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치현 네 모자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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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知豊明母子4人殺人放火事件.
2004년 일본 아이치현 토요아케(豊明)시에서 일어난 미해결 방화 살인사건이다.

1 개요

2004년 9월 9일 아이치현 토요아케시의 주택에 신원불명의 남성이 침입하여 네 명의 모자를 살해하고 방화한 뒤 도주하였다. 피해자는 카토 리요(加藤利代,당시 38세)와 장남 유우키(佑基, 당시 15세), 장녀 리나(里奈, 당시 13세), 막내 쇼고(正悟, 당시 9세)이며 남편인 카토 히로토(加藤博人)씨는 회사에서 새벽이 넘는 시간까지 잔업을 하고있었다. 밤 11시경 자택에 전화를 했을 땐 아무 이상이 없었다.

9일 오전 4시 5분경 자택에 화재가 일어났다는 것을 집 근처에 사는 형에게 듣게된 카토씨는 동료에게 집이 불타고 있으니 돌아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컴퓨터를 켜놓은채 집으로 달려갔으나 자택이 대부분 전소되었고, 소방대원의 만류에도 가족을 구하기 위해 연기가 자욱한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가족들은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2 시체의 상태

1층 거실에서 막내 쇼고, 2층 침실에서 아내 리요씨와 리나, 유우키가 타있는 시체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등유가 뿌려진 것과 시체의 손상 흔적을 보고 이것이 평범한 방화 사건이 아닌, 명백한 살인사건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피해자들의 시체는 성별에 따라 살해된 방법이 달랐는데, 아내와 장녀는 약 20cm의 잭 나이프로 얼굴과 등 수십곳을 집요하게 찔린 상처가 있었으며 사인은 과다 출혈 및 급성 쇼크사로 보여졌다. 장남과 차남은 찔린 상처가 없었으며 금속제 둔기같은 것으로 맞아 생긴 두부의 손상(함몰 골절)이 있었고 각각 급성 지주막하 출혈, 뇌의 타박상이 사인으로 확인됐다.

막내를 제외한 3명의 시체엔 이불이 씌워져 있었으며 저항의 흔적은 없었다. 피해자들은 수면을 취하고있을 때 침입한 범인에 의해 목숨을 잃었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폐에 그을음이 있었으므로 습격을 당하고 불이 피워질 때까지도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을음은 1층에 있던 쇼고가 제일 적었고 2층에 있던 유우키가 제일 많았다. 때문에 쇼고가 제일 먼저 살해되고 아내인 리요씨, 리나, 유우키의 순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3 사건 정황

오전 4시경 이웃 주민이 여성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25분 뒤 119로 화재 신고가 들어왔다. 시간으로 보아 범행은 30분 남짓한 단시간에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피해자 가족은 시바견을 키우고 있었는데, 평소 자주 짖는 개였으나 사건 전 개가 짖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주민들이 증언했다. 개는 목줄이 풀린 상태에서 차 밑에 숨어 생존해있었다.

현관과 부엌문 등 1층의 창문이 모두 잠겨있던 것[1], 2층 창문으로 오르는 사다리를 설치한 흔적이 없는 점으로 보아 범인이 어떤 루트로 침입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등유는 피해자 시체 외에도 자택 곳곳에 광범위하게 뿌려져있었는데 범인이 직접 가져온 것으로 추정, 자택에서 어지러진 성냥개비와 등유가 스며든 신문지가 발견되었다. 현장에선 흉기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정원과 주변 도로에서 루미놀 반응은 없었다. 이때문에 범인은 현장에서 옷을 갈아입은 다음, 처음 입고있던 옷을 현장에서 태운 것으로 보고있다.

또한 귀중품이나 카드, 예금통장에 손을 대지 않았으며 현장에서 불에 탄 현금이 발견되었다는 보도에 따라 돈을 노린 강도는 아닌 것으로 예상. 등유나 성냥개비갑을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아 사전에 미리 준비한 계획 살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일가에서 특별한 트러블은 없었으며 조사 본부 측에서 트러블이 있었어도 어째서 모자 네 명을 다같이 살해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남겼다.

4 시한 발화 장치

조사에서 새로 밝혀진 사실로는 실내에 시한 발화 장치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장치는 고무 밴드로 묶은 수십개의 성냥개비를 엮어 중앙 부분에 약 10~15cm의 막대를 잘라 모기향에 끼워넣고 고정시킨 뒤 불을 피운 모기향을 신문지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성냥개비에 불이 붙게하는 방식으로 보여졌다.

모기향이 10cm 불타는데 약 1시간에서 한 시간 반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범행 시각은 실제 화재가 일어난 시각보다 1시간 이상 전일 가능성이 있으며 범인이 살해에서 화재가 일어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벌어 의도적인 알리바이를 만드려고 한 것으로 조사 본부는 예상했다. 즉 오전 4시경으로 추정되는 범행 시각이 실제론 2~3시경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자택은 1층 거실이 제일 심하게 불탔으며 1층에 설치한 장치가 발화에 성공했지만 2층은 성공하지 못하여 장치의 흔적만이 남은 것으로 보여진다.

5 수상한 자?

사건이 일어나기 1여년 전인 2003년 7월 하순 오후 8시경 아내 리요씨가 동네 주민들과 결성한 야간 순찰을 위해 외출해있을 때, 누군가가 피해자 자택 현관 문을 무리하게 열려고 한 사건이 있었다. 자택에 있던 쇼고에게 "누가 문을 찰칵 찰칵하고 있다"라는 연락을 받았으며 "절대 열어주면 안된다"고 말하고 야간 순찰을 계속 했다. 이 사건 이후 자택의 모습을 살피는 수상한 자가 목격되어 자택의 잠금 장치를 철저히 하는 등 방범 체계를 높이고 있던 상태였다.

사건 당일 소방 작업을 하던 소방대원과 근처의 주민이 현장 근처에서 수상한 왜건 차량[2]을 목격했는데 30~40대 가량의 남성이 운전하고 있었다고 한다.

6 사건 후

사건이 일어나고 반년이 채 지난 2005년 3월 11일, 유족인 남편 사토 히로토씨가 일련의 사건들로 체포되는 일이 일어났다.이전 근무하던 회사에서 약 520만엔을 '컴퓨터 구입비'라는 명목으로 횡령하여 사기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같은 해 5월 다른 근무처에서 또 다시 약 5500만엔을 부당 취득한 혐의로 재체포되었다.(...) 당시 그가 고급 클럽에 빈번히 드나들며 횡령한 돈을 이용해 씀씀이가 컸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결국 나고야 지법은 카토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매스컴 등지에선 남편이 범인임을 암시하는 기사가 나왔는데, 사기 혐의는 인정했으나 사건에 관련된 범행은 완전히 부정했다. 교도 통신이 보도한 2005년 8월 31일 공판 후 열린 기자회견에선 "(사건과)전혀 관련이 없다. 용의자로 의심받아 격한 조사를 받았다. 경찰이 하는 짓을 납득할 수 없다. 일부 매스컴에도 범인인 듯한 보도가 나왔다"고 경찰과 매스컴을 비판했다. 참고로 카토씨가 사건이 일어난 날 회사에서 잔업을 한 것은 사전에 예정되지 않았다.

그 후 주간지에서 사토씨가 자주 가던 단골 가게에 중국인 애인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그녀가 증언하길 "(증거는 없지만)xx가 범인이라 생각한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큰 병으로 명이 얼마 남지 않아 양심의 가책을 느껴 고백한 것이라 추정했지만, 이 여성과 사건과의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전소된 가택은 사토 히로토씨의 요청에 따라 현장 보존을 위해 그대로 남겨두었으나 이상한 사람들이 현장을 들어가거나 사진을 찍는 등의 뻘짓거리행위를 하는 바람에 주민들의 민원이 들어와 철거를 결정했다.
  1. 고열로 변형되어 확인되지 않는 창문도 있었다
  2. 녹색의 도요타 하이에스 슈퍼GL 차량, 오와리 코마키(尾張小牧)지역 넘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