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1 한국어의 1인칭 복수형

영어로는 we. 한자로는 吾等. 에스페란토로는 ni.[1]

우리는 한국어의 1인칭 복수형이다. 한국어에서 "우리"의 용법은 상당히 넓다. 복수형이 들어가지 않는 자리에도 "우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나의(내)" 대신 사용하는 표현이다.[2] 예컨대 친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싶을 때 '우리 집에 놀러와'라고 발화했을 때 친구가 '우리=너+나? 너와 나의 집에?' 라고 이해하지 않는다.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언어는 곧 논리를 뜻하고 또 지성을 뜻한다. 하나의 언어체계는 곧 하나의 지성의 체계이자 유기적으로 결합된 논리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혼동해서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를 정확히 잘 사용하고 있으며 아무 문제가 없다. 한국어의 관점에서 본다면 영어 사용자의 경우 인칭대명사의 사용이 잘못되었다. 이 논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다면, 한국어와 영어가 아니라 영어와 외계인 A가 사용하는 언어 B를 대입시켜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외계인은 지구의 언어와 상당히 달라서 프로그래밍어에 가까운 언어를 사용한다고 가정해 볼 때, 영어의 관점에서 외계인 A가 사용하는 프로그래밍어 B는 틀리게 사용되고 있다고 선언할 수 있는가? 터무니없는 소리다. 오히려 외계인들이 영어 사용자들은 지극히 비논리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미개인들이라고 깔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단순히 복수형에 국한시킨다고 해도, 복수형에 숫자를 붙여서 두 명일 때, 세 명일 때, 네 명일 때, 다섯 명일 때, 열다섯 명일 때, 백 명일 때 하는 식으로 숫자에 따라 달라지는 언어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WE 역시 지극히 비합리적인 언어에 불과하다.

우리라는 단어의 폭력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상대가 '우리'의 영역 내에 속하지 않는 사람일 경우에도 이 말을 듣는 상대방까지 함부로 '우리'의 영역권에 넣어버리거나, 혹은 당연히 '우리'여야 할 사람에게조차도 함부로 '우리'의 바깥으로 내쫓아버린다는 데 상대의 어떠한 양해도 구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언어의 폭력성을 이런 식으로 지적하면 다른 수많은 언어에도 비슷한 지적을 할 수 있다. 상대의 양해를 구하면서 구사되는 언어는 없다. 미국에 이민간 한국인들이 흔히 걔네들은 항상 나와 너지, 우리가 아니라서 쓸쓸하다고 말한다.사족을 붙이자면, 우리에 대해 섣부른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막상 외국문화와 제대로 조우하고 나면 파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가 파리 여행 가서 실망하고 오는 일본인 같은 현상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2000년대에 영국축구를 경험하고 돌아온 이영표와 박지성도 외국 축구는 비슷한 개념을 말한 바 있다. 그러면 이영표와 박지성의 경우 우리가 되고 싶었는데 영국인들이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나와 너로 묶은 셈이다.[3] 이것을 한 번 더 뒤집어 보면, 2010년대 중반 방송가에 대두한 외국인 방송인들의 예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 방송계에서 그들을 대하는 방식이 우리인가 나와 너인가를 생각해 보면,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나와 너보다는 우리에 훨씬 더 가깝다.[4]

토론이나 논쟁에서 우리 개념의 폐해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특히 국가나 민족을 주제로 다룰 때, 네가 우리 나라 국민 맞느냐같은 비논리에 가치 있는 의견이 묵살당하기도 하고, 개인의 권익이 침해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서라는 비합리에 묵살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뭐 그렇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네가 우리 나라 국민 맞느냐는 이야기는 특정한 투고자도 이미 알고 있듯이 논리를 비논리로 받아친 것이다. 토론에 있어서 논리를 비논리로 받아치는 수법은 우리의 폐해와는 별 상관이 없다. 토론에서 비논리가 사용되는 것은 기본적인 토론 예절이나 교육, 논리력 부족의 문제이다. 이미 비논리인 이상 굳이 우리가 아니라 다른 어떤 단어를 넣어도 아무 상관 없다.

또한 개인의 권익이 침해되는 상황이라는 두 번째 예시도 역시 한국어 우리의 개념과는 별 상관이 없다. 특정 한국어 단어인 우리가 문제되는 상황이라면, 특정 한국어 단어인 우리가 없는 외국에서는 개인의 권익이 크게 보호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외국에서도 공리주의의 기치 아래 개인의 권익이 침해되는 상황은 많다.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세심하게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외국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이론가, 철학자들의 경합과 여러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경험으로 인해 인권에 대한 개념이 잘 서 있고, 공리주의로 대변되는 우리 모두와 개인 인권이 어디까지 선을 지켜야 하는지 대부분의 사람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라는 단어가 주는 악영향은 크게 상관이 없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터넷상은 물론 현실에서도 범죄자도 인권이 있냐는 의견이 절대적 공감을 얻고 있는데, 기본적인 서구적 천부인권 개념조차 공유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경우 한국에서 서구적 개념인 개인의 권익이 한국어 언중 다수의 이득에 의해 침해되는 상황이 과연 한국어 우리라는 개념의 악영향에 기인하는 것인지는 그냥 무지무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라는 단어는 개인 개성을 억제하고, 편을 가르고 공격하기 위한 의도적인 무기로 사용되는 일이 결코 적지 않지만 WE라고 해서 그런 일이 없는 건 아니다.[5]

타인 앞에서 자기를 낮출 때에는 "저희"라는 표현을 쓴다.

2ch니코동 등지에서는 왠지 "우리"(EX: ウリは → 우리는)를 고유명사 취급하곤 한다. 우리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우리로 쓰는 경우가 많다. 일본어판 언사이클로피디아에서는 한국에서의 크리스트교를 "우리스트교"로 등록해놨다.

2 짐승을 가두어 두거나 가두어 기르는 곳을 일컫는 말

lair(레어)

'돼지우리' 등으로 쓴다. 을 기르는 우리는 외양간이라고 하며 말 한정으로 마구간이 있다.

3 기와를 세는 단위

기와 한 우리는 2천 장이다.

4 온라인 게임 스톤에이지의 펫 중 하나

우리(스톤에이지) 참조.

5 스위스칸톤 중 하나

스위스의 주

바젤슈타트(*)

바젤란트(*)

졸로투른

아르가우

취리히

샤프하우젠

투르가우

뇌샤텔

쥐라

루체른

추크

장크트갈렌

아펜첼아우서로덴(*)

아펜첼이너로덴(*)

프리부르

베른

옵발덴(*)

니트발덴(*)

우리

슈비츠

글라루스

제네바



발레

티치노

그라우뷘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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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표시는 반주.
2. 흰색: 독일어권. 파란색: 프랑스어권. 초록색: 이탈리아어권.
옅은 파란색: 프랑스어+독일어권. 라임색: 이탈리아어+독일어+로망슈어

독립 당시부터 주축을 이루던 칸톤의 하나로 문장은 인데 묘하게 '우리'라는 명칭과 어감이 어울린다.

6 프리티 리듬 레인보우라이브의 주역

국내명은 채우리. 모리조노 와카나 문서 참조.
  1. 그런데 ni가 중국어로는 너(你)라는 뜻이다. 그래서 중국어와 에스페란토를 동시에 배우다 보면 좀 헷갈릴 수 있다.
  2. 이때문에 과거에는 한국인들이 영어를 사용할 때 한국어에서처럼 1인칭 복수형인 we를 남발하는 실수를 자주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런 실수를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진 편.
  3. 즉 다시 말하자면 우리로 묶으면서 상대의 양해를 구사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현실 언어의 비엄밀성과 한계에 대한 지적이라면 모를까, 폭력 운운하는 것은 비한국어권 출생자들이 느끼는 개인적 감정에 불과한 어불성설이다. 이런 지적으로는 한국어권 출생자들이 외국에 가서 느끼는 소외감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한국에서 유년기를 보내던 박칼린이 무릎팍도사에 나가서 비슷한 소외감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4. 물론 공채 몇 기 같은 더 작은 그룹으로 나눌 때는 우리가 아니겠지만, 그럴 때는 한국인이라고 속하는 것은 아니다.
  5. 인터넷 게시판에서 흔히 '우리들을 무시하는 ○○○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줍시다' 같은 선동은 나와 우리를 혼동하게 하는 집단적 최면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개인의 편협한 의견에 불과한데도 우리라는 외피를 둘러쓰면 없던 논리가 생기기도 하고, 소수자의 의견이 무시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비단 '우리'에 국한되는 이야기겠는가? WE는 물론, 다른 수많은 1인칭 복수형에도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