠던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 9월 7일부터 9월 25일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16시간 동안 진행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일관되게 말한 내용이다.
- ↑ 이 문건은 2016년 10월 최순실의 측근 사무실에서 발견되었다. 문건 상단을 보면, 2014년 4월 29일 밤 9시 4분에 팩스로 보내진 기록이 적혀 있다.
- ↑ 정유라의 아들의 아빠인 신주평으로 추정된다.
- ↑ 최순실이 조직폭력배를 고용해 정유라한테서 때내려고 할정도니 사위 대접이나 받을지는 의문이며, 최순실이 정유라와 신주평이 결혼하는 조건으로 정유라로부터 재산 상속 포기각서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신주평 본인이 인터뷰에서 2016년 4월에 정유라와 성격 차이로 결별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