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피에르 파팽

이름장 피에르 파팽 (Jean-Pierre Papin)
생년월일1963년 11월 5일
국적프랑스
출신지불로뉴쉬르메르
포지션스트라이커
신체조건176cm
유소년팀INF 비시 (1983~1984)
소속팀발랑시엔 FC (1984~1985)
클뤼프 브뤼허 KV (1985~1986)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86~1992)
AC 밀란 (1992~1994)
FC 바이에른 뮌헨 (1994~1996)
FC 지롱댕 드 보르도(1996~1998)
EA 갱강 (1998~1999)
JS 생 피에르 (1999~2001)
국가대표54경기, 30골
1991 Ballond'or
수상
장 피에르 파팽
2위(공동)
다르코 판체프
데얀 사비체비치
로타어 마테우스
3위
수상자 없음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마누엘 아모로스
(1992~1993)
장 피에르 파팽
(1992~1993)
에릭 칸토나
(1993~1995)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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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도르를 들고 찍은 사진.

고성능 폭격기

프랑스의 前 축구선수.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며,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선수다. 특히, 구석으로 정확하게 차넣는 슛과 발리슛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였다. 다만, 전성기 시절 FIFA 월드컵에 출전을 못해서 한국에는 이름이 덜 알려진 편이다.

2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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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이었던 마르세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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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 밀란 시절.

당시 2부 리그에서 뛰던 발랑시엔 FC에서 데뷔를 했다. 될놈은 떡잎부터 다르다고, 시작부터 남달랐던 스트라이커로 데뷔 시즌인 84-85 시즌에 33경기 15골을 집어넣으며(...)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다음 시즌 벨기에의 클뤼프 브뤼허로 이적해 31경기 20골을 넣었다. 될놈은 어디서도 되는듯

그러한 활약으로 당시 마르세유 제국을 건국 중이었던 언론갑부였다가 훗날 승부조작 사기꾼이 된 구단주 베르나르 타피의 과감한 투자로 마르세유에 입성하게 된다. [1] [2] 마르세유 입단 이후 무려 5연속 리그 1 득점왕 이라는 말도 안되는 활약을 펼쳤고, 그 속에서 마르세유는 4연속 리그 우승을 하는 등 전성기를 달렸다.

마르세유 시절 89,91 시즌 프랑스 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상을 수상했는데 특히 91 시즌의 경우는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등, 그의 선수 역사상 최고의 시즌으로 자리매김 한다. 이 때 2위는 다름아닌 로타어 마테우스.


이후 92-93 시즌, AC 밀란으로 이적하게 된다. 이유는 루디 푈러의 영입과 챔피언스리그 우승.[3] 밀란 이적 첫 시즌에 원하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라갔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상대가 마르세유였다. 게다가 결과는 1:0으로 패배. 여기서 우린 한 스트라이커가 떠오른다.[4] 하지만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함으로서 결국 목표를 달성했다.

챔스 우승 이후 밀란에서 짐을 싸서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결과는 망했어요. 2시즌 간 27경기 3골에 그치며 완벽한 먹튀로 전락하게 된다.

그 후 지롱댕 보르도로 이적하여 55경기 22골을 넣으며 부활하였고, 98-99 시즌 EA 갱강으로 이적한후에 한시즌 뛰다가 레위니옹[5] 프리미어리그 팀인 js 생 피에르로 이적해서 2년뛰고 은퇴했다.

3 국가대표

프랑스 축구의 저주받은 세대를 대표하는 선수.

명성에 비해서 굉장히 안타까운 국가대표 시절을 보냈다. 미셸 플라티니의 2세대 전성기[6][7]와 지단의 3세대 전성기[8] 사이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문제는 파팽의 전성기가 "프랑스 축구의 저주받은 세대"로 불리던 시대였기 때문에 1990. 1994 FIFA 월드컵에서 모두 예선탈락을 하는 등, 최악의 시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야?

이런 이유와 더불어 프랑스 리그에 크게 관심이 없는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편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던 선수였다.
  1. 당시 같이 이적한 선수들이 칼-하인츠 푈스터, 알랭 지레스
  2. 당시 영입된 선수가 얼마나 대단했냐면 칼-하인츠 푈스터의 경우는 80 유로 당시 우승팀인 서독에서만 81경기를 뛴 레전드이자 크리스토프 메첼더의 우상이었고, 알렝 지레스의 경우는 보르도에서만 519경기 168골을 넣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선수로, 80년대 초중반에 팬투표 선정 유럽 최우수 선수상인 옹즈도르에서 무려 미셸 플라티니와 엎치락뒤치락했던 선수다.
  3. 3시즌 동안 벤피카, 츠르베나 즈베즈다, 스파르타 프라하 등에게 밀려 탈락했다. 특히 츠르베나 즈베즈다에겐 결승전에서 승부차기로 패배
  4. 이 경기는 끝나고 나서 크게 질타를 받았는데, 장 자크 에들리가 자서전에서 루디 푈러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이 도핑을 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셸 플라티니는 공소시효 10년이 지났다며 어떠한 검사를 하지 않아서 더 큰 질타를 받았다.
  5. 프랑스령 레위니옹이며 마다가스카르 근처에 있는 섬 맞다
  6. 84 유로 우승, 86 월드컵 3위
  7. 참고로 파팽과 같이 영입됐다. 언급한 알랭과 지레스 역시 2세대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중심이다.
  8. 98 월드컵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