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wald von Münzer
은하영웅전설에서 언급되는 역사 속 인물. 을지판에서는 오스왈드 폰 뮨츠아로 번역되었는데 일본어 발음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원인인 듯하다. 작중 비슷한 유형의 오역으로 '암리츠아'라고 번역한 암릿처(Amlitzer)가 있다.
강직한 성격의 인물로 작중 시기에는 명군을 모셨던 명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 영향으로 본편이나 외전 모두에서 뮌처가 단독적으로 언급되기 보다는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를 언급하면 같이 언급되는 형태이다.
원작에서는 매우 짤막하게 언급되고 지나가지만, 시간상으로 서술하면 다곤 성역 회전 말엽에 잠깐 등장한다. 당시 헤르베르트 대공의 실책으로 제국군이 동맹군에 패전함에 따라 황제와 제국의 명예가 실추되었지만, 감히 황태자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었기 때문에 원정함대의 참모였던 고드리프 폰 잉골슈타트 장군이 비밀군사법정에 소환되었다. 그래도 명색이 군법회의였기에 변호인을 붙여주었는데 그 인물이 뮌처였다. 근데 뮌처가 변호인으로 지목된 이유가 가관인데 그가 평소에 잉골슈타트와 사이가 아주 안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변호하지 말고 디스질 잔뜩하란 의도에서 선임한 인물이었는데 그런 높으신 분들의 의도와는 달리 뮌처는 성심성의껏 잉골슈타트의 변호를 해주었고 마지막 변론에서 원정군 지휘부를 통렬히 규탄하였다.[1] 그러나 결국 잉골슈타트에게는 사형 판결이 내려졌는데 이때도 사형이 아닌 징역형으로 감형해야 한다고 끝까지 반발했다. 그러나 결국 사형을 막진 못했다. 그래서 하전입자 광선총으로 총살이 집행되던 날 아침, 형장에 선 잉골슈타트는 입회인으로 자리에 있던된 뮌처를 바라보며 감사의 뜻으로 깊이 고개를 숙이고 총살된다. 나중에 뮌처가 잉골슈타트를 변호하고 원정군 지휘부를 규탄한 발언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뮌처는 "탄핵자 뮌처"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정작 뮌처 본인은 높으신 분들의 미움을 샀던 까닭에 제도방위사령부에서 쫓겨나 변경의 경비사령부로 좌천당했다.
이후 은하제국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은 제23대 황제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가 즉위했을 때, 황제는 뮌처를 중앙으로 불러들여 사법상서(법무부장관) 직위를 제수하고 맹인이 된 자신을 보좌하게 하였으며, 제국 내에 만연한 범죄와 각종 부정부패를 일소하게 하였다. 더불어 자유행성동맹과의 전쟁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하여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의 20여 년이 넘는 재위기간 동안 단 1번도 동맹으로 먼저 쳐들어가지 않게 한 것도 그의 업적이다. 쓸데없는 전쟁을 하고자 쳐들어갈 돈으로 나라부터 살리자는 뜻이었고 황제도 그 뜻을 따랐기 때문이다. 다만 동맹과의 평화교섭은 하지 못한 듯싶다. 만약 그랬더라면 황제도 그도 만프레트 2세처럼 지구교에게 암살당했을지도 모르지만[2].
뮌처는 제24대 황제인 코르넬리아스 1세 재위 시기까지 사법상서의 지위에 있었는데, 황제께서 직접 동맹 정벌을 하겠다고 선언하자 안 된다고 꼬장꼬장 대들다가 황제가 좀처럼 말을 들어먹지 않자 빡쳐서 사표를 집어던졌다. 깜짝 놀란 황제가 제국원수봉을 수여하여 회유하려 하였다. 하지만 당시 원수 직위의 가치가 바닥에 떨어졌던 시기[3]인지라 회유에 실패하였고 뮌처는 그대로 낙향하였다.
이후 행적은 언급되지 않는다.
- ↑ 이 변론은 다곤 성역 회전 항목의 '전후 처리' 단락을 참고하기 바란다.
- ↑ 다만, 지구교의 주된 수법이 동맹과 제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음모를 꾸미는것임을 생각하면 이 당시 지구교에 그만한 역량이나 수단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지구교의 최대 무기였던 페잔 자치령도 없던 시대이고, 동맹이 제국과 맞먹을만한 거대국가도 아닌 상황이었으니...(그리고, 만프레트 2세 시기와 달리 동맹의 세력자체가 작던 시기라 굳이 평화교섭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그 뒤를 이은 코르넬리아스 1세의 동맹 정벌 당시 갑자기 제국내에서 벌어진 반란이 바로 지구교가 배후에 있던걸 보면 페잔이 아니라도 이미 제국 귀족계에서 이미 지구교는 세력을 잡은 다음이었다.코르넬리아스 1세의 동맹 원정 당시 제국 내에서 벌어진 반란의 배후에 지구교가 있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원작에는 그런 이야기 없다. 원작 내용을 기준으로 보면 그냥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친정한 상태에서 발생한 권력 공백 때문에 반란이 일어났다고 서술되었을 뿐이다. - ↑ 코르넬리아스 1세는 소함대 지휘관에게도 제국원수봉을 수여했을 정도로 원수 계급을 남발하였다. 코르넬리아스 1세 재위기간 동안 임명된 원수의 수가 무려 58명이었다. 그래서 "황제 폐하가 직접 통솔하는 부대는 원수 2개 소대"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