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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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춘 야타이 수석코치
이민성 (李敏成 / Lee Min-Sung)
생년월일1973년 6월 23일
국적대한민국
출생경기도 광명시
포지션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장182cm
유스팀아주대학교 (1992~1995)
소속팀부산 대우 로얄즈/부산 아이콘스 (1996~2002)
상무 (1999~2001)
포항 스틸러스 (2003~2004)
FC 서울 (2005~2008)
용인시청 (2010)
국가대표 경력1995~2004, 66경기 2골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국가대표
2002년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지도자 커리어용인시청 플레잉 코치 (2010)
광저우 헝다 코치 (2011)
용인시청 코치 (2011~2012)
강원 FC 코치 (2012~2013)
전남 드래곤즈 코치 (2013~2014)
울산 현대 수석코치 (2015~2016 )
창춘 야타이 수석코치 (2016~)

1 소개

경기도 시흥군 서면 (현 광명시) 출생으로 시흥초등학교, 문일중학교, 문일고등학교, 아주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도쿄 대첩의 영웅이며, 역전골을 넣은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민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사건의 엄청난 효과 때문에 그를 공격수로 알고 그의 골 기록을 살펴보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는 전문 수비수였다.

2 선수 시절

2.1 클럽

대학졸업후 부산 대우 로얄즈에 입단하였다. 1997년 리그 우승에 공헌 하였다. 1999년 상무에 입대하였고, 2001년 부산 아이콘스로 복귀하였다. 2003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였고, 2시즌 동안 43경기 2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2005년 FC 서울로 이적하여 4시즌 동안 62경기 2골을 기록하였다. 세뇰 귀네슈 감독이 부임한 2007시즌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서서 좋은 활약을 선보여 시즌 초반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으나 시즌이 절반도 진행되기 전에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그러나 2008년 음주 뻉소니 사건으로 인해 팀에서 방출되었다가, 2010년에 내셔널리그 용인시청의 플레잉 코치로 1시즌을 더 뛰며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2.2 국가대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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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첩을 승리로 이끈 역전골 직후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안정환의 말로는 뽀록이라고"얻어거린 거예요 인생에 마지막 골일거예요 아마"

1995년 2월 19일 다이너스티컵 중국전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다. 데뷔골은 1997년 9월 28일 일본과의 경기이다. 0:1로 뒤진 후반 38분 서정원의 헤딩슛으로 동점을 만든 상황에서 41분 왼발 중거리 슛을 날렸고, 바운드 된 볼은 득점으로 이어지며 2:1 역전골을 만들어냈다. 이 한일전은 우리나라 팬들은 도쿄 대첩으로 부르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는 4강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최진철과 교체로 56분에 처음 투입되었으나 아무래도 최진철보다는 제공권이 딸리는지라 불안불안한 장면을 노출했다. 다만 미하엘 발락의 실점 장면을 두고 아직까지 이민성을 비난하는 여론이 있는데 그 장면 자체만 놓고보면 이민성의 과실은 거의 없다. 그 상황에서 이민성의 수비상대는 독일 대표팀에서 가장 빠른 선수인 올리버 노이빌레였는데 안그래도 발 느리기로 유명했던 이민성이었지만 노이빌레에게 벗겨지지 않고 끝까지 따라붙어 주었고 결국 크로스 각이 좁아진 노이빌레로 하여금 거의 자포자기식의 느릿느릿한 땅볼크로스를 올릴 수밖에 없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페널티박스 안에 있던 유상철홍명보가 하필이면 동시에 정줄을 놓으며 그 쉬운 크로스를 흘려버렸고 이걸 발락이 가볍게 마무리한 것. 유상철, 홍명보 둘의 실책이 명백한 상황이었지만 아무래도 4강까지 올라오는 과정에서 쌓아온 게 있다 보니 함부로 까기 좀 그래서 만만한 이민성이 욕받이가 된 느낌이 강하다.

3/4위전에는 센터백으로 선발 출전했으나 역시 수비력의 불안감을 노출하며 3실점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 당시 문제는 2002년 월드컵 대표팀에 전문 수비수라곤 홍명보, 김태영, 최진철, 이민성 4명이 전부였다. 유상철과 송종국이 멀티플레이어로 수비를 보기도 했지만, 독일전과 터키전 시점에 두 선수의 체력고갈도 극에 달한 상태라... 이에 대해서 히딩크는 자서전에 '한국은 수비수가 별로 없다'고 언급하며 "차두리가 체격조건도 좋고 발도 빠르니 수비수하면 잘할거다"라는 예언을 남겼다.[1] 하지만 당시 축구팬들 중에는 심재원은 왜 버렸나? 성남의 김영철은 왜 끝까지 무시하나요? 이임생과 이상헌은? 마시엘 귀화시키면 안 되나요? 라며 잔소리들을 했다.

이 당시 김영철 처럼 K리그에서 활약한 본좌급 수비수들이 많았지만, 히딩크의 눈에는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김영철의 경우 부산 아시안게임때 와일드카드로 기용되었고, 이후 독일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했다. 이임생은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겠다며 월드컵 직전에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마시엘은 브라질 출신 수비수로 당시 전남드레곤즈에서 김태영과 철벽을 이루던 콤비였다. 일설에 축협에서 귀화제의를 했지만, 마시엘이 '월드컵 끝난 뒤에 다시 브라질 국적 회복할 수 있음?'이라고 되묻는 바람에 포기했다고. 마시엘은 2003년을 끝으로 브라질로 돌아갔고, 선수시절 모은 돈으로 현재 농장 운영하며 잘 살고 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상무 시절에는 스트라이커로 뛰었다. 상무는 선수층이 열악해서 얼마 안되는 포지션의 선수들을 본 포지션이 아닌곳에 배치해 써먹는 일이 왕왕 있었다.

3 지도자

2010년 용인시청의 플레잉코치로 처음 입문하였다. 2011년 광저우 헝다에서 잠시 코치 생활을 하다가 다시 용인시청의 코치로서 활동하였다. 2012년 강원 FC의 코치로 활동하였고,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전남 드래곤즈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1월 5일 울산 현대의 코치로 선임되었다.

4 트리비아

  • 마리텔에서 밝히길 안정환이 꼭 유명해져야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이민성 때문이라고 한다. 도쿄대첩 이후 부산의 발리라는 나이트를 선수들과 다같이 간 적이 있었는데 유명한 선수였던 이민성의 룸에 여자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걸 보고 굳게 마음먹었다고. 참고로 이민성은 본인이 군대에 있던 시절 지구 반대편에 있어 시차가 적응이 안되어 있는 안정환에게 나이트 예약을 부탁했다고 한다.
  • 안정환의 말로는 김주성과 같은 방을 쓸때 코를 곤다고 탁상시계로 얻어맞아서 눈에 멍이 든 적이 있고, 안정환과 같은 팀이던 시절 안정환이 공을 잡고 있을때 오버래핑을 하다가 실수로 안정환의 머리를 박치기해서 기절시킨 적도 있다고 한다.
  1. 그리고 차두리는 정말로 수비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