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무굴 제국의 역대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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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bar the Great
1542년 10월 15일 ~ 1605년 10월 27일
1 개요
무굴 제국을 통치한 제3대 황제 (재위: 1556년 - 1605년)이다. 홍차 브랜드 악바르가 바로 이 악바르
군대와 제도 개편으로 제국의 힘을 키우고 관용적인 종교 정책을 펼쳐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도 끌어안으며, 무굴 제국을 진정한 제국으로 끌어올린 황제. 대제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하지만 그가 힌두교인들이 원수처럼 생각하는 티무르의 후예였다는 점과 치토르 점령 시 행했던 무자비한 학살극 등으로 인해 인도인들 중에서도 악바르를 증오하는 경우가 의외로 적지 않다. 이들의 악바르 혐오감은 예상 외로 심한 편인데, 악바르는 투르크 이방인들의 군주이지 인도의 군주가 아니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웹상에서 많이 보인다.
2 생애
무굴 제국의 제2대 황제 후마윤의 아들.
무굴은 이슬람 제국이었으나 악바르 시대에 비 무슬림에 대한 인두세(지즈야)을 없애며 힌두인들을 끌어안았다. 혼인과 외교를 통해 중앙집권화를 이루었고, 예술과 문화 또한 장려하였다. 치세 동안 사회, 정치 시스템을 확고화하며 제국의 부와 영토를 3배로 늘렸다.
제국을 확장하였다 (노란색). 데칸 고원을 넘지는 못하였으나, 후대에 증손자 아우랑제브가 무굴 최대 판도를 이루게 된다 (주황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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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타
파테푸르 시크리
늦게까지 아들을 얻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차에 모처에서 성자를 만나 예언을 얻었다. 이후 아들 자한기르를 얻게 되어 기뻐한 악바르는 아그라 인근에 새로운 수도로 파테푸르 시크리 (Fatehpur Sikri) 를 건설하였다. 하지만 물도 떨어지고, 악바르도 전쟁을 위해 라호르로 천도를 하게 되어 도시는 버려진다. 수도로 기능한 것은 불과 10여년이었지만 건축물은 남아 파테푸르 시크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다. 악바르 묘지는 물론 파테푸르 시크리에 있다.
동시대에 우리나라는 조선의 명종과 선조를 거치며 수난을 겪고 있었으며, 중국은 명나라의 만력제 가 통치하며 막장화를 보였다.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가 영국의 전성기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