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 파이리츠 No.46 | |
이반 노바 (Ivan Manuel Nova) | |
생년월일 | 1987년 01월 12일 |
국적 | 도미니카 공화국 |
출신지 | San Cristobal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4년 뉴욕 양키스 자유 계약 |
소속팀 | 뉴욕 양키스(2010~2016) 피츠버그 파이리츠(2016~) |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선발투수.
2004년 국제 자유계약선수로 8만 달러를 받고 양키스에 입단했다.
첫 해 루키리그에서 3승과 2.78의 방어율로 가능성을 보여줬으나, 이후 2년간 싱글 A에 머무르며 주춤거리면서, 조바 체임벌린, 필 휴즈, 이안 케네디 등 양키스 내의 다른 유망주들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2008년에는 룰5 드래프트에 의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했는데, 스프링캠프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결국 파드리스 로스터에 살아남지 못하며 다시 양키스로 돌려보내졌을 정도.
노바는 2009년 더블 A에서 2.36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듬해인 2010년에는 트리플 A에서 12승 3패 방어율 2.86을 기록하며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해 메이저리그에도 올라와 10경기(7경기 선발)에서 1승 2패 방어율 4.50의 성적을 기록한다.
이렇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여전히 외부에서는(특히 Baseball America) 그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않고 있었다. 빅리그에서 돋보이는 스터프는 아니라는 점과, 마땅한 세컨 피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앤디 페티트가 은퇴를 선언한데 이어, 양키스가 FA 최고 투수 클리프 리를 잡는데 실패하면서 양키스 로테이션에 큰 구멍이 생기는 바람에 노바에게도 가능성이 생겼다. 프레디 가르시아와 바톨로 콜론과의 경쟁이 조금 힘들 것이란 의견도 있었지만, 필 휴즈가 데드암 증세를 보이며 나가떨어져서 노바의 자리가 아주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그리고 2011년, 노바는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과시한다.
28경기(27경기 선발)에 등판해 16승 4패 방어율 3.70을 기록하며 양키스의 사실상 2선발 노릇을 한 것. 시즌 중반, 휴즈의 부상[1] 복귀 때문에 거의 한 달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낸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놀라운 성적이다. 양키스는 노바가 등판한 경기에서 12경기 연속 승리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1선발로 나서도 될 듯 다만 아쉽게도 신인왕은 탬파베이 레이스의 13승 2.98(플루크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만 뭐...)에 빛나는 루키 제레미 헬릭슨에게 돌아갔다.
94마일까지 나오는 패스트볼과 더불어 괜찮은 체인지업과 커브를 구사하며 땅볼 유도 능력이 돋보이는 선수인데 이런 점 때문에 우완의 앤디 페팃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다만 스터프와 커맨드 자체가 뛰어나지 않아서 삼진과 볼넷의 비율이 매우 좋지 않은 것은 두고두고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휴즈가 복귀하면서 마이너에 내려가있는 동안 갈고 닦은 슬라이더가 많이 발전하면서 삼진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케네디가 커티스 그랜더슨 3각 트레이드로 떠나고, 휴즈와 체임벌린이 부상으로 골골대는 가운데 현재로서는 데이빗 로버트슨과 함께 양키스의 영건들 중 가장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특히 A.J. 볼넷이 존 래키와 자웅을 겨루는 먹튀가 된 2011년 노바가 없었다면 양키스의 플레이오프 진출은 힘들었을 것이란 평이 중론이며, 양키 팬들은 이런 노바를 슈퍼노바라고 부른다. 2011 ALDS에서 CC 사바시아 vs 저스틴 벌랜더의 빅매치가 예정되었을 때 양키스타디움에 정지훈이 찾아와서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었을 때는 다음날 이어진 3회부터 실질적인 선발투수로서 9회 1사까지 6.1이닝을 2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5차전에서는 1회에만 솔로홈런 두 개를 내줬는데 팔에 이상을 느끼며 2이닝만 소화했고 결국 타선이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여 패전을 안았다. 그러나 노바는 플루크 논란이든 뭐든 간에 2011년 양키스 최고의 블루칩이 되었다.
2012년에 들어서도 리드를 잡은 경우 어지간하면 경기를 승리로 이끌어준 바 있다. 양키스 타자들이 다른 투수들이 등판하는 경기보다 노바가 등판하는 경기에서 점수를 잘 내주는 편이기도 하다. 비록 5월 2일 볼티모어전에서 패전[2]을 기록하면서 로저 클레멘스의 16연승에는 실패했지만 2011년 6월 3일 패전 이후 이어왔던 15연승은 양키스 프랜차이즈를 통틀어도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전반기동안 털리더라도 열심히 이닝을 먹어주면서 17경기에 나와 110.1이닝을 던지고 10승 3패 3.92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마감하며 소포모어 징크스를 비켜가는가 싶었다. 그러나 후반기에 들어서자 난타를 당하기 시작했다. 후반기에만 11경기 60이닝 2승 5패 7.05로 투수로 부르기도 민망할 성적을 찍고 말았다. 언제나 지적되었던 패스트볼의 커맨드가 후반기 들어 완벽히 무너졌고 2012년동안 제일 많은 장타를 허용한 선수가 되었다. 2012년을 12승 8패 5.02로 마감했지만 양키스에겐 4명의 선발이 확실히 자리를 잡았고 데이빗 펠프스까지 5선발 역할과 불펜을 오가며 좋은 모습을 보여줌에 따라 플레이오프 로스터에 들어가지 못했다.
비록 한해 시원하게 말아먹었지만 신인때 보여줬던 모습이 있어 팬들에게 3-4선발 정도의 기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늘 지적되었던 패스트볼 커맨드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메이저리그에서 오랜 기간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3년 시즌에는 초반엔 그렇게 좋지 못했다. 방어율 6점대를 찍었다가 삼두근 염좌로 15일 DL에 올라 한 달간 쉬다가 5월 말부터 불펜으로 복귀해서 두 경기 동안 잠깐 던지고 다시 약 1달간 마이너에 있다가 6월 23일부터 다시 돌아왔는데 이 때 이후로 점차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7월 5일 볼티모어와의 홈 경기에서 커리어 첫 완투승을 거두었다. 이후 도미넌트한 피칭을 꾸준히 선보이며 8월 31일에는 볼티모어 상대로, 9월 21일에는 샌프란시스코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기도 했다. 후반기에 5승 4패 2.78로 승운은 없었지만 사바시아와 구로다 대신 양키스의 에이스 역할을 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9승 6패 3.10이었다. 어느 정도 구위가 돌아온 것으로 보아 이제 한 시즌 내내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2014년 기대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2014시즌을 치르다 4월 15일 오른쪽 팔꿈치 인대 파열로 인해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아무래도 토미존 수술이 불가피 할것으로 보인다. 부상자 명단에 올라가기 전까지 2승 2패 8.27 ERA를 기록중이었지만 선발이 있는것과 없는것은 하늘과 땅차이다. 양키스가 머리좀 아플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후 CC 사바시아와 다나카 마사히로까지 부상으로 시즌아웃되며 졸지에 양키스 선발 3명이 줄어들었고, 마이클 피네다가 4월 23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부정투구를 하다 적발되며 10G 출장 정지 징계를 받으며 망했어요가 되버렸다.
이후 2016년 트레이드 데드라인 시점에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트레이드. 오랫동안 뛰었던 양키스를 떠나는 것이 아쉬웠는지 팬들에게 남긴 작별인사를 본 양키스 팬들은 모두 가서 잘 하라고 반응. 이적 후 한 달 간은 꽤 준수한 모습을 보이다가 9월 들어서 다시 널뛰기 피칭을 한 것으로 보아 피츠버그에 잔류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1년 재수가 유력한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