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ren Spector
게임 기획자. 1955년 10월 2일생.
"플레이어가 중요하다, 선택과 귀결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믿게 하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퍼블리셔에 갈 때마다, 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똑같은 싸움을 반복해요. 캐릭터 성장 방법, 플레이어가 지니는 수단들, 상호작용하는 세계, 문제를 푸는 다양한 해법들 같은 걸 이야기해 주면, "그거 전부 만들 필요가 있는 거에요?" 란 대답이 오죠.데이어스 엑스 때 이야기를 하죠. 저 쪽에서 "몇 퍼센트의 플레이어가 하프 라이프처럼 그냥 쏘고 다니기만 할지" 물어보더군요. "한 70%?" 라고 답하니 "그럼 왜 고생해서 잘해야 30%만 하게 될 잠입 모델을 만드나요?" 하더군요. 어처구니가 없었죠. 게임의 중심에 플레이어가 있고, 게임은 플레이어가 플레이하며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게 제겐 자명하니까요.
제가 게임 업계에서 일하며 가장 힘든 것은 이 생각을 계속 굳게 믿는 것입니다. 이 점을 타협할 거라면 차라리 책방을 차리죠. 게임을 만들어서 정말 돈을 많이 벌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걸론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예술 형식을 만들 기회가 있는데, 수익 극대화에 관심을 줄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제 철학을 돈보다 더 강하게 믿습니다.
- 2007년, 텍사스 대학 강연에서
게임 업계의 중진 중 한 사람으로 초년에는 스티브 잭슨 게임스와 TSR에서 (테이블) 롤플레잉 게임을 제작한 바 있다. 그러다 1989년 오리진에 입사해 여러 게임의 제작 작업에 참여하다가, 윙 커맨더와 울티마 6편, 7편 확장팩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이후 오리진을 떠나 들어간 루킹 글래스스튜디오 에서도 울티마 언더월드 시리즈와 시스템 쇼크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2000년, 루킹글래스 스튜디오가 재정 문제로 문을 닫은 뒤, 존 로메로가 설립한 이온 스톰에 스카우트되어 오스틴 지부를 설립했다. 로메로가 맡은 댈러스 본부가 다이카타나 논란과 게임의 연이은 실패 뒤 2001년에 문을 닫은 반면, 오스틴 지부는 데이어스 엑스 시리즈를 성공시키며 본사보다 더 잘 나갔다.
스펙터는 그동안 대부분의 게임에 프로듀서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는데, 데이어스 엑스 1편에서는 '디렉터'로도 이름을 올렸다. 2편인 인빈지블 워에서는 프로듀서로만 참여하고 디렉터는 하비 스미스가 맡았다. 의외로 디자이너나 디렉터로 이름을 올린 작품이 많지 않지만 루킹글래스와 이온스톰 특유의 게임 디자인 철학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시프 3 : 데들리 쉐도우의 개발이 끝난 뒤인 2004년, 스펙터는 개인적 이유로 이온 스톰을 떠났다. 이와 함께 다른 핵심 개발진도 대거 회사를 떠나게 되어 결국 2005년에는 오스틴 지부도 문을 닫게 된다. 회사를 나온 이유는 그 당시 게임계가 지나치게 폭력을 추구하고 있다고 하여 나왔다고 한다.
데이어스 엑스 시리즈로 잘 알려진 베테랑 게임 디자이너 워렌 스펙터가 게임인더스트리 인터내셔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게임 업계에 극단적 폭력의 추구를 멈춰줄 것을 주문했습니다. 그는 올해 E3에서 시연된 게임들을 보고 "폭력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믿지 않지만, 우리 업계가 너무 폭력에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덧붙여 자신이 2004년에 에이도스(이온 스톰 오스틴)를 떠난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음을 밝혔습니다. "2004년에 내가 에이도스를 떠난 것은, E3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맨주먹으로 사람을 때려죽이는 히트맨 신작과 애들이 경찰을 죽이는 내용의 25 투 라이프, 경주보다는 격렬한 폭발을 경쟁하는 레이싱 게임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때는 그냥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나쁜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스펙터 자신이 관여해온 대표작들(데이어스 엑스, 시스템 쇼크) 역시 적지 않은 폭력을 포함하고 있는 걸 보면 모순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는데요. 그는 데이어스 엑스에 담긴 폭력은 플레이어가 불쾌하도록 설계했다고 밝혔습니다. 그것이 의도대로 되었는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최소한 자신의 아내만큼은 실수로 게임 속 개를 쏴서 피웅덩이에 고꾸라진 모습을 보고 게임을 중단시키게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1 그는 지금 게임에서는 그런 것을 볼 수 없다면서 게임 업계가 "미성숙한 마음에 어필하도록 게임을 만들어놓고 성숙한 것이라고 칭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번 E3를 보고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스펙터 뿐만이 아닙니다. 가마수트라의 편집장 크리스 그라프트도 올해 E3가 세계 최대의 퍼블리셔들의 투자 대상이 "피에 목마르고, 섹스에 굶주렸으며 헤드샷과 공짜 티셔츠에 하이파이브를 날릴 십대 남성"임을 명백하게 밝힌 무대였다고 평했습니다. |
스펙터는 같은 해 새로운 스튜디오인 정션 포인트 스튜디오를 설립했는데 이 스튜디오는 2007년 디즈니 인터랙티브에 인수되었다. 그리고 나온 게임이 미키 마우스를 소재로 한 에픽 미키다. 하지만 AMA나 인터뷰 같이 사석에서 나오는 워렌 스펙터 본인의 소감에 따르면 에픽 미키의 개발은 너무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수백명이 동원되어 만드는 대자본 게임에서는 작가성도 개성도 용납받지 못하고, 사람과 관료제에 휘둘리다보면 진이 빠진다는 듯. 결국 에픽 미키는 워렌 스펙터가 만든 게임 중 유일하게 망작 취급을 받고 있다(...).
에픽 미키 이후는 후진 양성과 강연에 힘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는지라 사실상 은퇴를 하였다고 여겨졌으나, 2016년 초 아더사이드 엔터테인먼트에 영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더사이드 엔터테인먼트의 개발 예정 작품이 울티마 언더월드의 (정신적) 후속작과 시스템 쇼크의 정식 후속작인데, 두 작품의 후속작 개발은 워렌 스펙터 본인이 옛 동료들과 함께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반드시 해보고 싶다고 AMA나 인터뷰에서 밝혀왔기에 다들 예상했다는 평. 개발에 참여한 게임들이 에픽 미키 빼고 전부 상업적으로든 비평적으로든 크게 성공하고, 최소 중간 이상은 되어왔던 전설적인 개발자인지라 스펙터를 보고 자란 개발자들은 물론 게이머들과 웹진들의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주요 참여작
- 울티마 6 (오리진, 1990) 프로듀서
- 울티마 언더월드 (1992, 오리진/루킹 글래스 스튜디오) 프로듀서
- 울티마 언더월드 2 (1993, 오리진/루킹 글래스 스튜디오) 프로듀서
- 울티마 7 part 2 : 독사의 섬 (1993, 오리진) 프로듀서
- 울티마 7 part 2 확장팩 : 은빛 씨앗 (1993, 오리진) 프로듀서
- 시스템 쇼크 (1994, 루킹 글래스 스튜디오) 프로듀서
- 데이어스 엑스 (2000, 이온 스톰 오스틴) 프로듀서/프로젝트 디렉터
- 데이어스 엑스: 인비지블 워 (2003, 이온 스톰 오스틴) 프로듀서
- 시프 3 : 데들리 쉐도우 (2004, 이온 스톰 오스틴) 스튜디오 디렉터
- 에픽 미키 (2010, 정션 포인트 스튜디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일부 게임 웹진에서 그가 바이오쇼크의 제작에 참여했다던가, 바이오쇼크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라든가 소개되곤 하는데,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디렉터 켄 레빈을 포함한 이래셔널 게임즈의 제작진이 그의 게임스타일과 철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서 시스템 쇼크 2를 만들었고, 바이오쇼크는 시스템 쇼크의 정신적 계승작이라고 했을 뿐. 워런 스펙터는 바이오쇼크의 제작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