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dth=50 고구려의 역대 국왕 | ||||
11대 동천왕 고우위거 | ← | 12대 중천왕 고연불 | → | 13대 서천왕 고약로 |
시호 | 중천왕(中川王) / 중양왕(中壤王) | |
성 | 고(高) | |
휘 | 연불(然弗) | |
생몰년도 | 음력 | 224년 ~ 270년 10월 (47세) |
재위기간 | 음력 | 248년 9월 ~ 270년 10월 (22년 1개월) |
1 소개
243년에 태자가 되었고, 248년에 동천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248년 음력 11월에 중천왕의 동생이었던 예물(預物)과 사구(奢句) 등이 모반을 일으켰지만 실패하였고, 모두 형벌을 받아 죽었다. 이는 왕위계승 문제를 두고 일어난 왕족간의 다툼이 그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전의 고구려는 형제간에 왕위를 계승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지만, 왕권이 점차 강화됨에 따라 서서히 부자간에 왕위를 계승하는 쪽으로 대세가 기울었다. 중천왕의 동생들은 이에 반발하여 모반하였다가 죽은 것이다.
250년 국상(國相)의 권한을 확대하여 수도와 지방의 군권까지 겸하게 하였다.당시 국상은 명림어수(明臨於漱)[1]
251년에 측실 관나부인(貫那夫人)이 왕후 연씨(椽氏)를 시기하여 모함을 하자 왕이 분노하여 관나부인을 가죽 주머니에 넣어 바다에 수장하는 처벌을 하였다(!).254년에는 국상 명림어수(明臨於漱)가 죽어 음우(陰友)를 국상으로 삼았다.256년 공주를 연나부 출신인 명림홀도(明臨笏都)에게 시집보냈다.
259년 위나라 장수 위지해(尉遲楷)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오자 왕이 기병 5천 명을 이끌고 태자하(太子河) 상류로 추정되는 양맥(梁貊)에서 싸워서 이들을 무찌르고 8천여 명을 목베었다. 선왕인 아버지 동천왕이 위나라 장수 관구검에게 침략을 당해 작살이 났던 것을 생각해보면(...) 단단히 복수를 한 셈이다.
270년에 죽었고 중천(中川)의 들에 장사지냈다.
2 삼국사기 기록
一年秋九月 중천왕이 즉위하다
一年冬十月 연씨를 왕후로 삼다
一年冬十一月 왕의 동생 예물과 사구 등이 모반을 일으키다
三年春二月 국상 명림어수에게 군사 업무를 담당하게 하다
四年夏四月 왕이 관내부인을 죽이다
四年夏四月 음우를 국상으로 삼다
四年秋七月 지진이 일어나다
八年 약로를 왕태자로 삼다
九年冬十一月 명림홀도가 부마도위가 되다
九年冬十二月 겨울에 눈이 오지 않고 전염병이 유행하다
十二年冬十二月 조위의 침략을 물리치다
十三年秋九月 시조 사당에 제사를 지내다
十五年秋七月 왕이 흰 노루를 잡다
十五年冬十一月 겨울에 천둥과 지진이 일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