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메츠 No.3 | |
커티스 그랜더슨(Curtis Granderson) | |
생년월일 | 1981년 03월 16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일리노이주 블루아일랜드 |
포지션 | 중견수 |
투타 | 우투좌타 |
프로입단 | 2002년 드래프트 4라운드 |
소속팀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2004~2009) 뉴욕 양키스(2010~2013) 뉴욕 메츠(2014~) |
2011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득점왕 | |||||
마크 테세이라 (뉴욕 양키스) | → | 커티스 그랜더슨 (뉴욕 양키스) | → | 마이크 트라웃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번호 26번 | |||||
마이크 디페라이스(2004) | → | 커티스 그랜더슨(2004) | → | 밴스 윌슨(2005) |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번호 28번 | |||||
그렉 노튼(2004) | → | 커티스 그랜더슨(2005~2009) | → | 윌 라임스(2010~2011) | |
뉴욕 양키스 등번호 14번 | |||||
에릭 힌스키(2009) | → | 커티스 그랜더슨(2010~2013) | → | 브라이언 로버츠(2014) | |
뉴욕 메츠 등번호 3번 | |||||
오마 퀸타니야(2013) | → | 커티스 그랜더슨(2014~) | → | 현역 |
1 개요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호타준족의 중견수. 발도 빠르지만 타구를 날리고서 언제나 전력질주 하는 성실성때문에 팬에 비해 안티는 거의 없는편.
2 선수 시절
2.1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고등학교 시절에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대학에 들어갔고, 대학에서 다시 괜찮은 활약을 선보이면서 2002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지명되어 프로 무대로 들어갔다. 다만, 탈아마추어급의 괴물같은 실력을 뽐낸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순번은 낮은 편.
하지만 마이너에서 굉장히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며 2004년에 이미 메이저리그 맛을 봤고, 2006년에 드디어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었다. 주전 중견수 자리를 차지하며 19홈런을 치며 팀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이바지했지만, 그 해 삼진 1위를 먹는 한계를 보이기도. 하지만, 2007년 재능을 터뜨리면서 23홈런 74타점에 38개의 2루타, 23개의 3루타[1][2], 26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즉, 20-20-20-20[3]을 기록하며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부상했다.
2008년에도 22개의 홈런을 치고, 13개의 3루타로 3루타 1위에 오르면서 활약했고, 2009년에도 30개 홈런을 치면서 디트로이트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팀 재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2009년에 타율이 급락하면서 공갈포의 기미가 보이자, 디트로이트는 과감하게 장기계약을 맺었던 그랜더슨을 3각 트레이드를 통해 뉴욕 양키스로 보냈다.
2.2 뉴욕 양키스
뉴욕 양키스에서의 첫 해인 2010년에도 24개의 홈런을 쳤지만, 디트로이트에서의 마지막 해 보여준 공갈포 기질이 여전히 발동. 타율이 0.247에 불과하다. 반대로 양키스가 내준 이안 케네디는 엄청 잘 나가는 바람에 아깝나 싶었는데... 2011년 홈런이 폭발했다! 시즌 절반도 지나기 전에 벌써 17개 홈런을 치면서 활약하더니 시즌 최종성적은 타/출/장 0.262 0.364 0.552 41홈런 119타점 25도루 OPS 0.916으로 낮은 타율만 아니면 가히 MVP로도 손색이 없을 스탯을 찍었다.[4] 윌리 메이스에 이어 40홈런-20도루-10 3루타 고지에 오른 역대 2번째 선수가 되었다. 양키스 프랜차이즈 역사로 봐도 조 디마지오-미키 맨틀에 이어 중견수로서 40홈런을 달성한 역대 3번째 선수이자 50년만에 나온 양키스 중견수의 40홈런이다.
2012년 초반, 홈에서 16경기만에 10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1926년 베이브 루스의 19경기보다 빠른 프랜차이즈 기록을 만들어냈다.'#' 2012년을 .232 .319. .492 43홈런 106타점으로 마감했는데, 195삼진으로 양키스 선수의 단일시즌 삼진 기록도 경신했다. 8월 이후 1할대 타율에 머무르면서 비율 스탯을 많이 까먹고 말았다. [5] 아쉬운 점을 또 하나 들자면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2홈런을 몰아치며 홈런왕 미겔 카브레라를 1개차까지 쫓았는데 마지막 타석에서 그냥 교체되었다(...)[6] 그렇다. 2년 연속 홈런 2위..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는 양키스가 졸전끝에 디트로이트에게 완패하는데 일조하면서 팬들에게 을사오적 격인 양키 4적이라고 까였다.
수비지표인 UZR가 점점 하향세를 보여 수비 면에서 기여도가 점점 떨어지는 탓에 2013년에 들어서면서 좌익수로 뛰기 위해 브렛 가드너와 포지션을 바꿔 스프링캠프에서 적응하려는 시도가 보였으나 시범경기 첫 타석에서 햅등이 J.A. 햅의 투구에 손목을 맞아 골절되면서 시즌 개막 후 한달 이상을 결장하게 되었다. 그랜더슨이 좌익수로 경기에 나선 경험의 거의 전무[7]하기 때문인지 포지션 변경도 일단은 없던 일로 되어가는 분위기가 되었다. 거기다가 버논 웰스가 들어오면서 웰스가 좌익수를 보고 있으니 포지션 변경은 없을 듯... 이었지만 마이너 리햅에서 코너 외야수로 뛰었으며 복귀 이후에도 브렛 가드너가 출장한 경기에서는 좌익수와 우익수를 번갈아 출장했다. 그러나 복귀한지 8경기만에 세자르 라모스의 투구에 왼손 새끼손가락에 골절상을 입으며 또 다시 4-6주간 결장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부상자가 거듭해서 속출하고 있는 팀의 입장에서도 안타깝고 FA를 앞두고 있는 선수 본인에게도 매우 안타까운 시즌이 진행되었다.
그랜더슨의 2013년은 .229 .317 .407 7홈런 15타점으로 최악의 시즌이 되었다. 8월에 다시 복귀한 이후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9월에 슬럼프가 찾아오면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FA가 되면서 본인은 양키스 잔류를 첫 번쨰 옵션으로 생각했지만 양키스의 오프시즌 행보가 $189m 프로젝트와 외야수 노인정포화현상으로 인하여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흘러가면서 고향팀인 화이트삭스에서 슬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떴다.
화이트삭스가 쿠바 출신인 호세 어브레유와 계약하면서 관심을 끊었지만 다년 계약을 받고자 양키스의 퀄리파잉 오퍼를 거절하면서 시장에 나왔다.[8] 굵직한 루머는 적었지만 뉴욕 메츠와 계속 링크되더니 결국 4년 $60m에 계약했다. 어쨌든 뉴욕에 잔류 메츠와 계약 후 화이트삭스와의 링크는 사실이 아니라는 보도가 떴다.
2.3 뉴욕 메츠
메츠 입단식에서 진정한 뉴요커는 메츠팬이다 드립을 쳤다. 2014년 5월 5일을 기준으로 타율 .173 OPS .550의 최악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마구잡이 스윙은 여전하고 양키 스타디움을 벗어나자 유일한 장점인 홈런도 줄어 고작 2개를 기록중. 2014 FA 최고의 먹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5월 달에 홈런 5개를 치며 장타가 살아나는듯 하더니, 6월달 타율은 3할을 넘어가고 장타력도 전성기에는 못미치지만 어느정도 회복된 모습을 보이며 데이비드 라이트까지 부진하는 타선에서 그나마 사람다운 활약을 하고 있다. 시즌 초반 -1.0 아래까지 떨어졌던 fwar도 1.0 언저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나마 시즌 초반의 삽질을 만회했다.
어느 정도 반등하긴 했으나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며 20홈런 66타점에 .227/.326/.388/.714 정도의 스텟으로 시즌을 마쳤다. 데이빗 라이트가 역대 최악의 성적(.269/.324/.374/.698)을 기록했기 때문에 그나마 선방했다는 반응.
2015년에는 작년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랜더슨 특유의 공갈포 기질은 여전하지만, 지난 시즌보다는 OPS가 거의 0.1 정도가 더 높아 OPS형 타자의 마지노선으로 보이는 0.8 이상은 찍어 주고 있다. 팀도 작년과 다르게 순항하면서 9월 6일까지 지구 1위를 기록 중이다. 5할이 간당간당한 워싱턴, 그리고 NL 최하위 3형제들이 모두 동부지구에 있는 덕분에(특히 애틀랜타는 11연패 중) 거의 다가온 지구 우승에도 어느 정도 공헌하고 있다. 먹튀 소리를 듣지 않을 정도로는 하고 있다는 것.
어떻게 보면 2년간 합산 fwar가 6.3이니 같은 시기 계약했던 추신수, 자코비 엘스버리보다 가성비가 좋은 모습이다.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이다가 2016년에는 시즌 종료 후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상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
톱타자로 쓰기에는 출루율이 떨어지는 편. 이유는 타율이 낮기 때문인데, 삼진을 많이 당하는 타자인데다 특히 심각한 좌상바다. 통산 좌투수 상대타율이 220을 간신히 넘는 수준. 거기에 삼진과 장타율까지 비교하면 더 심각하다. 빠른 발로 만드는 2루타와 3루타로 이를 극복하고 괜찮은 장타력으로 커버하는 선수이다. 한국이라면 1번보다는 5,6번을 칠 타입의 선수.
그러나 좌상바 기질은 2010년 후반기부터 많이 고쳐졌다. 케빈 롱 타격코치와 타격폼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스트라이드를 줄이고 뱃의 위치를 좀 더 세우기로 했는데 왼쪽 어깨가 빨리 열리는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그 결과 2011년에는 좌투수 상대로만 16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또한 삼진을 많이 당하기도 하지만 볼넷도 은근히 많다. 기복이 심한 편인 것은 여전히 단점으로 꼽힌다.
스윙 메커니즘이 우측 펜스가 짧은 양키 스타디움과 알맞는 모습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통산 커리어 기록을 보면 홈/원정에서의 스플릿 차이가 거의 없는 선수인데 양키스로 오면서 홈런이 크게 늘어나긴 했다.
양키스 시절 타격에서의 기여도는 팀내에서 상위권에 자리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수비 기여도는 오히려 리그 최악에 가까워졌다. 특히 수많은 중견수 깊은 타구에 만세를 부르다가 2루타, 3루타를 헌납하는 타구판단미스가 갈수록 심해진게 문제.
게다가 FA가 되는 2013시즌 이후 만 33세를 맞이하기 때문에 장기 계약을 주기에는 부담이 간다는 문제점이 있어 장기 고액연봉자들이 많이 있고 페이롤을 감축하는 과정에 있는 양키스 팬들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계약 기간까지만 함께 하자는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결국 양키스도 픽을 얻는 것에 만족했다.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 ||||||||||||||
년도 | 소속팀 | 포지션 | 경기 | 타율 | 안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출루율 | 장타율 | fwar | 비고 | |
04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CF | 9 | .240 | 6 | 0 | 0 | 2 | 0 | .321 | .360 | 0.1 | - | |
05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CF | 47 | .272 | 44 | 8 | 20 | 18 | 1 | .314 | .494 | 1.1 | - | |
06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CF | 159 | .260 | 155 | 19 | 68 | 90 | 8 | .335 | .438 | 4.0 | - | |
07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CF | 158 | .302 | 185 | 23 | 74 | 122 | 26 | .361 | .552 | 7.9 | - | |
08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CF | 141 | .280 | 155 | 22 | 66 | 112 | 12 | .365 | .494 | 4.1 | - | |
09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CF | 160 | .249 | 157 | 30 | 71 | 91 | 20 | .327 | .453 | 2.9 | AL AS | |
년도 | 소속팀 | 포지션 | 경기 | 타율 | 안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출루율 | 장타율 | fwar | 비고 | |
10 | 뉴욕 양키스 | CF | 136 | .247 | 115 | 24 | 67 | 76 | 12 | .324 | .468 | 3.9 | - | |
11 | 뉴욕 양키스 | CF | 156 | .262 | 153 | 41 | 119 | 136 | 25 | .364 | .552 | 6.8 | AL AS, AL SS AL RBI | |
12 | 뉴욕 양키스 | CF | 160 | .232 | 138 | 43 | 106 | 102 | 10 | .319 | .492 | 2.7 | AL AS | |
13 | 뉴욕 양키스 | CF | 61 | .229 | 49 | 7 | 15 | 31 | 8 | .317 | .407 | 1.6 | - | |
년도 | 소속팀 | 포지션 | 경기 | 타율 | 안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출루율 | 장타율 | fwar | 비고 | |
14 | 뉴욕 메츠 | RF | 155 | .227 | 128 | 20 | 66 | 73 | 8 | .326 | .388 | 1.2 | - | |
15 | 뉴욕 메츠 | RF | 157 | .259 | 150 | 26 | 70 | 98 | 11 | .364 | .457 | 5.1 | - | |
16 | 뉴욕 메츠 |
5 기타
그랜더슨 자신은 일리노이 출신이지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팬이었다고 하는데 어린 시절 전국방송에 당시 최강팀으로 꼽히는 애틀랜타 경기가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많이 접했다고 한다. 출신지에는 대체적으로 시카고 컵스의 팬이 많았지만 본인은 Saved by the bell이라는 시트콤에서 틈만 나면 컵스를 깐 것에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컵스의 성적에 실망했던 듯. 또한, 경기에 나서면 항상 스타킹을 끝까지 올려서 신는데, 이는 니그로리그 출신이자 흑인의 메이저리그 활동의 선구자인 재키 로빈슨과 사첼 페이지가 입던 스타일로 존경하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밝혔다.
메이저리그에서 얼마 없는 학사학위 취득자이기도 하다. 어린이를 위한 단체를 설립하여 운영 중이며 2008년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을 내기도 했다. 해외 야구 보급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영국, 네덜란드, 남아공, 뉴질랜드, 중국 등 여러 국가에 방문한 바 있다. 이처럼 많은 사회 활동에 참가하면서 훌륭한 인성에 대한 호평을 받고 있다. 아무래도 교사 출신인 부모님의 영향을 적잖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파일:Attachment/2012120215594001 59 20121202160010.jpg
2012년 12월 2일부터 4일까지 MLB를 대표하는 홍보대사로 한국을 방문했다. 12월 2일에는 SOS 서울 어린이마을에 방문하였고, 타임스퀘어에서 사인회를 가지며 유쾌한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자신의 트위터에 한때 팀동료였던 박찬호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3일에는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과에서 팬미팅을 가졌다. 원래 1시간 30분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일정상 30분도 안돼서 끝났고 개별 사인도 금지되었다고... 덕분에 팬미팅에 참가한 한국의 양키팬들은 매우 실망했다 카더라. 팬미팅이 끝난 후에는 서울중학교에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야구 클리닉에 참여했다.
2013년엔 네덜란드 출신인 릭 밴덴헐크가 2009년에 유럽에 야구를 전파하려는 의도로 만든 '유러피언 빅 리그 투어'에도 같이 참가했다.- ↑ 현대야구에서 시즌 20개 3루타가 정말로 드문 기록이었기에 그랜더슨의 시즌 20개 이상 3루타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 ↑ 2000년 이후 그랜더슨, 롤린스(2007), 크리스티안 구즈만(2000) 3명만이 20+ 3루타를 쳐냈으며 1950년 이후로 확대하더라도 7명뿐이다.
- ↑ 정말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2007년 지미 롤린스가 달성하면서 그 해 양대리그에서 모두 탄생했다.
- ↑ AL에서 타점, 득점 1위. 홈런 2위를 차지했다. 8월까지는 유력한 MVP 후보였지만 9월에 .205, .300, .375의 부진한 성적을 찍으며 스탯을 많이 깎아먹었고 결국 막판 부진과 낮은 타율이 걸림돌이 되어 4위에 그쳤다. 1위가 투수인 저스틴 벌랜더였고 2위와 3위가 플옵에 오르지 못한 팀의 선수들인 자코비 엘스버리와 호세 바티스타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쉬운 부분이다.
- ↑ 이는 브렛 가드너가 4월 중순에 팔꿈치 부상을 당한 이후로 대체할 수 있는 중견수가 없어 거의 휴식일 없이 풀타임을 뛴 영향도 어느 정도 있다.
- ↑ 미기는 이로써 단독 홈런왕을 차지했고, 결과적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완성했다.
- ↑ 2012년까지 2005년에 54.2이닝, 2007년에 5이닝만 좌익수로 뛰었고 그 외에는 모두 중견수로 나섰다.
- ↑ 나이가 33세인지라 다년 계약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찬스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