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악(李庸岳, 1914~1971)
1 생애
대한민국의 시인. 1914년 11월 23일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두만강 인근에서 밀수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다 이용악이 어리던 시절 마적의 습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이용악의 시 <다리 위에서> 나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등에서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엿볼 수 있다.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상지대학(조치대학)에서 유학하다 1935년 월간지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같은 해 김종한과 더불어 동인지 《이인》을 발간하고 계속하여 《신인문학》에 「애소귀언」, 「무숙자」 《신가정》에 「너는 왜 울고 있느냐」 <조선일보>에 「임금원의 오후」, 「벌레소리」, 「북국의 가을」, 「오정의 시」 이듬해 1936년에 <조선중앙일보>에 「다방」 《낭만》에 「오월」 등을 발표함으로써 탄탄한 기본기를 다진다. 이후 1937년과 1938년 연거푸 두 권의 시집 『분수령』과 『낡은 집』까지 발표함으로써 풍부한 작가적 역량을 과시한다. 1939년 유학을 마치고 <인문평론>의 기자로 근무하다 일제에 의해 강제폐간당한 후 1942년 귀향한다. 광복 후 다시 서울로 돌아가게 된다.
1946년 광복 후 조선문학가동맹의 시 분과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중앙신문』 기자로 생활하였다. 이 시기에 시집 『오랑캐꽃』을 발간하였다. 조선문학가동맹 자체가 좌익적인 성향이 강한 단체였기 때문에 그는 곧 정부(당시는 미군정)에 찍히게 된다. 1949년 시집 『이용악집』을 발표하였으나 정부로부터 불온삐라 유포 혐의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석방된다. 이후 남로당계의 임화, 오장환, 김남천 등과 만나 <원쑤의 가슴팍에 땅크를 굴리자>와 같은 시를 <조선인민일보>에 발표하기도 하였으며, 이후 박태원 등과 함께 월북하였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남로당이 대거 숙청당하였고, 이용악도 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게 된다. 그나마 가벼운 처분을 받아 한동안 집필금지를 당했다가 이후에는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시들을 발표해야 했다. 1971년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2 작품 특징
이용악의 시는 1930년대의 모더니즘 기류의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근본적으로 리얼리즘 경향이 강한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절제하는 기법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감정과 현실을 드러내는 시가 많으며, 특히 일제 치하의 처참한 민족사를 숭고한 표현을 통해 잘 드러내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격앙된 어조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되려 담담하고 과장 없이 나타내고 있다. 이로 인해 민중의 비극적 모습은 그 효과가 배가된다. 또한 작품 속에 화자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여 서사적인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문학적 표현력이 매우 우수한 시인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 말에는 친일시, 월북 이후에는 북한체제 찬양시를 다수 창작하여 남한에서는 의도적으로 배제되었으나 80년대 이후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3 기타
매년 수능 출제 후보 작가이기도 하다. 2005학년도 수능에 <낡은 집>이 출제되었고, 그 외에도 모의평가나 EBS 연계교재 등에 <다리 위에서>,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 <전라도 가시내>, <오랑캐꽃>,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그리움> 등... 상당히 많은 작품이 출제되거나 출제 예상 작품에 꼽힌다. 항상 출제 가능성이 높은 작가이면서도 월북 작가라 최근에야 연구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는 정지용등과 비슷하다고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