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양지훈(梁智訓 / Ji-Hun Yang) |
생년월일 | 1985년 4월 15일 |
출신지 | 전라남도 순천시 |
학력 | 순천북초 - 순천이수중 - 효천고 - 한일장신대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9년 2차지명 5라운드(전체 37순위)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2009~2013)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8번 | |||||
조원고(2008) | → | 양지훈(2009~2010) | → | 신용승(2012)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4번 | |||||
황수범(2012) | → | 양지훈(2013) | → | 김기태(2014~ ) |
1 소개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한일장신대학교 출신의 첫 프로 선수. 2003년에 18명의 선수로 야구부를 창단한 한일장신대학교는 국내 대학 야구 팀 중 가장 적은 인원 수로 운영되는 팀이었다.[1] 선수가 적다 보니, 팀의 에이스인 양지훈이 거의 매 경기마다 등판할 수 밖에 없었고, 또한 야구부가 해체하기 1년 전부터 야구부에 신입생을 선발하지 못해[2] 양지훈이 졸업하면 팀에 투수가 없어서 졸업도 1년 미뤘다. 안습
3 프로 선수 시절
팀 사정상 연투, 완투가 가능하고 열악한 환경의 팀에서 활약하며 정신적인 측면도 다른 선수들보다 더 낫다고 판단되어 삼성에 지명되었다. 대학 시절 선발로 등판해 2009 시즌 2군에서도 애초에는 선발로 기용되었다. 결과는 7번 선발 등판해 5선발패… 결국 중간계투로 보직을 변경하게 되었고, 1군 데뷔도 했다. 하지만 당시 삼성의 전력이 대거 이탈한 상황에서 그는 10점대의 평균자책점을 찍으며 별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다.
2010 시즌에는 2군에서만 활약했고, 시즌이 끝나고 경찰청에 입대했다. 부상이라도 있었는지 5월 18일이 2011 시즌 첫 등판이었고, 그나마 6월 17일 이후로는 등판 기록이 없다.
2012 시즌에는 주로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첫 경기에서 9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팀 타선 불발로 무승부로 끝났고, 2번째 경기에서는 수비 실책으로 7⅓이닝을 4실점을 기록했는데, 수비 실책 때문에 자책점은 단 2점이었다. 세 번째 경기에서는 7이닝 1실점을 기록했지만 또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다. 첫 3경기 동안 발군의 실력을 보였음에도 단 한 번도 승리투수가 되지 못하면서, 결국 이 이후로는 무너져 18경기 중 3승 3패 1홀드에 평균자책점 5.95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군 제대 후인 2013년, 2군에서 단 3경기에 나오고 결국 방출되었다.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
2009 | 삼성 라이온즈 | 7 | 5 | 0 | 0 | 0 | 0 | 10.80 | 7 | 4 | 2 | |||
통산 | 7 | 5 | 0 | 0 | 0 | 0 | 10.80 | 7 | 4 | 2 |
- ↑ 2010년 9월 기준으로 9명. 15인승 승합차로 선수단 전원이 이동할 정도. 그래서 이 때문에 붙은 별명도 봉고차 야구부.
흠좀무하지만 전라북도에 있음에도 연습 구장이 없어서 훈련은 경기도 남양주시의 사회인 야구장에서 했다고 하며, 야구부 사정도 열악했다. 결국 선수 부족으로 2010년을 끝으로 해체되었다. 해체 후 남은 몇몇 선수들은 편입했으며, 그 중에는 동국대학교에 편입한 후 2년 늦게 졸업하고 2014년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투수 최병욱이 있다. - ↑ 정확히는 2010년에 1명이 들어왔는데, 열악한 환경 때문에 탈퇴했다고 한다.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