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대잔치

대한민국의 농구리그
구분명칭
프로1군한국프로농구 / 한국여자프로농구
2군한국프로농구 D리그 / WKBL 퓨처스리그
실업농구대잔치
혼합프로-아마 농구 최강전 / 박신자컵
아마추어대학대학농구연맹전†1 / 한국대학농구리그†2 /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중고교중고농구 주말리그
KBL 총재배 / WKBL 총재배 / 연맹회장기 / 대통령기 / 전국체전
사회인전국직장인농구리그
†1 2009년까지 개최. 2010년 한국대학농구리그 출범이후 폐지
†2 남성부와 여성부가 분리 개최

1 개요

대한민국의 아마추어 농구 대회.

1983~84년 시즌부터 매년 겨울에 열린 농구 최대의 축제이자 현 KBL의 전신. 한국 농구의 대중적 확산과 기반을 닦고 90년대 농구붐을 일으킨 원동력이었다. 원래 남녀 농구 모두의 대회인데, 남자농구의 인기에 여자농구가 완전히 묻혀버려서 농구대잔치 하면 남자농구의 대회로만 착각하는 일이 많다.[1]

주로 실업팀들에 의해 리그가 주도되었다. 특히 기아의 트리오는 농구대잔치 이래 기아자동차가 최강의 팀으로 군림하는 데 한몫을 하였다.[2]

농구대잔치가 본격적으로 확립된 이후에는 실업-아마 8개팀(기아자동차, 현대전자, 삼성전자, SBS, 상무, 한국은행, 기업은행, 한국산업은행)에 그 해 대학리그에서 성적이 좋은 6개 대학 합쳐서 총 14개팀이 각 팀과 1경기씩 팀별 13경기를 풀리그로 전국 각 지역을 돌며 경기하고, 리그 성적 상위 8개팀이 8강 플레이오프에 진출, 4강, 결승 순으로 진행되었다. 대회 창설 이후부터 프로화 이전까지 존재한 실업팀들은 이 시기가 사실상의 세미프로 단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보통 대학리그 상위 6개팀에는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중앙대학교의 3대 강호가 단골로 참가했으며, 이밖에 경희대학교건국대학교, 단국대학교, 동국대학교, 명지대학교, 성균관대학교, 한양대학교 등이 자주 올라왔다.

특히 한국 농구 최대의 중흥기라 불리는 1993년부터 1996년까지는 이른바 대학팀들의 돌풍 시대였다. 문경은, 이상민, 서장훈, 우지원 등이 기라성처럼 버티고 있는 연세대가 1993~94 시즌 우승을 차지하고, 94~95 시즌이나 95~96 시즌도 연세대와 함께 신기성, 김병철, 양희승, 전희철, 현주엽 등이 포진한 고려대가 대학돌풍의 주역으로서 실업팀들을 잇달아 연파하며 엄청난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다.

그러나 KBL이 1997년 공식적으로 출범하면서 실업팀들이 대부분 프로팀으로 전환되었고 일부 남은 실업팀들도 1997년 외환 위기 속에 해체되었으며, 1995~96 농구대잔치까지 활약하던 오빠부대의 주역들이 졸업하고 프로로 떠나면서 언론과 팬들의 관심도 자연스레 KBL로 옮겨졌다. 결국 농구대잔치에 남은 건 대학팀들과 상무 뿐이었고, 여자부도 외환위기 속에 연달아 팀이 해체되고 남은 팀들은 한국여자프로농구 출범과 함께 프로로 전환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농구의 저변과 인기를 대중적으로 크게 확산시키고, 현재 KBL 구단들의 모태가 되는 팀들이 바로 농구대잔치 때 형성된 실업팀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농구대잔치가 한국 농구 발전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3]

2 문제점

2012~13 시즌 이후 KBL의 신인 드래프트 일정이 9월로 앞당겨지면서, 대학을 아직 졸업하지 않은 4학년 선수들이 재학생 신분으로 프로에 진출하게 되었다.[4] 즉 일반적으로 11월 말~12월 초에 열리는 농구대잔치 개막시점에서는 대학팀의 4학년 선수들이 빠져나가 KBL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대학팀의 전력이 비정상적일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험이 쌓인 4학년들의 공백으로 인한 팀 전력의 손실도 손실이지만, 남은 1~3학년으로만 구성된 대학팀의 로스터는 인원수 자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특히 대학농구리그 시즌이 끝나고 비시즌기로 인해 컨디션이 저하된 선수들이나, 부상으로 이탈한 선수를 제외하게 되면 12인 로스터를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팀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각 대학의 2학기 수시 모집에 합격하여 입학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선수들이 입학예정자의 신분으로 각 대학팀에 합류하여 대회에 뛸 수 있게 허용하고 있지만, 각 대학의 수시합격자 발표일정 문제나 각 고등학교의 차출요구 수용여부와 같은 부분에서 여전히 복잡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5]

상무의 경우 위와 같은 문제를 겪지 않으므로 상대적으로 안정된 전력을 가지고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대학팀과의 전력 격차를 더 크게 벌리면서 밸런스의 불균형이라는 또다른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대회 역대 우승팀을 보더라도 알 수 있지만, 상무는 대학팀을 크게 따돌리고 대회 우승을 휩쓸고 있는 추세이다.[6] 결국 최근에는 이런 이유들로 인해 농구대잔치의 출전 자체를 포기하는 학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7], 대회의 규모와 의미도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2년에는 KBL 프로팀과 상무, 그리고 상위권 대학 5개팀이 참가하는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이라는 이름의 컵 대회가 신설되었는데, 오히려 이 대회가 과거 KBL 출범 이전 중흥하던 농구대잔치의 형식을 계승하는 대회로써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 농구대잔치는 이래저래 안습

3 역대 우승팀

3.1 남자부 - 프로 출범 전

연도우승준우승대회MVP
1983-84현대전자삼성전자이충희
1984-85삼성전자현대전자임정명
1985-86현대전자중앙대학교이충희
1986-87현대전자중앙대학교박수교
1987-88삼성전자기아산업김현준
1988-89기아산업현대전자유재학
1989-90기아산업현대전자한기범
1990-91기아자동차현대전자정덕화
1991-92기아자동차삼성전자허 재
1992-93기아자동차삼성전자강동희
1993-94연세대학교상 무서장훈
1994-95기아자동차삼성전자허 재
1995-96기아자동차상 무김유택
1996-97연세대학교상 무서장훈

3.2 남자부 - 프로출범 이후

연도우승준우승대회MVP
1997-98연세대학교경희대학교서장훈
1998중앙대학교한양대학교조우현
1999[8]중앙대학교연세대학교김주성
2000중앙대학교상 무김주성
2001-02상 무중앙대학교현주엽
2002-03연세대학교상 무김동우
2003연세대학교상 무방성윤
2004연세대학교중앙대학교전정규
2005상 무고려대학교박지현
2006중앙대학교고려대학교허효진
2007중앙대학교동국대학교강병현
2008상 무건국대학교양동근
2009상 무연세대학교유병재
2010상 무건국대학교양희종
2011상 무명지대학교함지훈
2012고려대학교상 무박재현
2013상 무연세대학교윤호영
2014상 무경희대학교이정현
2015상 무고려대학교김시래

3.2.1 남자부 - 팀별 우승횟수[9]

우 승
상 무9회2001-02, 2005, 2008, 2009, 2010, 2011, 2013, 2014, 2015
기아자동차7회1988-89, 1989-90, 1990-91, 1991-92, 1992-93, 1994-95, 1995-96
연세대학교6회1993-94, 1996-97, 1997-98, 2002-03, 2003, 2004
중앙대학교5회1998, 1999, 2000, 2006, 2007
현대전자3회1983-84, 1985-86, 1986-87
삼성전자2회1984-85, 1987-88
고려대학교1회2012

3.3 여자부 - WKBL 출범 전

연도우승준우승대회MVP
1983-84코오롱동방생명김복순
1984-85국민은행한국화장품공현자
1985-86태평양화학동방생명차선용
1986-87동방생명국민은행김화순
1987-88동방생명서울신탁은행김화순
1988-89동방생명서울신탁은행성정아
1989-90국민은행삼성생명조문주
1990-91삼성생명국민은행최경희
1991-92삼성생명국민은행최경희
1992-93삼성생명SKC최경희
1993-94국민은행삼성생명이강희
1994-95SKC삼성생명정은순
1995-96선경증권현대산업개발정선민
1996-97삼성생명국민은행정은순
1997-98SK증권삼성생명유영주
1998삼성생명현대산업개발박정은

3.4 여자부 - WKBL 출범 후

1998년 WKBL 출범 이후에는 프로팀은 참가하지 않고, 실업팀과 여자대학 팀이 참가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연도우승준우승대회MVP
2000숙명여자대학교성신여자대학교
2000용인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김성은
2001-02용인대학교김천시청김성은
2002-03김천시청용인대학교박명애
2003김천시청성신여자대학교김성은
2004김천시청수원대학교전지혜
2005김천시청용인대학교전지혜
2006수원대학교용인대학교권혜미
2007김천시청사천시청김민정
2008김천시청수원대학교홍정애
2009동아백화점김천시청배영경
2010김천시청국일정공한서윤
2011동아백화점사천시청한연호
2012사천시청김천시청박언주
2013사천시청김천시청김향미
2014김천시청사천시청박근영
2015김천시청사천시청김선혜
  1. 사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여자농구의 인기가 높았는데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남자농구가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역전되었다.
  2. 여기에 한기범까지 더한 조합이 중앙대학교 농구부였고, 실업팀을 꺾은 대학팀의 시작이었다.
  3. 당장 겨울 스포츠 경쟁종목이었고 비슷하게 전성기를 누린뒤 프로화를 거쳤던 한국 배구는 농구대잔치와 같은 권위의 대회였던 슈퍼리그(백구의 대제전) 자체가 사라졌다. 농구대잔치가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아마 농구의 저변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
  4. 얼리 엔트리의 경우에는 3학년
  5. 실제로 2014년 농구대잔치에서는 연세대학교의 수시합격자 발표 일정이 농구대잔치 개막 이후로 예정되어 있어서, 모든 학교가 입학예정자를 엔트리에서 빼고 대회에 참석할지, 아니면 연세대를 제외한 학교들만 입학예정자를 엔트리에 포함시켜서 대회를 치를지와 같은 부분에서 조율의 어려움이 있었고 대회가 파행으로 치닫기 직전까지 흘러갔다.
  6. 이듬해에 프로팀들까지 물리치고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우승한 2012년의 고려대를 제외하면, 상무는 최근 농구대잔치에서 우승을 내준 일이 없다. 결승전에서도 대부분 가비지 스코어로 대학팀들을 누르고 우승컵을 가져갔다.
  7. 대학팀들은 이제 대학부끼리 겨루는 컵 대회로 농구대잔치 대신 MBC배 대학농구 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
  8. 원래는 1999년에 열려야 할 대회가 2000년 1월에 개최되었다.
  9. 횟수가 많은 팀부터 적되, 같은 횟수일 경우 더 최근에 경험한 팀부터 기록한다. 굵은 글씨는 각 팀별로 가장 오랜 기간 연속으로 우승한 경우를 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