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5왕

1 개요

倭五王

중국 고대사료에 등장하는 왜국의 왕. 남북조시대남조에 사신을 보낸 일본의 다섯 왕을 일컫는 말이다. 266년 기록을 끝으로 413년 동진에 왜왕 찬이 사신을 보낼때까지 140여년 가까이 일본은 국내 기록을 제외하면 중국 사서에서 일절 등장하지 않다가 5세기 대에 다시 출현하게 된다.

2 조공 기록

2.1 왜왕 찬(贊)

(?~438)
413년 동진에 사신을 보내는 것으로 첫등장. 이후 송(육조)에게 421년, 425년, 430년 총 3차례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438년 사망하여 왕위는 동생 진(珍)이 계승했다.

2.2 왜왕 진(珍)

(?~443년 이전)

438년 찬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송에 사신을 보내 자신을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六國諸軍事(육국제군사)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倭國王(왜국왕)으로 자칭하고 이를 인정해 줄것을 송에게 요청하나 거절당하고 안동대장군과 왜국왕의 직위만 수여되었다.[1]

그의 사후 왕위를 승계한 왜왕 제와의 관계는 불확실하다. 즉 왕위를 찬탈했을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으나, 왜5왕은 사신파견 기록만 남아있다고 봐도 무방해서 추정할 뿐이다.

2.3 왜왕 제(濟)

(?~462년 이전)

443년 송에 사신을 보내 안동대장군 왜국왕의 지위를 받았다. 이후 451년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六國諸軍事(육국제군사)에 임명되고, 그의 신하 23인은 군(軍)과 군(郡을 제수했다.

정확한 몰년을 알 수 없으나 아들인 왜왕 흥이 462년 송에 사신을 보내 직위를 승계한 것으로 보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2.4 왜왕 흥(興)

(?~477)

송서의 기록에 따르면 왜왕 제의 세자(世子)로 기록하고 있다. 462년 송에 사신을 보내 직위를 승계받았다.
477년 사망하고 동생인 왜왕 무(武)가 왕위를 이었다.

2.5 왜왕 무(武)

생몰년도 미상

왜왕 흥의 동생으로, 흥이 사망하자 사지절 도독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왜.백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七國諸軍事(칠국제군사)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倭國王(왜국왕)이라고 자칭했다(...)이듬해 스스로 개부의 동삼사라는 문관1품 관직을 임시로 자칭하고 이를 인정해 줄것을 송에 요청했다. 하지만 백제가 빠지고 육국제군사로 수정해서 받게 된다. 이미 백제는 425년 사지절 도독 진동대장군 백제제군사 직위를 받았기 때문에 요청이 수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479년 남제에서 진동대장군으로 승격했으며, 502년에 양무제가 정동대장군으로 승격시켰다.

3 일본 사서와 비교

일본 학계에선 왜5왕을 일본 천황들에 비정하려고 하는데,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고 논쟁이 지속 중이다. 그나마 금석문을 통해 왜 무왕을 유랴쿠 덴노로 비정하는 주장이 있으나 다른 천황들은 시기에 맞춰서 비정하고 있다. 만일 무왕이 21대 유랴쿠 덴노라면 흥왕은 유랴쿠 덴노의 형인 20대 안코 덴노가 되며, 제왕의 경우 19대 인교 덴노, 진왕은 18대 한제이 덴노, 찬왕은 17대 리추 덴노가 된다.
  1. 이게 무슨 뜻이냐면 한반도 남부지역이 자신의 속국이라는 자뻑을 주장한 것이다. 당시 백제 또한 남조와 교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정을 전달받은 송이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