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애노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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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라 하대에 일어난 농민 반란.

2 배경

통일신라 성립 후 백여년간 신라는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하대에 접어들면서 진골 귀족들간의 끝없은 왕위쟁탈전으로 점차 지방 농민들의 생활은 어려워져갔다. 진성여왕 때는 지방 통제력 약화로 세금이 걷히지 않아 서라벌의 창고는 텅 비었고, 관리를 보내 세금을 독촉했는데 오히려 이것에 농민들이 격분해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3 전개

원종애노의 난은 889년에 사벌주에서 일어났는데, 정부는 나마 관등에 있는 장군 영기(令奇)에게 명령하여 토벌하게 했으나, 영기가 적들의 본진을 보고 두려워하여 진군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촌주(村主) 우연(祐連)이 전사했다. 진성여왕은 칙명을 내려 영기의 목을 베고, 나이가 10여 세에 불과한 우연의 아들에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촌주가 되게 했다. 이후 원종과 애노의 난이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는 구체적 전개 기록이 없어 알기 어려우나 일단 이 때 신라중앙군에 의해 토벌됐거나, 대호족시대를 맞아 아자개 등의 다른 호족 세력에 격파당했거나 흡수됐을 것으로 보인다.

4 의의

후삼국시대를 여는 대호족시대의 첫 번째 타자라는 점에서, 통일신라가 붕괴하는 기폭제가 된 의미가 있다. 삼국지로 치면 황건적의 난과 같았던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