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역(驛)
일본어: 駅 (えき)
중국어: 火车站 (Huǒchē Zhàn)
영어: station, railroad Station
러시아어: вокзал, станция (метро)[1]
독일어: Bahnhof, Station
프랑스어: gare, station
스페인어: estación
베트남어: Bến tàu
터키어: istasyon
몽골어: станц
1 개요
철도의 열차가 정차하는 정거장과 그 부대시설을 의미한다.
2 역참
철도교통 도입 이전에는 말을 키우고 관리하면서 사람과 말이 쉴 수 있는 숙박시설이었다. 역의 등급, 형태, 위치, 기능 등에 따라서 다양한 역의 분류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공통적인 개념은 지친 말을 바꿔 탄다는 것이다. 고문헌에는 비슷한 일을 하는 원과 합쳐 역원(驛院), 중국에서 역을 주로 부르는 표현인 참(站)[2]과 합쳐 역참(驛站)이라 부르기도 했다.
전통적인 '역'의 개념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삼국시대로, 이때는 몇몇 지역에만 국지적으로 설치되었다. 이후 고려시대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고려 때는 전국에 22개의 길과 525개의 역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 중국을 정복한 몽골(원나라)은 중국뿐만 아니라 몽골 등 지배 전역에 걸쳐 역전제도를 실시했다. 조선시대에 들어 기존에 역원을 대부분 절들이 운영하던 것에서 전부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영 시설로 바뀌고[3] 조선 후기에 들어 비슷한 역할을 하던 원(院)을 점차 흡수된 이래 구한 말 우체사가 설치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사찰이 역의 역할을 했던 게 다소 의외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고려만 그런 것은 아니고 중세 유럽에서도 수도원이나 성당 등에서도 숙박업 등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세 당시에는 나라에서 직접 곳곳에 숙박/교통시설을 운영하기에는 행정능력이 부족했고,[4] 민간 자본으로 운영하기에는 자본주의나 기술력이 충분히 뒷받침될 만큼 발달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노숙을 하자니 치안능력의 부족으로 인한 범죄자들이나 자연개발이 덜된 탓으로 설쳐대는 맹수들이 많았기 때문. 그런 상황에 일반 마을이나 영지에서 떨어진 교통의 요지에서 어느 정도 자급자족을 하고 도적이나 맹수로부터 자체 방어가 가능한 수준의 일정한 인원과 시설[5]을 갖춘 비교적 안전한 쉼터는 종교시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종교시설/교단 입장에서도 숙박비와 여러 사람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열리는 시장 기능, 여기에 기본적으로 운영자금을 대기 위해 나라에서 주거나 교단 차원에서 지원하는(혹은 사람이 모이면서 자체 노동력으로 개간하는) 재물과 논밭, 여행자들이 무사여행을 빌면서 내는 재물들 덕택에 역원은 상당한 수입원이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학교대사전에는 '수업시간에 쪽지를 돌리면 신속하게 수신자에게 도착하는 체계'라고 나와 있다. 쪽지를 받을 사람의 중간 위치에 있는 친구들을 거치는 게 역참제를 연상케 해서 그렇게 부르는 듯.
3 철도역
'역'이라는 말이 다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일본에 철도 교통이 들어오면서부터이다. 철도교통의 정거장을 두고 처음에는 일본도 영국, 미국에서 부르던 명칭 그대로 "스테이숀"이라고 불렀던 것을 여러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으나, 철도교통이 정착해가던 19세기 중후반에 이미 '역'이란 단어로 교체되었다. 철도교통 또한 기존의 역참에서 말을 교대하듯 기관차와 기관사를 구간마다 바꿔 줘야하는 개념이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의외로 기차라는 것은 종점에서 종점까지 처음 편성 그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에 바꾸어 주는 물건이기 때문이다.[6]
한국의 경우는 일제시대 초기 '역'과 '정거장'이 혼용되는 양상을 보이다가 1910년대 중후반부터 공식 명칭은 '역'으로 굳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정거장'이라는 말 자체는 일제시대 민중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다 1950년대 중후반부터 사라진 것으로 추측된다.[7]
철도역이 들어선 철로 주변에는 승강장이나 정차분기기 등의 소정의 시설물을 설치한다. 화물역의 경우에는 반드시 승강장(플랫폼, 타는곳)을 설치할 이유는 없지만, 여객이 타고 내리는 역이라면 보통은 안전 문제로 인하여 승강장을 설치하게 마련이다.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역에 유개화차와 연결되는 고상홈이 지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전철의 고상홈과는 다르다)
3.1 관련 문서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역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 вокзал(바그잘)은 기차역, станция метро는 전철역을 이른다. станция 라고 줄여서 쓰는 경우가 더 많다.
- ↑ 파발 제도 하에서, 역과 비슷한 일을 하는 파발꾼용 시설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 ↑ 당시 도로는 군사적인 목적이 강해, 조선시대 역은 지금의 국방부격인 병조에서 관리하였다.
- ↑ 사족으로 중세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 시설이 부분적으로 행정을 담당하기도 했다. 문맹률이 높던 시절 행정실무에 필수적인 글을 아는 사람들이 그나마 많은 곳은 종교시설 뿐이었으니까. 지금도 독일에서는 결혼식을 하면 근처 교회에 이를 등록하는 경우가 있는데, 과거 중세 시절의 문화가 아직 남은 것이다.
- ↑ 현대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중세만 해도 중세의 사정이 사정이다보니 자체 방어를 위해 수도사나 승려가 무술을 연마하거나, 절 근처에 성벽을 쌓는 게 의외로 흔했다. 중세 유럽의 수도사가 전쟁에 참여한 사례도 있고, 고려사에도 서경 반란 진압 당시 자원해서 참전한 관선이라는 승려가 거대한 도끼를 휘둘러 혼자서 반란군 십여 명을 썰어버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일본의 소헤이는 아예 도를 넘어 유력 사원이 사실상 지방 영주화된 케이스.
- ↑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KTX를 제외하면 화물열차와 일반열차의 경우 특정 기관사가 선구를 전담하고 일정 구간 후에는 기관차와 기관사를 교대하는 경우가 많다. 인력도 기계도 유지보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선형이 불량하고 속도도 느리며 꼬박꼬박 석탄과 물을 공급해야 했던 옛날의 경우는...
- ↑ 일제시대에 쓰여진 작품 상당수에 '정거장'이란 표현이 등장하고, '이별의 부산정거장' 같은 노랫말이 해방 후에도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