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곤 성역 회전

Battle of Starzone Dagon(ダゴン星域会戦)

1 개요

등장작품 :
은하영웅전설 1권 프롤로그[1]
듀얼 문고판 은하영웅전설 외전 1 <황금의 날개> 수록.
시기 : 우주력 640년, 제국력 331년 7월

은하제국자유행성동맹사이 벌어진 전투이자 이후 약 150년간 지속된 기나긴 대전쟁의 시작.

은하제국군 원정함대가 포위되어 처참하게 섬멸당한 까닭에 다곤의 섬멸전 또는 다곤 섬멸전라고도 불린다.

2 배경

민주국가 은하연방이 전제군주제의 은하제국으로 변모하며 공화파 인사들이 처참하게 제거당하고 주변 인물들까지 탄압받았어도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의지는 수 백여년이 흘러도 변함이 없었다. 은하제국은 이런 공화주의에 대한 열망을 제거, 처형하거나 강제노동소에 수용하는 등 철저하게 탄압을 가했다.

제국의 강제노동소란 변방 중의 변방에 속한 행성에 설치되어 필수적인 의식주조차 제공되지 않는 가혹한 환경으로 이를 견디다 못한 수 많은 사람들이 탈출을 모색하였으나 대부분 실패하여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그러던 와중 알레 하이네센이라는 한 청년의 주도로 약 40만명의 유배자들이 대거 탈출을 시도,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할 약 1만 광년의 기나긴 여정 끝에 후일 바라트 성계라 이름 붙여질 성계에서 인류가 정착할 완벽한 조건을 가진 행성을 발견,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1만 광년을 거친 수 십년의 새월 동안 지도자 알레 하이네센과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우주력 527년, 자유행성동맹이 건국 될 당시 초대 시민은 16만 명뿐이었다.

은하연방의 멸망과 은하제국의 건국, 장정 1만 광년을 거쳐 민주공화제가 부활하는데는 수 십억명의 희생이 필요했고 사람들의 희생으로 겨우 부활시킨 민주공화제의 불꽃은 너무나 연약하기 그지 없었다. 은하제국의 어두운 손길은 아직 뻗어오지 않았으나 언젠가 제국과 마주할 그 순간을 대비하기 위해 자유행성동맹의 시민들은 열성적으로 인구를 늘리고 주변 성계를 개척하며 국력을 신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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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약 110여 년 뒤인 우주력 640년, 제국력 331년 2월,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의 지역 경비함대가 맞닥뜨리게 된다. 언젠가 제국과 접촉하리란 것을 알고 대비하고 있던 동맹과는 다르게 예상치도 못한 외계함대의 출현에 크게 당황하였고 벌어진 전투에서 패배한 제국군은 몰살되었다.

그런데 제국군의 함선 한 척이 격침되기 전에 본토로 필사적인 교신을 남긴 탓에 은하제국측에서도 자유행성동맹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었고 제국은 과거 수백년간의 모든 기록들을 다시 꺼내 면밀히 검토한 결과 오래 전 불손한 공화주의자들이 대거 탈출했던 기록이 발견, 당시에는 어디서도 이들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미지의 우주 어딘가에서 모두 죽었을 것이라 판단하여 흐지부지 넘어갔으나 이 일을 계기로 은하제국은 이 도망자들이 죽지않고 어딘가에 정착하여 살고있다라고 결론내렸다.

3 제국의 준비

은하제국은 은하연방, 그보다도 더 이전인 지구통일정부 시절부터 크고 작은 이유로 상당 규모의 함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지구통일정부가 은하연방이, 은하연방이 은하제국으로 변하며 인류의 발자취가 닿는 곳이 넓어질 수록 함대의 규모는 더욱 커지고 있었으며 은하제국군은 제국 건국 이후 빈번하게 벌어지는 수많은 반란을 진압하며[2] 실전 경험이 충실하게 쌓인 함대와 노련한 제국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것은 대규모 수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군무상서 팔켄호른 원수, 자유행성동맹 토벌을 위한 원정이 결정된 자리에서.

이런 상황이니 이전까지의 반란군과는 사뭇 다른 규모로 보이긴 했어도 '자유행성동맹'을 자칭하는 새로운 반란세력은 제국 정부와 군부에게 전혀 위기감을 느끼게 하지 못했다.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개입이 있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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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3세는 장남 구스타프를 황태자에 서임, 제국의 공식적인 후계자로 공인시켜두었으나 구스타프 황태자는 근위대 열병식 중 실신한 일까지 있어 통치는 커녕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 조차 우려될 정도로 건강이 좋지 못했다. 결국 프리드리히 3세는 아들 구스타프가 광대한 제국을 통치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황태자를 교체하기로 결심했다.

구스타프를 대신할 인물은 프리드리히 3세의 3명의 다른 아들들이 있었다. 차남 막시밀리안 요제프는 신체가 건강하고, 머리는 영특하며 인격까지 갖춘 완벽한 황태자감이었으나 어머니가 하급 귀족의 여식인 탓에 문벌귀족들의 지지가 미약하고 본인부터가 제위계승에는 관심이 없어 황태자가 될 수 없었다. 결국 남은건 3남과 4남, 프리드리히 3세는 여기서 3남 헤르베르트를 다음 황태자 감으로 낙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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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남 헤르베르트는 신체적 요소와 정치적 야심에 있어서는 제위를 계승할 자격이 충분했다. 문제는 황제의 아들로 태어나 힘들 일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겪어보지 못했고[3] 이 때문인지 매사에 신중함이 부족하고 오만하고 자만이 심한 성격적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4남 리하르트는 헤르베르트와 비슷한 문제를 지니고 있어 선택받지 못했고 결국 프리드리히 3세는 때마침 나타난 대규모 반란군을 토벌하는 원정함대 사령관직을 헤르베르트에게 내리며 차기 황위 계승자를 간접적으로 공표하였다.

한때 제국 수뇌부에서 '대규모 수렵'이라 불리며 대수롭게 않게 여겨진 원정작전은 황제의 말 한마디로 인해 대공 전하의 역사상 유래없는 위대한 원정이라는 미사여구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3.1 제국 내의 이견

대규모의 수렵역사상 유래없는 위대한 원정이 되었어도 제국 수뇌부에서는 황제의 이복동생, 슈테판 폰 바르트바펠(Stephan von Bartbaffel) 후작을 필두로 하는 '원정 반대파'가 존재했다. 바르트바펠 후작은 황제가 참석한 어전회의에서 3가지 이유를 들어 원정계획을 매우 격하게 비판했다.

I. 대대적인 원정을 벌이기에는 준비시간이 부족하다.[4]

I. 1만 광년의 원정이 될 것인데 보급의 문제가 따르며, 적의 지형을 잘 모른다.[5]
I. 원정이 어려운데 총사령관이 전쟁과 카드놀이도 구분 못하는 교만한 자이다.

바르트바펠 후작은 단지 원정계획의 어려움과 사령관의 자질 문제를 동시에 지적한 것이었으나 문제는 그 강도가 너무 과했다. 무려 황태자와 황제를 동시에 비판한 것이다.

"이처럼 중대하고도 어려운 원정의 지휘를 숙련된 장군에게 맡기지 않고, 전쟁과 카드놀이조차 구분하지 못하며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는 교만한 자에게 던져주다니, 이 무슨 망령된 짓이란 말입니까. 공사의 차이를 모르고, 국운과 가운을 동일시하며, 나아가 국가와 민중의 해하는 일이 없도록 본관은 절실히 희망하는 바입니다."

면전에서 대놓고 모욕당한 셈이 된 헤르베르트는 바르트바펠 후작에게 격한 분노를 터트렸으나 후작의 일침에 반론을 시도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진정으로 제위를 바란다면 최소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그 정도 판단력은 갖추어야 한다. 시정잡배라면 피해는 기껏해야 가족과 지인에게 미칠 것이나, 황제라면 수백 항성계에 영향이 미치는 법이다. 함부로 무훈을 자랑하기 전에 무력을 남용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배워야 하지 않겠나."

이에 심기가 불편해진 황제가 후작의 의견을 묻자 후작은 이미 100여년 이상 방치된 일이니 굳이 지금에 와서 서둘러 해결에 나설 필요가 없다, 제국령 내부에 군사 거점을 만들고 [6] 적들의 침입을 막는 동시에 훗날 행해질 원정을 대비해야 한다고 답한다.

그러나 한번 후작에게 일침을 맞은 헤르베르트 대공이 명백히 논점에서 벗어난 은하제국이 온 우주의 유일한 정통국가라는 진리를 부정하냐며 꼬투리를 잡았고 이에 바르트바펠 후작은

"타인의 의견에 꼬투리를 잡는 것이 황제의 자격이라 익혔는가, 골덴바움 가문의 장래가 기대된다.

...라고 황제 프리드리히 3세와 헤르베르트 대공을 동시에 비판했다.

이에 참다못한 프리드리히 3세가 결국 격노, 그 자리에서 바르트바펠 후작의 발언을 금지시키며 반대 의견을 막아버렸다. 황제의 분노에 회의에 참여하고 있던 사람들은 은연중의 후작의 운명을 직감했으며 후작은 회의를 마치고 나와 군인으로써의 직위도 반납하고 스스로 궁정에서 물러났으나 황제는 제국 수도 오딘으로의 출입을 엄금, 후작의 작위를 남작으로 박탈시키고 영지의 80%을 몰수했다. 바르트바펠 후작은 남은 영지의 자택에 틀어박혀 3년 후 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3.2 제국 원정군 편성과 출발

후작은 옳았다. 그렇지만 옳은 말이 언제나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강직하게 반대를 멈추지 않던 후작이 비참하게 쫒겨나자 그 누구도 반대 의견을 입에 담지 못했고 대규모 원정 준비에는 박차가 가해졌다. 다만 황제는 쫒아낸 이복동생의 말 처럼 아들 헤르베르트를 전쟁과 카드놀이도 구분 못하는 교만한 자라고 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대규모 함대를 지휘할 역량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형식상 사령관은 헤르베르트였으나 실질적으로 노련한 제독들이 총지휘를 맡도록 인선에 신경을 써주었다.

그런데 후작의 우려대로 헤르베르트 대공이 이 인선에 격렬하게 반발, 결국 황제가 한 발 물러나 인사권의 절반을 헤르베르트에게 맡기게 되었다. 대공은 가져온 인사권을 아낌없이 휘둘러 생전 처음 군복을 입어보는 20대 장군 4명과 영관급 장교 8명이 탄생시켰으며.[7] 헤르베르트 본인은 제국 원수직을 하사받아 원정함대 총사령관이 되었다.

제국군으로써는 다행스럽게도 황제가 임명한 절반의 참모진은 매우 건실했다. 고틀리프 폰 잉골슈타트 중장, 하젠클레버 중장, 파센하임 중장 등 실전 경험이 출중한 유능한 제독들이 지휘관이라고 지휘관석과 주변에 있는 장식품들 대신 원정 함대를 총 지휘하게 되었다. 원정함대는 5만 2600여척, 장병은 총 440만 8000여명이었다.

헤르베르트는 오딘을 출발하고 얼마간은 긴장감을 적절하게 유지했다. 그러나 몇 달이 걸리는 긴 여정이 계속되며 금방 긴장이 풀어진 대공 전하는 원정중인 현 상황까지 망각하고 군복을 입는 것 조차 꺼려하며 마침 참모진의 절반 가량이 자신의 술자리 친구들이었던 탓에 총사령부가 음주와 도박으로 점철된 유흥업소로 변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8]

게다가 원정 함대가 이동하는 동안 아군 함선끼리의 사고, 각종 사고 등이 발생할 때마다 함대 기함의 대형 화면을 통해 일일히 보고를 받으며 시간을 낭비해 참모진을 힘들게 하더니 급기야 나중가서는 화려하게 장식된 전용 셔틀에 탑승해 일일히 시찰하기 시작했다. 현지지도하냐? 알아볼 필요도 없는 세세한 사고도 총사령관이 하나하나 시찰에 나설때마다 모든 함대가 멈춰야만 하니 여정은 매우 늘어지기만 하고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른 참모진은 마음에도 없는[9] 갖가지 말을 지어내 대공을 설득해 함대를 다시 움직여야만 했다.

4 동맹의 준비

제국과의 충돌 사실을 보고받은 동맹은 곧 들이닥칠 제국 원정군을 상대해야 될 상황에 처하였다. 승리하면 다행이지만, 패배하면 선조들이 백여 년에 걸쳐 이룩한 국가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최고평의회자유행성동맹군 통합작전본부장 겸 후방근무본부장을 역임하고 있던 비로라이넨 대장에게 사령부 인선을 요청하였고, 비로라이넨은 링 파오 중장을 사령관으로, 유수프 토패롤 중장을 참모장으로 지명하였다.

전반적으로 사생활이 문란한 링 파오와 성격이 개떡같기로 유명한 '불평꾼 유수프' 유수프 토패롤이 각각 사령관과 참모장으로 뽑혔단 사실 때문에 이 인사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고 뒷공론도 있었다. 하지만 최고평의회 의장 마누엘 후안 파트리시오는 군말없이 승인하였다. 국방위원장 코넬 영블러드도 이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번복되지는 않았다. 대신 어딘가 비뚤어진 이 두 인물을 그런대로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려고 접견하였던 국방위원 몇 명이 뒷목을 부여잡았을 뿐이다.[10][11]

동맹군은 약 25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였으며, 네이스미스 워드 중장, 안드라슈 중장, 외르스테드 소장, 올레빈스키, 문가이 등 노련한 실전 지휘관들을 주력으로 배치하였다. 병력의 규모는 적은 편이었지만 동맹군은 보급선도 짧고 지리에도 익숙하였으며, 무엇보다 헤르베르트 대공을 위시한 참으로 뛰어난 제국 함대 일부 수뇌부에 비하여 유능한 지휘관들 위주로 배치되었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장급 지휘관들은 총사령관이 링 파오라는 것에 대하여 다들 데꿀멍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한 건 링 파오 항목 참고.

수적으로 열세였던 동맹군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제국군을 섬멸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제국 원정군에게 피해를 주어 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많은 전장 후보지 중에서 지형이 미궁이나 다름없는 다곤 성역을 전장으로 선택하였다.

5 다곤 성역 회전

7월 8일, 전방에서 초계활동을 펼치고 있던 동맹군의 구축함 야노슈가 제국 원정군을 포착하였다. 이후 계속되는 정찰을 통해 동맹군은 7월 10일에 제국군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맹군이 의도한 대로 제국군은 서서히 다곤 성역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7월 14일, 다곤 성역에서 양군이 최초로 충돌하였다. 단순히 전방에서 초계활동 중이던 분함대끼리 맞붙으면서 벌어진 전투로 포격 몇 번 주고 받고 철수해버렸기 때문에 피해는 없었다.

이 무렵 사실상 제국군을 지휘하고 있던 잉골슈타트 중장은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는데 미궁과도 같은 다곤 성역의 지형 및 이 성역에 대하여 제대로 된 지리적 정보가 제국군 측에 부족하다는 큰 문제 때문이었다. 게다가 다곤 성역의 항성이 불안정하여 전자파를 방해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문제도 있었다. 그로 인해 병력을 한 지점에 집중시켜놓고 동맹군의 도발에 응전하는 방어적인 전술을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다가 동맹군이 계속되는 피해에 참지 못하고 정면결전에 나선다면 일거에 섬멸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7월 16일, 동맹군이 먼저 제국군을 도발하였다. 올레빈스키가 지휘하는 동맹군 함대가 제국군 전면으로 진공을 시작하였는데 이는 한 차례 찔러보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제국군이 펼친 종심진에 걸려 일방적으로 두드려맞았다. 상황을 보고받은 외르스테드와 워드가 급히 구원에 나서서 함대 전멸은 모면하였지만 병력의 3할을 상실하였다. 이에 링 파오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교전을 피한다는 방침을 결정하였다.

5.1 제국군의 분산, 동맹군의 오판

16일의 승리는 전체 전투에서는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의미 없는 승리였다. 동맹군이 치명상을 입은 것도 아니고 제국군이 전투에서 이길 철호의 기회를 잡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제국군의 이 작은 승리가 다곤 성역 회전에 있어 가장 큰 복선이 되었다. 헤르베르트 대공이 이 작은 승리에 너무 도취되더니 다곤 성역 회전에서의 승리를 자신하고, 나아가 황위계승자로써 자리를 명백하게 굳혔다며 들뜨고 말았고 심지어 "구스타프 큰형은 어차피 놔둬도 오래 못 살테니 그냥 몇년동안 잘 모시고 작은 이복형 막시밀리안은 어머니가 서열낮은 하위귀족이라 계승자로서 밀리는 걸 받아들이고 주제를 알며 황위에 관심이 없으니 영지와 작위를 적당히 하사해 여생을 보내게하고[12] 이복동생 리하르트는 건방지게 자신과 경쟁했으니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며[13]김칫국 원샷 먼 미래의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끓어오르는 흥분을 억누르지 못한 헤르베르트는 잉골슈타트의 기본 전략방침을 뒤엎어버리는 지시를 내렸다.

적은 두려워할 존재가 못 된다. 망설일 이유가 어디 있으랴. 전군은 즉시 공세로 나서라. 폐하의 적을 족멸(族滅)하여 제국의 변경을 안녕케 하리라.

- 헤르베르트 대공

당시 잉골슈타트 중장은 다곤 성역의 지형상 쉽게 승리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고 있었으며, 병력을 집중시켜 퇴로를 먼저 확보하면서 동맹군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만약 동맹군이 결전을 응하지 않으면 철수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흥분 상태에 빠진 헤르베르트 대공이 갑자기 내린 공격 명령에 제국군은 방사형으로 전진하여 분산되어 고립을 자초했다.

"적은 대체 어디 있나?"

"지금은 그보다도 우리는 대체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해답을 내는 것이 급선무입니다."[14]
- 제국군 슈미틀린 제독과 오퍼레이터의 대화

당연히 제국군은 모조리 격멸당하고 우주에 먼지로 사라졌어야 하나 이런 제국군의 막나가는 행동에 동맹군 사령부에 혼란에 빠졌다. 링 파오나 유수프 토패롤의 경우 잉골슈타트의 상식적인 대응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얼핏 링 파오, 유수프 토패롤과 잉골슈타트가 참으로 합이 맞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취하자 제국군이 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동맹군을 격파할 수 있는 비책을 지니고 있다고 과대평가 해버렸다. 부족한 정보에 머리를 쥐어뜯던 링 파오는 외르스테드 제독에게 제국군 본대에 대한 공격을 지시하였다.

7월 18일 정오에 이루어진 동맹군의 공격은 짐짓 격렬하여 헤르베르트 대공이 겁먹고 도망가버려 전선이 붕괴되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제국 수뇌부에 깃들었다. 그러나 헤르베르트 대공은 멍청해서 생각이 없는 건지 그냥 용감한 건지 여기에 굴하지 않고 되려 기함을 전진시켜 제국 함대를 격려했다. 총사령관의 전진에 자극받은 제국함대의 공격에 동맹군은 자칫 압도당할 뻔했다. 하지만 안드라슈 제독이 제국군 우측면을 화려하게 날려버렸고, 동맹군이 포격섬멸전을 시작했다고 오판한 제국군이 전진을 중지하였다. 이때 제국군이 계속 전진을 하였으면, 진영의 두께가 부족한 동맹군이 오히려 섬멸당할 위기의 순간이었는데 다행히 상황을 오판한 제국군 참모들 덕분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한편 당시 동맹군 총사령부는 "제국군이 뭔가 있다. 뭔가 있어서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다."라는 생각에 빠져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동맹군 총사령부의 사기가 상당히 죽어 있었는데, 계속 연락을 취하면서 지령을 받고 있던 안드라슈가 빡쳐서 "귀관들은 당장 예편원을 쓰시오! 본관은 유서를 품에 넣고 있소."란 독설을 퍼부었다. 그런데 독설에서는 지지 않는 유수프 토패롤이 받아치지 않고 침묵을 지키면서 부관이던 알드리치 소령은 이제 글러먹었다고 각오를 다질 정도였다.

하루 동안 제국군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던 링 파오와 유수프 토패롤은 서서히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제국군의 지휘관이 전투 경험이 없으며, 무의미하게 병력을 분산시킨 것이란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제야 알았어. 저놈들은 병신이야."

"동감."
- 링 파오와 유수프 토패롤의 대화

5.2 동맹군의 공세

상황을 파악한 링 파오는 순식간에 전략적인 결단을 내렸다. 다곤 성역을 A01에서 Z20까지 분할한 지도상에서 제국군 총사령부가 있는 G16에 전 병력을 집중할 것을 지시하였다. 하지만 문가이 제독이 각 지역에 분산되어 있는 제국군이 분진합격(分進合擊) 전술을 꺼내들면 발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시하였다. 이에 링 파오도 그 상황에서는 제국군에게 섬멸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였으나 계획을 변경하지는 않았다.

제국군의 잉골슈타트 중장은 실제로 동맹군이 제국군 총사령부를 공격해오면 분진합격 전술로 응전할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따라 다수의 연락선을 두어 제국군 전체를 유기적으로 제어하려 하였다. 하지만 수많은 제국군 함대가 분산, 고립되어 있었던 까닭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으며, 제국군은 지형에 어두웠던 탓에 간신히 제 위치에 도착하면 이미 버스가 떠난 뒤였고, 이어서 새로운 명령이 하달되면 다시 앞의 삽질을 반복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7월 19일 16시, 동맹군이 우위를 점했다고 판단한 링 파오는 예비병력까지 모조리 동원하여 전면적인 공세를 시작하였다. 이에 잉골슈타트 중장도 후방에서 예비병력으로 대기중이던 카우프만 제독의 함대를 동원하려 하였으나, 부로 제독이 지휘하는 제국군 함대가 동맹군의 좌측면에 말려드는 바람에 동맹군의 진격속도가 둔화되었다. 게다가 헤르베르트 대공이 즉흥적인 지시를 내릴 수 있었기 때문에 카우프만 제독의 함대를 그대로 두기로 결정하였다. 이로 인해 제국군은 동맹군을 붕괴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까지 날려먹었다.

전투는 다음날까지 계속되었고 제국군에서 최초로 장성급 전사자가 나왔다. 파센하임 중장은 알렌슈타인 제독의 함대를 적으로, 외르스테드 제독의 함대를 아군으로 착각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였는데 외르스테드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이거 제국군이 알아서 자폭하네요." 양쪽이 모두 적이라고 착각한 파센하임 중장이 삽질을 해버리면서 함대는 개발살나고 파센하임도 결국 전사했다. 이 소식에 열이 뻗힐 대로 뻗힌 헤르베르트 대공은 잉골슈타트 중장을 매도하고 계급장을 잡아뜯었다. 이후 제국군은 통일된 전략이 결여된 상태로 얻어터지기만 하는데, 아마도 실질적인 총사령관의 계급장이 뜯겨 바닥에 내팽개쳐진 후 구둣발에 짓밟힌 후유증이 아닐까 싶다. 잉골슈타트 중장부터가 심하게 충격을 받았고 주위에 있던 제독 모두 무인(武人)의 긍지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는데, 그런 상태로 과연 제대로 된 지휘가 가능했을까?

헤르베르트 대공은 즉시 병력 집결을 명령하였으나 지리적으로 어둡던 제국군은 총사령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고, 되려 이 통신을 방수한 동맹군은 제국군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7월 20일 22시 40분, 링 파오는 제국군 잔여병력의 집결에 발맞춰 포위공격을 지시하였다. 이 시점에 동맹군의 포위망은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5.3 다곤의 포위섬멸전

7월 21일 0시 45분, 네이스미스 워드의 함대가 42만 7천7백 문의 함포 중에서 75%를 발사하여 제국군의 좌익을 날려버렸다.[15] 이 여파로 제국군 잔여병력은 안드라슈 함대가 있는 곳으로 밀려났는데, 안드라슈 함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국군을 향해 돌진[16]을 시작하였다. 안드라슈의 맹공으로 측면이 붕괴되고 지휘를 하던 하젠클레버 중장이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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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제국군 망했어요!

한 큐에 기선제압을 당한 제국군은 한 점으로 뭉쳐 구형진을 형성하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동맹군은 포위망을 좁혀나가기 시작하였다. 다만 동맹군의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포위망의 두께가 얇아서 제국군이 작정하고 뚫는다면 못 뚫는 상황은 아니었다. 만약 노련한 인물이 제국군을 지휘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으나 링 파오와 유수프 토패롤은 햇병아리 헤르베르트가 포위망 돌파란 선택지를 아예 꺼내지 못하도록 상황을 조절했다. 결국 일방적인 학살극이 전개되어 제국군은 전의를 상실한 총사령관과 함께 포위망에 갇혀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너무 밀집해 있었던 까닭에 인근에 있는 군함까지 같이 폭발하는 안습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7월 22일 4시 30분, 제국 원정군은 완전히 섬멸당했고, 소수만이 간신히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여 제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링 파오는 이 대승을 "샴페인을 20만 박스쯤 준비하라."라고 압축하여 보고하였다. 당시 최고평의회 의장 마누엘 후안 파트리시오는 국방위원장 코넬 영블러드와 함께 3차원 체스를 두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젊은 친구들이 일을 잘 해준 모양인걸. 이 승부가 끝나면 양조장을 백 군데 정도 알아봐야겠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17]

6 전투결과

제국군 피해생환병력 32만 8200명 (생존률 8.3%)
전사 - 파센하임 중장(아군 오사)
전사 - 하젠클레버 중장
동맹군 피해생환병력 234만 (생존률 93.6%)
제독 전사자 없음

6.1 전후 처리

  • 은하제국은 처참한 결과를 공표할 수 없어 정보를 통제하고 전황이 불리해서 퇴각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 고틀리프 폰 잉골슈타트 중장은 명백히 자신의 잘못이 아닌 패전에 책임을 다하려 스스로 자살하려 했으나 위병에게 총을 압수당하고 일시 구속되었다.[18] 그리고 제국으로 돌아오자 패전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비공개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총살되었다.
  • 패전의 진짜 책임자인 헤르베르트 대공은 황족이라는 이유로 재판을 피할 수 있었으나 별궁에 유폐되어 평생 밖으로 나오지 못하다 죽었다.
  • 자유행성동맹의 운명이 걸린 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링 파오 중장과 유수프 토패롤 중장은 건국 이래 최고의 전쟁영웅이 되어 훗날 원수까지 승진하였다. 그러나 영웅의 탄생으로 민주주의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이유로 두 원수는 사실상 동맹에서 경원시되었다.

6.2 기타

잉골슈타트 중장의 재판 당시 중장의 변호인으로 '지목'된 인물은 오스발트 폰 뮌처 중장. 뮌처 중장이 변호인으로 임명 된 까닭은 10여년 간 피고인과 얼굴조차 보기 싫다 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기 때문이었으나 뮌처 중장은 지명자의 뜻과 달리 전력을 다해 잉골슈타트를 변호했다.

검찰은 말했습니다. 피고에게는 제국군을 철수시키지 않았던 모든 책임이 있다고. 그러나 피고는 총사령관이 아닌 일개 참모에 불과했습니다. 검찰은 말했습니다. 피고는 승리를 위한 작전을 세우지 않았다고. 그러나 피고는 참모장이 아닌 일개 참모에 불과했습니다. 검찰은 말했습니다. 피고는 보급물자를 횡령해 아군을 해했다고. 그러나 피고는 경리감이 아닌 일개 참모에 불과했습니다. 검찰은 말했습니다. 피고는 아군의 통신을 교란했으며 이로 인해 전황이 아군에게 불리해졌다고. 그러나 피고는 통신감이 아닌 일개 참모에 불과했습니다. 일개 참모! 고작해야 일개 참모가 원정군의 총지휘, 작전, 보급, 통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최고도의 권한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만약 그럴 수 있었다면 그것은 한 개인에게 권한을 집중한 조직 그 자체의 죄일 것입니다. 조직의 죄가 아니라면 한 개인의 무법발호를 방임한 각 분야 책임자의 죄일 것입니다.

- 오스발트 폰 뮌처 중장의 변호 중에서

뮌처 중장은 훗날 탄핵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잉골슈타트 중장에게 무고하게 씌워진 책임을 가열차게 비판했으나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판결이 난 재판이었기 때문에 무죄까지는 안되더라도 하다못해 징역형으로 감형이라도 되야한다는 뮌처 중장의 필사적인 최후 변론도 사형 판결을 막아내지 못했다. 잉골슈타트 중장은 사형이 집행될때 까지 어떠한 발언도 하지 않았으며 단지 집행 당일 입회인으로 찾아온 뮌처 중장에게 작게 고개를 숙여 말없이 고마움만을 표현했다.[19]

유력 황위계승자였던 헤르베르트가 몰락하고 은하제국에서는 제위 계승을 둘러싼 추악한 싸움이 벌어졌다. 장남 구스타프가 제위에 올랐으나 원체 몸이 병약한데다가 암살을 두려워하다가 갑자기 죽고 말았다.[20] 그러나 구스타프는 동생 막시밀리안 요제프의 능력을 눈여겨보고 있어 죽기 전부터 동생을 다음 황위 계승자로 지목했고 죽기 직전에 놀라서 다가온 배다른 아우 막시밀리안 요제프에게 황위를 잇는다고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이렇게 하여 막시밀리안 요제프는 형 구스타프의 뒤를 이어 골덴바움 왕조 최고의 성군으로 불리는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로 등극하였다.[21][22]

자유행성동맹군의 질이 많이 떨어진 말기에 이르러선 저 포위섬멸전을 제국군의 2배 병력으로 아스타테 성역 회전에 그대로 복붙하려다,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전술에 2/3이 박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나마도 그 자리에 양 웬리가 없었더라면 동맹군은 전멸했을 것이다.

아스타테 성역 회전에서 동맹군 함대사령관들은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 라인하르트의 2만 척에 비하여 동맹군은 3개 함대 4만 척이다. 3개 함대가 뭉쳐서 동시에 공격한다면 라인하르트로써도 완승을 거두기는 힘들었을 텐데 알아서 병력을 분산한 걸로도 모자라, 실제론 포위망이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그저 제국군이 동맹군에 포위당한 것에 쫄아서 자멸할 것으로만 기대했다. 그러니 제4함대가 두드려 맞고 있을 때에도 나머지 2개 함대의 사령관들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각개격파당했다.[23] 더구나 그때 양 웬리는 단순히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작전을 입안했는데 이마저 기각당했다. 지려고 작정하면 뭔 짓을 못할까?

특히나 다곤 성역 회전은 기본적으로 제국이 동맹령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을 때 처음으로 진행된 대규모 군사작전이었다. 기본적으로 정보적인 면에서 동맹 측이 여러모로 유리했던 것이다. 따라서 상대가 지역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세 방위 포위를 하는 전술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스타테 성역 회전의 경우 150년 세월이 지났고 당시에는 수차례의 전투로 인해 동맹령에 대한 정보가 많이 누적되어 있는 상태였고 특히나 페잔을 통해 입수된 동맹의 자체적인 정보도 일부는 얻을 수 있는 상태였다.[24] 즉, 정보적인 차이는 거의 없는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의 병력 분산은 하등의 도움이 되질 않는다.[25] 특히나, 기본적으로 라인하르트의 제국함대의 경우 3개의 함대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초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했지만 동맹의 함대들은 이러한 초계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후방에 등장한 함대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파악하는 데 시간을 보내기나 했다.

다곤 성역 회전에서 동맹군이 제국군을 포위했을 때 동맹군의 병력이 적어 포위망이 얇아 돌파당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동맹군은 제국군이 돌파 시도를 못하게끔 병력을 운용했다고 위에 나오는데, 아스타테 성역 회전에서 동맹군 제독들은 포위를 시도하면서 이미 포위망이 완성된 것처럼 마음을 놓고는 제국군이 예상지점에서 벗어나는 이상행동을 보이는데도 처음에 세운 계획표대로만 움직여 제4, 6함대는 측후방을 공격받아 일방적으로 패했다.

  1. '제국군 몰살' 정도로만 언급된다.
  2. 특히 다곤 성역 회전이 벌어지기 전 1세기 정도는 제국 황제가 새로 즉위할 때마다 제위를 둔 음모와 계략이 판치고 있었다.
  3. 헤르베르트가 살면서 겪어본 힘든 일은 사냥을 나가 노리던 사냥감을 놓친 일, 시녀에게 추파를 던지다 퇴짜를 맞을 일 정도 밖에 없었다.
  4. 무턱대고 공세를 가하면 패배할 것이며 그렇다고 시간을 들이면 적에게 준비할 시간이 생긴다.
  5. 자유행성동맹은 자신들의 본거지에서 싸우는 것이라 지리적 문제가 없으나 제국 원정함대는 정말 간단한 지도조차 없다. 칠흑의 어둠을 맨손으로 해쳐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6. 이 발언은 50여년이 흐른 뒤 이제르론 회랑으로 명명된 장소에 이제르론 요새를 건설함으로써 후작의 선견지명이 옳았다고 증명되었다. 근데 결국 뺏겼잖아.. 그건 그걸 점령에 성공한 사람이 하도 먼치킨이라서
  7. 지휘관 경력이 있기는 커녕 아예 군대쪽에는 발도 못 디뎌본 인물들이었다. 심지어 인선 기준이 헤르베르트 자신과 자주 어울리던 친구들이었으니 전쟁과 카드놀이도 구분 못한다는 후작의 비판은 매우 정확한 것이었다.
  8. 병사들의 훈련 관람부터 패거리들이 가져온 '수상한' 입체영상 등을 보며 시간을 보냈고 함대 참모진은 불안감에 급기야 함대에 여자가 없으니 반반한 외모의 병사를 찾는게 아니냐는 걱정까지 했다.
  9. 대규모 원정함대를 관리하는 것보다 대공에게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것이 더 힘들었다고 한다.
  10. 양 웬리와 라인하르트가 활약하는 시대의 동맹 정치가들을 생각하면 어쩌다가 동맹이 이렇게 되었는지 싶을 정도로 초기 동맹의 정치가들은 순수하고 정열적이다. 한 국방위원은 링 파오를 찾아가 격려해주려 했는데 링 파오가 막나가는 성격을 여과없이 드러내자 '이런 자에게 동맹의 미래를 맡겨도 되냐'면서 자발적으로 토패롤을 찾아가기까지 했다. 양 웬리도 이 시절 기록을 보고 위대했던 시대의 정치인들에게 건배를 했을 정도로 찬양하고 더불어 '내가 그 시절에 있었다면...'이란 마음도 가졌을 듯 하다.
  11. 이 시점에서 자유행성동맹은 건국으로부터 약 120년이 지난 시점인데, 이 정도면 장정 1만 광년 당사자들의 아들 세대나 손주 세대가 국가를 이끌어 갈 시기이다. 당사자들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은 이들과 이후 몇 번 더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의무나 사명감 같은 건 흐려질대로 흐려진 동맹 말기의 정치가들 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
  12. 다만 자신에게 모욕을 준 막시밀리안의 시녀 지클린데는 혼쭐을 내주겠다라고 다짐했었다.
  13. 리하르트는 원정 사령관에 헤르베르트가 확정될 시점부터 절망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헤르베르트는 동생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고 볼만 했다고 고소해 했다.
  14. 다만 이 대사는 작가의 다른 작품 일곱 도시 이야기의 재스모드 전투에서 타데메카로 쳐들어간 산다라군이 통신으로 하던 대사로 비슷하게 나온다...
  15. 작중에 '정신나간 비율'이라고 묘사되는데 정말 정신나간 수치이다. 수천척의 함선이 동시에 발포하는 것도 큰일이지만, 이 정도의 발포율이 나오려면 완벽한 대형을 갖추어야 하며, 주위에 안전이 확보되어야 하며, 사령관의 명령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얼마나 힘든 조건인지는 한번 군대 분대장이 되보면 안다...
  16. 이 당시 안드라슈가 내린 명령이 "제1명령, 돌진하라! 제2명령, 돌진하라. 제3명령, 오로지 돌진하라!"였다. 덕분에 이전에는 신중한 지장으로 알려졌던 안드라슈는 이 뒤론 닥돌하는 맹장으로 이름을 떨쳐(?)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
  17. 동진의 명재상 사안의 일화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사안은 바둑을 두다가 비수대전의 승전보를 듣고 아무 일 없듯이 "우리 애송이들이 적을 물리쳤다는구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리고 나중에 바둑 둔 손님이 가자마자 미치도록 좋아하며 날뛰다가 다리가 삐었음에도 그걸 모르고 여전히 기뻐했다는 나중 일화도 있다.
  18. 이때 잉골슈타트 중장은 자신이 패전의 총책임자로 임명되었음을 알고 쓴웃음을 지었다.
  19. 그리고 뮌처 중장은 변경으로 좌천되어 훗날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에 의해 사법상서로 등용되기까지 한직을 전전해야만 했다.
  20. 별궁에 유폐당한 헤르베르트의 모략으로 인한 암살로 보인다.
  21.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는 황족이긴 했으나 어머니가 하급귀족이라 문벌귀족들의 지지를 거의 못받아 등극 가능성이 아예 없었다. 제위 계승을 둘러싼 분쟁으로 유력 계승자들의 몰락, 사망 등으로 정말 운 좋게 황위에 오를 수 있었다. 막시밀리안 요제프의 시녀인 지클린데는 훗날 황후가 되었다. 시녀 시절부터 암살 위협에 시달린 막시밀리안 요제프을 위해 총을 소지하고 호위를 자처할 정도로 당찬 여성이었고 암살 위협에 시달리다 독극물로 시력을 잃은 남편의 눈이 되어 국정을 전혀 문제없이 이끌게 해줬다.
  22.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는 가정적으로 완벽하리만큼 자상하고 성실했기에 은하제국 황제에서 유일하게 사생아 논란이 없던 성군이었고 황후 지클린데도 마찬가지였던지 먼 훗날 라인하르트 폰 뮈젤안네로제 폰 뮈젤의 부친인 세바스티안 폰 뮈젤이 사망한 병원의 이름이 지클린데 황후 은사 병원이다.
  23. 적이 자신의 계획대로만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한 점은 영락없는 구 일본군이다.
  24. 페잔은 양측의 균형을 중시했기 때문에 한쪽에 너무 유리하거나 위험한 정보를 주지는 않았겠지만.
  25. 물론 분산하는 척하면서 상대방을 끌어들여 치는 등의 고급 전술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