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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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안시성 애선 아무도 안시서
고구려의 성 중 하나.

험준한 지형과 방어하기 좋도록 지어진 고구려 성의 양식 때문에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난공불락의 성으로 남아있었던 걸로 알려진다. 그러나 안시성을 언급하는 사서마다 그 위치가 다르게 적혀 있거나 부정확하게 적혀있기 때문에 확실한 위치는 밝혀져 있지 않다.

2 안시성 전투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을 시해하고 보장왕을 옹립하여 정권을 잡은 이후 안시성주가 연개소문에 반발하여 서로 전투까지 한 끝에 서로 타협하게 된다. 당태종의 침공 때에는 안시성주와 고연수, 고혜진[2]의 군대가 연합하지 않은 채로 안시성 외곽에서 고연수와 고혜진의 고구려군은 패배하고 안시성은 홀로 당태종의 공격에 맞서야 했다.

안시성의 공략이 생각외로 오래 걸리자 당군은 성벽보다 높은 토성을 쌓아 안시성을 공략하려 했다. 그러나 토산이 갑자기 무너져 성벽을 덮쳤고 고구려군이 이를 틈타 토산을 점령해 버리면서 결국 당군은 안시성 공략을 포기하고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

668년 평양성이 함락되어 고구려가 사실상 멸망한 후에도 안시성은 여전히 살아 남아 있었으나 671년에 결국 당군에 함락되면서 끝났다.

안시성에서 군사를 지휘하여 당태종의 군사를 격파했던 안시성주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3]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야사에서 나오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아니다.

3 기타

2010년 12월, 이글루스 역사 밸리에서 당나라가 안시성 공격에 동원한 인력이 얼마냐를 놓고 키배가 벌어졌다. 사실 이 논쟁은 딱히 이글루스에만 있던게 아니고, 그 전부터 역갤을 비롯한 역사 커뮤니티에서 떡밥이 되어왔던 논쟁이다. 굳이 안시성 뿐만 아니라 범위를 확대하자면 고구려-당 전쟁에서 당의 병력 동원과 관련있는 문제다. 이 문제를 놓고 과거 엔하위키에서 서로를 찌질이라 비난하는 수정전쟁이 발생한 관계로 구체적인 사건내역은 작성하지 않았다. 블로그를 적극 활용합시다
  1. 안시성으로 비정되고 있는 영선자산성 사진이다.
  2. 현대의 기준에서 보면 얄짤없이 여자 이름이지만 한국 쪽 작명의 경우 옛날 특히 한자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삼국시대의 작명과 조선 이후의 네이밍 센스엔 넘사벽급의 차이가 존재하고, 조선 시대와 현대 사이에도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무렵 김시민의 후임으로 부임한 목사의 이름은 서예원. 그냥 넘어가자.
  3. 일단 삼국사기에서도 "희대의 영웅인 당태종을 물리친 안시성의 성주는 호걸이라 불리기에 족하나,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으니 아쉽다"라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