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맏딸. 생몰연도 불명. 아버지인 세조가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려는 것에 반감을 품어 내쫓긴다. 정희왕후는 딸을 가엽게 여겨 세조 몰래 세희를 충청북도 보은군으로 보내서 살게 했는데, 이곳에서 만난 한 총각과 알게 되어 결혼을 한다. 부부는 서로 자신의 정체를 숨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은 김종서의 손자로, 계유정난 당시 세조에 의해 김종서 일가가 멸문했지만 멀리서 유학하고 있어서 몸을 피신했던 덕에 다행히 살아남았던 것. 부부는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헤어지지 않고 동굴에 숨어 살았으나, 세월이 지나 과거의 일을 후회한 세조에게 용서와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세조가 그들을 정식으로 공주, 부마로 받아들이려고 찾아가자 부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 찾을 수 없었다.
이세희와 그녀와 결혼한 김종서의 손자가 실존인물이었을 가능성은 낮다. 정사에 기록된 세조의 딸은 의숙공주뿐이며, 왕실 족보인 선원록이나 조선왕조실록에서 또다른 딸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계유정난 후 김종서의 후손은 모두 노비가 되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유학 중이어서 화를 피한 손자의 이름도 찾을 수 없다. 김종서의 본관인 순천 김씨에도 금계필담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는 하지만 기록된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정인지가 지은 세종대왕릉의 지문에는 수양대군이 윤씨와 결혼해 1남 2녀를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1남은 의경세자이고 2녀 중 한 사람은 의숙공주지만, 나머지 딸의 정체가 불분명하다. 반면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에는 2남 1녀를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들이 두 명인 것은 예종이 태어난 이후라서지만 딸 한 명의 존재가 사라진 것. 이를 두고 세조에게는 수양대군 시절 딸 두 명이 있었으나 왕위에 즉위한 후 내친 딸을 공주로 책봉하지 않고 존재도 의도적으로 삭제했다고 보기도 하지만[1], 단순히 세조가 즉위하기 전에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에는 왕의 자식이라도 아버지가 왕위에 즉위하기 전에 죽으면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지 않는 일은 흔했기 때문. 일례로 태종 이방원에게도 양녕대군 위로 세 명의 적자가 있었으나 태종이 왕위에 즉위하기 전에 죽어 대군으로 봉해지지 않았으며, 기록에서도 태종의 적자는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 성녕대군 4남뿐이다.
2011년 계원필담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가 방송되었다. 다만 드라마에서는 '이세령'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 단종이 자살해서 왕의 예로 장사지냈다고 실록조차 버젓이 왜곡해놓았던 세조이니 딸 하나 존재 없애는 것쯤이야 일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