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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子高生コンクリート詰め殺人事件
1 개요
1988년 11월 26일부터 1989년 1월 4일까지 약 40일에 걸쳐 일본에서 15~18세 되는 소년들이 원한도 없고 만난 적도 없었던 여고생을 하교길에 납치하여 수 개월간 감금하며 여러 명이서 온갖 고문과 성폭행으로 학대하고 끝내는 살해한 뒤 공사장 인근의 드럼통에 넣어 콘크리트로 묻어 은폐하고 나서 평상시와 똑같이 일상을 산 사건.
그리고 20여 년 후, 한국에서 이 사건과 유사한 점이 있는 성남 지적장애 소녀 살해 암매장 사건이 발생했으며, 25년 후에 한국에서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이 또 발생했다. 26년 후에는 대한민국 국군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2 사건의 발단
피해자 후루타 준코(古田順子, 1971년 1월 18일 ~ 1989년 1월 5일)의 사진.
1988년 11월 25일, 소년 A는 자전거로 아르바이트에서 귀가 중이었던 소녀를 발견한다. 소년 A가 공범이었던 소년 C에게 소녀를 발로 차도록 지시하였다. 공격을 받은 소녀는 도로 옆의 도랑에 자전거와 함께 넘어진다. 소년 C는 소녀를 발로 찬 뒤 도주했고, 소년 A가 나타나 '위험하니 데려다 주겠다. 나도 아까 그 녀석에게 칼로 위협당했다' 며 말을 걸어 소녀를 데려다주게 된다.
하지만 소녀의 집에서 10분쯤 남은 어두운 창고 앞에서 '난 야쿠자의 간부다. 야쿠자가 너를 사고로 위장해 차로 치어 죽이기로 되어있다. 얼마 뒤 차도 이리로 오겠지만 한 번 하게 해주면 용서해준다.'며 소녀를 호텔로 데려가 강간했다. 그 후 '원래는 야쿠자가 너를 죽이기로 되어 있었지만 넌 내 여자친구와 닮았으니 살려주고 싶다. 너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윗선과 잘 얘기해볼 테니 그때까지는 여기에 있어라'고 말하며 소년 C의 2층집으로 끌고 가 수 시간 동안 폭행을 가했고, 신고를 한다거나 하면 야쿠자가 가족을 몰살할 거라고 위협하여 탈주를 저지하려 했다.
3 사건의 전개
11월 30일, 소녀를 집에 보내지 않고 오랜 시간이 흘러 혹시 소녀의 부모님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까 걱정된 소년 A. 소년 A의 제안으로 피해자의 부모에게 '가출했으니 찾지 마. 친구의 집에 있으니 실종신고는 취소해 줘'라고 먼 지역의 공중전화로 5일에 걸쳐 3회씩 전화하게 하며, '경찰서도 멀리 있고, 근처에도 야쿠자가 너를 감시하고 있다' 고 협박했다.
소년 C의 모친은 피해자를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고, 분명히 소녀가 집에 있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소년 C의 모친이 부엌에 있었을 때 현관에서 소녀를 데리고 들어와, 모친은 '이제 늦었으니까 돌아가세요'라고 말했지만 대답하지 않고 2층에 올라갔다. 소년 C의 부친도 소년 C가 내려왔을 때 '빨리 돌려보내'라고 말하는 등 소년 C의 부모님도 그 당시에는 소녀가 집에 있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다음날, 그 아이는 돌아갔다고 말해 소년 C의 부모님은 의심을 품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피해자가 학대당하던 바로 옆방에는 C의 형이 살고 있었음에도 그는 모른 척했다.
한 번은 소년 C의 모친이 소녀가 계속 집에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피해자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댁에 이런 이름의 딸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고, 피해자의 모친은 '지금은 없습니다. 그쪽은 누구십니까' 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소년 C의 모친은 주저하다가 가짜 이름을 대고 바로 끊어버려, 피해자의 부모는 가짜 이름을 토대로 수사를 벌여야 했기에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소년 C의 모친에 의하면 식후 텔레비전을 보거나 같이 패미콤(게임)을 해 사이가 좋은 걸로 알고 있었고, 소녀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는 등 불량한 소년 C의 친구인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소녀는 소년 C의 모친의 설득에 의해 귀가하게 되지만 밖에는 소년 C와 소년 C의 형이 대기하고 있어 실패, 결국 소녀는 소년 C의 부모님이 잠드는 것을 기다려 전봇대를 타고 올라 2층의 소년 C의 방으로 돌아온다. 그 뒤 그 소녀를 집단 성폭행한 뒤, 무참히 폭행하는 등 그 소녀는 단지 스트레스를 푸는 기계가 되어버렸다.
그 여학생은 하루 18시간 이상의 폭행과 성적 고문을 당했고, 집에 돌려보내달라고 요구하면 그 폭행은 더욱 심해졌다. 여학생은 초기에는 '살려줘'라 했으나 학대 행위가 심각해진 감금 말기에 이르러서는 자신을 "죽여줘"라 말하는 상황이 되었다. 또한 가해자 소년들이 폭행할 때 틀어 놓은 타케다 테츠야의 '성원(声援)'이라는 노래의 가사인 '힘내, 힘내'를 때때로 혼잣말하며 자신을 다독였다고.
감금 초반에는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3,000엔으로 요리배달을 시켜 먹이거나 소년 C가 소녀의 칫솔 등을 사주거나 하는 등 나름의 '배려'를 해주었으나 감금이 지속될수록 소녀의 상처나 화상이 심해짐에 따라 식사, 목욕에 대해 그 약간의 배려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12월 하순까지의 식사는 컵라면, 빵, 우유, 계란 등 집에 있던 것을 소년 C의 형이 먹였지만, 그 이후부터는 쇠약한 탓도 있어 하루에 우유를 한 컵 먹일 뿐이었다.
12월 초, 소년 A등 4명이 낮잠을 자고 있던 틈에 피해자는 1층에 내려와 경찰에 신고하였지만 곧 소년 A가 눈치챈다. 그 뒤 전화가 끊어지고 구타, 경찰이 역탐지하여 다시 소년 C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소년 A는 걸려온 경찰의 전화에 장난 전화였다며 무마시켰다.
그리고 그 뒤로 소녀에게 가해진 일 들은 실로 하다못해 짐승도 이렇게는 하지 않을 정도로 참혹한 일이었다.
더구나 이 천하의 개쌍놈들은 만약 소녀가 밖으로 나가면 경찰에 신고되어 자신들이 체포될 것이라 판단하여 자살로 위장해 죽이자느니, 분쇄기에 넣자느니, 콘크리트에 넣어 바다에 던지자느니 하는 대화를 웃음 섞어가며 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4 피해자가 당한 일들
- 소년 C는 집에 "재미있는 것이 있다"며 아는 사람에게 공언해 소년 C 주위의 100여 명 정도는 소녀의 감금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재판 기록에 나와있는 것만으로도 10명이 직접 폭행 및 강간에 관여하였다. 어떤 여자는 소녀의 얼굴에 '화장'이라며 매직펜으로 수염을 그리기까지 했다.
- 소녀의 성기에 성냥을 삽입해 불을 질렀으며, 손, 발, 정강이, 무릎 등에 라이터 기름을 발라 불을 질렀다!! 엄청난 고통에 소리지르면 입과 코를 때렸다. 그리고 다시 불을 질렀다. 상처가 아물 틈이 없이 화상을 입어 끝내 상처가 곪고 썩어 악취가 나게 된다. 곪은 상처가 심해져 방 천장을 비롯한 온 방안에 피가 튀기도 하였고 소녀는 이미 자력으로 일어서지도 못하게 되었다.
- 그들은 아주 사소한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아 소녀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으며, 무차별 고문과 학대에 소녀의 상태가 악화되어 악취가 생기자 소년 A는 소년 C의 부모님이 눈치챌까 두려워 아래층의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그때부터는 종이팩에 일을 보게 했다.
- 그들은 소녀에게 억지로 술을 다량 먹여 고통스러워 하며 토하는 모습을 즐기고는 이에 대해 더럽다며 폭행하고, 소녀의 항문과 성기 등에 불꽃놀이용 폭약을 꽃아놓고 터뜨렸고, 고통스러워 하는 여학생에게 웃으라고 강요하며, 만약 소녀가 억지로 웃지 않으면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이렇듯 약간이라도 저항한다고 생각되면 더 큰 폭력을 행사하며 이후 소녀는 약간의 저항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고, 심지어 어떠한 언어적 폭행이나 물질적 폭행을 가해도 반응을 하지 않는지경에 이른다. 부검 당시 소녀의 항문과 직장은 심각한 화상 때문에 망가져 있었다고 한다.
- 소녀의 안면을 구타해 코 높이까지 부어오르게 했고, 이를 보고 그들은 '뭐야, 너 얼큰이가 됐구나'라며 놀렸다. 또한 그 볼과 눈 부분에 촛농으로 양초를 고정해놓은 채 소녀의 성기와 항문에 온갖 이물질과 벌레 등을 삽입하였으며, 심지어는 페트병까지 넣었다. 그리고 폭행으로 그것을 소녀의 항문과 질 안에서 부수었다.
- 소녀는 매일같이 만약 풀려나면 경찰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며 믿어줄 때까지 뭐든지 한다고 소년들을 설득했기 때문에 소년들은 '알몸으로 춤과 노래를 해라', '미친 짓을 해보라'는 등 엽기적인 것들을 시켰다.
- 영양실조와 스트레스로 인하여 이미 장기에 큰 손상을 입었던 피해자가 배를 감싸며 쓰러졌다. 소년 A의 얼굴을 보며 제발 물을 마시고 싶다고 부탁했다. 소년 A는 마지못해 물과 콘스프 그리고 포도빵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소녀는 이미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음식물을 소화해 낼 수 없었던 상태였으므로, 우유를 먹었지만 이내 토해버렸다.
- 소녀가 용변용 팩의 소변을 흘렸다고 소년 A는 격노했고, 이에 대해 사과하는 피해자의 하복부를 수십 회 구타하고 소녀의 상의를 전부 벗긴 뒤 혹한(12월)의 베란다에 내몰아 추위 속에서 소녀에게 여러 개의 담배를 억지로 피우게 하였다. 이에 (고통을) 견디지 못한 소녀가 구토하자, 소년 A는 따뜻하게 해준다며 이미 혼자서는 서지도 못하게 되어버린 다리에 라이터 기름을 뿌리고 점화하였다.
- 소년 A는 가수 코이즈미 쿄코의 테이프를 틀어 가사의 '예- 이!'에 맞추어 소녀의 옆구리를 박자에 맞추어 구타했다. 소녀가 고통 때문에 신음소리를 내면 더 맞기 때문에 억지로 고통을 참아 얼굴이 찡그려지면 소년들이 재미있어 하였다.
- 소녀는 자신이 배출한 소변과 대변 심지어는 맞아서 나온 혈흔을 비롯하여 살아있는 바퀴벌레까지 먹어야 했다. 이 지경에는 곪은 상처에서 출혈과 고름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피해자의 피와 고름을 보고는 소년들은 더럽다며 자신들의 손발에 비닐봉지를 쓰고 구타했다고 한다.
- 이 외에도 소년들은 일상적으로 육체적 및 정신적 학대를 일삼았다. 12월 5일 열차 추돌 사고[1]가 일어나 소년 A는 '저 열차에 네 아버지가 타고 있었고 그는 죽었다고 뉴스에서 봤다. 알고 있었냐?'라고 물었다. 이에 피해자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어떤 기분이냐'라고 물어 슬프다고 대답하니, '사실은 거짓말이야'라고 하며 이후 A, B, C 세 명은 '죽었다', '아냐, 살아있어'라고 대답을 번복하며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학대했다.
5 사건의 결말
1989년 1월 4일, 소년 A는 마작 내기에 크게 실패해 10만엔을 잃은 후 소년 D의 집에 가서 일행과 합류한다. 자신들의 극심한 학대로 피해자의 상태가 정말 심각해짐에 따라 피해자를 처리하기 귀찮은 물건 정도로 여겨 한동안 찾지 않고 C의 집에 방치해 둔 소년들이었지만, A는 마작에서 진 분이 풀리지 않고 10시에 개장하는 사우나에 가기 전, '마작에서 진 것도 다 그 녀석 때문이다. 오랜만에 그 녀석을 괴롭히러 가자' 고 제안해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무려 2시간에 걸쳐 소녀를 폭행한다.
소녀가 카세트에 머리를 부딪혀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감했지만, (그녀에게) '꾀병이다' 라고 말하며 폭행을 계속하고, 사우나에 간 후 다음 날 한 소년에게 '피해자의 상태가 이상하다' 는 연락을 받는다.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C의 자택에 가서 피해자의 사망 사실을 안 뒤 모두가 미친 사람처럼 소리내어 웃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즐거워서 웃은 게 아니다' 라고 하지만...
소년 A는 (죽은) 소녀를 이불로 싼 뒤 여행용 가방에 넣어 껌 테이프로 말아 근처의 공장에서 훔친 드럼통에 넣고 차에 실은 뒤 일하던 타일 공장에서 조달해 온 콘크리트를 흘려넣고 벽돌 등으로 고정했다. 굳이 콘크리트를 넣은 까닭은 공구리 괴담을 사실로 믿어서인 듯. 다큐에 따르면 만화(?!!)에서 힌트를 얻었다고도 한다. 이때 백주대낮에 당당히 피해자를 콘크리트에 매장한 장소는 놀랍게도 소년 A의 집 앞 주차장이었고, 들키지 않기 위해서인지 드럼통을 빌린 차에 실어 옮겼다고 한다.
드럼통을 숨기기 위해 이를 검은 쓰레기 봉투에 넣은 뒤 껌 테이프로 밀봉했다. 그 뒤 소년 A가 빌려온 왜건을 운전해 드럼통을 바다에 버리려 했지만 무서워져 도쿄의 매립지에서 도로 틈의 풀숲에 버렸다. 바다에 버렸다면 영영 미제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소년 A는 드라마 '톤보'의 마지막 회 비디오를 찾았다. 피해자가 납치된 날, 그녀는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보기 위해 아르바이트에서 빨리 귀가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대해서 피해자가 말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를 같이 넣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 비디오를 꽃다발과 함께 넣으려고 했지만, '범인을 특정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는 소년 B의 만류로 그만두게 된다. 자기들이 살해해놓고 무슨 헛짓거리인가 싶지만 사람이 죽어 슬픈 게 아니라 이 일에 대해서 소년 A는 "피해자가 불쌍하다기 보다는 저주받기 싫어서"라는 충격적인 이유를 밝혔다. 피해자를 학대할 때부터 그랬으나, 이 자들은 완전히 방사능 폐기물이다.
범인들이 시체를 유기한 장소 사진.
이런 천인공노할 살인사건은 가해자들의 시체유기로 영영 잊혀지나 했으나 사건 발생 4개월 뒤인 1989년 3월 29일, 뜻밖의 일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다.
소년 A는 1988년 11월 8일에 있었던 강간 및 절도 등의 혐의로 네리마 소년 감별소에서 아야세 경찰서 수사관의 조사를 받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담당 형사가 무심코 내뱉은 "너 사람을 죽이면 안 되잖아?"라는 질문에[2] 공범인 3명이 이미 사건에 대해 자백했다고 착각한 나머지 사건의 전모를 내뱉은 것이다. 만약, 담당 형사의 말실수가 없었더라면...
이 현실성을 날려먹은 터무니없는 소리에 경찰이 출동하여 도쿄 코토쿠와카스 15호지 해변 공원 정비 공장 현장 공터로 향했다. 현장에서는 콘크리트 범벅이 된 드럼통 하나가 발견되었으며 틈새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여 이를 즉시 크레인을 동원해 경찰서로 이동시켰다.
다음날 오후, 드럼통이 이동된 경찰서 내에서 해체 작업이 시작되었고 곧 보스턴백에 담겨져 두 장의 이불에 싸여진 여자의 시체를 발견하였다. 이미 몇 개월이 지났고, 유기될 당시 온전하게 유기된 것도 아니라 손상에, 시신 부패가 심각하게 진행되어있었다.
상세한 조사 결과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사인은 구타에 의한 외상성 쇼크 또는 위의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되었다. 사망 당일, 2시간에 걸친 폭력이 끝나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괴로워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했다고 한다.
소녀의 시신은 손발은 묶인 채였고 안면은 눈의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되었으며, 하반신은 안면보다 더한 상태였다. 얼굴의 뼈 일부는 으스러져 있었고, 가슴에 수많은 바늘이 박혀있었으며,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머리카락이 다 빠져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새끼손가락의 손톱이 벗겨져 있었고, 왼쪽 유두는 펜치와 같은 공구로 집혀 손상되었으며, 제대로 붙어있는 치아는 하나도 없었고, 뇌 또한 축소되고 약간 녹아있는 상태였다. 고막 역시 심하게 손상되었기에 최후에는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소녀의 피하 지방의 두께는 통상의 6% 정도로 극도의 영양실조 상태였었고 원래 51kg이었던 소녀의 체중은 36kg으로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피해자의 위장에서는 바퀴벌레와 다량의 정액, 그리고 소변 등이 발견되었다.[3]
이렇게 시신의 상태는 사망 당시에도 심각하게 손상되어 안면이 심하게 함몰 및 변형되어있었고 부패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외관으로 사인을 비롯한 인명 확인조차 불가능했다. 그러나 손상된 시신에 남아있던 지문과 치열을 조합해본 결과, 1988년 11월 26일 밤 아르바이트 후 귀가 도중에 행방불명된, 사이타마현 미사토 시에 살던 타카스 1번지의 현립 야시오 고교 3학년이었던 후루타 준코(古田 順子, 17)로 확인되었다.
피해자는 당시 야시오 시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뒤 귀가하지 않아 부모가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으며 피해자가 무사히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렸으며 부친은 일을 쉬어가면서까지 행방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관련인들의 진술도 참으로 통탄스럽다. 참으로 그 부모의 그 자식스럽다.
주모자 소년 A의 부모는 그나마 나은 부류였다. 자식이 저지른 범죄 행각을 안 소년 A의 부모는 충격을 받고 가산을 정리하여 5,000만 엔[4]을 피해자 부모에게 건넸으나, 피해자의 부모는 이를 거부했다. 사건의 전모, 자신의 딸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안 피해자의 모친은 충격을 받고 쓰러져 장시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5]
소년 B의 생모는 참으로 그 자식의 그 부모라는 면모를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사건이 밝혀서 자기 자식의 인생이 망가진 것에 분노하여 이게 다 피해자 때문이라 주장하여 무려 피해자의 묘를 때려 부수는 충격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피해자가 감금된 장소를 제공한 소년 C의 부모는 여학생이 2층에 있는 것을 내내 알고 있었지만, 자식이 두려워 어쩌지 못했고,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진술하였다. 그런데 사건이 밝혀지고 증거 확보를 위해 경찰관들이 들이닥쳤을 때, 방의 바닥과 커튼 등이 모두 새 것으로 바뀌어있었고 모친이 깨끗하게 청소해버려 그 어떠한 증거도 남아있지 않았다.
일부 찌라시들이 어디서 구했는지 소녀의 얼굴이나 수영복 사진 등을 그대로 노출하며, 행실이 불량한 아이였으며 소년 그룹의 동료 중 하나였다는 등 불분명한 사실을 그대로 기사로 내놓는 추가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기레기들이 쓴 불쏘시개의 내용과는 달리 피해자의 주변인들과 동급생의 증언에 따르면 피해자는 우수한 성적에 결석도 1년에 두세 번 정도였으며, 불량학생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교우관계도 원만했고, 누구에게나 웃으며 인사하는 밝고 명랑한 성격에 미인이었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피해자의 친구에 따르면 아이돌을 동경했다고 하며, 졸업 후 곧바로 근처의 백화점에 취직도 결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극성만을 노리며 본인들의 이득 앞에 사람 목숨이 어쨌든 신경조차 쓰지 않은 보도 때문에 근거도 없는 비난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쏟아졌고[6] 분노한 부친은 피해자의 실명보도에 대한 문제점을 강하게 제기하였으며, 이후 피해자의 가족은 아무 죄 없이 남의 눈을 피하며 숨어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한 피해자가 살해된 1월 5일의 얼마 후인 1월 18일은 피해자의 생일이었지만 19살의 생일을 맞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그녀의 억울함을 알겠습니까?'라는 책에서는 '피해자는 언론에게 다시 한 번 살해당했다'고 기술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해자의 과거가 어떠했든지 간에 가해자의 만행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케이크 만들기가 취미였던 피해자는, 얼마 후인 크리스마스에 어머니와 함께 케이크를 만드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가 잘 설명해주듯 그녀는 부모를 공경하는 아이였으며 졸업여행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피해자는 범행을 당하기 전 미성년자 성폭행범으로부터 교제를 전제로 한 스토킹을 집요하게 당하고 있었으며,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이 남자가 소년들 일행에게 정보를 주고 그녀를 협박했고, 소년들은 계획적 범행인 것이 탄로날 수 있음이 두려워 이 사실을 누설하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범행에 계획성이 있었다고 보일 경우 형량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설은 소녀의 스토커가 사실은 소년 그룹과 아는 사이였고 정보를 들은 소년들은 흥미를 느껴 그녀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했으며, 이에 주범은 소녀의 스토커가 야쿠자의 두목이라는 거짓말로 그녀를 협박했다는 내용이다. 이 설에 대한 근거로 소년들이 평소 강간에 쓰던 차를 사용하지 않아 소녀를 협박할 자신이 있어 보였다는 점, 그들이 평소 활동하던 아야세에서 5km나 떨어진 미사토 시까지 일부러 온 것이 석연치 않다는 점, 소녀의 집 근처가 인적이 드문 창고 앞이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한 점 등이 언급되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4년 뒤에 일어난 이치카와 4인가족 살인사건의 범인은 이 사건의 범인들이 징역형을 받은 것을 근거로 자신들의 범행은 별 거 아니라고 주장하는 미친 짓을 저질렀으나, 이치카와 사건은 다수의 사람이 살해됐고 범행 당시 범법자가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이미 벗어난 점이 고려되어 사형이 선고되었다.
너무 충격적이다 보니 한국에서도 사건 직후 심해지는 일본의 소년 범죄에 관한 기사에 이 사건에 대해 언급했을 정도이다.
사실 형사의 말실수라는 우연한 계기로 인하여 범인들이 자백을 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한 채, 진실을 뒷받침하기 위한 어떠한 단서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소년들의 주변인은 모두 피해자를 목격하거나 정보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관했고, 심지어 폭행과 강간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위에서도 약 100여 명의 사람들이 소녀의 상황을 알고 있었으나 단 한 명도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 단 한 명, 단 한 명만 경찰에 알렸어도 피해자는 살았을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은 '지극히 평범한' 주택가의 한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범죄가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 뒤 증거도 없이 묻힐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단 한 사람이라도 용기 있게 대처했으면 피해자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논픽션 라이터 후지이 세이지가 사건의 주범들과 공범 그리고 목격자들을 직접 만나 탐문한 것을 바탕으로 엮은 책 '소년의 거리(개정판 : 17세의 살인자)'에 따르면 사건 관계자 대부분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여자아이를 납치한 것은 알았지만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었다',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신고하겠지', '소년들의 보복이 두려웠다', '집에 돌려보냈다는 말이 미심쩍었지만 범인과는 친구였기 때문에 믿었다' 라고 말다. 주범들의 명령에 따라 피해자를 강간하고 폭행한 소년들 중 일부도 자신의 죄가 밝혀질 게 두려워 신고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자신만 죄책감에 시달리는 게 두려워 친구를 범행에 끌어들인 소년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후지이 세이지는 '피해자를 살해한 것은 주범들이지만, 직접 범행에 가담하지 않은 그들 한 명 한 명의 무관심과 약한 마음 역시 확실하게 피해자의 살해에 가담했다' 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6 환경적 요인
1990년경 아다치 구에 방치된 아파트단지 모습.
2015년 시점에서 사건이 벌어진 동네는 지형이 달라졌고 깔끔한 주택가가 됐지만 그 당시에는 좁고 어두운 골목에 막장치안으로 유명했다. 해만 지면 불량청소년들이 그룹을 지어 다니며 싸움질을 하거나 거리 기물을 파손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는데 주민들은 무서워서 이들을 못 본 척하며 다녔고 비명소리가 들리든 말든 매일 듣는 소리라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니까 피해자가 납치 당하면서 비명을 질렀어도 인근 주민들에게는 그냥 매일 들리는 소음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당연히 주민들은 순찰 경관 좀 늘려달라, 분서를 설치해달라는 민원을 아야세 경찰서에 넣었지만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씹혔다. 이런 동네에서 살아가려면 불량청소년 그룹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이는 이 사건을 주변인들이 방관한 데에 큰 이유를 제공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지만 이 충격적인 사건이 터지자 인원이 부족하다며 주민들의 민원을 무시한 경찰서는 어느 날 갑자기 땅에서 사람이 솟아나기라도 했는지 갑자기 순찰 경관이 늘어나고 보안등을 곳곳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 첨언하자면 지금 이 동네에서 이 사건을 주민들 앞에서 언급하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사건 당시 살던 사람들은 재개발 등 여러가지 이유로 대부분 다른 곳으로 떠났고 자신들은 그 다음에 들어왔는데 타지 사람들이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하기 때문.
7 피의자에 대하여
주범인 소년 A는 미성년자였으나 저지른 범죄가 너무 흉악하여 1심에서 17년, 2심에서 20년형이 확정되었고, 나머지 3명에 관해서는 각각 5~10년, 5~9년, 5~7년을 선고했다. 재판기록에 따르면 실제론 이 소년들 이외에도 10여 명의 가해자가 더 있지만 그들은 직접 가담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대부분 약식 기소되어 가볍게 처벌받는 것으로 끝났다. 이런 짓을 하고도 겨우 요거밖에 처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면 순간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연쇄살인을 저질렀다가 나중에 깊이 반성하고 옥중에서 작가로 데뷔하여 자신의 인세를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넘기고 사형집행을 당한 나가야마 노리오가 정말 억울한 것이 된다. 이들은 일본에서 소년법이 없었다면 무조건 사형이 나왔을 죄를 지은 자들이다. 일본은 사형을 활발하게 집행하는 국가니까, 사형이 나왔다면 이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다만 이런 작자들 때문에 소년법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법정에서도 그들은 '피해자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발언하였고 소년 A는 반성조차 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오히려 욕설까지 퍼부었다! 소년 A가 눈물을 흘리기는 했으나 그것은 피해자에 대한 반성의 눈물이 아니라 병신 같이 잡혀버린 내 자신이 불쌍해서 흘린 눈물이었다고 한다.
이 모양 이 꼬라지에 분노한 피해자의 부모는 피고인 측의 면회 신청 및 성묘를 절대 거절하고, 그 비통한 심정을 재판소에 토로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재판의 증언 당시 피고인에 대한 원 판결의 과형은 너무 가볍다고 하였다. 죄값을 제대로 치른 편인 주범 A도 피해자의 부모 입장에서는 죽일 놈인데 심지어 주범 A를 제외하고서는 미성년자라고 해도 가벼운 형벌을 받았다.[7]
현재 소년 A를 포함한 4명은 출소하였지만 대부분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다고도 한다. 이 중 한 명은 또 다시 폭행 사건을 저지르고 교도소로 들어갔다.
소년 D는 당시 소녀가 폭행당한 뒤 자신에게 "나는 언제 집에 갈 수 있어?"라고 말했다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고 눈시울을 붉히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며 참회한다는 말을 했다. 진심으로 반성한 것이라 해도 이미 늦었다. 긴 학대 기간 범행에 동참했고, 결국 피해자는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한번 저지른 악행은 영원히 남는다. 범인의 참회는 참회로 끝날 뿐이다. 일단 소년 D는 가장 가담한 정도가 적기도 하며 출소한 뒤 사고를 안 치고 산다는 점에서 그래도 그나마 개념이 있는 편. 그저 출소 후에 사회생활 좀 더 잘 하려고 반성하는 '척'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주동자들은 반성을 하려는 척조차도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러워 한다. 진심이든 거짓이든 반성을 하고 있다는 태도 그 자체가 적어도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년 D 역시 그 죄가 덮여지지는 않겠지만 다른 천하의 개쌍놈들에 비하면 그나마 인간이 되려는 노력은 하고 있다는 증거.
그래도 사건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해자와 그 가족들은 스토킹 당하고 있다고 한다. # 신분을 최대한 숨기고 이사를 가도 얼마 못 가서 인근 지역에 정체가 폭로되어 갖은 불이익을 받으며 본의아니게 죄값을 지불하고 있다. 그야말로 인과응보. 그리고 사건 명칭으로 검색하면 범죄를 저지른 4인방의 인적 사항(본명 + 출소 후 개명한 이름, 사진 등)을 해당 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현재 링크된 페이지에서는 해당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8] 2ch에서 꾸준히 해당 사건의 스레드가 작성/유지되는 걸 보면 이런 상황은 앞으로 계속될 듯. 이놈들이 저지른 죄가 워낙 흉악하여 만약 이 사건이 사적인 보복이 허용되는 사회였으면 피해자 가족까지 갈 것도 없이 같이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에게 맞아 죽거나 그게 아니라도 아예 사회의 일원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죽은 사람처럼 드러나지 않게 살아야 했을 것이다.
굳이 인터넷으로 검색할 필요 없이 방송에서 잊을 만 하면 그때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 때문에 웬만한 일본인들이라면 이 사건을 잘 알고 있으며, 피의자들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다. 아무리 얼굴을 모른다고 해도, 가족들과 피의자의 사진은 이미 퍼질 대로 퍼진지라 마음만 먹으면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동네에서 어느 한 사람이 우리 동네에 그 범인과 가족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일본 사회 특성상 그 동네의 모든 사람이 알아버리기 때문에 용의자들은 일본을 떠나지 않는 이상 사회에서 지속적인 경계 및 멸시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7.1 범인의 인적 사항
주요 범인 4명은 다음과 같다. 이들은 사건 당시 소년범이라는 점이 참작되어 중범죄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제 2의 인생을 살 기회는 얻기는 했다. 하지만 괜찮고 안정적이라 할 만한 직업에는 일절 종사하지 못하고 있으며[9] 사회적으로도 멸시되고 있다는 게 딱 보일 정도의 막장 인생을 살고 있다. 게다가 일본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집단심리'에 따른 과실이나 한순간의 실수, 심지어 장애에 대한 멸시[10]도 아니고 극악무도한 범죄를 고의, 그리고 계획적으로 저질러 자신이 자초한 짓거리라 동정하는 사람들도 없다. 어떻게 보면 사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된 고통이야말로 이들에게 걸맞는 진정한 처벌일지도 모른다. 참고로 이들은 현재 40대 중반이다.
- 소년 A : 미야노 히로시(宮野 裕史, 1970년 4월 30일생), 악질 중의 악질이자 일본판 거트루드 배니체프스키[11], 범인 소년들의 리더 정도 된다. 요코야마(横山)로 성을 바꿈. 2008년 가석방됐고 그 이후 7년에 걸쳐 가와구치 시의 해체 업체 미야우치해체공업소(宮内解体工業所)에서 일하고 있다. 거주지는 가와구치 시 하스누마 298번지 사카에하이츠 201호(埼玉県川口市蓮沼298 栄ハイツ201). 2013년 일본에서 보이스피싱 피의자로 체포되었다. 어차피 밝혀질 사실이라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콘크리트 살인 사건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말했다고. 그러나 1월 31일,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구글 플러스에 계정이 있다. 의심 가는 사람은 기본 정보와 직장을 보라(!)[12][13]
- 소년 B : 오구라 유즈루(小倉 譲, 1971년 5월 11일생), 범인 소년들의 부 리더 격. 카미사쿠 조(神作 譲)로 개명. 출소한 뒤 이름을 개명하고 중국인 여성과 결혼하여 중국으로 건너가려 했으나 2004년 이혼으로 실패한다. 자신의 애인을 뺏었다는 이유로 이소노 타카토시라는 사람을 납치, 폭행했다가 체포되어 재판 결과 징역 7년이 선고되었다. 이때 카미사쿠는 이소노에게 '나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다. 경찰은 나의 장난감이니 무슨 짓을 해도 풀려날 것이다'라고 협박했고 콘크리트 살인 사건에 대해 '사실 그때 후배들을 끌어들인 내가 진짜 주범이다. 그때는 정말 재밌었다'고 말하며 자랑했다고 한다. 이 자의 일방적인 주장이라 사실관계는 확인할 수 없으나 만약 사실이면 진범에 대해 제대로 된 처벌이 내려지지 않은 것이다. A가 없을 때는 그가 리더 역할이었다고 한다. 징역형이 7년이었으니까 만기를 채워도 출소했을 터인데, 2016년 현재는 근황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
- 소년 C : 미나토 노부하루(湊 伸治, 1972년 12월 16일생), 2006년에 루마니아인 여성과 결혼하여 오사카로 이사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결혼한 상대가 리히텐슈타인 국적이라고도 한다. 한때 무에타이 선수로도 데뷔해봤으나 실력도 변변찮고 이 자의 본성이나 행적들이 숨겨지는 것도 아니라 관중도 없었고, 있어도 야유 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결국 변변찮은 실력에 걸맞게 금방 은퇴. 어떻게 한 건지 2007년에는 간병인 자격을 취득했고, 네야가와의 한 파칭코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다만 이후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불명.
- 소년 D : 와타나베 야스시(渡邊 恭史, 1971년 12월 18일생), 다른 놈들과 달리 가장 반성하고 있으며 히키코모리로 살아가고 있다고 알려진 한편, 용접공, 공조 장치 설치 등의 일을 전전하고 있다는 제보도 있다. 종합해 보면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이거저거 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코하마 카나자와 구에서 누나(기혼)의 집에 얹혀 사는 듯. 가담 정도는 상대적으로 적고, 늦었으나 그나마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기에 다른 놈들보다는 사람 취급은 받는다.
공범으로는 남성 17명, 여성 1명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실제 살인과 학대에 적극 가담하지는 않아 처벌이 가벼웠다.
공범 중 망보기 역할이었던 소년의 인터뷰에 따르면 '탈출시킬 찬스도 있었고, 아주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들이 무서워서 하지 못했다'라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A 일행은 '사람을 샌드백처럼 장소 가리지 않고 어떻게 저 정도로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때렸고, 피해자는 울면서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소녀가 '나, 이제 어떻게 돼요?'라고 묻자, 공범 소년은 그들이 무서웠기 때문에 '명령 받아서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라고 했다고 한다.
8 관련 미디어
- 천하의 개쌍놈 소년 A 미야노 히로시, 구글 플러스에 계정이 있다.
- 1989년에 방송된 다큐멘터리 : # 초반에 소년 A의 모친이 기자의 질문에 당황하며 도망치는 모습이 보인다.
- 1995년의 비디오 다큐멘터리(부제 : 망가진 17세들~壊れたセブンティーンたち~) : 1, 2, 3, 4, 5, 6, 7. 재연 영상도 있으므로 일본어를 잘 모르더라도 보면 사건의 이해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현재는 저작권 침해 신고를 받아 볼 수가 없다.
- 영화 콘크리트[14]
- 진 현대엽기전[15] : 영화보다도 더한 막장. 하지만 작가가 서문에 이런 사건이 있었음에도 묻히고 있는 데다 이런 일을 세상에 알려서 다시는 같은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기 위해 본 작품을 그렸다고 쓰여있다. 작가의 전작들에 비해 작가의 고어 묘사나 성적 묘사가 절제되어 있고 다큐나 현장추적 같은 느낌의 상황설명을 위한 나레이션이 많으며, 초점이 가해자들의 잔인함과 비인간적인 행동을 담담하게 묘사하여 독자 입장에서는 비교적으로 냉정하게
욕비판할 수 있게 하도록 한 시도로 보이나, 사건 내용의 변형(...)이나 생략도 많고, 여체가 중점적으로 묘사되는 등 일반적 성년만화나 료나물로 대변되는 특정기호를 위한 오락적 요소(?!)도 여전히 상당히 많이 남아있어 다큐멘터리 만화라는 건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작가 본인은 '다른 사람들이 이런 잔인한 사건을 다룰 수 없으니 나라도 작품을 통해 세간에 알려서 이런 일이 다시는 없게 해야겠다'는 의도였다고 주장하나, 정작 사람들의 반응은 작가가 작가라서 그런지 "이런 끔찍한 사건까지 만화로 그려서 팔아먹으려고 하냐, 미친놈..." 정도.[16] 또한 앞서 언급되었듯이 작가의 말에 비하면 세간의 눈은 아직도 피해자를 주시하고 있기도 하다. 의도는 좋았을지 모르나 그 의도대로의 결과를 낳진 못한 작품. -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
- 천사의 나이프
- 미야베 미유키의 크로스파이어[17]
- IWGP 시리즈 2권 <소년 계수기> 中 '물 속의 눈동자' 편[18]
- 소년탐정 김전일 시즌 2의 켄모치 경부의 살인의 중심 소재인 3년 전의 사건의 모티브. 다만 청소년들도 보는 만화다 보니, 해당 작품 내에서의 3년 전의 사건은 실제 사건에 비교하면 애교로 보일 정도.
- 가젯토의 노래 '체온(体温)'
- 일본 영화 지옥 : 지옥 탐방을 다룬 이시이 데루오 감독의 1999년작 고어 영화. 이 영화에서 이 사건의 범인들은 옴진리교 교주와 함께 지옥에서 최고의 벌을 받으면서 말 그대로 장기자랑에 인(人)수 분해를 당한다. 이 사건에 대한 감독의 분노가 드러나는 장면.
- 17세.(17歳。)[19] : 후지이 세이지가 글을 쓰고 카마타 요지가 그림을 그린 합작. 부제는 '여고생 감금 살인 사건'.
- Crónica de una muerte anunciada(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인데 여기서는 주인공이 살해당할 것을 알고도 그대로 방관한 마을 사람들 나온다. 어찌보면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과 비슷한 상황.[20]
- ↑ 츄오 소부센 히가시나카노역 열차 추돌사고. 사고 때문에 사망한 인원은 기관사+승객 1명.
- ↑ 당시에는 살인이 아닌 강간 및 절도 혐의로 조사중이었다. 담당 형사의 말실수였던 것.
- ↑ 믿기지 않겠지만 위장, 그러니까 뱃속에서 발견된게 맞다.
- ↑ 한국돈으로 대략 5억
- ↑ 5,000만 엔이면 큰 액수이기도 하고, 가산까지 정리하여 주었다는 점에서 양심이 있긴 하다. 그런데 피 같은 자기 자식이 참혹하게 살해당했는데 돈이 중요한 게 아니지만, 적어도 보상을 하려고 했다는 점이 의의이다. 당장 아래의 부모들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 ↑ 사건이 일어난 일본에서도 아직도 피해자를 불량 소녀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 ↑ 다만 청소년 보호법의 적용 뿐만 아니라 사형 판결을 내리는 일본 사법부의 관행에 비춰 보았을 때 판사들이 사형 판결까지 나올 성질의 것이 아니라 판단했다는 말도 있긴 하다. 다수를 살해하거나 유괴살인 혹은 살인 전과가 있는 상황에서의 추가적인 살인은 사형 선고가 원칙이지만 그 외의 살인에 대해서는 가급적이면 사형 선고를 회피하거나 주범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일본 사법부의 관행이었기 때문에 20년 이상 선고가 불가능한 청소년 보호법의 적용과 더불어 주범 A에게만 엄한 판결이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도 별 차이는 없어서 간혹 나오는 사형 집행 기사를 보면 사형수 대부분이 2명 이상의 사람을 죽이거나 살인 재범, 유괴살인 등을 저지른 범죄자들이다.
- ↑ 아예 한국어판 위키백과에선 피해자와 가해자 4인방의 실명, 출소 후 개명한 이름까지 항목에 적고 있다. 일본어판 위키백과 사용자들이 '실명 게재는 일본 법을 위반하는 행위이므로 실명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위키미디어 메타(모든 언어판 위키백과를 총괄하는 사이트)에서 부결되었다.
- ↑ 사실 재소자에 대한 진정한 처벌은 교도소 복역보다는 이런 것이다.
- ↑ 한국이나 일본이나 의지드립이 알아주는 곳이다.
- ↑ A의 부모가 가산을 정리해서 피해자 부모에게 건네줬다는 점에서 그의 부모들은 그나마 양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 ↑ 자랑거리와 경력란을 보면 각각 '약한 것에는 대단히 세다', '치바 형무소 수형수 1989-2008'라고 아주 버젓이 쓰여있다. 이게 사칭이 아니면 이 자는 죽을 때까지 반성이건 참회건 못 할 놈이다.
- ↑ 심지어 자기소개 링크에 본인의 인물사전 페이지를 링크 해 두었고, 이전이름 항목에 본인의 전 이름(범행 당시의 이름)을 적어두는 등 인간 말종스러운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정말 반성할 기미조차 없는것 같다. 현재 유튜버들에게 욕먹는중.
- ↑ 2003년 출판된 논픽션 17세, 악의 이력서를 바탕으로 2004년에 제작된 영화. 제작사에 수많은 협박 전화 등이 와서 개봉이 미뤄졌으며, 당사는 '희망이 없는 청소년들의 미래를 그린 의도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협박 전화, 누가 한 걸까.
- ↑ 이 사건 외에도 혼혈소년 연속 살인사건, 나고야 임산부 살해사건 역시 다루고 있다. 또 이 작품은 1980년대에 출판된 실제 엽기사건들을 다룬 만화 '현대엽기전' 시리즈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 ↑ 애초에 다큐멘터리면 성적 요소, 잔인한 요소의 직접적인 묘사는 아예 피해야 한다. 근데 이건 뭐.
- ↑ 초반에 등장하는 고교생 그룹의 살인 사건이 이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 ↑ 치하야 여고생 감금 사건이라는,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사건이 등장한다. 성폭행 후 성기에 불을 붙여서 화상을 입히거나 하는 등, 비슷한 부분이 많다.
- ↑ 모티브는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이지만 후지이 세이지가 여러 청소년 범죄에 대해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재해석되었다. 청소년 범죄는 어째서 일어나는가, 왜 아무도 피해자를 구하지 못했는가, 법과 사회의 문제점, 어떻게 하면 같은 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까 등에 대해서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 ↑ 방관한 이유도 '농담인 줄 알았다.' 등의 변명 비슷하다. 주인공이 죽기 직전에 주인공에게 경고하기 위해 주인공을 찾아다닌 의대생이 있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