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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1994년 12월 7일 오후 2시 50분경 일어난 대형 가스 폭발 사고. 사진이 찍힌 곳은 현재의 마포 SK 허브블루 인근인 듯.
지금 애오개역 4번출구 방향[1]에 있던 도시가스 밸브스테이션에서 공사중 일어난 폭발로 화재가 발생하여 그 주변을 2시간이나 태웠다.
사실 주변 상가와 집은 불에 타고 있어도 주변 피해가 없었다. 문제는 가스가 계속 누출되면서 불길이 계속 번진데 있었다. 그 화재로 마포도서관(아현분관)에서 마포경찰서까지 소방차와 구급차로 막혀버리고 당연히 공덕오거리(공덕역)에서 아현삼거리(아현역)까지 교통은 통제 되었다. 동부대우전자[2] 사옥은 유리창이 전부 파손되어 지나가던 보행자를 덮치고 [3] 그 일대 가스와 전기가 차단되는 등 많은 불편이 있었다. [4]
안전불감증[5]으로 빚어진 이 사고는 많은 손실과 인명피해를 남겼다. 이 사고로 사망자가 12명, 부상자 101명 등의 인명피해와 건물 145동(전파 75, 부분파손 70), 동산 431건, 영업손실 47점, 차량손실 92대 등의 물적 피해 및 이재민 210세대 555명 등 엄청난 손실을 초래하였다 (위키백과). 사고 당일 부터 3일간은 야간 전기공급이 끊겼으며 가스공급 재개는 10일이 걸렸다. 당시엔 아현~공덕 일대에는 아파트가 없었다지만 달동네 수준의 인구밀집지역이라 인적, 물적피해가 컸다. 당시 국민학교 학생들도 많이 사망하였다고 이전 버전에 서술되어있었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아직 학교에서 수업 중이라 어린이 사망자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6]
한편 KBS는 오후 5시 25분부터 1TV에서 뉴스속보를 틀고 소식을 전했는데, 당시 방송 주무부처였던 공보처는 방송시간 5분 일찍 틀었다고 당시 KBS 사장으로부터 사내 징계 경위서 등을 받아냈다. 이는 당시 공보처의 방송국 허가장 일부 규정 때문이었는데, 지상파가 정파시간에 긴급속보를 때려야 될 경우에는 사전에 공보처에 얘기를 한 뒤 허락을 받아야 방송을 틀 수 있었다. '방송질서 유지' 명목이었지만 만악의 근원이 된 이 시책은 이 사고 바로 넉달 뒤에 발생한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에서도 재현되며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었고, 결국 김대중 정부 시절에 방송위원회가 출범하며[7] 이 시책은 없어졌다.
사족으로 아이큐 점프에서 달숙이를 연재하던 만화가 이재석도 단행본 후기 만화에서 이 사고를 얘기하기도 했다.- ↑ 당시 서울 지하철 5호선이 개통되기 이전이었다.
- ↑ 당시에는 대우전자였다.
- ↑ 안전유리라 다행히 중상은 없었다.
- ↑ 가스야 당연하지만 전기는 밤 12시 되면 단전되었다. 당시가 12월이었던 걸 감안하면, 그 주변에서 야밤에 체온을 지키는 방법은 가족단위로 껴안고 자거나 연탄을 피우는 수밖에 없었다. 기름보일러도 불을 붙일 전기가 없으니 못돌렸다.
- ↑ 위키백과에는 모닥불로 인한 화재로 나오나 당시 뉴스에는 담배로 인한 화재라고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오십보백보.
- ↑ 당시 MBC 뉴스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이 하교 후 집이 날아가버린 걸 보고 망연자실했었다는 내용이 언급되었다고... 그건 학교 끝나고 온 중고등학생도 마찬가지로 당시 서대문구쪽과 공덕동쪽으로 중고등학교를 다니는게 일상인데 집으로 가는 길이 전부 차단됐다. 그 당시 주변 초등학교는 소의초등학교와 아현초등학교가 있고 사고 당일은 수요일이라 피해 학생은 초등학교1234학년이 정확하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수요일은 2시에 끝났기 때문. 그 시각에 집으로 가거나 학교 근처 오락실이라든지 여러 곳에 놀던 경우가 많았다.
- ↑ 10년 뒤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