阮瑀
(? ~ 212년)
후한 말과 위나라의 관리이자 문학가. 자는 원유(元瑜). 진류 사람으로 건안칠자의 한 사람이자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완적의 아버지.
어려서 채옹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건안 연간[1]에 도호 조홍이 서기를 담당하도록 했지만 끝까지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조가 완우의 명성을 듣고 불렀지만 응하지 않았고 연달아 사절을 보내 재촉하자 도망쳐서 산으로 들어갔는데, 조조는 사람을 시켜 산에다 불을 놓고 완우를 얻었고 보내서 도착하자 들어오라고 불렀다.
조조가 당시 장안에 행차해 빈객들을 불러놓고 큰 연회를 베풀었고 완우가 말하지 않은 것에 분노해 예인들의 대열에 가게 했으며, 완우는 음악을 잘 이해하고 거문고를 잘 타는 지라 마침내 현을 더듬으면서 노래를 부르니 이로 인해 가곡을 만들어 노래했다. 곡조가 이미 빠르고 음성이 절묘해 당시에 앉아있던 사람들 중에서 으뜸이라 조조가 아주 기뻐했다.
진림과 함께 사공군모좨주에 임명되어 군사나 국가에 관한 문서와 격문 대부분을 진림과 함께 만들었으며, 이후에는 창조연속이 되었다가 212년에 사망했다.
조비가 원성현의 현령으로 지내던 오질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와 기가 매우 아름다워 읽으면 즐거울 수 있었다고 했으며, 그의 작품으로 은사라는 시가 남아있다.
배송지는 산 중에 도망가 불태워서 나왔다는 이야기에 대해 전략, 문장지를 보건대 완우는 건안 연간 초에 병으로 관직을 사양하고 조홍에게 굴하지 않다가 조조의 부름을 얻어 지팡이를 버리고 일어섰기에 그런 이야기는 없을 것이라 지적했으며, 또한 조조가 형주를 정벌할 때, 마초를 정벌할 때 등을 완우에게 시켜서 글을 짓게 했고 조조가 장안에 이르기 전에 한수가 패주해서 조조는 211년에 관문으로 들어올 수 있었으니 장즐은 조조가 완우를 처음 얻었을 때 장안에 있었다는 것이 틀리다고 했다.
또한 완우가 불렀다는 곡조에서 완우는 212년에 죽었고 조조가 213년에 위공에 올랐는데, 완우가 부른 가사에 대위(大魏)라는 표현이 나와 망령되다고 했으며, 또한 타인이 어찌 어지럽힐 수 있는가?라는 가사에 대해서도 말이 안되는 것이 분명해 완우가 한 말은 반드시 이렇지 않았을 것이라 했다.
양나라의 유협은 문심조룡에서 말안장에 기대어 편지를 썼다고 언급하며, 남효온이 지은 추강집 제2권의 83번째인 산장에 앉아 읊다라는 부분에서 나오는 시에서 "완우는 그 뜻이 어떠할까"라는 구절로 언급된다.
코에이의 게임인 삼국지 시리즈의 삼국지 7에서 한시대회에서 시를 평가하는 역할로 나온다.- ↑ 196 ~ 22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