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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川一家4人殺人事件
1992년 3월 5일, 일본 치바현 이치카와시에서 일어난, 일가족 4인이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
사건의 발단은 19세 불량 미성년자의 비행(非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미 어릴 때부터 눈에 보이는 여자마다 강간하고 강도짓을 일삼았던 이 범인은 2월 8일, 필리핀인 호스티스를 납치한 뒤 이틀 동안 감금하고 강간했다. 이 호스티스는 이틀 뒤 자신의 가게로 돌아와 가게 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가게 주인은 빡친 나머지 자신이 알던 야쿠자에게 이 범인을 손봐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이걸로 인해 그는 야쿠자에게 쫓기게 되었다. 불안해진 범인은 2월 11일, 도쿄도 나카노구에서 길을 걷는 여성을 덮쳐, 차로 자신의 집까지 끌고 가서 강간하는 짓을 저질렀다.
2월 12일,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 여고생이 이 범인의 눈에 띄게 되었다. 범인은 쇼핑을 마치고 자전거로 집에 돌아가던 여고생을 차로 들이받은 뒤, '치료를 해준다'면서 병원에 데려갔다. 치료를 받고 나온 여고생에게 범인은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자신의 차에 타게 했다. 의심 없이 차를 탄 여고생이었지만...... 범인은 흉기로 위협하여 자신의 집으로 여고생을 끌고 간 뒤 그곳에서 그녀를 강간했다. 그리고 그녀의 학생수첩에서 소녀의 이름과 집주소를 베껴 적은 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협박하고 돌려보냈다.
같은 날 밤, 범인은 호스티스 가게 주인의 요청을 받은 야쿠자의 두목에게 끌려갔다. 야쿠자 두목은 그에게 호스티스를 이틀 동안 감금한 것에 대해 피해보상조로 200만엔을 가져오라 협박했다. 범인은 야쿠자들이 두려워서 결국 여기에 동의하고 겨우 풀려나올 수 있었다.
200만엔을 도무지 구할 길이 없게 되자, 범인은 전에 자신이 교통사고를 낸 뒤 강간했던 그 여고생을 떠올렸다. 그녀의 집에 돈을 훔치러 들어가기로 결심한 그는 3월 5일 오후 4시 30분경(5시라는 이야기도 있다), 여고생의 집에 침입했다. 그 시간에는 여고생의 할머니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범인은 할머니에게 예금통장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지만, 할머니가 이를 거부하자 전기 코드로 할머니의 목을 졸라 살해한 뒤,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8만엔을 빼앗았다.
그 뒤로 범인은 그 곳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다른 가족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오후 7시경, 여고생과 어머니가 집 안에 들어서자, 범인은 식칼을 들이대고 협박하면서 등을 보이고 엎드리게 했다. 두 사람이 엎드리자 범인은 여고생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살해하고, 그녀에게 피가 흐른 바닥을 닦게 했다.
얼마 뒤, 여고생의 4살 된 여동생이 돌아왔다. 보모를 돌려보낸 뒤 범인은 여고생에게 저녁식사를 만들게 하고 셋이서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을 먹은 후 졸음이 온 여동생은 '할머니와 같이 자겠다'면서 할머니 방에 들어갔다. 여동생은 할머니의 죽음을 모른 채 할머니의 시체 옆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범인은 여고생에게 예금통장의 소재를 물었다. '아버지밖에 모른다'는 말에 범인은 여고생의 아버지가 귀가하기를 기다리면서 그 사이에 그녀를 다시 한 번 강간했다.
오후 9시경, 회사를 운영 중이던 여고생의 아버지가 귀가했다. 여고생을 강간하던 범인은 아버지가 들어오는 기미에 식칼을 들고 숨어 있다가 아버지를 덮쳐 칼로 찌른 후, 200만 엔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딸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는 예금통장이 있는 곳을 가르쳐줬다. 그러나 욕심이 생긴 범인은 더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아버지는 '회사 사무실에 다른 통장과 인감도장이 있다'고 말했고, 범인은 여고생을 시켜서 사무실에서 그 통장과 인감도장을 가져오게 시켰다.
여고생은 아버지의 사무실로 가서 예금통장과 인감도장을 가져왔다. 아버지 회사의 동료들이 왠지 이상한 모습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아버지와 동생이 인질로 잡힌 것이 두려웠던 여고생은 야쿠자 핑계를 대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범인은 그녀의 아버지를 살해한 뒤였다. 그 뒤로도 범인은 그 집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6시경 걱정이 된 아버지 회사의 직원이 여고생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몰래 전화를 받던 여고생은 그만 범인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큰 소리를 내며 소녀를 위협하자, 범인의 큰 소리에 놀라 겁을 먹은, 4살 된 여동생이 울기 시작했다. 범인은 시끄럽다면서 여동생까지도 칼로 살해해버렸다. 그 전까지 공포의 정점에서 꼼짝 못 하던 여고생이 여동생의 죽음에 완전히 이성을 잃고 범인에게 저항하자, 범인은 여고생의 왼팔과 등에 칼로 큰 상처를 입힌다.
어처구니없게도 범인은 그 뒤에도 계속 그 집에 머무르고 있다가, 오전 9시쯤, 여고생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여고생의 집으로 출동해서 범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이때 범인은 경찰이 들이닥치려 하자, 여고생에게 자신이 흉기로 쓴 칼을 쥐게 하고 피해자인 척 연기를 하는 얄팍한 수작을 부리기도 했다.
이 범인은 아무런 죄책감이나 죄의식도 없이, 오히려 '1988년에 일어난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범인들도 징역형을 받았는데, 나는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식으로 자신의 행위에 대해 말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소년법상으론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사형은 면할 거라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경우는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주범과 달리,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넘어선 상황이라 법적으로는 사형 선고가 가능했고, 결국 일본 재판부는 '죄질이 나쁘고 잔인하다'라는 이유를 들어 범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2015년 현재, 도쿄 구치소에 수감중이고, 재심 청구 중이다.
여담이지만, 이 사건에서 살해된 여고생의 아버지는 로스의혹사건에서 미우라 카즈요시[1]의 얼굴을 그대로 노출시킨 사진을 실어 논란이 된 언론기사에서 미우라 카즈요시의 얼굴을 촬영한 카메라맨이었다고.
이후 이 사건의 피해자 겸 유일한 생존자인 여고생은 사건 후 24년이나 지났는데도 행방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비록 범인을 체포할 당시 경찰이 신속하게 구출해내고 보호했다고는 하지만, 강간을 여러 차례 당하고, 일가족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고, 시체에서 나온 피를 직접 닦기까지 했는데, 2016년 현재 40대 초반인 나이라고는 해도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을지는 분명 상상하기도 괴로운 일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2]- ↑ 축구선수 미우라 카즈요시와 동명이인이다.
- ↑ 아버지 회사에 들렀을 때 회사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경찰에 연락했다면 가족을 구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여고생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 이미 자기 가족이 눈앞에서 죽고 강간까지 당한 상태에서 과연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다만 집까지 태워준다던 범인이 자기 집주소를 알아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실대로 말하고 대책을 세웠다면,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안타까운 일. 물론 강간이나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면, 꼭 부모님, 배우자, 친구, 동료, 경찰 등등에게 알려주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맞는 행동이지만, 그것을 털어놓는 데는 엄청난 각오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