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명나라 때 문인화가 왕문을 생각하셨다면 이 곳에는 없습니다.
- 쾨니히스베르크나 베를린에 있는 King's gate를 생각하고 오셨다고 해도 이 곳에는 없습니다.
- 환빠들이 좋아하는 환단고기의 인물 왕문도 여기에는 없습니다.
王門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의 무장.
원래 공손찬의 수하였지만 배반해서 원소의 아래로 들어갔는데, 만 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공손찬 휘하의 전예를 공격했지만 전예가 거기서
경은 공손(공손찬)에게 후대받고도 떠났으니 여기에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으리라 여겼소. 그런데 이제 다시 돌아와 침범하니 경이 그저 난인일 뿐임을 알겠소. 무릇 작은 병 정도의 보잘것없는 지혜를 가진 이라도 기물을 지키며 남에게 쉽게 빌려주지 않는 법이며 내가 이미 이 현을 지키는 임무를 받았소. 어찌 급히 공격하지 않으시오?
라고 하자 왕문은 부끄러워져서 돌아가며, 전예가 이야기한 것을 보면 공손찬에게 후한 대접을 받고도 배반한 것으로 보이며, 이 일로 공손찬은 전예가 뛰어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그에게 큰일을 맡기지는 않는다.
왕문이 전예를 공격한 곳은 동주령으로 전예는 그 당시 동주 현령이었는데, 공손찬의 지배 지역에는 동주라는 현은 없고 원소의 지배 영역은 기주에 있다. 이 때문에 어영군 천주현 또는 하간국 속주현 중 하나를 잘못 쓴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2 미디어 믹스
삼국지 12,13 |
삼국지 시리즈에 등장하는 왕문. 사실 왕문은 삼국지 9부터 등장하고 10, 11까지는 같은 일러스트를 썼으나 12에서 바뀌었다.
저 정도로 기록이 짧은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게임 삼국지 시리즈에서 원래 공손찬군에는 장군이 하나도 없어서 옛날에는 조운, 공손월밖에 없었기 때문에 공손찬 휘하의 장군들을 만들어서라도 넣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서는 휘하 장수 수가 곧 국력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억지스럽게나마 장수를 늘려 주는 것은 한때 하북 최강의 세력을 자랑한 공손찬 세력을 게임상에서 잘 표현하기 위한 궁여지책이 된다. 반삼국지 작가처럼 마운록처럼 창작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록이 짧게라도 남아있는 인물을 추가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하다. 능력치는 사료가 너무 짧아 평가할 껀덕지가 없으니 좋을 리가 없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66/69/37/36. 비사는 없지만 주사는 가지고 있다. 그 외에 돌파도 보유. 비사가 위력이 돌파와 같아서 다른 공손찬군 장수들은 돌파를 쓸 일이 거의 없지만 이 놈은 주사밖에 없어서 돌파를 가끔 쓰게 된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71/75/32/40/52에 특기는 돌격 단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