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도요타에서 넘어옴)


1 기업

TOYOTA MOTORS
トヨタ自動車 豊田 自動車
외래어 표기법 : 도요타[1] 풍전

[공식 사이트]

[2]

YOU ARE SO SMART
- TOYOTA

toyota.jpg
토요타의 옛 마크.[3] 폰트가 지금의 폰트와 미묘하게 다르다. 가타카나 'トヨタ'를 형상화한 로고는 회사 공식 페이지에 따르면 1936년부터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만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는 이 로고를 사실상 사장시키고 'TOYOTA' 글자부분만을 쓰던 상태였으며 70년대 중반부터는 현 로고의 글자부분과 비슷하게 폰트를 바꾸면서 CF에서도 사라졌다.[4]

FUN TO DRIVE, AGAIN. - 2015년 일본 캐치프라이즈(사실 1980년대 내수용 캐치프라이즈를 리바이벌한 것이다)
oh~~ What a feeling,TOYOTA! - 80년대 북미지역 캐치프라이즈
토요타에 가자!
언제 어디서나 토요타 - 2013년 국내 캐치프라이즈
Drive Your Dream
Smile for tomorrow
YOU ARE SO SMART - 2015년 국내 캐치프라이즈


1.1 개요

현재 세계 1위의 자동차 생산 기업[5]이자 일본 최대 기업. 시가총액은 무려 20조엔에 달한다.[6]


참고로 일본 국내에 있는 대리점들은 '토요타' 하나만 있지 않다.(...)[7] 2016년 2월 기준으로 '토요타', '토요페트', '네츠', '코롤라' 이런 식으로 딜러가 세분화되어 있어서 대리점 잘못 들렀다가는 원하는 차를 사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8] 예를 들어서 마크X 같은 경우는 토요페트 딜러에서 살 수 있다. 그런데 프리우스 같은 경우에는 모든 회사에서 판매한다.

그 외에는 나고야의 신 공항이자 민자 공항인 센트레아 나고야 중부국제공항을 운영하는 회사의 대주주로 참여 중이다. 또한 후지 스피드웨이의 운영법인인 후지 스피드웨이 주식회사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9]

중국에서는 豊田汽車라고 부른다.


1.2 역사와 사건

토요다 사키치가 창업한 토요다 자동방직기제작소가 모태로, 현재의 자동차생산 사업부는 1933년에 신설되었다. 이후 1937년 별도법인화. 초대 사장은 토요다 리자부로(豊田利三郎). 현 최고경영자는 창업주의 후손[10]인 토요다 아키오(豊田章男).[11]

한편 사명은 설립자의 성씨인 豊田을 딴 회사 이름이기는 한데, 이 사람의 이름은 토요가 아니라 토요이다. 그런데 왜 회사 이름이 '토요타'냐 하면 그쪽이 어감이 더 좋아서라나. 일본에서는 토요다 사키치가 서양인들이 발음하는 걸 보고 서양인들에겐 'TOYODA'보다 'TOYOTA'가 더 발음하기 쉬워서 바꿨다는 게 정설. 1936년부터 상호를 토요타(トヨタ)로 변경하였다. 공식적으로 한자가 아니라 카타카나로 쓰는데 이름 획수가 합쳐서 8획이면 운이 좋아서 이렇게 했단 얘기도 있다(...). 그걸 증명한건지 태평양 전쟁 당시 군용트럭을 생산하기도 했지만 단 한번도 폭격을 당해본 적 없었고그런데 같은 동네의 아이치항공기는 폭격당했다고 정작 토요타 공장을 폭격하려 계획을 세우자 일본이 패망해버렸단 얘기도 있다. 자동차 공장판 유키카제

패전후 1949년 일본 전체가 닷지라인불황에 빠졌을 무렵 도요타자동차는 경영위기를 겪는다. 도요타자동차는 당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은행, 거래업체 등에 채무상환유예, 대금지불유예를 요청했지만 딱 두회사로부터 거절당한다. 스미토모은행은 도요타의 채무상환유예를 거절하면서 칼같이 채무를 회수해갔고, 카와사키제철은 대금지불유예를 거절한다. 이때의 충격으로 창업자 도요타 키이치로가 급사했고, 정말 말그대로 도요타자동차는 망할뻔했다.

이후 도요타자동차는 그때의 원한을 기억하며 모든 거래에서 스미토모은행과 카와사키제철을 철저하게 배제했다. 일단 스미토모은행에는 절대로 대출하거나 예금을 맡기지 않았다. 그리고 스미토모은행이 1965년 자신의 거래업체인 프린스자동차가 경영위기를 겪자 도요타자동차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당시 도요타자동차가 딱 잘라 거절했다.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철강을 살 때도 카와사키제철의 것은 절대로 사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이 두 회사와의 거래는 1949년의 경영위기로부터 50년 이상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재개되었는데, 이는 모두 도요타자동차와의 거래관계에 있던 은행, 회사와 경영통합되어 어쩔 수 없이 거래가 재개된 것이다. 스미토모은행과는 미스이 계열의 사쿠라은행과 경영통합되어 미스이스미토모은행으로 재탄생하자 거래가 튼다. 다만, 이때도 거래관계는 구 사쿠라은행 쪽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카와사키제철 역시 일본제관과 합병하여 JFE스틸로 재탄생하면서 거래가 재개되었는데, 역시나 구 일본제관 쪽 인물을 통해서만 거래한다고 한다. 질긴 원한...

1970년대 전 세계적인 석유 파동을 겪으면서부터 상대적으로 연비가 좋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이 부각되어 폭발적으로 판매량이 증가, 저렴한 가격에 믿을 만한 내구성의 자동차를 생산한다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북미에서는 아직도 중고차 감가상각이 가장 적은 차량들 중 하나가 토요타 물건들이다.

전기 모터와 내연기관을 상황에 맞게 사용하여 연비를 향상시키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최초로 상용화하는데 성공한 기업이기도 하며,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분야에 있어서는 절대적 강자. 유일하게 하이브리드 모델을 100만대 이상 팔아치운 기업으로 모델은 프리우스.

산하에 별도의 디비전으로 1989년에 런칭한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LEXUS)를 두고 있다.[12] 지분관계를 통한 자회사로 편입되어있는 완성차 업체는 상용/특장차 부분의 히노(HINO)와 경승용차 전문 기업인 다이하츠가 있다. 4WD/수평대향엔진 기반 차량에 특화되어있는 스바루 역시, 렉서스/다이하츠/히노와는 다른 형태로 토요타와 협력관계에 있다.[13]
그리고 2016년 10월 12일, 스즈키의 스즈키 오사무 회장은 토요타 자동차와 제휴를 검토하기로 했다고 전격발표했다. 이로서 일본의 자동차 3강(토요타, 혼다, 닛산) 구도가 더욱 명확해지게 되었다. [일본어 기사]
그외 변속기로 유명한 아이신, 자동차 부품업체 덴소, 일본 5대 특수강업체 아이치스틸 등을 거느리고있다.

허나 잘 나가던 토요타도 2010년 자동차 역사상 최악의 위기인 토요타 리콜 사태를 맞는다. 그러나 2012년 1분기에는 다시 세계 1위를 탈환했다.[AutoM 기사 내용] 심각한 위기(그것도 안전과 관련된)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난것을 보면 토요타의 네임밸류(브랜드가치)가 결코 작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중소규모 군벌들이나 테러리스트들이 토요타의 픽업트럭에 기관총, 무반동총 등을 단 테크니컬이 있는데, 1987년, 차드-리비아 분쟁에서 기동성을 살린 테크니컬들이 전차를 위시한 기갑부대(!)를 발라버린 사건이 있다. 별명하야 토요타 전쟁. 멈추지 않는 도요타의 정신

한국에는 1960년대 중반에 신진자동차와의 기술제휴 형태로 진출했다. 토요타의 차종을 넉다운 생산하여 한국 시장에 판매하던 신진자동차는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을 사실상 독과점 하는 지위에 있었지만, 1972년의 저우언라이 저우 4원칙으로 인하여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던 토요타는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한국에서 내빼고 말았다.[14] 그 이후 한동안 한국 시장에 재진출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15] 하지만 2000년 3월에 28년만에 한국진출을 하면서 대한민국 현지 법인인 한국토요타자동차(주)를 설립하였다. 2009년 정식적으로 토요타 브랜드를 런칭하기 전까지는 렉서스 브랜드를 판매했으며, 2009년 10월에 정식적으로 토요타 브랜드를 런칭,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8년 3월에 한국토요타자동차는 모범납세 법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주요주주로는 일본트러스티서비스신탁은행주식회사(10%), 주식회사토요타자동직기(6%), 일본마스터트러스트신탁은행주식회사(5.6%), 일본생명보험상호회사(3.7%), State Street Bank and Trust Company(3.4%), The bank of new york mellon(2.4%) 등이 있다.

계열사로 JTEKT, 토요타자동직기, 아이치 제강, 아이신정기, 덴소, 후지중공업 등이 있다. 지분관계상 KDDI의 2대주주이며 이스즈의 3대 주주이기도 하다.

  • 1대 사장 - 토요다 리사부로(키이치로의 매제)
  • 2대 사장 - 토요다 키이치로
  • 3대 사장 - 이시다 타이조
  • 4대 사장 - 나카가와 후키오
  • 5대 사장 - 토요다 에이지(기이치로의 사촌)
  • 6대 사장 - 토요다 쇼이치로[16](기이치로의 장남)
  • 7대 사장 - 토요다 타츠로(기이치로의 차남)
  • 8대 사장 - 오쿠다 히로시
  • 9대 사장 - 쵸 후지오
  • 10대 사장 - 와타나베 카츠아키
  • 11대 사장 - 토요다 아키오(쇼이치로의 아들)[17]

1.3 생산/판매모델

디비전만 다른 동형 모델의 변종일 경우 병기한다. ★은 국내에서도 판매되는 모델.

1.4 단종 모델 / 유명 모델


1.5 논란

1.5.1 혐한 우익과는 상관없다

도요타를 전범기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또는 그냥 일본 기업이라고 해서 사지 말자는 사람들이 있다. 일례로 오래전 얘기긴 하지만 렉서스나 토요타 등등 일본차를 타고 다니면 다음날 차에 벽돌이나 오물이 던져지는 등의 테러를 당한다거나, 항일시위단이 시위하는데 일본차를 타고 지나가면 차주는 끌어내려져 다굴당하고 차는 밟혀 부서진다는 블랙 유머나 도시전설도 있었을 정도로 일본차 소유자에 대한 인식은 싸늘했다.[20]

문제는 이런 인식에 반해, 실제로 도요타가 극우기업이거나 전범기업이라는 실질적 근거는 매우 적다. 도요타와 유일하게 전범기업에 관계된 것이 도요타에 철강을 공급하는 회사 중 하나인 '아이치제강'인데 이 회사가 미쓰비시급의 전범기업이라고 하긴 어려운 게 미쓰비시의 징용 작업장은 27개인데 반해 아이치제강의 작업장은 단 1개였다.[21] 말그대로 전범이나 강제징용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상황이라는 것.

또한 토요타가 혐한들을 지원하거나 그런 행보를 했다는 뜬소문도 있으나, 정작 실제로 그런 적은 없으며 말그대로 카더라에 불과하다. 게다가 도요타 재단은 최근 들어 위안부 문제 실행위원장인 재일교포 2세 야마시타 영애의 연구 및 일본 전쟁책임 센터를 후원하는 등 극우나 혐한과는 정반대 행보를 걷고 있다.

토요타가 극우지원이라고 오해받는 이유 중 하나는 우익 진영에서 토요타를 많이 사가고 이용해서라고 하는데, 물론 우익 진영들이 토요타를 사가거나 관용차 등으로 쓰는 건 사실이나 이것 하나만으로 회사 자체를 우익 지원이다 이렇게 단정짓긴 힘들다. 그렇게 보자면 르노삼성과도 인연이 깊은 닛산 역시 르노가 인수하기 전에는 우익들이 많이 사가거나 이용한 적이 있기도 하다.

앞서 말한 아이치제강 외의 전범으로써의 근거는 전무하며 독도 다케시마 후원 기업(?)이라는 해괴한 목록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근거 없는 선동에 불과하다. 또한 역사왜곡 기관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지원기업이라는 카더라도 있으나, 정작 지원명단에는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애초에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멋모르고 지원했다가 나중에 알고 뒤늦게 손씻은 일본 기업들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가끔 한국인들 중에도 자국 기업들에게 서비스 피해를 입거나 실망하여 한국 브랜드를 외면하고 "토요타짱이 최고다!"라고 띄워주는 차덕후들도 있긴 하나, 이런 식으로 극단적으로 토요타를 찬양만 하는것도 당연히 옳지 않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토요타를 탄 사람들보고 " 와패니즈"라고 하거나 토요타더러 나쁜 기업이라고 단정짓는 것도 매한가지로 옳지 않다. 여느 브랜드라도 장점을 인정해야지 너무 띄워만 주거나 반대로 저평가하거나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2011년 말, ReBORN이라는 제목의 회사 PR광고를 발표했는데, 지진과 원전으로 얼룩진 일본사회에 대한 부흥을 캐치로, 기무라 타쿠야가 분장한 오다 노부나가기타노 타케시가 분장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함께 토요타 차를 탄다는 내용의 PR광고. 전국시대의 명장을 추켜세우는 의미로 분리해서 본다고 해도 한국 여론 일각에서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미화시키는거냐며 난리가 났다. [링크]

다만 이 건은 조금 설득력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사람이 광고를 만든 것도 아니고 일본제국 시대의 극우 인물을 등장시킨 것도 아니고 일본인이 만든 광고에 근대 이전 일본 역사 인물이 나온 것이다. 그걸 갖고 조선 침략한 일본인 출연했다고? → 극우! 라는 단순한 논리로 트집잡으면 마찬가지로 중국인이 만주를 정복한 광개토대왕 나온 한국 방송매체는 모조리 방송금지하라고 해도 할 말이 없어진다. 근데 피해자 입장에선 둘 다 정복자인건 매한가지이긴 하다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보면 알겠지만 일본인들은 도요토미를 언급할때 이러이러한 업적과 실책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임진왜란을 신경쓰지는 않는다. 오히려 임진왜란의 경우도 이전엔 그럭저럭 하던 도요토미가 말년에 노망나서 괜히 조선과 명나라 건드려서 생긴 병크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많다.[22]

  • 한국과의 인연

위와 같은 반일감정이나 한일관계 악화 등에도 불구하고 한편 이래저래 한국에 어필하고 구애하는 측면이 있다. 토요타 캠리의 한국 광고모델은 정작 일본 국내에서 반일배우라고 욕먹었던 김태희이다. 덕분에 일본내 넷우익 사이에선 후지테레비 같은 한류 기업으로 찍혔던 사례가 되었다.


패기보소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축구종목 동메달 결정전이 벌어지기 직전엔 이런 현수막도 붙였었는데, 여기까지만 보면 그러려니 할 수 있겠으나 문젠 이 동메달 결정전이 바로 한일전. 흠좀무 이미 4강에서 패배하여 3/4위전에 진출해버린 이상 한국이 메달을 따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일본 국대를 이겨버리는 것인데...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이 일로 인해 한국에선 기사까지 나는 등 꽤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일본에선 당연히 까였다 한국 도요타 관계자 왈(일본인이었다) 모기업이 일본 기업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 때문에 한국을 응원한다고.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열리는 K-POP 콘서트인 CJ E&M의 "KCON"에 메인 협찬을 하기도 했다. [토요타, 한류축제 협찬사 된 이유]. 기사는 까는 뉘앙스지만 넘어가자


1.5.2 토요타 리콜 사태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발생한 급발진 사건과 관련된 대규모 리콜 사태. 자세한 것은 토요타 리콜 사태 항목 참조. TPS 항목도 참조해두면 좋다. 여담으로 이에 준하는 사건으론 2015년 터진 독일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디젤게이트 사건이 있다. 다른 업종이긴 하지만 미국언론의 맹공 등 2016년 삼성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랑 묘하게 비교되기도 한다. 그만큼 여파가 컸던 사건.


1.6 생산 현황

전 세계적으로 생산거점을 두고 있지만, 일본북미 두 곳을 최대 거점으로 삼고 있다. 특히 북미시장에서 토요타는 1980년대 플라자 합의를 기점으로 엔고현상 대비 수익확대와 북미 자동차업체[23]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켄터키 주 조지타운 공장 건설을 시작으로 30년 동안 아예 미국기업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안착해버렸다. 그리고 코로나, 코롤라, 캠리를 앞세워 시장을 쓸어담기 시작했고, 이후엔 렉서스 브랜드를 런칭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북미시장의 대중차와 고급차 영역을 모두 쌍끌이해 2000년대 초반부터는 전미 자동차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했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진 세계금융위기, 도호쿠 대지진, 슈퍼엔고, 토요타 리콜 사태의 4중고를 겪으며 최악의 위기를 겪었지만, 이후 북미시장에서의 철저한 마케팅과 품질을 인정받으려는 노력 덕분에 이내 지위를 회복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북미지역의 도요타는 사실상 일본기업의 꼬리표를 떼고 현지 연구개발과 자체 공장, 부품업체들을 활용하면서 수익도 상당수 현지사회에 환원하고 있는 일본 다음가는 제2생산거점으로 역수출도 활발히 이루어지는 상황. 또한 북미 자유무역협정 이후 캐나다와 멕시코 공장도 적극 활용 중이다.

그 외 동남아, 유럽 등에도 각기 거점을 두고 있다. 한동안 엔고현상의 지속과 해외거점 공략을 목적으로 일본 공장에서의 수출은 정체되고 해외 거점의 생산은 확대된 상황이었지만, 2010년대 중반 들어 환율의 흐름이 엔저로 급격히 전환되어 수출에 유리해진 터라 내수침체로 인한 국내 공장 활성화 등까지 염두에 두고 일본내 공장 생산비중을 늘려나가고 있다.


1.6.1 일본

크게 아이치현, 후쿠오카 현, 이와테 현을 중심으로 일본 내 3 생산거점을 두고 있다.

(직영 공장)
본사 공장(아이치현 나고야 시): 1938년 11월 창설, 고용 1,776명, 픽업 트럭, 트럭 레더 프레임, 프리우스 드라이브 트레인 생산(상징적 거점)

모토마치 공장(아이치현 도요타 시); 1959년 8월 창설, 고용 4,085명 크라운, 마크 X, 에스티마, 토요타 미라이 생산, 엄마 공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도요타 생산 방식의 기본 거점 역할을 하는 곳이고, 플래그쉽 위주의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공장의 이름 또한 지역 공장 시절의 마음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붙여진 것.

카미코 공장(아이치현 도요타 시): 1965년 11월 창설, 고용 3,034명, 엔진 생산(5종, M, K, S, R, T 엔진)

타카오카 공장(아이치현 도요타 시): 1966년 9월 창설,고용 3,293명, 코롤라 (수출용), IQ, 해리어, ist, 오리스, 프리우스 a, RAV4, 위시

츠츠미 공장(아이치현 도요타 시): 1970년 12월 창설, 고용 5,045명, 프리우스(수출, 내수 공통), 캠리(수출용), 프레미오, 알리온, 사이언, 기타 부품 생산

미요시 공장(아이치현 미요시 시): 1968년 6월 창설, 고용 1,456명, 엔진, 부품 위주 생산

묘치 공장(아이치현 미요시 시): 1973년 6월 창설, 고용 1,512명, 엔진, 부품 위주 생산

헤키난 공장(아이치현 헤키난 시): 1978년 창설, 엔진, 부품 위주 생산

타하라 공장(아이치현 타하라 시): 1979년 1월 창설, 고용 7,821명, 렉서스 GX, 렉서스 LX, 랜드크루저 프라도, 랜드크루저-생산 제 1부, 렉서스 IS, 렉서스 GS, 렉서스 LS

히로세 공장(아이치현 토요타 시): 1989년 3월 창설, 엔진, 부품 위주 생산

(자회사 및 위탁생산 공장)
토요타 자동직기 나가쿠사 공장(아이치 현 오부 시): 비츠, RAV4, 마크 X 지오 생산

오토바디 후지마츠 공장(아이치 현 카리야 시): 노아, 프리우스, 복시 생산

오토바디 이나베 공장(미에 현 이나베 시): 하이에이스, 알파, 베르파이어 생산

오토바디 요시 공장(아이치 현 토요타 시): 랜드크루저, 코스터, 히노 리엣세 2 생산


1.7 악덕기업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이 휘청거리거나 외자에 삼켜져 하나 둘 나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토요타가 홀로 쾌속질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극한의 가격 후려치기였다. 후려쳐~!

토요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자동화 비율을 높이고 '필요한 것을 제때 필요한 만큼 생산한다'는 개념의 'Just in time'(이하 JIT) 생산방식을 창출하여 심지어 '토요타 방식'이라는 경영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국내외 시장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이 JIT 방식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자면, 부품을 항상 준비해놓지 않고 생산할 물량이 정해지면 그때그때 필요한 양 만큼만 주문하여 낭비를 극한으로 줄이는 생산관리방식이다. 다른 일본기업들이 엔고현상에 의해 전부 작살나는 동안 토요타가 저가정책을 유지하며 해외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이 극한의 '낭비 절감 정책'에 있었다.

1便(편) 2便 3便 4便 이런 방식으로 납품한다
매일 아침 5시쯤 도요타 본사에서 필요한 부품을 직접 하청업체에 팩스로 보내준다. 그러므로 불량품이 나오는 순간 부품이 어느 공장에서,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신나게 깨지는거다. 필자가 just in time의 지옥을 체험해본결과... 망했어요

근데 여기서 문제는 '그때그때 생산'하기 때문에 직원들 역시 정시출근을 할 필요가 없다. 이에 대해 토요타는 정말 좋은 것처럼 언플을 해대지만 실제로는 필요한 때 불러서 일단 계획된 물량이 나올 때까지는 무조건 일해야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노동강도가 급격하게 치솟는다. 게다가 이 직원들에게 잔업수당까지 지급하지 않았으며[24], 심지어 이 직원들 중 다수는 정직원이 아닌 파견사원이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가혹한 노동과 인색한 봉급, 불안정한 고용상황에 시달리던 토요타 파견사원이 살인사건을 저지르는 등 각종 사건사고를 불러오는 상황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것은 하청업체에게도 마찬가지라서 필요한 부품을 '그때그때' 납품해야 한다. 물류이동상의 문제 때문에 납품시간을 정확하게 맞추기가 힘든데 교통체증이라도 생긴다면 납품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 그러다보니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약간 미리' 예측해서 만들어 놓고 납품요청이 들어오면 최종 생산해서 납품시기보다 몇시간 먼저 출발하여 지정된 시간이 될 때까지 토요타 공장 근처 노상에서 대기하다가 납품한다.하청업체 직원들은 뉴타입인가? 납품시간이 이른 것도 늦은 것도 모두 용납 안 하다 보니 이렇게 할 수밖에. 당연히 노동강도는 본사의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

결국, 하청업체의 부담이 매우 커지고, 만약 소비자인 토요타 자동차가 갑자기 리콜 사건 등으로 인하여 생산물량을 조절하면, 토요타 자동차 입장에서는 손해를 덜 볼지 몰라도, 하청업체에서는 대응을 할 새도 없이 죽창을 맞는 것이므로, 다르게 보면 하청업체만 죽어나간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정부가 4대강 벌여놓고는 수질개선비용&공사비를 쌍으로 국민에게 후려갈긴거

그리고 이런식으로 차를 싸게 빨리빨리 만들어버리다보니 필연적으로 품질이 떨어지게 되었는데, 이는 바로 윗 항목인 '토요타 리콜 사태'와도 무관하지 않을것이다.

이런 식이다보니 토요타는 일본에서 대판 까여야 되겠지만, 대학들에서도 경영학적으로 21세기 제조업은 서플라이 체인 vs 서플라이 체인의 대결이라며 이런 방식의 원가절감에 대해 옹호를 하며[25] 매년 토요타가 각종 언론매체에 엄청난 광고비를 뿌려대는 상황이다보니 되려 적지 않은 일본 주류 언론에선 토요타의 수많은 단점과 비행은 전부 묻어두고 사실상 토요타를 직접 광고해 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일본 전자 업체들의 상대적인 침체 속에서 애국심 버프를 받은 토요타는 여기저기서 엄청난 비호를 얻는 상황. 왠지 옆나라에도 비슷한 기업이 있는 것 같지만 그냥 넘어가자 거긴 둘중 하나가 침체지만 여긴 둘다 너무잘되서 문제지

그리고 심지어 필리핀 등 해외 현지공장에서도 노동자 탄압을 일삼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북미에서는 그런 거 없다인거 보면 현지 노동법의 문제로 보는 게 맞을 듯.

다만, 이렇게 원가 절감을 했어도 리콜 사태 이후에 다시 이미지를 회복하고, 북미에서의 지위를 회복했다[#]. 미국은 3대 자동차 회사들의 로비 및 자국 생산품 보호 규정이 존재하는 곳이지만, 토요타는 미국 현지에 공장 및 R&D 센터를 만들어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부 미국에서 하는 것으로 이를 피해가고 있다. 캠리나 아발론같은 차는 사실상 미국차라고 간주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


1.7.1 반론

도대체 이 총체적 난국을 어디서부터 까야 할지 감이 안잡힌다.
토요타가 악덕기업 논란이 사실이냐 아니냐 여부와는 별개로 그 근거로 든 논리 대부분에 문제가 있다.

1. 가격 후려치기가 토요타 승승장구의 주역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납품단가 절감 노력은 사실상 모든 제조업체의 모든 분야에서 원가절감의 일환으로 항상 진행되는 것으로 유독 자동차업계가 납품단가에 민감한 업계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자동차업계의 특성일 뿐이지 토요타 성공의 원동력은 아니다. 게다가 일본의 세계적 자동차 업체가 토요타만 있는 것도 아니다.

2. JIT는 이미 60년대에 일본 제조업계의 트랜드에 가까왔던 방식이고 토요타 역시 60년대에 도입했으며 이것이 80년대에 서구 경영학 측에 토요타 방식으로 알려진 것일 뿐이다. 즉 애초에 토요타가 창안한 방식도 아니며 JIT 자체는 이미 90년대에 더욱 발전적인 생산관리방식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즉 산업계 전체가 이미 30년 전에 JIT 너머를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3. JIT는 엄격한 생산관리 체계 하에 '계획된 시간'에 '계획된 수량'을 '계획된 품질'로 생산하는 방식이지 그때그때 수요에 맞춰 임의로 생산하여 노동자를 고통에 빠트리는 방식이 아니다. 당연히 교통체증 같은 '예기된 사유'는 관리계획 내에 포함된다. 현대적 생산관리체계가 그렇게 만만한 체계가 아니다. 그리고 과연 공급망 내에서 수요가 무계획적으로 수립되고 운용할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4. JIT의 주요 관리대상 중 하나가 바로 품질보증이다. 그리고 JIT가 알려지지도 않았던 70년대의 미국 자동차회사가 바로 그 불량률에 고통받고 있었다가 '무고장 자동차'의 전설을 써내려간 토요타, 확대하면 일제차에 점유율을 잠식당했다라는 점을 고려하면 JIT가 불량률을 높인다는 이야기 자체가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이다.

5. 토요타 리콜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동차기술에서의 전자장치와 소프트웨어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는 데 비해 업계의 관리체계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크다. 이는 자동차업계 공통의 문제로 인식되는 상황이라서 ISO-26262 같은 개발지침 및 인증체계를 수립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1.8 기타

미국 내에서 방영되는 광고의 한국어 버전. 이 광고의 성우는 김승준!!! 이외에 중국어, 광둥어, 심지어 베트남어 버전도 등도 있다.

2011년 5월, 미국에서 하츠네 미쿠를 모델로 내세운 토요타 공식 광고가 방영되었다. 오덕취향 중에서도 마이너한 물건을 오피셜 광고에다 내보내는 토요타의 행보에 미쿠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경악한 상태. 광고 영상엔 미쿠 콘서트 장면과 노래가 대놓고 나오고, 나레이션 성우 김승준"하츠네 미쿠의 꿈을 응원합니다."라고 결정타(…)를 날린다. 부인의 영향이 있을 지도 모른다.

VOCALOID 엔진의 판권이 야마하의 소유고, 야마하가 토요타의 자회사 비슷한 위치인지라 기획된 광고로 예상된다. 근데 이쯤되면 미쿠가 자동차를 광고하는게 아니라 자동차가 미쿠를 광고하고 있는 셈(…). 러시아에서는 자동차가 VOCALOID를 광고합니다!

그런데 2013년에는 붉은 혜성을 모델로 하신 신 광고가 등장했다. 이쯤되면 토요타 광고팀 사무실에서 약을 빤게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

2015년에는 자동차 업계 최초로 올림픽 TOP 스폰서가 되었다. 2020 도쿄 올림픽을 노리고 체결했는데 계약 기간이 2018년부터 시작되고 한 종목에 2개의 회사를 스폰서로 둘 수 없는지라 먼저 스폰서 자리를 탐내던 현대차는 그저 안습.(...) 다만 평창 조직위원회에서는 국민정서를 감안하여 예외적으로 두 회사를 동시에 스폰서로 위촉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단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2015년 AQUA의 X-URBAN 시리즈의 광고가몬스터 헌터 시리즈와 콜라보하여 나왔다. 차들이 몬스터 헌터에 나올법한 도로들을 달리고, 게임에 등장하는 몬스터나 열기구가 곳곳에서 보이며 BGM은 영웅의 증거이다.

2016년 6월 9일, 파격적인 재택근무 혁명을 발표했다. 주 2시간만 회사에 출근하면 된다고 한다. 재택근무를 발표한 이유로는 경력직 여성들이 육아와 부모 부양으로 인해 퇴직을 하는 경우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총 직원의 35%에 해당하는 2만 5000명에게 시행한다. 이는 파격적인 경영 실험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관련기사].


1.9 관련 문서


2 일본 아이치현에 위치한 시(市)

豊田市(とよたし). 도요타시. 토요타시.[26] 아우 헷갈려

일본 아이치 현에 있는 도시. 시의 이름만 봐도 어느 정도는 눈치챌 수 있겠지만 토요타 자동차와 관련 기업들이 들어서있는 곳으로 알려진 도시다. 인구는 2010년대 기준 40만명대를 기록 중이다. 도메이고속도로 토요타 IC/JC와 철도역 토요타시역, 미카와토요타역, 신토요타역, 카미토요타역 등이 있다.

원래 과거의 도시 명칭은 코로모 시(挙母 市)였으나,[27] 토요타 자동차 딴데 못가게 하려고 1959년에 토요타 자동차의 이름을 따 토요타 시로 개명했다. 여담으로 한국에서도 수원시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날 뻔 했으나, 이를 추진하던 김용서 전 시장이 떠나면서 다행히 없던 일로 흐지부지되었다.

도요타시는 도요타 자동차 공장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자동차 딜러들이 당연히 도요타다. 그런데 경쟁사인 혼다, 닛산 딜러도 의외로 잘 장사하고 있는 듯. 심지어 닛산 도요타우메츠보점에서는 '도요타 점령하에 있어도 힘내겠습니다' (...)라는 표현을 대놓고 쓸 정도.


3 실존인물

  1. 국내 사람들에겐 이쪽이 더 친숙한 표기이나 국내법인 명칭이 '한국토요타자동차(주)'인 관계로 한글 표기에 다소 혼란이 있는 편이다. 나무위키에선 일단 정식명칭을 우선한다는 원칙에 따라 토요타로 작성한다. 참고로, 저 도요타로도 이 문서로 들어올 수 있다. 이와 같이 정식 명칭과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가 괴리가 있어 정식 명칭으로 작성된 문서로는 시트로엥(외래어 표기법상 시트로앵) 폭스바겐(외래어 표기법상 폴크스바겐), 포르쉐(외래어 표기법상 포르셰), 쉐보레(외래어 표기법상 셰브럴레이) 등이 있다.
  2. 현행 로고(글자 말고 'T'를 형상화한 부분)는 1989년 LS430의 내수용 모델인 셀시오를 내놓으면서 선보인 것이다.
  3. 일본 국내의 일부 공장 간판이나 토요타 사내에서는 아직도 쓰고 있다.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저게 정식 사장(社章)이기 때문.
  4. 이는 1990년대 초반 현대자동차도 비슷했는데 1980년대 초반까지는 'HD'를 형상화한 마크를 썼지만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 현재의 '동그라미 H'로고로 바꾸기 직전까지 한동안 'HYUNDAI'라는 워드마크를 과도기적으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
  5. 한동안 1위 자리를 폭스바겐 그룹에 내주었으나 토요타 프리우스 등의 하이브리드 차량의 인기 폭발과 엔화 약세에 폭스바겐이 디젤게이트 사태까지 겹쳐서 잠시 휘청이는 바람에 다시 1위로 올라섰다. 물론 폭스바겐이 디젤게이트 만회하고 돌아오면 1위 쟁탈전에서 위태위태해질 수 있다.
  6. 2016/3/22 기준. 한화로 계산하면 약 215조원으로, 당시 기준에선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이 약 269조원이었다. 다만 토요타 쪽은 수많은 자회사를 거느린 한국식의 그룹이 아닌 단일 회사에 가깝게 운영된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다만 이것도 2016/8/25 기준 삼성전자 주가가 치솟으면서 삼성전자만으로도 시가총액 260조원을 달성하긴 했다. 1달도 안되어 220조원대로 떨어진게 함정이지만 어차피 시가총액은 왔다갔다하는거니(게다가 2016년 9월 기준 시가총액 아시아 1위는 중국 기업 텐센트다 삼성은 4위) 브랜드 가치로 봤을때 결론은 이러나저러나 아시아 Top 1, 2위를 다투는 기업들이다. 현대자동차는 얘들이랑 놀기엔 아직 무리다...안습
  7. 한국 기준에서는 굉장히 황당한데(...) 한국과 달리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하나의 대리점에서 모든 차를 다 취급하는게 아니라 모델이나 급에 따라서 아예 취급하는 대리점이 세분화되어있다.
  8. 그나마 최근 들어서 일본내 대리점 브랜드를 통폐합시킨게 저 정도이고, 1980~90년대에는 더 많았었다.
  9. 2021-12-09 22:50:27 현재 토요타가 가지고 있는 후지 스피드웨이 주식회사의 지분율은 93.4%.
  10. 정확히는 증손자. 할아버지가 토요타 자동차생산 사업부의 대표였던 토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郎)이다.
  11. 토요다 리자부로 초대 사장은 창업주의 사위, 즉 토요다 기이치로의 매부다. 참고로 토요다 아키오나 그 아버지인 토요다 쇼이치로의 아내는 모두 미츠이 재벌 출신.
  12. 청년층을 타겟으로 한 사이언(SCION)도 있었으나, 2016년에 사라졌다.
  13. http://www.toyota.co.jp/jpn/company/links/ 토요타 공식 웹사이트의 관련링크 일람을 참조할 것. 이 리스트에 후지중공업은 없다. GM은 후지중공업 지분 20%를 보유하고있었고, 이를 인수한 토요타는 현재 16.5%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토요타와 스바루는 독립경영을 보장하는 대신 자본제휴관계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기술교류를 행하고있다. 어차피 토요타와 스바루는 지향하는 고객층이 달라서 완전히 통합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스바루의 주력차종인 레가시/아웃백/엑시가/포레스터/임프렛사 등 스바루의 고유 모델외에 신규 출시하는 경차나 리터카는 다이하츠/토요타의 모델을 스바루에서 도입하여 판매하고 있으며, 토요타86/스바루BRZ같은 공동개발차량도 출시되고있다.
  14. 이후 신진은 GM과 합작하여 GM코리아(현재의 GM코리아와는 다르다)를 세웠다가 내놓은 시보레 1700이 폭망한 이후 1976년 산업은행에 매각되었고 1978년 대우그룹에 인수된 이후 1983년 대우자동차로 사명을 바꾸었다. IMF 이후 대우그룹이 파산하면서 2002년 GM에 인수된 이후 GM대우가 되었다 2011년 한국GM 쉐보레로 이름을 바꾸었다.
  15. 다만 1970년대 후반에 토요타의 계열사인 히노자동차가 기아산업/아시아자동차와 기술제휴를 하면서 1998년까지 기술제휴 관계에 있었다.
  16. 그의 아내는 전쟁 전 최대 재벌이었던 미쓰이家 출신.
  17. 이 사람의 아내도 미쓰이家 출신이다. 참고로 알아주는 모터스포츠 팬으로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 레이스에 가명으로 출장한 경력도 있다. 이때 쓰는 가명은 모리조.(Morizo)
  18. 코롤라의 2011년 모델은 모 파를 들고다니는 사이버 아이돌이다.
  19. 승합차 시장의 제왕으로 불리는 차로 원박스형 승합차이면서도 차체강성만으로 정면충돌 안전성 별 3개를 받은 괴물 승합차. 유럽 지역에도 당당하게 판매중이다. 우리나라에 들여오지 않는것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높다.
  20. 하지만 [이 블랙유머]와 도시전설의 일부는 [한국]과 [중국에서] [실제로] [일어나긴] [했다!]
  21. 출처는 이명수 의원의 일본전범기업 1차 목록
  22. 임진왜란은 조선이 처음에 밀리긴 했으나 전세가 깊어져가며 오히려 일본 측 병크의 연속이었기에 일본에서는 흑역사 취급되어 매체로 다루지 않으려 들며, 다뤄진다 해도 일본이 잘한 것이 아닌 원래부터 일본의 잘못 (자국의 실책)으로 표현한다. 특히 히데요시가 주인공이며 그의 업적이나 출세가도를 소재로 한 소설에서 이런 경향이 현저하다. 히데요시의 업적만 조명하려고 비판점이나 실책들을 통생략해 버리는 경우도 흔한 편.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에서는 시종일관 부정적인 관점에서 서술되며, 소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히데요시가 일본통일을 하였으며 말년에는 노망나서 임진왜란을 일으켰다가 쓸쓸하게 죽었다는 단 한줄로 끝내 버린다. 게다가 96년작 NHK 대하드라마인 <히데요시>에서는 아예 히데요시가 본격적으로 막장 행보를 보이기 전에 드라마를 서둘러 끝내 버렸을 정도. 물론 일본이 우경화 되면서 이러한 조선 침략도 미화하는 정치꾼들이나 왜곡 세력들이 늘어나고는 있는 건 씁쓸한 사실이나, 현재까지는 임진왜란은 토요토미의 실책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23. 일명 빅3라 불리는 GM, 포드, 크라이슬러.
  24. 당시 일본에서 유명한 사회적 논란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미라이 공업의 사장이 한국 매체 앞에서 대놓고 언급하기도 했다
  25.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데, 실제 경영학 수업에서도 천재지변 및 돌발사태 등으로 인한 JIT 방식의 실패, 그리고 무조건적인 원가절감에 대한 맹신 풍조에 비판 의견이 상당히 많다.
  26. 한자 豊田은 같으나, 이 도시 이름은 인명이 아니라 회사명에서 따온 것이므로 이때는 토요라고 읽는다. 아니, 이것은 공식적인 지명이므로 임의적인 표기를 따를 수 없고, 표준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야 하므로 사실은 가 정확하다. 이래저래 헷갈린다.
  27. 우와고로모역의 역명에 흔적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