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ch Friedrich Wilhelm Ludendorff
1865년 4월 9일 ~ 1937년 12월 20일
1 개요
"평화란 전쟁 사이의 전간기에 불과하다."
제1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실질적인 총 지휘관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의 페르디낭 포슈와 라이벌 포지션.
2 생애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리에주 요새 공방전과 파울 폰 힌덴부르크와 함께 한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독일 제국 육군 장군. 독일제국의 실세였으며, 고령인 참모총장 힌덴부르크보다 당시 참모차장이였던 루덴도르프의 권력이 더 강하였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장군들 중에서도 뛰어난 명장이다. 탄넨베르크 전투 이후에는 상관 힌덴부르크와 더불어 동화에서 사악한 용을 때려잡은 게오르크 형제급으로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힌덴부르크는 루덴도르프의 지성이 필요했고 루덴도르프는 힌덴부르크의 권위가 필요했는데 서로 찰떡 궁합이었다. 파울 폰 힌덴부르크와 함께 1916년 이후, 상관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육군 참모총장이 되자 참모차장이 되었고 군수총감을 겸임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상관이 고령이라 실무에 다소 뒤떨어졌기 때문에 공동결정권을 행사하여 사실상 독일군의 지휘자가 되었다. 군수총감 이었기 때문에 군수품을 명목으로 독일 경제에 자원배분에 간섭해 나갔으며 기업과 국민생활 까지 모든 전권을 휘두르게 된다.
루덴도르프가 유능한것과 별도로 독일군은 참모장교는 능력에 따라 진급하긴 하지만 군부 지휘관은 죄다 왕족을 썼기 때문에 계급이 보병대장에 상인의 아들 루덴도르프가 왕족들에게 작전명령을 들어먹으라고 하긴 어려웠다. 어디까지나 군령은 최고사령관 카이저 빌헬름 명의로 나가고 육군참모총장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최고사령관의 권한의 의거 하여 내리는것이기 때문이다. (전쟁 초 군 지휘관만 보더라도 군은 빌헬름 황제의 장자 빌헬름 황태자. 뷔르템베르크 왕국 국왕 빌헬름 2세. 바이에른 왕국 왕세자 루프레히트, 빌헬름 2세의 사돈어른, 해군은 빌헬름 2세의 동생인 하인리히 왕자... 이런식)
독일군의 실질적 지휘자가 된 이후에 1918년 무리한 4차례 대공세로 독일의 패망을 앞당긴 걸로 평가받기도 한다. 다만 이 때의 상황을 보면 독일은 군수품 생산은 최고조에 달했지만 경제력은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태라서 오래 지탱하기 어려웠고, 한계 상황인 것은 영국과 프랑스도 마찬가지였지만 미국이 참전한 이상 시간이 지나면 엄청난 물량이 전선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 분명했다. 즉 이 시기에는 몇 달 후면 독일이 필연적으로 패배하게 되기 때문에 그 전에 어떻게든 승리를 얻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공세를 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세의 내용이 다소 무리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미군이 예상보다 조기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파리를 함락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 파리를 함락시켰다고 해도 전쟁을 끝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군인으로써의 평가는 영국 버나드 로 몽고메리의 평가로는 "어느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군인으로서 유능함은 틀림없다."란 평을 받았고[1] 다른 전문가들도 군인 자체로는 매우 유능하다고 인정한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카이저 빌헬름 2세와 군부 인사 500여명의 전범 체포가 조약에서 거론되자 책임을 회피할 목적으로 스웨덴으로 망명을 하는데 여기서 미국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배후중상설을 언급했고 다시 독일로 돌아와서 막스 베버와 인터뷰에서 자신이 1차대전때 독재권력을 휘두른 영향으로 독재에 대하여 강한집착을 가진 인터뷰를 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혼란이 찾아오고, 아돌프 히틀러의 세력이 커지자 다시 독일로 돌아와 나치당에 가입했으며, 맥주집 폭동때에도 얼굴마담으로 참여 했다. 이때 히틀러 등과 같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데 시종일관 묵비권을 행사했고 히틀러는 이와 대비하여 장광설을 터뜨리며 일약 정치적 스타가 되었다. 루덴도르프는 체포자체가 모욕적으로 여겼다고한다. 그후 젊은 여성과 재혼을 했는데 아내가 예수회, 프리메이슨, 국제 유대인 삼각 음모론을 철썩같이 믿는 약간 맛이 간 여자라 그 영향으로 그의 지성도 무뎌졌다.
1925년 히틀러의 제안을 뜬금없이 받아들여 한 때 환상의 콤비였던 힌덴부르크와 대선 경쟁을 하기도 한다. 이때는 이미 히틀러와 사이가 거의 틀어지던 시기라 그의 행적은 매우 의문이긴하다. 히틀러는 어차피 미미한 지지율을 기록할것을 예상했고 루덴도르프를 감언이설로 추천했는데 루덴도르프는 그 제안을 승산이 있다고 받아들인것.... 이후 히틀러와 서로 욕하면서 갈라섰고 나치당도 탈퇴한다. 이때 한가하게 지내다가 장제스로부터 중화민국의 군사고문이 되어줄 것을 요청받으나 거절하고 대신 막스 바우어 대령를 추천하여 그가 국민혁명군 고문이 된다.
훗날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자, "난 대통령께서 그런 악마를 총리로 임명한 것에 대해 크게 후회할 거라 믿소. 저 놈은 독일을 세상에 유례없는 파멸로 이끌 놈이오!" 라고도 했는데, 사실 루덴도르프가 미래를 예언했다기보단, 히틀러에게 모욕당한 것에 대해 화가 나서 개인적인 사감으로 있는 말, 없는 말 내뱉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예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