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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Lee Racing Santander.jpg
이름 | 이호진 (李鎬鎭 / Lee Ho-Jin) |
생년월일 | 1983년 3월 9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서울특별시 |
포지션 | 수비수/미드필더 |
신체조건 | 180cm |
프로입단 | 2006년 라싱 산탄데르 |
소속팀 | 라싱 산탄데르(2006~2007) 인천 유나이티드(2008) JJK 위배스퀼라(2009) FC 위배스퀼라 블랙버드(임대)(2009) 폴리스 유나이티드 FC(2010) 고양 KB국민은행(2011~2012)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왕성한 활동량을 살린 저돌적인 스타일을 선호하는 유형의 선수로, 스피드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던 공격적인 왼쪽 풀백이었다.
2003년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FIFA U-20 월드컵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서 독일을 상대로 득점을 해 2-0 승리에 기여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1] 하지만 그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입어 대략 6개월 정도를 재활에만 매달렸다. 이 당시 설기현이 활약하던 RSC 안더레흐트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기도 했으나 합격하지는 못했다. 그 뒤에도 성균관대학교 재학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해외 리그로의 이적을 추진하다가 제적되었고, 2005년에 거스 히딩크가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PSV 아인트호벤이나 AS 낭시 등 여러 팀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2005-06 시즌 겨울 이적시장 당시 라싱 산탄데르에서 일주일 동안 입단 테스트를 본 뒤 이적시장 마감 20분전에 극적으로 합격했고, 이천수에 이어서 역대 두 번째로 프리메라 리가 소속 클럽에 입단한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입단 이후에 지속적인 잔부상으로 경기에 나오지 못하다가 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비야레알 CF와의 경기에서 드디에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으며,[2] 그 경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3]
하지만 그 뒤에도 계속된 허벅지 부상으로 소속팀과 재계약에 실패했고, 결국 방출된 뒤 러시아 등 여러 동유럽 리그로의 진출을 모색하다가 2008년 드래프트를 거쳐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하지만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다가 바로 다음 해 핀란드 리그의 JJK 위배스퀼라라는 팀으로 이적, 그러나 데뷔전을 치른 뒤에도 역시 부상 때문에 나온 경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후 감감 무소식이었다가 태국 프리미어 리그를 거친 뒤 2011년 고양 KB 국민은행에 입단한 것으로 밝혀졌다.
청소년 대표팀 당시에는 많은 기대를 받았다가 특유의 유리몸 기질 및 무리한 해외 리그 이적 추진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선수 중 한 명.[4]- ↑ 한국은 전통적으로 이 연령에 약한 편을 생각하면 대단한 활약을 해준 셈이다.
- ↑ 여담으로 이 때 스페인의 모 언론에서는 이호진의 표기가 "Lee"로 되어 있어서 이영표와 혼동해 잘못 게재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 ↑ 참고로 이 당시 비야레알은 마누엘 페예그리니가 지휘봉을 잡은 뒤 후안 로만 리켈메를 중심으로 강력한 전력을 구축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를 꺾고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까지 올랐던 강팀이다.
- ↑ 참고로 이 당시 이호진의 에이전트가 홍이삭 에이전트였는데, 2002 FIFA 월드컵 이후 무조건적인 해외진출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당시 이에 편승해서 "일단 타 유럽 리그에서 경험을 쌓으면 언젠가 빅리그로 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나, 무리한 이적으로 인해 실패한 케이스가 많아 비난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