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삼국지)

1 王榮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헌제의 어머니.

조국 사람으로 후궁 중에서 미인(美人)에 해당했기에 왕미인으로 알려졌으며, 자태와 얼굴이 후덕하면서 총명하고 영리해 재주와 지혜가 있었다. 글을 쓰고 회계를 할 수 있었고 양갓집의 딸이면서 관상이 법도에 알맞다고 해서 궁중에 선발되었다.

하태후(영사황후)가 궁으로 선발되어 들어온 후에 180년에 황후가 세워졌는데, 영사황후는 성품이 억세고 시기가 심해 후궁들 중에서 두려워 떨지 않는 사람이 없어 왕영도 영사황후를 두려워했다.

181년에 왕영은 아이를 잉태했고 영사황후를 두려워해 약을 먹어 아기를 없애려 했는데, 태가 이미 자리를 잡아 움직이지 않았다. 몇 차례나 아이가 해를 지고 가는 꿈을 꾸었고 황자 유협을 낳았다. 결국 영사황후에게 짐독으로 살해당했고 이 때문에 영제가 영사황후를 폐위하려다가 여러 환관들의 만류로 그만두고 왕영이 낳은 유협은 동태후가 길렀다.

영제는 유협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것을 불쌍히 여기면서 왕영을 사모해 추덕부, 영의송을 지었다.

2 王營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동모 사람으로 무리 3천여 명을 이끌고 창양현을 협박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하기가 사람을 보내 계책을 주면서 흩어지게 만들어 10개월 만에 진압되었다.

2.1 창작물에서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에서 천하가 헌제를 따르는 세력과 헌제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전쟁을 하는데, 진궁이 일찍이 청주에 진군할 것을 대비해 그 곳의 사정을 파악하는 것에 주력했다고 한다.

원소가 유주의 공손찬을 공격하기 위해 청주를 쥐어짜자 종전과 함께 언급되는데, 왕영은 3천이 넘는 장정을 이끌고 원술군에 가담하겠다고 왕수에게 알렸다. 왕영이 내응하기로 한 동모현은 종전이 있는 모평현과 함께 동래군에 속한 현으로 동래군이 태사자의 고향이라 태사자를 보고 원술군에게 가담하겠다는 백성이 많았다고 언급된다.

이를 듣고 역사에 대해 아는 이준경은 어쩌면 이리도 역사와 연계되냐면서 조조가 관도대전에서 승리하고 원소의 옛 땅을 차지하는 과정이 무려 칠 년을 소요했다면서 원소와 조조의 행정력이 교체되는 공백을 노려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왕영은 종전과 함께 그 중 한 무리라고 생각으로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