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에밀 베낭트 (Émile Veinante) |
생년월일 | 1907년 6월 12일 |
사망년월일 | 1983년 11월 18일 |
국적 | 프랑스 |
출신지 | 메스[1]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신체조건 | 175cm / 70kg |
등번호 | -[2] |
소속팀 | FC 메스(?-1929) 레드스타 파리(1929-1940) |
국가대표 | 24경기 / 14골(1929-1940) |
감독 | 레드스타 파리(1940-1943) RC 스트라스부르(1945-1947) RC 스트라스부르(1948-1949) OGC 니스(1949-1950) FC 메스(1950-1951) FC 낭트(1951-1955) RC 스트라스부르(1960-1961) |
1 생애
1.1 선수 생활
베낭트는 스트라이커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그 팀은 고향팀이던 FC 메스였다. 1929년까지 메스에서 활약한 베낭트는 레드스타 파리로 이적하였고 은퇴할 때까지 그 곳에 머물렀다. 1936년에는 레드스타 파리가 더블을 기록하면서 그의 커리어에서 전성기를 만들어냈다. 1939년부터는 플레잉코치로 활동하였고 1940년에 은퇴하였다.
1.2 국가대표
에밀 배낭트는 초대 월드컵부터 1938년 월드컵까지 30년대에 열린 3번의 월드컵에 모두 참가한 선수이다.
하지만 초대 대회에서는 마지막 칠레전에서만 출전하였고 1934년에는 대표팀이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이탈리아 구경만 하고 돌아갔다. 1938년 대회에서 드디어 골 맛을 보았는데 벨기에를 상대로 시작한 지 35초 만에 득점을 기록하였다. 이는 종전 기록인 루마니아의 아델베르트 데슈의 50초 기록을 앞당긴 것이었다.
1.3 감독 생활
1940년에 은퇴한 에밀 베낭트는 바로 레드스타 파리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하지만 트로피를 얻는 데에는 실패했고 1945년부터 RC 스트라스부르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재임 기간 중 스트라스부르를 3위에 올려놓기도 했지만 재계약이 불발되었다. 하지만 후임 감독의 성적이 시원치 않자 스트라스부르는 다시 베낭트에게 SOS를 쳤다. 하지만 베낭트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더욱 추락하여 18개 팀 중 17위로 리그를 마무리하였다.[3] 이 일로 해임을 당한 베낭트는 니스와 친정팀 메스, FC 낭트 등에서 활동을 하였다. 마지막 감독 생활은 스트라스부르를 리그앙에 진출시키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2 플레이 스타일&평가
주로 스트라이커 또는 인사이드-레프트로 활약하였다. 게임 디자이너라는 별명이 붙을 수 있는 게임 리딩 능력과 함께 그를 상징하는 것은 킥 능력이었다. 특히 프리킥 능력이 일품이었다 한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에드멍 델푸어, 에티엔느 마틀레르와 함께 30년대 월드컵에 모두 출전한 3명의 선수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