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구

新羅寇

1 소개

통일신라 후기에 존재했던 한국의 대표적 해적.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드라마 해신에 신라구 캐릭터인 중달이 등장했다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통일신라 말기에는 호족들이 자립하고, 중앙정부에는 정권다툼으로 정신이 없는데다, 기근이 겹쳐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웠었다. 따라서 생업을 포기하고 도적들이 된 사람이 많았는데 신라구도 이렇게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는 매번 왜구들에게 털리기만 했다고 아는 사람이 많은데, 그 반대도 존재했다. 신라구 덕분에 큐슈쪽은 한 때 사람이 못 살 정도가 되었고 일본 정부에서는 신라인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리고 일부 지방에서 징병제를 시행할 정도였다. 일본 측 기록을 살펴보면 신라구가 흥성할 때는 천단위로 되는, 사실상 군사집단이나 다름없는 신라구들이 큐슈로 쳐들어 갔다. 이들이 큐슈로 간 것은 큐슈가 일본 본토 중 한반도와 가장 가까웠기 때문으로 보이며 신라인 이민자가 많아 정보를 얻기 쉬웠다는 점도 한 몫 했다고 보기도 한다. 한반도로부터 거리가 가장 가까운 쓰시마 섬도 주요 루팅 대상이었다.

특이한 점은 한국 측의 사료는 등장하지 않고 일본의 사서에만 나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사서측 기록이 매우 상세하기 때문에 한국의 사료에 없다고 신라구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1].사실 한국 고대사의 경우 동시기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사료가 너무 부족하여 교차검증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신라구는 현춘이나 능창[2] 같은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후삼국시기 해적들이 주로 후백제 및 고려나 유력 호족들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일종의 사략 집단이었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반대로 왜구도 일본측 사서의 기록보다 중국, 한국측 사서에 훨씬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있다. 아무래도 피해를 입은 쪽이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왜구나 신라구가 발호해서 외국까지 원정나갈 정도면 이미 자국에서는 내전이 벌어지고 있던 막장스러운 상황(일본의 남북조시대와 전국시대, 통일신라 말기의 후삼국 발호 등)이라 국내 치안문제조차 손도 못쓰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니 사서 기록은 커녕 해적에게 신경쓰는 것 자체가 정권 능력 밖의 일이었다.

후삼국시기 이후 고려가 한반도를 통일하면서 사실상 신라구의 존재는 사라진다.

2 출신 인물

  1. 이런 논리로 치면 임진왜란 당시 여러 조선사료들도 부정된다.
  2. 이쪽은 견훤에게 종속된 해적이었다는 설도 있으나 독자적인 세력이었다는 설도 있어 좀 애매하다.
  3. 신라구 출신중 유일하게 전해지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