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수나라)

楊浩
(586 ~ 618)

수나라의 비정통 황제

수문제의 손자이자 수양제의 조카로 진효왕(秦孝王) 양준(楊俊)과 최씨(崔氏)의 아들이다. 양준 사후 진왕(秦王)이 되었는데 618년, 좌둔위장군 우문화급이 동생 우문지급과 함께 병변을 일으켰다. 양제는 우문화급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알고 도망가려 했으나, 이내 우문화급의 무리에게 붙잡혔고 허리에 매고 있던 띠로 교살당했다. 양제를 시해한 우문화급은 양제와 같이 있던 수나라 황족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는데 우문화급의 동생 우문지급과 친했던 양호만이 화를 피하고 살아남았다.그리하여 우문화급은 양호를 황제로 추대하고 자신은 섭정으로써 모든 권력을 차지했다.

이 후 황제 양호와 대신들, 자신의 측근 및 병사는 물론 양제의 보물들까지 이끌고 수나라의 옛 수도인 낙양으로 향했다. 이 때 낙양에서는 왕세충을 비롯한 여러 관리들이 양통(楊侗)을 황제로 옹립한 상태였다. 낙양의 관리들은 다른 반란세력 이밀에게 위공(魏公)의 자리를 주고 우문화급을 막게 했다. 우문화급은 이밀과 몇 차례 싸웠지만 우세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우문화급 진영의 군량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밀은 우문화급에게 화친을 제의하는 척 하면서 우문화급 진영의 군량이 완전히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우문화급은 이밀의 이러한 전략을 알아챈 뒤 이밀의 진영을 기습했고 거의 이밀을 죽일 뻔했으나, 결국 이밀을 죽이는 데 실패했다. 우문화급은 이밀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고 식량도 얻지 못한 채 북상했다. 이 때 양호는 우문화급에 의해 폐출되었고 독살되었다. 이 후 우문화급은 스스로를 황제라고 칭하고 국호를 (許), 연호를 천수(天壽)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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