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myrene Empire
노란색.
오늘날의 시리아 중부에 있었던 도시 팔미라를 중심으로, 로마 제국에서 떨어져 나와 세워졌던 국가.
3세기 초부터 로마는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로 혼란한 상황이었다. 260년,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샤푸르 1세와의 싸움에서 포로가 되어 옥사하는 치욕을 겪었고 제국은 혼란에 빠진다. 발레리아누스가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그의 아들 갈리에누스가 제위에 오르지만 이에 칭제를 하는 자칭 황제들만 20 명 씩이나 등장하는 등 제국은 혼란에 빠진다. 이 틈을 타 서쪽과 동쪽 양쪽에서 반란이 일어나 제국은 세 조각으로 갈리게 되는데 하나는 팔미라 제국이었고 다른 하나는 갈리아 제국이었다.
팔미라 제국의 시작은 이렇다. 로마의 식민도시 팔미라에서 태어난 셉티미우스 오데나투스는 발레리아누스가 포로가 되었을 당시 용전하여, 갈리에누스는 오데나투스를 동방지구 속주 전역의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오데나투스는 사실상 제국 동방의 실권자로 자리잡았지만, 고트족과의 승전을 기념하는 연회에서 267년 조카 메오니우스에게 암살당했다.
그가 죽은 후 부인인 제노비아가 동방의 권력을 이어받았다. 제노비아는 오데나투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바발라투스를 오데나투스의 후계자로 세우고, 자신은 뒤에서 실권을 조종한 것이다. 제노비아는 사산조의 침략으로부터 제국 동부 속주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시리아, 팔레스티나, 아에깁투스(이집트) 등의 속주들을 침공하여 점령, 마침내 바발라투스에게 황제라는 칭호를 내려 사실상 독립된 제국이 된 것이다.
세 조각으로 갈라진 제국의 혼란을 수습한 것은 270년 제위에 오른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였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우선 북방의 게르만족의 침입을 차단한 후 팔미라로 향하였다. 로마는 팔미라에게 항복을 권고했으나 제노비아는 자신을 '아우구스타'로 자칭하고 아들 바발라투스에게는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내려 대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로마군은 팔미라군과의 두 차례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으며 이 과정에서 바발라투스는 전사했다. 제노비아는 팔미라 시로 도망쳤지만 결국 포위당했고 사산 왕조에 원조를 얻기 위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려다 로마군에 붙잡혔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처음에는 자비를 베풀어 제노비아만을 포로로 잡고 팔미라에 일부 병력만 남긴 체 떠났다.하지만 다시 반란이 일어나자 팔미라 시의 약탈을 허용했고 결국 팔미라 시는 개발살나면서 273년에 팔미라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듬해 갈리아 제국도 다시금 로마 제국으로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