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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SKC 시절) 짧은 머리 스타일로 봐서는 꼬꼬마 시절
전성기 시절과 현재
이름 | 유영주(劉永珠) |
생년월일 | 1971년 11월 23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학교 | 인성여자고등학교 |
포지션 | 파워 포워드 |
신체 사이즈 | 178cm |
프로입단 | 1990년 SKC-SK증권 농구단 입단 |
소속팀 | SKC-SK증권 농구단(1990~1998) 수원 삼성생명 비추미(1998~2001) |
코칭스탭 | 천안 국민은행 세이버스(2001~2004)[1] 구리 KDB생명 위너스(2013~2015) |
등번호 | 8번 |
1997-98 농구대잔치 MVP | |||||
정은순(삼성생명) | → | 유영주(선경증권) | → | 박정은(삼성생명) |
인성여중과 인성여고를 거치면서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입단 당시 사상 초유의 금액인 1억 7,000만 원에 SKC로 스카우트되었다. 창단한 지 20년이 넘도록 우승이 없던 SKC가 내린 결단이었는데, 유영주의 영입은 대성공이었다. 데뷔 시즌 인성여고 동기로 친구이자 라이벌인 정은순과 농구대잔치 신인상을 공동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농구대잔치 무대를 휩쓸면서 국내 정상의 파워 포워드로 군림했다.
우승이 없었던 SK증권[2]에게 농구대잔치 우승을 세 번 안겨주면서 역량을 과시했다. 그러나 1997-1998 시즌 우승을 차지한 바로 다음 날 소속 팀인 SK증권이 해체되었고,[3] 드래프트를 거쳐 삼성생명으로 팀을 옮겼다. 다만, 삼성생명은 정은순의 팀이었고, 또 매번 라이벌로 격돌하던 팀을 위해 뛰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부담감, 고질적인 무릎 부상, 결혼과 출산이 겹치면서 비교적 이른 시기인 2001년에 은퇴를 선언했다. 그녀의 2년 후배인 정선민이 20년 커리어를 채우고 은퇴한 것과 비교하면, 다소 빠른 은퇴였다.[4]
국가대표로 대한민국 여자 농구의 중흥을 이끈 주역이었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이끌었으며, 1997 ABC 대회 우승의 주역이었다. 다만 은퇴를 앞두고 있었던 2000 시드니 올림픽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파워포워드로 여성 선수로서는 굉장히 강력한 힘의 농구를 구사했다. 힘과 저돌적인 승부욕, 농구 센스를 갖춰서 골밑에서 군림했다. 주로 상대를 힘으로 제압했고, 과감한 돌파와 슛으로 당시 최소한 아시아 무대에서는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민은행의 코치로 부임하여 2002년부터 2시즌 간 감독 대행을 지냈다. WKBL 선수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감독 대행에 올랐다. 다만, 새 감독이 부임하자 사임하고 한동안 농구 해설가로 일했다.
SBS ESPN 해설자 시절
1999년에 결혼했고, 슬하에 쌍둥이 아들이 있다. WKBL 인터넷방송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다 SBS 스포츠의 WKBL 해설위원으로 적을 옮겼다. 경기 도중 상대 선수를 폭행한 모 선수에게 인터뷰차 찾아가서 대차게 일갈하는 모습이 방송되어서 속 시원하다는 팬들의 반응을 얻기도 했다. 현역 시절에 보여 주었던 저돌적인 스타일의 플레이가 해설에도 반영되었는지 그녀의 거침없는 입담은 여농 팬 사이에서 재밌는 해설로 호평받고 있다.
참고로 유영주의 언니 유영순 씨도 창원 LG 세이커스의 마케팅 팀장으로 농구계에 종사하고 있다. 그녀를 처음 농구의 세계로 이끌었고, 학창시절에 농구선수로도 활약한 바가 있다.
2013년 구리 KDB생명 위너스의 신임 코치로 임명되었다.
2015년 시즌 종료 후 코치직에서 물러나 해설자로 컴백하였다.
#- ↑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감독대행을 맡았다. 정식 감독까지 포함한다면 WKBL 선수 출신 최초의 감독.
- ↑ SKC에서 운영 주체가 바뀌었다.
- ↑ SK그룹 산하 프로스포츠 팀에 대한 전횡은 잘 알려진 바, 그 전횡의 첫 번째 시작이 바로 SK증권 여자농구팀의 해체였다. 그 다음은, 당시 대통령배-슈퍼리그 8연패를 하던 LG정유의 아성에 위협하던 SK케미칼 여자배구팀의 해체.
- ↑ 하지만 당시에만 해도 여자 선수들은 25살 정도면 거의 대부분 은퇴 크리였다. 그걸 생각한다면 30살에 은퇴한 것도 제법 오래 선수 생활을 한 셈이다. 전주원과 양정옥은 40세까지 현역으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