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육조)

중국의 역사
中國史
기원전 1600 ~ 기원전 206기원전 206 ~ 907년
907년 ~ 1644년1616년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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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송  

宋(劉宋)

420~479

1 개요

420년 동진(東晉)의 무관이었던 유유(劉裕)가 선양을 받아 이룩한 왕조다. 남조의 하나로 -동진----(陳)를 육조시대라고도 부른다.


남쪽에 있는 국가가 유송.

원래는 시조 유유가 건국 이전에 북벌을 통해 황하 이남의 상당한 영토를 획득했지만[1][2] 자손들이 거의 대부분 막장들이라서 북위에게 상당수의 영토를 날려먹는다. 그래서 유송의 영역 중 북위의 영역과 겹치는 부분을 뺀 것이 실제 영토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육조 시대 왕조들 가운데서는 영토가 가장 넓었다. 대체로 10세기에서 13세기까지 존속한 인지도 높은 통일제국[3] 송나라가 있기 때문에 구별하기 위해 왕족의 성을 붙여 유송(劉宋), 간혹 동송(東宋)이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 실체는 창업군주 유유와 3대 황제 유의륭[4] 마지막 군주 유준 이외에는 모두 막장이었던 왕조다. 이들을 뺀 나머지는 개막장이냐 그냥 평범한(?) 막장이냐의 차이일뿐(...) 괴담 기네스 책에나 나올 법한, 아니 이야기 책에 나오는 것 이상으로 왕실사가 막장 of 막장이었던 유례 없는 희대의 호러 엽기 판타스틱 병맛 왕조로, 바로 뒤를 이은 제 왕조와 함께 어지간한 막장 드라마 시나리오나 막장 에로게 설정 따위는 그냥 쌈싸먹는 콩가루 집안내지 인간 도살장을 보여줬다. 이 왕조의 행적을 축약하자면 남자 친척(형제)은 모두 죽이고, 여자 친척은 예쁘면 겁탈한다.란스? 웬만한 왕조에서 한 두명 나올까 하는 폭군들과 암군들이 연속해서 등장했다. 그나마 장수한 무제를 제외하면 소제, 문제, 전폐제, 후폐제, 순제는 젊은 나이에 살해당했고 효무제와 명제는 비록 병사했지만 오래 살지 못했다. 안습. 게다가 이 둘의 대는 후대에 모두 끊긴다.

유씨가 사마씨를 거꾸러트렸기 때문에 '이것은 유비의 후손인 유유가 사마씨를 물리치고 촉한을 부흥시킨 것이다!'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흉노 전조 유연이 같은 유씨라 한나라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은 어처구니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비의 후예라 할 수는 없다.[5]국호부터 한으로 바꿀 것이지

2 고조 무황제 유유(363~422, 재위 420~422)의 건국

"중국판 이성계". 평민 출신이지만 동진의 실권을 손에 넣고 북방의 영토를 크게 차지하고 내란을 진압 한 후 정권을 강화했다. 황위에 간신히 오른후 치세 2년 동안 나름 검소한 생활에 정치를 잘했지만 동진 공제 일가를 참살했다. 다만 후손들을 가르치기 전에 갔다지만, 유유의 누이들은 생각보다 제정신 박힌 이들이었고 그 장남은 확실히 또라이였지만 밑의 바로 아래 자식들은 유의륭을 비롯해서 그럭저럭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6] 때문에 굳이 가정 교육을 문제 삼는다면 유의륭이 나눠서 져야 할 것이다.

3 초기의 막장 황실사

3.1 소황제 유의부(406~424, 재위 422~424)

이미 태자 때부터 소인배를 가까이하고 놀기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해져서, 유유가 폐위시킬 생각을 내심 했을 정도였다. 다만 측근들이 잘 보좌하면 별 일 없을 거라고 간언하여 내버려두었던 것인데, 즉위해서 정말이지 아무 것도 안하고 놀기만 했다.

해서 결국 바로 그 측근들이 폐위해서 죽일 수밖엔 없었다. 다만 여기까진 별 문제가 없었으나, 유의륭이 형을 폐위시키고 자신을 옹립한 바로 그 측근들을 위험하다고 여겨 또 다시 주살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것이 유의륭의 치세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

그리고 낙양이 북위에게 함락된 것도 유의부가 통치할 때이다. 이때 사주 일대는 북위에게 넘어간다. [7]

3.2 태조 문황제 유의륭(407~453, 재위 424~453)

유송의 정치 체제를 안정시키고 '원가의 치'를 이룩했으며 유송 존속 기간의 반을 통치한 명군이다. 치세는 항목 참조. 이 사람이 그나마 내부 정치는 제대로 한지라 이런 막장 왕조가 60년이나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46세의 나이에 비명횡사했으니 중국 황제 역사상 최초로 황제 아버지를 태자 아들이 죽여버리는 패륜이 발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셋째 유준이 아버지를 죽인 형 둘을 주살하고 황제로 오른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 역시 아버지 유유처럼 첫째, 둘째가 막장이었다는 것이다.[8] 그 딜레마를 피하려고 했는지 몰라도, 그는 무능한 태자 유소(劉劭)를 폐하고 둘째 시흥왕 유준(劉濬)을 주살하려 했지만, 역으로 그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역시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것은 무릉왕 유준(劉駿)[9]이었다. 역사는 반복되는건가?[10]

3.3 세조 효무황제 유준劉駿(430~464, 재위 453~464)

촉망도 받고 아버지의 원수도 갚았으며 나름 군권을 장악하고 중앙집권화도 추진했지만 근본적으로 황족을 주살하고 사치 향략속에 빠져 살던 막장 인물이었다. 그래도 이정도면 평범한게 함정이다.[11] 그러나 유송 황제 중에서는 이정도면 중국사의 흔한 암군이나 폭군 정도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 이후의 인물들은 막장의 정점을 찍었기 때문.

4 막장 종결자, 전폐제와 후폐제

드디어 막장 시대가 문을 열어제낀다. 특히 유송에서는 막장 오브 막장에게만 붙여주는 폐제(廢帝) 칭호가 둘씩이나 붙었다. 고로 이 자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한 명은 전폐제, 또 한 명은 후폐제라고 한다.

4.1 전폐황제 유자업劉子業(449~465, 재위 464~465)

참고로 유자업의 이 크고 아름다운 업적이 재위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사치와 향략을 누렸으며 여자(그것도 근친상간)를 심히 밝혔다.

4.2 태종 명황제 유욱劉彧(439~472, 재위 465~472)

나름 천수를 누렸지만 이 자도 나름대로 막장이었다.

4.3 후폐황제 유욱劉昱(463~477, 재위 472~477)

중국사 최악의 폭군 중 하나. 취미는 사람 절단하기. 사치향락, 여자를 좋아하던 유자업과 달리 이 자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였다. 결국 황족간의 내분을 틈타 권력을 장악해 온 실권자 소도성에게 처단되었다.

4.4 순황제 유준劉準(463~477, 재위 477~479) - 유송의 비참한 종말

말 그대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고 유송은 멸망했다. 문제는 이 양반이 동송 황실 중에서 개념인인 편이었다는것뭐 꼭두각시 황제가 개념이 있어봤자 답이 없었겠지만(...)

5 제 명에 죽지 못한 황족들

유유의 일곱 아들 중 막내 아들 유의계 외에는 모두 제 명을 누리지 못했다. 장남 유의부는 황제였지만 막장으로 놀다가 폐위된 후 피살, 차남 유의진은 폐위에 휘말려 같이 피살, 삼남 문제 유의륭도 황제였지만 계승 문제로 아들 유소에게 피살, 사남 유의공은 난폭한 유자업을 폐위하려다가 그에게 피살, 오남 유의강은 불안하던 유의륭에게 파살, 육남 유의진은 자신의 딸을 후비로 삼아버린 유준에게 대적했다가 살해당하고 오직 막내 칠남 유의계만 술병으로 일찍 죽었는데, 요절한 걸 보면 결코 이 자도 제 명을 누린건 아니다.

또 다른 황족 대부분은 내란에 휘말려 살해당했고 순제가 선양한 후 순제와 그나마 남은 황족들은 소도성이 모두 멸족했다. 그나마 유자업 때 핍박을 받아 북위로 망명한 문제의 여덞번째 아들 유창은 대대로 북위에서 살았다.

선양한 망국의 황제는 제 명을 다하지 못한다는 전통도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유준의 증조할아버지 유유가 동진의 마지막 황제 공제에게 선양받고 그를 죽여버린 것부터 시작되었다. 당연히 마지막 황제인 순제 유준도 어린 나이에 살해 당하니 이 어찌 칼로 일어난 자 칼로 망한다가 아니겠는가(...). 그러고보니 조모부터 어째(...)

6 황실이 막장이 된 원인

유송의 황제들이 거의 다 막장이 된 이유는 일단 그들의 개인적 특성에 의한 것인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그 외에 다른 것도 영향을 많이 주었다.

  • 즉위한 황제들이 대부분 나이가 어려서 경험과 자질이 부족했다.
  • 시조 유유는 능력은 있었지만 애초에 학문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라 자기부터 제왕학 공부를 해야 했던 상황이었고 그나마 즉위한 뒤 그럭저럭 제왕의 길을 배우긴 했지만 그걸 갖고 자식들을 제대로 가르치기도 전에 병으로 죽었다. 결국 나이가 어린 황제들 중에 제왕학을 배운 사람들이 없었고 여기에 온갖 패륜을 보고 자라면서 그나마 있는 윤리의식도 저 멀리 달아났으니 막장이 되는 건 당연지사다. 후폐제 유욱 같은 사이코패스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 사실상 신하들에 의해 꼭두각시가 된 황제만 있던 동진의 교훈을 받아들여 주요 지역의 군사령관은 반드시 유씨 성을 가진 황족만 임명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던 게 이렇게 할 경우 서진팔왕의 난에서 보듯이 황제가 될 수 있는 정통성을 가진 사람에게 군권까지 준 셈이 되므로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동진은 뭘 몰라서 서진처럼 안 했나 따라서 중앙정부에 있는 황제는 지방의 황족보다 군대가 조금 더 많고 직접 다스리는 땅이 더 넓은 사람에 불과하므로 억지 행동을 통해서라도 위신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강력한 관료제였다. 명군이 즉위하여 점차 중앙 정부 조직을 확실하게 갖추어 다스리는 서한(전한)식의 운용 체제를 되살리는 것. 그러나 애시당초 무장출신 유유 본인과 유의륭 등 일부를 제외하면 즉위한 황제부터가 막장인데다, 선비족 등의 북조가 황하 이북에 버티고 있고, 귀족들 역시 동진의 황족들을 몰살하는 등의 행태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정통성도 없었으니 이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강력한 황제권 + 성공적인 관료제를 완수한 중국사의 끝판왕은 명나라, 청나라 가서야 나왔으니 조금 가혹한 평가일 수도 있지만은...그래도 이런 막장은 좀 아니잖아?
  • 유유가 회복한 중원 지역의 영토를 상실했다.[12] 물론 송이 남조 중 가장 큰 영토를 자랑했다지만 이후 남조 국가들이 놀고만 있진 않았으며, 북조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완 달리 매번 총명한 군주가 집권하고 늘 유능한 장군들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동진을 쿠데타로 쓰러뜨리고 황제가 된 무사 정권인 황실의 권위가 다소 실추되는 원인은 되었고, 무력으로 영토를 회복할 가망이 적었고 또한 오히려 패해서 돌아오기도 했기에,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전폐제, 후폐제가 아니라도 숙청은 밥먹듯이 했다는 것이 증거.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감안해도 유송의 역대 황제들이 좋지 않은 의미로 매우 특이한 인물이었다는 점은 변함이 없으며, 이는 그들의 왕조가 오래 지속될 수 없게 하는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13]

7 유송의 황제

대수묘호시호성명연호재위기간능호
--효목황제(孝穆皇帝)[14]유교(劉翹)--흥녕릉(興寧陵)
1대송 고조(宋高祖)무황제(武皇帝)유유(劉裕)영초(永初) 420 ~ 422420 ~ 422초녕릉(初寧陵)
2대-소황제(少皇帝)
영양왕(營陽王)
유의부(劉義符)경평(景平) 423 ~ 424422 ~ 424-
3대송 태조(宋太祖)
송 중종(宋中宗)[15]
문황제(文皇帝)
경황제(景皇帝)[16]
유의륭(劉義隆)원가(元嘉) 424 ~ 453424 ~ 453장녕릉(長寧陵)
임시-원흉(元兇)유소(劉劭)태초(太初) 453453-
4대송 세조(宋世祖)효무황제(孝武皇帝)유준(劉駿)효건(孝建) 454 ~ 456
대명(大明) 457 ~ 464
453 ~ 464경녕릉(景寧陵)
5대-폐황제(廢皇帝)유자업(劉子業)영광(永光) 465
경화(景和) 465
464 ~ 465-
6대송 태종(宋太宗)명황제(明皇帝)유욱(劉彧)태시(泰始) 465 ~ 471
태예(泰豫) 472
465 ~ 472고녕릉(高寧陵)
7대-폐황제(廢皇帝)
창오왕(蒼梧王)
유욱(劉昱)원휘(元徽) 473 ~ 477472 ~ 477창오왕묘(蒼梧王墓)
8대-순황제(順皇帝)유준(劉準)승명(昇明) 477 ~ 479477 ~ 479수녕릉(遂寧陵)
  1. 대략 하북을 제외한 중원 대부분이라고 보면 좋다. 후한 식으로 따지면 청주, 서주, 연주, 예주 정도.
  2. 장안은 유유가 북벌 중 함락시키며 근거지를 둔 후진을 멸망시켰으나 사실상 지배하진 못한 것 같다. 더 정확히는 후진을 멸망시키고 나서 공을 세운 장수들끼리 내분이 생겨서 망했다. 후진을 깨트리는데 공을 세운 왕진악과 심전자가 차례로 죽었고 아들인 막장 개초딩 유의진이 백성을 괴롭혀 민심이 떠나자 그 틈을 노린 하나라의 혁련발발이 쳐들어와서 관중 일대를 모두 빼앗겼다. 낙양은 장안에 비해 점령에 성공한 편이지만 그 점유는 10년을 못 넘는다. 지도에서 낙양을 함락시킨 북위의 공세 일부를 저지시키면서 산동반도(청주)를 유지하는데 성공했다는게 눈에 띈다.
  3. 사실 통일제국이란 개념은 북송 한정인데, 하북과 중원을 빼고는 유송이랑 별 다른 강역차이가 없다. 물론 중원과 하북이 중요하긴 하지만, 현대 중공의 역사관에서는 "여러모로" '통일제국 송나라'라는 개념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2차 남북조시대?
  4. 유의륭은 내정을 잘해서 '원가의 치'로 불리우는 전성기를 구가한 명군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아들 교육이 엉망이었다. 서자인 아들도 아닌 '태자' 유소와 차남 유준에게 죽는 전례없는 일을 당했다. 운 나쁘게 당한 것도 아니고 두 아들이 개막장 짓을해서 본인도 태자를 폐하고 아들을 죽일 생각을 하다 시간만 질질끌며 머뭇거렸는데 그러다 그 소식이 유소와 유준에게 새어나가 선빵맞고 당한 것이다. 태자나 차남이나 개막장이고 뒤를 이은 셋째인 유준도 막장 타이틀을 벗어나는 인물은 아니니 명군이었어도 자식교육에 막장이어서 결국 자신의 치세도 허무하게 끝내게 된 명군이기는 하나 실책도 많았던 셈, 그러나 이 정도만 되어도 솔직히 유송에선 그나마 제대로 된 통치자였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가 너무 처참해서.(...)
  5. 시조 유유는 자신이 한고조의 동생이자 초(楚)나라 왕이었던 유교의 21대손을 칭했다. 반면 유비는 전한 경제 유계의 후손이다. 유유의 혈통이 사실이라도 유유는 방계 of 방계 출신이고 유비와는 사실상 남인 셈이다. 그래도 유송이 이를 써먹기로 작심했는지, 아니면 때가 때인지라 북방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서 그런지 이 때부터 촉한은 슬슬 띄워지기 시작하고 "한의 후계자" 대접을 받기 시작한다.
  6. 하지만 장남 밑의 차남 유의진도 막장이다. 장남과 차남 밑의 자식들이라고 해야 맞다. 유의진은 12살의 나이에 장안 일대를 맡게 되었는데 개막장짓거리를 일삼고 백성을 못살게 굴어서 하나라의 혁련발발발에게 몇개월만에 장안일대를 모두 빼앗기고 추격까지 당해 죽을뻔했다. 아버지 유유가 얻은 땅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그야말로 막장(...) 이 놈도 황제가 되었으면 아래 막장 황제들 중 하나가 되었을 듯.
  7. 이렇게 유유가 수복해놓은 두 수도 중 낙양은 장남 유의부가 장안은 차남 유의진이 북위에 헌납한다.
  8. 유의륭의 형이자 유유의 장남, 차남인 유의부와 유의진은 막장으로 유명하며 둘다 비명에 갔다. 마찬가지로 유의륭의 장남이자 황태자였던 유소(劉劭)는 동생인 차남 유준(劉濬)(시흥왕)과 함께 부황을 살해하고 황제가 되었다가 3개월만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9. 둘째 유준과 다른 사람이고 셋째이다. 한자로는 다른 이름이지만 한글로는 같은 음이라 한자가 안붙어있으면 구분이 안간다.
  10. 부황을 살해하고 황위에 오른 유소는 제위 3개월만에 셋째 동생 유준(劉駿)에게 죽고 비정통 황제로 전락하였으며, 원흉(元兇)으로 폄칭되었다.
  11. 그런데 생모와 근친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사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골때리는건 이 정도 수준은 유송 황조에서 평범한거란거(...). 그냥 평범하게(?) 친어머니를 범했을뿐(...), 전폐제처럼 그걸로 인해 나라를 망친 정도가 아니라서 그나마 평범하다는거다.어디가?
  12. 사실 야금야금 뺏기다가 466년에 확실하게 상실했으니 나름 오래지킨 편.
  13. 당장 명군이었던 유의륭의 치세가 나머지 막장 황제들의 치세랑 맞먹는것만 봐도 그렇다.
  14. 송 무제 추존
  15. 송 효무제 즉위 후 중종에서 태조로 변경
  16. 송 효무제 즉위 후 경황제에서 문황제로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