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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Baudrillard (1929~2007)
시뮐라크르란 결코 진실을 감추는 것이 아니다. 진실이야말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긴다. 시뮐라크르는 참된 것이다.
1 개요
프랑스의 철학자,사회학자. 주요 저서는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 소비의 사회(La Société de consommation),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Pour une Critique de I'Economie Politique du Signe) 등이 있다.
보드리야르의 대표적인 이론인 '시뮐라시옹'은 1970년대 이후의 미디어이론, 예술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미국의 현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2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
프랑스어 시뮐라크르(simulacres)는 명사로서 단어 그 자체의 의미로는 모방, 모사의 의미를 가지나 보드리야르는 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시뮐라시옹(simulation)[1] 역시 '모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보드리야르의 시뮐라시옹은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이다. 시뮐라시옹은 시뮐라크르의 동사적 형태로 사용된다. 즉 시뮐라시옹은 '시뮐라크르를 하기'이다.
구체적으로 들자면 여러분이 가정에서 플레이하는 워 게임이나 FIFA 같은 시뮐레이션 게임들은 각각 실제 전쟁, 축구 시합을 모티브로 재구성하여 플레이어가 실제 전장이나 축구 시합중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게임을 만든 것이다.
보드리야르의 시뮐라시옹과 시뮐라크르 개념은 시뮐레이션이라는 본래 단어 뜻을 이용하고 확장한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간단히 요약하면,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졌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보드리야르의 시뮐라크르는 흉내낼 대상, 즉 원본이 없는 이미지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진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독자적인 하나의 현실이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시뮐라크르는 원본을 복사하는 것이었고, 시뮐라크르는 단순히 복제물이었지만, 현대사회의 시뮐라크르는 오히려 원본을 압도하며, 오히려 그 원본이 시뮐라크르의 이미지를 따르게 된다. 시뮐라시옹은 "원본도 사실성도 없는 실재, 즉 파생실재(hyperréel)[2]를 모델들을 가지고 산출하는 작업이다."[3] 이것만으로 이해하긴 어려우니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어떤 아이돌 A를 생각했을 때, 먼저 존재했던 것은 실제 현실에서의 A이고, 아이돌 A는 그 후에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원본은 실제 현실에서의 A이고 미디어에서 노출되는 아이돌 A의 이미지는 단순한 복제물 혹은 위장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중들은 오히려 미디어에서 노출되는 이미지를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 현실에서의 A가 아이돌 A의 이미지를 따라야 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실재가 파생실재로 전환되었다.'라고 하며, 이것이 곧 시뮐라시옹이다.
보드리야르는 그 예로 미키 마우스와 디즈니랜드를 든다. 알려져 있다시피, 미키마우스는 쥐를 모델로 한 것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미키마우스와 쥐는 비슷한 점이 거의 없다. 두발로 서서 사람처럼 걸어다니는 미키마우스는 사실상 쥐와 별개의 존재다. 보드리야르는 이를 통해, 어떤 대상을 모델로 만든 복제물, 가상물이 1) 원본과 연관성을 잃어버리고, 2) 원본보다 더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글로 적어놓으면 상당히 헷갈리는데, 영화 매트릭스, 트루먼 쇼나 네트워크를 보면 한 방에 이해가 된다. 매트릭스 속의 등장인물들은 기계들이 인간을 배터리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가상현실인 매트릭스를 실제 세상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게다가 매트릭스 안의 세상이 바깥 세상보다도 더 '현실'적이다.[4] 트루먼 쇼의 트루먼 역시 그의 삶을 TV쇼로 만들기 위해 제작진들이 거대한 세트장 안에서의 삶을 그가 실제 세상처럼 여기도록 무수히 많은 노력을 하고, 트루먼은 실제로 하늘에서 조명기구가 떨어진다거나 외부의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는 이를 사실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네트워크에서 주인공은 반쯤 정신나간 상태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판을 늘어놓지만, 방송사는 시청률을 뽑기 위해 그의 장광설을 오락 프로그램으로 편성한다. 매스미디어가 대중에게 이미지를 떠먹이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 대중에게 떠먹이는 또하나의 이미지가 되는, 즉 시뮐라시옹의 범람에 대한 비판을 또하나의 시뮐라크르로 만들어버린 기막힌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컴퓨터 시뮐레이션을 예로 들어보자. 미남 혹은 미녀를 폴리곤으로 만들어 시뮐레이션하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느낄까? 예를 들어 눈 앞에 게임 캐릭터 '라라 크로프트'가 있다 쳐보자. 비교사진 한쪽은 옛날 라라 크로프트, 폴리곤이 적어 각져보이고 남자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반면 2013년도 라라 프로프트는 폴리곤이 많고, 얼룩같은 요소까지 재현하여 '진짜 여자'처럼 보인다. 여기서 2013년도 판 라라 크로프트의 본래 모델이 되어준 여자가 있었다고 쳐보자. 게임을 접하는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본 모델보다 게임 속 라라 크로프트를 더 매력적으로 느끼고, 게임 속 라라 크로프트가 더 가치있다고 느낄지 모른다. 현실여자는 멀지만 게임속 여자는 가까우니까. 본격 전자계집 이게 심해지면 도리어 게이머는 현실여자에게 말을 걸려고 하기보다는, 그 여자를 본뜬 가상여캐를 만들어서 그 여캐와 더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 하지 않을까? 상상해버렸다
우리는 당신들이 아는 전부예요. 당신들은 우리가 내뱉는 환상을 믿기 시작하시는 겁니다. TV가 현실이고 당신들의 삶은 가짜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TV가 하라는대로 따라하고만 있어요! TV 말대로 차려입고, TV 말대로 먹고, TV 말대로 애를 키우고, 심지어 TV가 시키는대로 생각하고 있어! 이건 집단 광기[5]야, 이 미친 놈들아! 하느님 맙소사, 당신들이 진짜라고! 우리가 가짜란 말이야![6][7](네트워크, 1976)
보드리야르가 지적하려 했던 것은 이런 문제였다. 즉 오늘날 사회에서는 가상물이 현실보다 더 가치있는 듯 떠받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현실과 가상을 구분 못한다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이것이 사람들을 수동적, 순응적으로 한마디로 호구 만든다고 보고 불쾌해 했다. 그는 현대사회는 상품이 아닌 광고를 소비한다고 비판했다. 상품의 기능이나 유용성이 아니라 뽀대나 겉보기 이미지 요소만 보고 좋아라 한다는 것이다. 오해를 감수하고 쉽게 단적으로 말한다면, 만화계집이나 전자계집과 결혼하려는 사람들을 보드리야르가 만났다면 아마 뭔가 심하게 한마디 했을 듯. 오덕페이트 같은 경우라면 얄짤없을 듯 싶다.
보드리야르는 오늘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시뮐라시옹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이 개념을 가지고 깐 것이 디즈니랜드와 걸프전쟁.
디즈니랜드는 엄밀히 말하면 허상이다. 당연하지 피터팬은 없으니까 하지만 디즈니랜드에는 피터팬이나 후크 선장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나와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진짜인 그런 듯 마냥'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거기서 얻는게 뭘까? 뭔가에 만족하고 유용한게 있기 때문에 괜히 비싼 돈주고 디즈니랜드 들어가서 또 비싼 돈주고 과자 사먹고 놀이기구 타고 하는 것 아닌가? 보드리야르 입장에서는 이런 꼴이 우스웠을 것이다. 그런데 돈 쓰는 건 쓸데없는 짓 아닌가. 기회비용을 따진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 앞날을 더 생각하거나 하는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8] 게다가 그 디즈니랜드가 기업이 뒤로 저지르는 각종 악행을 감추는 역할을 한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9]
그러나 무엇보다도 보드리야르가 이들 사례를 통해 일갈하고자 했던 부분은 그것이 허상이라는 것 자체가 아니라 명백히 '허상'과 '허상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그의 "디즈니랜드는 미국 자체가 거대한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즉, 디즈니랜드는 애써 '진짜인 듯' 굴지만 누가 보기에도 환상이다. 그러나 디즈니랜드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이들조차 자신 주변에 놓여져 있는 수많은 미디어 매체들까지 허구 혹은 환상일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사고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CNN의 걸프전쟁 보도를 보고 '걸프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깠다. 보드리야르가 말하고자 했던건, 'CNN 보도에서 나오는 전쟁 이미지는 실제 전쟁과 다른데, 대중시청자들은 이를 진짜 전쟁인마냥 여긴다'는 것이다. 시청자는 마치 전쟁영화나 게임화면 보듯 전쟁을 '관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청자들이 보도화면을 보고 공감이나 연민을 느꼈나?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화면에 나온건 어디까지나 미국측 입장일 뿐(미국 함정에서 발사되는 토마호크 미사일, 야간에 바그다드에 떨어지는 미사일 화면 등), 실제로 그 미사일이나 총탄에 맞는 피해자 입장은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피해자는 사담 후세인이 아니라 무고한 이라크 시민들이다. 우리는 디즈니랜드와 같은 환상적인 것과 걸프전 보도와 같은 현실적인 것은 아주 구분된 무언가라고 생각하면서 비판적 사유를 마비시키지만 실제로는 걸프전 보도도 디즈니랜드 만큼이나 '현실 같은 허상'에 불과하며 우리의 사유를 특정 방향으로 마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보드리야르의 가장 중요한 함의이다. "죄다 모방이니 다 헛짓거리야!"라고 비판했다면 구태여 보드리야르가 현대 탈근대 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건 플라톤 시절에 이미 다했던 이야기다. 오히려 그의 철학적 의의는 우리가 명백히 허상이라고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도리어 우리가 허상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들이 은폐되는 작용이 발생함을 밝힌데에 있으며, 나아가 우리가 모두 떠다니는 기표와 허상들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뿐임을, 현대 소비문화와 자본주의 속에서 우리의 삶 자체가 그러한 시뮐라시옹(=시뮐라크르 하기)임을 처절하게 비판한 것에 그 발전적 함의가 있다.
비슷한 예로 보드리야르는 한국민속촌도 깠다.# 정확히 말하면 보드리야르는 한국민속촌에서 전통혼례를 하는 것을 깐 것이다. (캐릭터 컨셉 알바도 비슷한 범주이겠지만 캐릭터 알바는 보드리야르 사후에 등장했다.)
3 철학적 문제
원본과 복제의 관계는 철학에서 수천년동안 다뤄진 문제였다. 플라톤의 경우 복제물은 원본보다 못하다고 깠다. 플라톤은 이데아(idea) 개념을 주장했는데, 그는 '모든 사물의 원본'인 이데아가 있으며, 이 이데아는 사물세계(물리적인, 우리가 사는 이 세계) 너머 다른 곳(형이상학의 세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즉 플라톤에게는 원본>복제 등식의 가치를 가졌던 것.
그러다 르네상스와 과학혁명 이후 원본=복제 등식으로 점차 넘어갔다. 안 그러면 회화나 박물지 삽화 속 이미지는 원본을 대변하지 못할테니까. 우리가 흔히 아는, 정교하게 그린 사실적 이미지(하지만 이게 현실적이거나 실상을 보여주는건 아니다)가 르네상스 이후 늘어난 건 이때문이다. 탐험가들이 먼나라에서 본 동식물을 그림으로 남기거나, 천문학자들이 별들의 위치를 도표로 남기는 등의 활동도 복제물은 원본을 드러내준다, 복제물은 원본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게 불가능하면 당연히 모든 자료는 믿을 수 없는 게 된다.
반면 보드리야르는 이제 광고가 발달하고 이미지가 넘쳐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원본<복제라고 이야기한다. 이유는 위에 적은 대로다. 게임 캐릭터 주제에 현실 사람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때문.미쿠미쿠하게 해줄께?
4 해결책
적합한 전략적 저항은 의미와 발언을 거부하고, 거부와 비수용의 형태 그 자체인 현 시스템의 메커니즘을 ‘과잉 순응적인’ 방식으로 흉내내는 것이다. 이것이 대중의 저항 전략이다. 그것은 거울의 경우처럼 시스템의 논리를 흡수하지는 않으면서 복사하고 의미를 반영시킴으로써 그 논리를 뒤집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전략이다(만약 이걸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해결책으로 과잉 순응을 제시했다. 도리어 오버해서 뭐가 잘못됐는지 상대방이 알아채게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에서 든 예로 본다면, 일부러 라라 크로프트의 특정 부위를 크게 만든다던지 해서, 그 이미지가 사실은 가짜라는 것을 확연히 자각하게끔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현재에는 그러한 기괴함 자체에 대한 페티쉬가 발생하기까지하니, 아이러니한 셈.
5 사례들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예를 들기 어려울 정도다. 이때문에 보드리야르와 그의 시뮐라시옹 개념은 지금까지도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수많은 광고 : 굳이 말이 必要韓紙? 저 옷을 사면 내가 원빈이/전지현이 될 것 같나? 안생겨요 저 건강식품을 먹으면 내가 원빈이/전지현이 될 것 같나? 안생겨요 저 집에서 살면 내가 원빈이/전지현이 될 것 같나? 안생겨요 왜 자꾸 원빈/전지현만 쓰냐? 너 오징어되라고
성괴 : 성형외과 광고가 만들어낸 시뮐라시옹이라 봐도 무방하다. 사람들이 실제 인간을 보고 아름다움의 기준을 정하는 게 아니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보고 아름다움의 기준을 정하기 때문에 생기는 비극(...)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성들이 바비인형이나 눈깔괴물 같은 만화 캐릭터를 보고 예쁘다 생각해서 자신을 그렇게 만들길 원하는 거라는 주장도 있고.
6 논란
이런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쪽 학자들이 대부분 말을 어렵게 쓰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자꾸 달린다. 이를 테면 "시뮐라시옹을 보면 알겠지만 뜻도 모를 과학, 사회과학 용어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 이해가 어렵다. 아니 애초에 이해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핵분열이나 상대성이론에 관해서는 소칼이 이해도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내용. 특히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과 연관시켜 비판받는다. 참고로 소칼의 비판에 대해 그는 "지식인의 비굴함과 나태는 우리시대의 올림픽 종목이 돼버렸다"라는 코멘트를 했다.[10]
이 부분에 대해 좀더 살펴보자. 아마 소칼은 implosion이란 단어를 사용한걸 가지고 지적한 듯 싶다. 핵물리학쪽 역어로는 내폭(內爆), 혹은 폭축(爆縮)#이라고 한다. 하태환은 보드리야르의 책 시뮐라시옹을 번역하면서 이를 함열이라고 번역했다. (내파라고도 한다.) 아래는 해당 단락이다. 문제가 되는 implosion 개념이 언급된 부분은 밑줄로 표시하였다.
보부르 효과 : 함열과 저지[11]보부르 효과, 보부르 기계, 보부르 사물 - 어떻게 보부르에게 이름을 붙여줄까? 흐름과 기호로, 그물망과 순환으로 된 이 뼈대물의 수수께끼는 더 이상 이름이 없는 어떤 구조를 번역하는 데 있어서의 궁극적 망설임을 일으킨다. 이 망설임은 표면에서는 환기장치에(활발함, 자동관리, 정보, 중간매체), 깊은 곳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함열에 내맡겨진 사회관계들을 번역하는데 있어서의 궁극적 망설임과 동일하다. 총체적 시뮐라시옹의 유희를 위한 기념비로써 이 연구소는 모든 문화적 에너지를 흡수하고 삼켜버리는 소각로처럼 기능한다. 다소는 2001년의 검은 거석기념비[12]처럼 말이다. 이곳에서 물질화하고, 흡수되고, 절멸되기 위하여 오는 모든 내용물들이 괴상망측하게 대류하는 현상인 것이다.
이 곳의 모든 것은 얼음장처럼 평평할 따름이다. 이를 예증하는 것은 깨끗이 갈고 닦음, 소독, 속물적이고 위생학적인 디자인 등이다. 그러나 특히 정신적으로 보부르는 공허를 만드는 공간이다. __약간은 원자력 발전소처럼 말이다. 원자력 발전소의 진짜 위험은 불안전, 오염, 폭발이 아니고, 발전소를 중심으로 방사되는 극대의 안전 시스템, 모든 영토 안에서 더욱더 밀집하여 펼쳐지는 통제와 저지의 얼음장처럼 평평한 면, 기술적인, 환경 보호론적인, 경제적인, 지정학적인 평면이다. 핵이 중요한 이유는 이렇다. 원자력 발전소는 그로부터 절대 안전의 모델이 세공되는 원틀이며, 이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일반화할 것이며, 깊은 의미로는 저지의 모델이기 때문이다(핵위협 시뮐라시옹의 그늘과 평화공존의 그늘 아래서 세계적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모델과 동일한 것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보드리야르가 쓴 함열 개념은 핵물리학에서 사용하는 폭축의 의미가 아니다. 애초에 보드리야르는 핵물리학을 고려하고 용어를 골라 쓴 게 아닌 듯 보인다.[13] 어떤 신문기사에서 '관객들이 녹아내렸다'라고 쓴다고 그 말이 실제로 관객이 유기물질 수용액이 되어버렸다는걸 의미하진 않지 않는가? 그건 그냥 은유(metaphor)와 말 그대로의 의미도 구분못하는 짓일 뿐이다.[14]
내용을 명확하게 하기위해 하태완씨가 번역한 '시뮐라시옹'안의 함열에 대한 각주를 인용한다.
함열implosion은 폭발explosion과 방향이 반대인 같은 힘이다. 팽창, 진보, 식민화를 가치로 여겼던 모더니즘을 대변하는 것이 에너지의 폭발이었다면, 함열은 그와는 반대로 갈라지고 쪼개졌던 것들이 다시 분할이전의 상태로 응축되어 가는 현상이다. 다름과 구분이 비구분으로 들어가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함열을 안으로의 폭발로 이해하거나 번역하는 경우는 이것 또한 폭발이므로 모더니즘의 현상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함열 현상은 우선 실재가 사라지고 다름이 없는 시뮐라크르로 전환되는 것이고, 이어서 시뮐라크르의 가장 대표인 기호만이 남아 실재를 대체 하는 현상이다. 그중 가장 극단적인 함열은 아마도 컴퓨터 디스켓에서처럼 모든 실재가 아무것도 없는 하나의 디스켓으로 축약 대체되거나 정보적인 코드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러한 무의 상태는 그러나 전체를 이미 그속에 담고 있다. 함열은 결코 안으로의 폭발이 아니라 비구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함열은 블랙홀로 모든 것이 흡수되어 응축되는 현상이다.
보드리야르가 이 글에서 다루는건 핵분열이나 핵융합같은 핵물리학 개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핵억지력에 의해 공포를 조장하는 오늘날의 세계질서와 (프랑스) 국내질서이다. [15] 그걸 퐁피두 센터를 비유할때 가져다 쓴 것 뿐이다. 시뮐라크르 같은 허상 이미지들이 넘쳐나면 결국 그것이 사회에 부정적 여파를 미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말로 해석하는게 훨씬 타당하다. 보드리야르는 오늘날 정보의 유통량이 많아졌지만, 그게 사회를 풍요롭고 견고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도리어 '내부에서 파괴'시킨다고 봤다.
소칼의 지적이 전혀 타당하지 않은건 아니다. 지적 사기에서 소칼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리는 보드리야르의 저서에서 과학 용어가 본연의 의미를 철저히 무시당한 채 무엇보다도 너무나 엉뚱한 맥락에서 남용되고 있음을 본다. 그것을 은유로서 받아들이건 받아들이지 않건, 사회학이나 역사학에 대한 진부한 관찰에 심오함을 덧씌우려는 것 외에 그런 용어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즉 이는 과학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너무 맥락없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렇게 전문 용어를 뻔뻔하게 사용하면서 지적 허세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문학자가 과학 용어를 사용한다고 욕하는게 아니다. 그 과학 용어가 맥락을 무시한채 사용되고 뭔가 있는 것마냥 보여진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어쨌든 보드리야르의 글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전반적으로 프랑스 철학자들이 자기 멋대로 개념을 만들거나 기존 개념을 꼬아서 어렵게 쓴다. 보드리야르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정작 원전을 읽고 헤매다 주석서나 해설서를 읽고 아 그런 내용이구나 한다더라. 이것이 꿈보다 해몽인가!! 뭐, 그래도 어느정도 배경지식을 가지고 읽으면 재밌다고 한다. 대체 이런걸 재밌어 하는 사람은 어떤 괴물이냐? 조언을 하자면, 단어의 원래 뜻 의미대로 이해하려 하는 것보단, 어떤 은유로 빗대어 쓰고 있을까 전체 맥락을 보고 이해하는게 더 쉽다. 핵분열이나 상대성이론 같은걸 가져다 쓴다 해서 그 의미 그대로 쓰고 있을거라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냥 '현대문명의 위기를 상징하는 아이콘' 정도로 생각하고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걸 고려하길. 그리고 책에서 드는 예시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좀더 쉬워진다.
과학계 외의 입장에서는, 페미니즘 진영의 비판을 받았다.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를 시뮐라시옹이 난무하여 실재가 사라진 세상으로 보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이미지에 과잉 순응해 그 모순을 폭로하는 것을 제시했다. 그런데 여성이 해방을 이루려면 기존의 여성적 이미지를 따라가고 과잉순응해야 한다고 주장해 페미니즘에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있다...[16] 그리고 애초에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자기들끼리도 깐다. 그러면서 노니까.(...)
참고로 해외의 석학들도 이 시뮐라시옹을 설명할 때 이런 어려운 배경을 한방에 설명하기 위해 매트릭스를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러다가 매트릭스를 너무 울궈먹었다 싶으면 한 두 번씩 트루먼 쇼를 꺼내는 정도.
7 외부고리
[1]- ↑ 영어의 시뮬레이션과 같은 스펠링이다.
- ↑ 실재하는 현실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 전혀 다른 현실을 말한다. 그러나 파생실재는 실재가 가지고 있는 사실성에 의해 규제되지 않는다.
- ↑ <시뮐라시옹> p.12, 장 보드리야르, 하태환 역
- ↑ 이에 대한 암시인지 네오는 아직 앤더슨이었던 시절 자신이 만든 해킹 프로그램을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 책에 숨겨두고 있었다.
- ↑ Mass madness. Mass media에 대한 말장난.
- ↑ 원문: You're beginning to believe the illusions we're spinning here. You're beginning to think that the tube is reality, and that your own lives are unreal. You do whatever the tube tells you! You dress like the tube, you eat like the tube, you raise your children like the tube, you even *think* like the tube! This is mass madness, you maniacs! In God's name, you people are the real thing! *WE* are the illusion!
- ↑ 이런 장광설을 늘어놓는 주인공은 심각한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프로그램에서는 일종의 선지자처럼 포장되고 있다. 시뮐라시옹에 대한 비판까지도 시뮐라크르가 된 것이다.
- ↑ 물론 보드리야르가 그냥 일이나 해라 이런 식의 주장을 한 적은 없다. 보드리야르 뿐 아니라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기성찰의 시간을 두고,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반성하는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생각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노동이나 하는 사람들도 미련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매우 많이 벌어봤자 이후의 삶이 행복할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물론 적당한 돈은 필요하다. 굶으면 제대로 자기성찰하기도 힘드니까.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가 너무 오버한다고 말하려 한 듯 하다. 적당히 하라는 거다.
- ↑ 디즈니와 연관해서 주로 비판이 들어가는건 과중한 노동조건이나, 지나친 저작권 챙기기 등이다. 디즈니 때문에 저작권법이 수정될 정도니 뭐. 일명 미키마우스 법으로 저작권 보호기간이 50년에서 70년으로 늘어났다. 덕분에 미키마우스는 2036년까지 저작권 보호를 받는다. 기업 입장에서야 자기 무형자산을 지키는 일이니 이게 뭐가 잘못된 거냐 할 수 있지만, 이로 인해 문화가 침체되고 소비자에게 부담이 가중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마냥 기업 편을 들어주기도 그렇다.
- ↑ 아마 전쟁이나 핵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언급하진 않으면서 지엽적인 개념문제로 말꼬리 잡는다 생각하고 이런 말을 한 듯하다.
근데 너네들도 그리 명쾌하게 사회적 언급을 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진 않은데?혹시 너무 어렵게 말해서 방향을 제시했는데도 모르는 거냐 - ↑ 보부르(Beaubuourg)는 파리 중심부 레 알(Les Halles)에 위치한 지역이다. 여기에는 퐁피두 센터가 있는데, 보드리야르는 이 퐁피두 센터를 그냥 보부르라고 칭한 것이다.
- ↑ 아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검은 비석을 말하는 듯. 이상한 외계적 존재인 이 검은 비석에 주인공은 홀리다시피 해서(또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넘어가서)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 ↑ 참고로 implosion이란 단어는 explosion의 접두사만 바꿔 파생시킨 말이며, 핵물리학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던 1820년대에도 이미 쓰였다.# implosion이란 단어는 간호학이나 정치학에서도 쓰인다.
- ↑ 모든 학문이 엄밀하게 기존에 쓰던 방식대로, 혹은 합의를 마친 뒤에 단어의 의미를 규정하고 쓰진 않는다. 과학분야에서는 그게 중요할지 모르지만, 문제를 강조하고 주의를 환기시키는게 중요한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은유가 매우 빈번하게 쓰인다. 그래도 적당히 말이 통하니 큰 문제는 없다. 도리어 인문학쪽은 단어 의미를 하나로 못박고 쓰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게 되면 사고를 한가지 방식으로만 단조롭게 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 '원자력 발전소의 진짜 위험은 불안전, 오염, 폭발이 아니고, 발전소를 중심으로 방사되는 극대의 안전 시스템, 모든 영토 안에서 더욱더 밀집하여 펼쳐지는 통제와 저지의 얼음장처럼 평평한 면, 기술적인, 환경 보호론적인, 경제적인, 지정학적인 평면이다. 핵이 중요한 이유는 이렇다. 원자력 발전소는 그로부터 절대 안전의 모델이 세공되는 원틀이며, 이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일반화될 것이며, 깊은 의미로는 저지의 모델이기 때문이다(핵위협 시뮐라시옹의 그늘과 평화공존의 그늘 아래서 세계적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모델과 동일한 것이다.'라는 언급을 보면 이런 뉘앙스로 말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 ↑ 헌데 실제로 이러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이런 종류를 속칭 립스틱 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 라고 되어 있었는데, 약간 말이 다르다. 립스틱 페미니즘은 여성적 이미지를 따라가자는 것이 아니라 여성성을 보여주는 것 또한 여성의 자유라는 관점이다. 즉, 립스틱 바르고 하이힐 신고도 페미니즘은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다는 소리. 이는 리버럴 페미니즘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