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 「유사마량장온가전(劉司馬梁張溫賈傳)」 | |||||
유복 | 사마랑 | 양습 | 장기 | 온회 | 가규 |
1 개요
梁習 (? ~ 230)
후한 말과 삼국시대의 위나라의 관료. 자는 자우(子虞). 예주 진군 자현 출신.
약 20년 간 병주에서 치적을 행한 자이다. 정사에만 등장하고 연의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2 생애
2.1 초기 생애
고향 지역의 대들보였다고 하며, 군의 주부로 지내다가 조조가 사공이 되자 승씨현, 해서현, 하비현 등의 현령을 해 임지를 잘 다스려서 명성이 있어 중앙으로 와서 서조영사가 되었다. 다만 해서현을 다스릴 때 해서, 회포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서선의 집으로 도망친 것은 그의 흑역사.
서조영사를 지낼 때 서조영사인 동료 왕사가 정치에 관한 의견서를 갖추었다가 조조의 의견을 빠뜨리자 조조는 매우 노해 왕사에게 중형을 내리려고 했는데, 왕사가 외출하자 양습이 대신 가서 대답했다. 왕사가 말을 달려 돌아와 자신의 죄라 진술했는데 이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다. 하지만 조조는 양습이 자기를 변호하지 않은 점과 왕사가 책임을 다하려는 태도에 감탄해 두 사람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이후 서조속이 되었다.
2.2 흉노를 복종시키다
조조가 병주를 얻게 되자 별부사마의 벼슬로 병주자사를 맡게 되었으며, 그 당시 병주는 전에 있던 고간이 반란을 일으킨 일로 땅이 황폐해져 이민족들은 주의 경계선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관리와 백성들은 땅을 버리고 오랑캐의 부족에 들어갔으며, 병사를 이끈 자들은 사람들을 모아 약탈하면서 세력를 이뤄 힘을 겨루는 가히 세기말 상황.
양습은 세력자들을 설득해 회유해 불러들여 초청하면서 천거해 직책을 맡게 했으며, 세력자들을 선발하자 순서에 따라 남자를 징발해 종군하도록 했다. 그 가족들을 이주시켜 업현으로 보내 볼모로 삼으니 그 수가 모두 수만 명이나 되었는데,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는 병사를 일으켜 토벌하여 천 여명의 수급을 베었으며, 항복해서 귀순한 사람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선우와 흉노 등의 부족들을 복종했으며, 이로 인해 변방 지대가 안정되었다.
2.3 병주에서의 치적
양습은 병주에서 농업, 양잠을 권하면서 법령, 금령을 엄하게 했다. 조조가 양습의 행정을 칭찬하면서 관내후와 병주자사에 임명되었으며, 나이든 사람은 그를 칭찬하면서 자신들이 듣고 아는 한도에서는 자사 중에 양습이 미치는 자가 없다고 생각했다.
213년에 병주가 기주로 합병되면서 양습은 의랑, 서부도독종사가 되어 기주를 다스렸으며, 원래 있던 부족민을 통솔했다. 또한 상당으로 파견되어 업에 지을 궁전의 목재를 짓는 것에 제공했으며, 둔전도위 두 명을 설치해 인부 6백 명을 인솔해 길가에 콩과 벼를 심어 사람과 소가 소비하는 양식으로 공급하도록 상주했다.
2.4 육연을 베다
주의 두려운 존재였던 선비의 호족 육연이 교역을 요청하자 노략질을 할까봐 빈 성 안에서 만나 교역하자고 했는데, 군과 현에 명령을 내려 관리들을 인솔해 향했다. 시장이 성립되지 않아 시장을 관리하는 관리가 선비족의 한 명을 붙잡았기에, 육연의 기병이 양습을 포위했다.
하지만 양습은 그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시장 관리를 불러 그 사람을 붙잡은 이유를 묻자 관리는 그 선비족이 실제로 사람을 침범해 해롭게 했다고 하니 양습은 통역하는 이에게 육연을 불러 육연의 부하가 법을 어겼다면서 육연을 베니 이 일로 함부로 행동하는 이민족이 없어져 후에 선우가 조정으로 들어올 때 서북쪽에 우환이 없었던 것은 양습의 공적이었다고 한다.
2.5 노석을 쫓도록 명하다
217년에 한중을 점령한 조조가 철수해 장안에 도착했는데, 원군으로 갔던 오환왕 노석에게 한중에 머무르게 하면서 지양에 진을 치면서 노수를 방비하게 하자 진양에서 사는 자기가 사랑하는 처를 보지 못하고 또 돌아가지 못할까봐 두려워 자신의 휘하 500의 기병과 함께 반역한 뒤 단기로 진양으로 가서 처를 데리고 갔다. 아무도 그를 무서워 해 뒤쫓지 못하였지만 양습만이 자기 밑에서 일하던 장경에게 선비족을 모아 노석을 쫓도록 명한다.하지만 역시 겁을 먹었는지 자신이 직접 가지는 않는다
노석이 처를 말에 태우고 가느라 속도가 느려진 까닭에 장경이 이끄는 선비족에게 따라잡혀 결국 노석이 화살에 맞아 죽고만다. 조조는 오환왕 노석의 반란으로 이것이 북방의 큰 반란이 될 것을 두려워하던 차에 양습이 이 문제를 해결하자 크게 기뻐하면서 양습을 관내후로 삼았다.
2.6 죽음
220년에 조비가 제위에 오르자 병주를 다시 설치해 병주자사가 되었으며, 승진해 신문정후로 봉해 식읍 1백호를 받았다. 양습의 치적은 항상 천하제일이었다고 하며, 228년에 중앙으로 들어가 대사농이 되었다.
병주에서 약 20년 동안 있었지만 사는 곳이 매우 가난해 사방에 진귀한 물건이 없었으며, 조예는 이를 특이하게 생각해 예에 따라 매우 두터운 상을 내렸다. 230년에 세상을 떠나 아들 양시가 뒤를 이었다.
3 미디어 믹스
삼국지 10,11 |
삼국지 12,13 |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전반적으로 능력치가 고루 좋고 정치가 특히 높은 편.
삼국지 10에서는 무려 67/49/73/90/84의 능력치를 자랑한다. 농업,상업 특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최상급 내정요원에 거기에 명사 특기를 가지고 나오고, 주인공으로 할 경우 시나리오1부터 플레이 가능이라 직접 플레이하기도 수월하며 187년에 진류에서 재야로 등장하기때문에 약소세력들의 희망이 된다.
삼국지 11에서는 87인 높은 정치도 정치지만 특기 번식을 가지고 있어 높은 정치와 함께 싱크로를 이뤄 본격 말찍는 공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삼국지 12에서는 지력 74, 정치 87을 찍어 굉장히 도움이 된다. 일러스트는 백성들에게 양잠을 권하는 모습.
삼국지 13의 능력치는 73/40/74/87. 중신특성은 농업중시이며 병과적성은 창C/기A/궁C 이며 전법은 기병돌격. 특기는 상업2, 농업6, 교섭3인 B+급 문관이다. 정치가 87이라 관직만 수여해주면 정치가 90이 넘기 때문에 임무장을 2개 발행할 수 있는 A급 내정중신이 된다. 문관 치고는 기병 특성이 좋고 통솔이 높기 때문에 전투력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