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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襄陽 洛山寺 乾漆觀音菩薩坐像. 조선 세조 13년, 1467년에 왕명으로 낙산사를 중건하며 함께 만든 관음보살상. 현재 대한민국 보물 제1362호이다.
2 내용
낙산사는 정철의 관동별곡에 소개된 관동팔경 중 하나로 고대로부터 동해 일출경으로 매우 유명한 곳이다. 문무왕 11년인 671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절로 해변에 위치한 특이한 구조를 갖추었으며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 중의 하나이나 여몽전쟁 초기 1231년에 몽골에 의해 절이 모조리 소실되었고 이때 수백여년을 이어오던 관음상과 수정염주, 복장 등의 보물들을 몽골병에게 약탈당해 이후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후 200여년이 넘게 쓸쓸한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세조가 1468년에 학열대사(學悅)를 중창주로 삼아 절을 대규모로 새로 중창하였다.
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은 낙산사 원통보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1467년에 왕실의 발원과 지원으로 낙산사를 중건하고 원통보전, 영혈사 등을 세울 때 함께 제작되어 모셔진 불상이다. 높이는 112cm, 너비는 76cm이고 불상에 달려 있는 여러 장신구들과 앉은 자세 등이 조선 초기의 불상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 초기의 불교 예술, 특히 건칠상(나무, 종이, 천으로 만들어 옻칠을 한 후 도금한 특이한 형식의 불상)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우리나라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조선 세조 시대에 있었던 숭불의식에 대해서도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양양낙산사건칠관음보살좌상 항목을 참조.
3 보물 제1362호
낙산사 소장. 낙산사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는 건칠불상으로, 근처의 영혈사에서 모셔왔다고도 전해진다.금속으로 만든 팔각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채 앉아 있는데, 적당한 크기로 허리를 곧추 세우고 고개만을 앞으로 약간 숙여 마치 굽어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머리에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높은 보관을 썼으며, 네모꼴에 가까우면서도 각지지 않은 둥글고 탄력적인 얼굴에는 귀·눈·입·코 등이 단정하게 묘사되어 있다.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고, 가슴 부분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가슴에 올리고 왼손은 배에 두었으며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모양을 하고 있는데, 가냘픈 듯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양 어깨를 덮은 옷은 옷주름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는데, 내의 깃이 가슴 밑을 수평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온몸에는 화려한 구슬장식이 드리워져 있다.
이 관음보살상은 표현수법으로 보아 고려 후반의 전통양식을 바탕으로 한 조선초기의 작품임을 짐작케 해준다. 전체적으로 각 부분의 비례가 좋고 특히 얼굴표정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머리에 쓰고 있는 보관은 고대 이래의 형식에 원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보관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