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

1 개요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은 앨런 소칼 교수(1955년생)가 40대 초반의 나이에 1996년 듀크 대학에서 발행된 《Social Text》를 상대로 벌인 사기극이다.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지식이 있어야한다. 그러므로 이 단락에서는 개략적인 설명만을 담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아두고 읽을 것. 자세한 전말을 알고 싶다면 과학전쟁 항목 또는 다음의 글 참고. 국내외 '과학 전쟁'(Science Wars)에 대한 해부

2 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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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대학교 물리학 교수[1]였던 소칼은 당시 미국의 대학들에서 "고등 미신: 강단 좌파와 과학과의 다툼(Higher Superstition: The Academic Left and Its Quarrels With Science)"이라는 책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스트 해체주의자들이 영문학과는 물론 여러 인문학 학과들을 장악한 뒤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불신을 퍼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시는 고등미신으로 촉발된 논쟁, 이른바 과학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폴 그로스(Paul Gross)와 수학자 노먼 래빗(Norman Levitt)은 고등미신(Higher Superstition)이란 책을 통해 과학사회학자, 포스트모던 과학자, 페미니스트, 급진적 환경론자들을 '학문적 좌파(Academic Left)'로 규정하며 그들이 과학에 대한 잘 알지 못하고, 적대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장난기가 발동한 소칼은 '그럴싸하고 편집자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기만 하면 실제론 엉터리인 논문이라도 출판해주는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 의미도 없는 <경계를 넘어서: 양자 중력의 변형적 해석학을 위하여 (Transgressing the Boundaries: Toward a Transformative Hermeneutics of Quantum Gravity)>라는 가짜 논문을 《Social Text》지에 제출했다.

3 전개

아니나 다를까 이 논문은 1996년 'Social Text'의 봄/여름호에 게재되었다.

《Social Text》는 '과학전쟁'이라는 제목의 특집호를 만들어 반격에 나섰는데, 이 특집호에서는 뉴욕 대학의 물리학교수 앨런 소칼(Alan Sokal)이 기고한 <경계를 넘어서: 양자 중력의 변형적 해석학을 위하여> 라는 논문이 특히 큰 주목을 받았다. 자연과학자의 입장에서 문화적 상대주의를 옹호하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우리편 찾았다!

그런데 자신의 논문이 《Social Text》에 실린 날, 소칼은 《Lingua Franca》라는 학술지에서 《Social Text》에 실린 자신의 논문은 엉터리 논문이라고 밝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문용어나 참고문헌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장황한 인용을 거쳐, 뻔한 헛소리들을 가장 멍청한 수학과 과학의 결과에 넣고 마구 뒤섞었다'는 것. 예를 들자면 말도 안되는 양자역학 가설을 이미 증명되었다고 하거나, 양자역학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등, 제대로 연구하지도 않고 쓴 논문이었다고 한다. 소칼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제대로 된 대학교육을 받은 이공계 학부생, 심지어는 대중 독자도 조금만 비판적으로 보면 금방 들통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Social Text》를 출판하던 듀크 대학은 웃음거리가 되었고 결국 96년 이그노벨상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4 결말

이 사건에 대해 인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 편이었다.

  • 과학에 친화적인 인문학(대표적으로 언어학, 영미의 분석철학 등)자들은 이 사건을 들어 인문학이 과학이 밝혀낸 사실을 인정하고 그 기반 위에서 인문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 그다지 과학에 친화적이지 않은 인문학(역사학, 독일 및 프랑스의 대륙철학 등)쪽에서는 적극적으로 반발하는 대신에 소칼 사건이 과학이 인문학의 영역을 넘보고 접수하려 하는 시도의 일환이라며 불쾌해했고,
  • 반과학적인 인문학(해체주의, 페미니즘, 문화비평, 정신분석학, 그 외 각종 좌파 이론 등)측에서는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소칼이 연구윤리를 어겼다고 하거나, 소칼을 우파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과학자라고 하기도 했다.
    • 또는 비록 소칼의 논문은 가짜였지만 소칼의 논문에서 제시된 문제의식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식으로 문제를 회피하려 하였다.
    • 사회구성주의자들의 경우는 과학만능주의에 경도된 일부 과학자들이 이 일을 계기로 인문학 자체를 가치 없는 학문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우려하였고,
    • 일부는 그 이전 80년대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은 과학에 대해 언급했는데 90년대에 들어서야 과학자들의 반발이 나온 것을 들어, 냉전 이후 과학계에 정치권의 관심이 줄어들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과학지원금이 줄어든 것이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닌지 의심하였다.

그 외에도 긍정적인 반응으로는

  • 인문사회학자들 중에서도 불필요하고 현학적이고 모호한 방식의 서술을 줄이고 보다 논지와 구조가 명확하고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사람들이 있었고
  • 과학전쟁 그 자체가 양 극단적이었던 진영들이 대화와 논쟁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기회였다고 평하는 학자도 있다.

부정적인 반응으로는

  • 소칼 스스로가 자신이 인용하여 공격한 철학자나 사회학자의 주장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무지했으며, 해당 저작의 전체적인 맥락은 무시하고 몇구절구절씩을 떼어내서 조롱하고 희화화면서 논쟁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있었다.
  • 또, 칼 포퍼의 반증가능성마저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볼때 소칼의 과학관이 지나치게 보수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소칼이 원하지 않는 반응이었다. 소칼은 과학자이기도 하나, 마르크스주의 좌파[2] [3]이기도 했기 때문. 이 사건의 동기에는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좌익을 표방하는 게 도대체 뭐가 도움이 되냐는 의문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사이가 좋지 않다. 마치 80년대 민주항쟁 세대가 이후의 입만 터는 강남좌파들을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근본 원인인 계급구조의 모순을 파악하고 프롤레타리아가 단결해 이런 부조리를 타파해야 한다보지만, 소련 붕괴를 보고 자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결국 그렇게 선동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뤄도 부조리한 사회구조 틀 자체는 변하지 않고 단지 구성원만 변할 뿐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이런 거창한 거사에는 관심없고 권위주의를 까는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훗날 본인은 "나는 왜 그 사건을 일으켰는가? 솔직히 인정하자면 우선 난 한점 부끄러움 없는 고전 좌파로서 도대체 지적 해체주의가 어떻게 노동 계급의 해방을 돕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순진하다면 순진한 관점일지는 모르겠으나, 난 완고한 과학쟁이로서 이 세계는 객관적인 현실이며 그 현실 속에 또한 객관적인 진리가 있다고 믿으며, 그 진리를 찾는 것이 내 업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5 《지적 사기》 의 출판

그 후 소칼은 《지적 사기》 라는 책을 출판하여 지적 사기꾼들을 한껏 비웃어 주었다. 엘런 소칼은 《지적 사기》 에서 자크 라캉, 줄리아 크리스테바, 뤼스 이리가레이, 브루노 라투르, 장 보드리야르,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폴 비릴리오 등을 비판했는데, 이 프랑스의 일부 철학자들[4]은 과학적 개념을 가져다가 이상하게 이용했기 때문이다.

소칼은 자신의 학문적 영역도 제대로 규정하지 못하는, 자신의 분야에 대한 논문의 전문성도 판단하지 못하는 학문은 학문의 자격이 없다라며 이들을 비판했다. 소칼이 정의한 과학의 개념과 용어가 남용된 사례를 다음과 같다.

① 막연하게밖에 모르는 과학 이론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② 자연과학에서 나온 개념을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 도입하면서 최소한의 개념적 근거나 경험적 근거도 밝히지 않는다.
③ 완전히 동떨어진 맥락에서 전문 용어를 뻔뻔스럽게 남발하면서 어설픈 학식을 드러낸다. 그 의도는 뻔하다. 과학에 무지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무엇보다도 겁을 주려는 것이다. 일부 학자와 언론은 그 덫에 빠져들고 있다.
④ 알고 보면 무의미한 구절과 문장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일부 저자는 의미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하면서 단어에만 외곬으로 빠져드는 심각한 중독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⑤ 이런 저자들은 자신들의 과학적 능력에 비해 턱없이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발언한다.

6 의의와 성찰

이 사건은 보통 과학적 개념을 오용하는 행태와 과학의 합리성과 객관성을 상대적인 것으로 음해하는 행태를 경계하기 위해 많이 언급되는 사건이지만, 좀 더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진영에서는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의 글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단지 상대방을 조롱하기 위해 거짓 개념과 논리로 범벅이 된 논문을 투고한 소칼에 대해서도 비판의 여지는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 사건에서 《Social Text》 필진은 여러번 소칼에게 너무 글이 난해하여 좀 쉬운 글로 써 달라고 부탁했으나 소칼은 거절했다고 한다. 또한 《Social Text》는 과학자의 글을 실어서 균형있는 관점을 만들고자 했을 뿐이라는 의견도 있으며, 당시 논문 심사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들이 대두되면서 편집진이 웬만한 논문은 그냥 통과시켰다는 이유도 있었다. 다음 링크글은 당시 편집진의 대답이다.#

실제로 일부 인문학계 입장에선 엘런 소칼 교수의 사기극을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다. '이해하긴 어렵지만 하나의 과학적 주장일 수도 있는' 유력 대학 이공계 종신 교수의 '의견' 을 그저 '공정하게 공개할 기회'를 제공해주었을 뿐인데, 이걸 허세 가득한 헛똑똑이들의 바보짓으로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그 범위가 무한대로 넓어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파고 든다는 건 불가능하다. 교차검증할 과거 사례나 역사 기록이 좀 있을 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값을 낼 수 없는 의견이나 가설이 많으며, 실험이나 재현으로 검증할 수도 없는 학문이라, 일단 여러 의견을 개진할 기회 정도는 주어지고 그 이후 비판과 토론을 통해 편견과 오해를 깨나가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바닥이다. 인문학은 시간의 흐름이 곧 검증이요 실험인 경우가 많다. 세월이 흘러 봐야 알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인문학은 이공계와 체계부터 다르다. 인문학에는 명확한 법칙이 없기 때문이다. 허나 인문학은 서로에 대한 비판과 성찰, 변증법적 발전을 통해 계속해서 발전했다.

그러나 이건 소칼이 의도했던 것이 아니었다. 정작 앨런 소칼이 말하고자 한 건 우리 학문을 쓰려면 좀 제대로 알고 써라로 요약할 수 있다. 인문학에게 학문의 자격이 있다 없다는 그에게 있어 부차적인 문제였으며, 일부 과학계가 보인 반응일 뿐 앨런 소칼의 원래 메시지는 아니었다.

물론 학문의 경계를 넘는 것은 가능하다. 과학과 철학은 역사적으로 하나였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아이디어, 방법론 등 여러 분야에서 영향을 주고 받은 바 있다.[5] 실제로 여러 분야의 학계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이런 융합연구 등이다.[6] 그 외에도 학제간 연구라 해서, 과거에는 없었던 연구주제가 갑자기 튀어나올 경우 최대한 비슷해 보이는 다수의 학문을 전공한 사람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교환하는 일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게다가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이 인문학계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앨런 소칼 역시 자신의 공격을 포스트모더니즘쪽의 정신분석계열로 한정했다. 그나마 이들 계열의 프랑스 철학자들은 이미 철학계 내부에서도 많은 비판과 검토를 받고 있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최대한 중립적, 합리적으로 결론을 잠정적으로나마 도출해본다면 과학계와 인문학계 양 쪽 모두 어느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는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영역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이해가 필요하다 정도로 온건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앨런 소칼이 누구네 주장처럼 인문학 전체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것도 아니고, 반-인문학적인 정서를 가진 사람도 아니었으며 과학만능주의자인 것도 아니었지만, 그가 정말로 좌시하지 않았던 것은 "남의 학문적 성과(자연과학)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 없이 마구잡이로 인용[7]하며 함부로 깎아내리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전파하는" 예의 없는 행위였을 것이다.

7 한국에서의 반향

이 책이 한국에서 출판될 당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을 전공한 이정우 등이 '3류 물리학자의 국제 사기극', '위대한 인물들의 명성에 흠집을 내려는 조잡한 시도'라며 비난한 바 있다. (앨런 소칼은 뉴욕대 수리물리 교수였지만 대중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었는데, 지적사기 출판 이후 일약 가장 유명한 수학자 중 한 사람으로 떠올랐다, 뉴욕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역대 세 번째 수학자라고 한다.)

그러나 소칼이 재직중인 NYU의 쿠란트 응용수학 연구소는 미국에서 MIT와 함께 1, 2위를 다투는 최고의 기관이며, 여기서 테뉴어(정년보장)를 받은 정교수로 재직하고 있는[8] 소칼이 '3류'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게다가 각주에서 보듯 소칼은 런던대의 수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이렇게 두개 대학에서 동시에 교수 직함을 가지는 것은 대단한 학문적 업적이 없으면 힘들다. 이 정도 업적을 지닌 소칼이 3류라면, 프랑스 철학을 우리나라에 번역한거 이외엔 어떤 학문적 업적도 철학사에 남기지 못한 이정우는 과연 몇류일까? 한 108류??

3류 물리학자라는 비난은 다분히 감정이 섞여있는 표현이라 반론할 가치가 없어서 넘어간다 하더라도 위대한 인물들의 명성에 흠집을 내려는 조잡한 시도라는 비판은 좀 문제가 있는 것이 학술적 연구에서 중요한건 내용이지 연구자의 지위나 명성 따위가 아니다. 대학원생 나부랭이든, 특허청 공무원이든, 대학만 졸업한 일개 회사원이든 상관없이 유의미하며 올바른 내용을 발표하면 이를 충분한 검토를 거친 후에 수용하는 것이 옳다. 소칼이 비판한 것이 유명 지식인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논리적인 귀결이나 올바른 개념 없이 이루어진 학술 활동이라는 걸 고려하면 더더욱 말도 안되는 비판이다. 이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정우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반응에 대해 진중권은 소칼의 주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자기가 팔아먹은 상품을 헐뜯는 자에게 보내는 지식 소매상의 히스테리 수준이라고 촌평했다.

그러나 위 문단의 이정우의 의견을 다룬 문단은 다소 악의적으로 편집된 감이 있다. '3류 물리학자'라는 비난이나 '위대한 인물들의 명성에 흠집을 내려는 조잡한 시도' 라는 표현은 과격한 수사일수는 있어도 이정우의 의견이 거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본문을 읽고 각자 판단하자. 이정우의 서평

한편 소칼논쟁이 한국에 상륙해 쏟아지는 논쟁 속에 나름 원숙해지고 있던 2000년,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의 동기동창 학자인 뉴욕대 경영학과 고 양신규 교수[9]와 홍성욱 교수[10]의 논쟁도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읽고 싶은 사람은 당시 학술지를 찾아서 읽어볼 것. 양신규 교수의 주장과 홍성욱 교수의 반론 둘 모두 읽어볼 만하다. 특히 홍성욱 교수는 이공계 전공자이면서도 인문사회학의 관점을 고려하면서 정제되고 온건한 반론을 폈다. 홍성욱 교수는 이공계 전공자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학사과정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석-박사과정은 과학사를 전공하였으며,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과학기술사철학과 교수로 있다가 현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생명과학 자체에 대한 연구보다는 엄연히 STS와 과학사에 대한 연구가 전공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문학자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양신규 교수는 그래서 홍성욱 교수를 인문학자로 지칭했으며, 홍성욱 교수 역시 과학사회학적 입장을 온건하게 대변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과학사회학학자는 소칼이 신나게 깠던 사람 중 하나인 브루노 라투르다.

자세한 내용은 홍성욱 교수의 논문 누가 과학울 두려워하는가 " - 최근 " 과학 전쟁 " ( Science Wars ) 의 배경과 그 논쟁점에 대한 비판적 고찰벌어진 논쟁글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하지만 이후 논쟁이 과열되면서 본래의 취지에서 어긋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냉정히 말해서 두 사람의 논쟁은 MS 이야기가 나온 시점부터는 이미 본래의 논점과 크게 이탈하였고, 학술적 논쟁과는 다른 형태로 변질되었다. 예를 들어, 홍성욱 교수는 처음 글에서 지적 사기가 포스트모더니즘에 가한 공격에는 동감하지만 과학철학과 과학사회학에 대해서는 일정한 무지를 드러낸다고 서평하였다. 그럼에도 양신규 교수는 재반론에서 홍 교수의 서평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옹호로 판단하고 과학사회학의 스트롱 프로그램이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에게 인식론적 타당성을 제공하였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는 D. Bloor의 스트롱 프로그램의 기획을 생각할 때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이렇게 볼 때 양 교수는 과학철학과 과학사회학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을 공격하는 대상으로 홍성욱 교수를 타겟팅했다는 주장 역시 가능해 보인다. 부정적으로 평가하자면 양자의 논쟁은 허수아비 때리기로 시작해서 지적 사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자존심 대결(경제사에 관한 장광설 등)로 끝이 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는 서울대 물리학과 80학번 동기들의 치기어린 키배라거나.

이 지적 사기 사건에 대해 다룬 책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가 있다. 민음사가 2000년에 출판한 적이 있었으나 이는 2014년 현재 절판되었고, 2014년 1월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출판했다[11] 그 외에 리처드 도킨스의 '악마의 사도'에서 '지적 사기'에 대한 서평을 통해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서에서는 이 사건 자체를 중심으로 놓고 다루기 때문에, 마치 이 사건이 인문학계 전반과 과학계 전반의 전쟁 수준의 논쟁이고, 인문학자와 과학자들은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앙숙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인문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앙숙이 아니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의미있는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니 이 문서의 내용 일부를 오해하고 '인문학과 과학은 상극이다!' 라는 식으로 받아들이지는 말자.

8 유사 사례

MIT의 한 사람이 컨퍼런스는 아무런 의미없는 논문도 통과(accept)된다는 말을 증명하기 위해 SCIgen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저자에 이름을 적고 버튼만 누르면 논문에 자주 쓰이는 단어들이 무작위로 조합되어, 뜻도 문법도 전부 맞지 않고 그저 단어가 나열만 되어 있는 컴퓨터과학 분야의 논문을 만들어 내는 것.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진 논문이 Springer에 16편, IEEE에 100편 이상 등록된 사실이 밝혀졌다! 심지어 단순히 단어가 나열되어 있는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피어 리뷰까지 통과한 논문도 발견되었다고. 참고로 중국에서 이 프로그램으로 논문을 많이 만들어서 중국에서 열리는 학회에 제출해 주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2005년에는 SCI도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이 홈페이지를 이용해 구글 학술검색에서 가상 인물 Antkare의 h 인덱스를 94까지 높이는 데 성공한 사례도 나왔다.

9 참고자료

지적 사기 2014[12]
과학과 문화 - 문화에 있어서의 과학의 위상[13]
2014[14]

10 관련항목

  1. 소칼의 연구분야인 확산(diffusion)은 수학의 확률론과 물리학의 통계열역학에서 공통으로 연구하는 주제다. 그래서 수학과 물리학의 중간지대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수학자라고도 볼 수 있고, 물리학자로도 볼 수 있다. 박사학위는 수학으로 받았다. 다만 이런 경우엔, 이 교수가 어느 학과 소속으로 임용되어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2. 소칼은 자신이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좌익지식인이자 국제주의자라고 칭했고, 1986년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이 지도하고 있던 니카라과로 날아가서 니카라과 국립 자치대학교에서 1988년까지 3년동안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3. 물론, 경제적 보수-진보와 학문적 보수-진보 구분은 전혀 다르다.
  4. 엄밀히 말하면 이들 중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가 아닌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과학적 개념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는 소칼에겐 별 상관없다.
  5. 물론, 다른 학계의 비판이 해당 학계의 현실을 전혀 알지 못한 '헛소리'이거나 몇 십 년전에 이미 논파가 끝난 경우인 바는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그 비판자가 악의적으로 그러는 예외 정도를 제한다면 최소한 서로에 대한 이해는 증진된다. 이는 바로 앨런 소칼 사건에서 나타기도 했다.
  6. 거기에 더해 학문적 연구가 학계 분위기상 제한되는 현상이라던가, 아니면 철학의 역사를 보건데 학맥, 학파 운운하면서 학문과는 직접 관계가 있다 보기 어려운 순수성이나 스펙트럼 등을 따지는 경향이 비교적 상대주의 내지는 지역적 or 집단적 특수성 등이 더 인정받는 철학계나 예술평론계쪽에서는 훨씬 세가 강하다.
  7. 라캉이 허수(i)를 인용하며 '남성기와 같다' 고 증명(?) 한 기적의 수식은 유명하다.
  8. 소칼은 수학으로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를 받았는데, 프린스턴 대학은 수학에 있어서는 미국 최고이며 US News에서 매년 내는 대학원 순위에서도 항상 1위를 점하고 있다. 알기 쉽게, 뷰티플 마인드의 존 네쉬의 대학이 프린스턴임을 생각해보자.
  9. 2005년 사망. 그의 추모게시판에서 시작된게 이른바 스켑렙이다. 항목 참조.
  10. 현재 서울대 생물학부의 교수이며, 그 논쟁 당시에는 토론토대의 교수였다. 국내에서 과학사-과학철학 전공 1세대로, STS학자이다.
  11. 해당 신문의 주필이자 책의 재출간에 크게 기여한 정규재가 재출간 즈음해서 팟캐스트에서 발언한 바를 참조하자면, 이들이 진지하게 지적사기 논쟁을 되짚어보기보다는 좌파 먹물들의 전문성을 공격한다는 의도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음이 의심된다. 물론 이는 그 앨런 소칼조차도 올드스쿨 좌파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사람이란 걸 감안할 때 논쟁의 전체적 맥락을 무시하고 이념적 편린을 억지로 부여해 공격하는 허수아비 치기에 가깝다. 이 논쟁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는 라캉을 예로 들자면, 한국에서 라캉의 최고 권위자이자 라캉과 현대정신분석 학회의 학회장인 권희영은 극우적 발언으로 유명한 인사이다!
  12. 2014년에 다시 출간된 신판이다. 2000년도에 민음사에서 출간된 판본도 있으니 참고할 것.
  13. 네이버 열린 연단에 관련 정보가 올라가 있으니 살펴보자. 원고 6페이지 부분에 관련 내용이 적혀 있다.
  14. 과학을 중심으로 인문학등 모든 학문을 통합하려는 '통섭'의 움직임에 대해 비판하는 책이다. 소칼의 지적 사기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