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렐리아누스

로마의 역대 황제
군인 황제 시대군인 황제 시대군인 황제 시대
37대 퀸틸루스/아우렐리아누스38대 아우렐리아누스39대 타키투스

Lucius Domitius Aurelianus

로마 제국의 황제.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황제가 병사한 후 원로원에서는 퀸틸루스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아우렐리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하였고, 퀸틸루스가 사망하자 아우렐리아누스가 제위에 올랐다.

아우렐리아누스는 도나우 강 일대의 반달족을 격퇴하였고, 방어 비용이 너무 많이 들던 도나우 강 이북의 다키아 속주를 포기하고 대신 로마화시킨 부족들을 남겨 후환이 없도록 하였다. 실제로 그들은 5세기까지 도나우 강을 넘지 않았으며 이후에도 로마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현재의 '로마인의 땅' 루마니아로 이어졌다. 그리고 아쉬웠는지 마케도니아 속주와 트라키아 속주 일부를 합쳐 신 다키아 속주를 편성하여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일대를 방어하게 하였다.

10년 넘게 지속되던 동방 제노비아 여왕의 팔미라 제국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페르시아 전선을 정비하였다. 이 떄에 반란의 중심지였던 팔미라는 자치권을 빼았기고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서방의 갈리아 제국도 항복시켜 10년 넘게 지속되던 분열기를 종식시켰다. 또한 게르만 족의 계속된 침입에 대비하여 수도인 로마 시에 카이사르가 세르비우스 성벽을 파괴한 지 300여년 만에 더 확장된 시가지를 두른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을 세웠고 화폐 제도를 개혁하였다.

그러나 275년 페르시아 원정 도중 군대 내부의 폭동으로 인해 암살당하였다. 폭동의 여파로 인해 5개월간 아무도 제위에 오르지 않았고, 결국 원로원은 늙은 원로원 의원 타키투스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3세기의 위기를 어느정도 잠재웠다고 평가 받으며 암살 당하지만 않았으면 어떘을까 할 만큼 유능한 군주였으나 재평가가 상대적으로 덜 이루어진 황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