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태

1 독립운동가 이용태(李容)

2의 인물과는 관계없음.

1890년에 태어나 제천군 백운면장을 지내다 동생인 이용준이 독립운동을 하던 중 압송되자 독립 운동에 뜻을 두고 만주로 건너가 대종교에 들어가서 독립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1942년 대종교 간부들이 일제에 의해 집단 검거 되었을 때 함께 붙잡혀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45년 광복 이후 출감해 대종교 사업에 전념하다 1966년 세상을 떠났다.

1968년 대통령표창이,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1990년에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 친일파 이용태(李容)

경술국치를 앞당긴 인간쓰레기
1854년 태어나 벼슬 자리에 오른 후 장흥 부사로 있던 중 고부에서 민란이 발생하여 조병갑이 쫓겨나는 사태가 발생하자 정부에서는 이용태를 안핵사로 임명하여 민심을 달래려고 했다.

그러나 이용태는 고부의 민심을 달래기는 커녕 "모든 책임은 동학에게 있다"고 하여 동학 교도는 물론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고 아무 연관도 없는 이들까지 괴롭히고 죽이자 분노한 농민들이 다시 들고 일어나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동학농민운동이다. 애당초 그냥 아무 말 없이 그냥 넘어가면 될 거를 들쑤셔 놔 평범한 난동 정도로 끝났을 사건을 대대적인 봉기로 바꿔버렸고 게다가 이 봉기로 청일전쟁이 벌어지면서 일본이 한반도의 세력균형을 깨고 장악하는 계기를 만드니 이게 얼마나 엄청난 병크인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아예 매국할 원인을 만들어버린 최고의 매국노..

여하튼 이렇게 동네 소동을 전국적 반란으로 키운 죄로 탄핵당했으나 어찌어찌 다시 기용되었고 승진을 거듭, 1910년 경술국치 때에는 궁내부 특진관과 학부대신 등을 거치면서 희대의 개XX 이완용과 협력해 자기를 탄핵한 원수같은 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일조해 일본으로부터 남작 자리를 받고 잘 먹고 잘 살다 1926년 죽었뒈졌다. 하늘도 무심하지..

당연히 의심할 여지도 없는 친일파로 현재 그의 재산은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그를 친일파로 규정하면서 국가에 의해 압류되었고 친일인명사전에도 예비명단에 그 이름이 올라가 있다.

3 전 기업인 이용태(李龍兌)

이용태(기업인) 문서로.

4 여담 (...)

1의 인물과 2의 인물은 한 글자 차이인데 행적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