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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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essional wrest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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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애티튜드 시대의 두 아이콘, 스티브 오스틴더 락. 2003년 세이프코 필드에서 열린 레슬매니아19에서 찍힌 사진이다.

1 개요

"프로레슬링은 하나의 레슬링 경기를 위해 신체를 단련하고 상대와 합을 맞추며 연습하고 링에 올라서서 자신의 모든 기량을 아낌없이 발휘해야하는 '스포츠'이다"

역도산

프로페셔널 레슬링. 스포츠 경기로써의 레슬링인 '아마추어 레슬링'과는 다른 개념이며, 엔터테인먼트적인[1] 요소가 강한 스포츠이다. 특유의 여러 특징(명목상 '시합'임에도 불구하고 승패가 미리 정해져 있다던가) 탓에 스포츠가 아니라는 인식 또한 존재하지만, 스포츠의 개념을 따지면 프로레슬링 또한 엄연히 스포츠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결과를 짜고 친다'라는 인식 탓에 특히 프로레슬링을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나, 엄밀히 말해 프로레슬링 경기의 결과는 '승패'가 가 아니라. 승패 후에 내려지는 그 경기의 평가와 평점이다. 프로레슬링에서 경기의 '승패'는 경기의 '대립' 과 함께 관객들에게 이야기와 내용을 전달해 주기 위한 도구이자 과정중 하나이다. 애시당초 짜고치는 승패라면 이긴 자와 진 자를 따지는 건 처음부터 의미가 없다. 관객들과 팬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 이야기로써의 승패는 상관없이 그 경기를 치룬 선수 모두가 승자로 볼 수 있다.

서로 합을 맞추더라도 그들이 그동작들을 위해 흘리는 땀과 노력, 그리고 고난이도의 기술들과 움직임 등의 요소를 스포츠가 아니라고 폄하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피겨 스케이팅이나 리듬체조가 스포츠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2 역사

2.1 미국

2.1.1 탄생부터 NWA 출범 전까지 (19세기 후반 ~ 1948년)

미국의 프로레슬링은 19세기 후반 시작되었다.[2]

탄생 이후 널리 퍼져가던 프로레슬링은 이후 미국 전역에 수많은 프로모터와 단체들이 범람하기까지 이르는데, 그들은 서로의 지역구를 존중하는 불문율은 지키면서도 각자의 단체에 '세계' 챔피언을 지정하며 상호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48년 프로모터 폴 '핑켈' 조지의 주장과 여러 프로모터들의 동조로 상호간의 상업 지역을 존중하고 하나의 세계 챔피언만을 지정하는 체제의 NWA가 탄생하였다. 초대 NWA 세계 챔피언으로는 루 테즈를 앉히게 된다.

2.1.2 NWA의 분열, AWAWWWF의 탄생 (1950년대 ~ 1960년대)

이렇게 루 테즈를 챔피언으로 내세워 잘나가던 NWA도 분열하기 시작했는데, 다름 아닌 루 테즈의 7년이 넘는 장기 집권이 문제였다. 이에 불만을 가진 프로모터 겸 레슬러 번 가니에가 NWA에 불만을 가진 여러 프로모터들과 함께 NWA를 탈퇴해 1960년 AWA를 창단하게 된다.
이후 1963년에도 또 다른 단체가 NWA를 탈퇴하는데, 빈스 맥맨의 아버지 빈스 맥맨 시니어의 단체 CWC가 당시 NWA 세계 챔피언이었던 '오리지널 네이처 보이' 버디 로저스의 타지역 단체 출전 문제로 마찰을 빚자 NWA를 탈퇴해 단체명을 WWWF로 바꾸게 된다. 그리고 이 단체는 훗날 전설이 된다.

2.1.3 NWA-AWA-WWWF 3강 체제 (1960년대 ~ 1980년대 초반)

이후 한동안 AWA와 WWWF는 탈퇴했지만 당장에 NWA를 이길수 없기에 NWA와의 관계를 유지했으나, 이들이 경쟁력을 갖추자 한동안 북미 프로레슬링계는 여전히 건재한 NWA와, 신흥 단체 AWA와 WWWF의 3강 체제에 접어든다. 브루노 삼마르티노, 더스티 로즈, 밥 배클런드, 릭 플레어[3] 와 같은 기라성같은 레전드들이 이 시기 활동하였고, 또한 1979년, WWWF는 단체 이름을 WWF로 바꾸게 된다.

2.1.4 WWF의 골든 제너레이션, WCW의 탄생 (1980년대 ~ 1990년대 초반)

프로레슬링이 지금의 전세계적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기.
애티튜드 시대와 함께,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

1982년, '빈스 맥맨 주니어가 아버지로 부터 WWF를 물려받는다.

그 직후, 빈스 맥맨은 기존의 지역구에서 벗어나 공격적인 확장을 하며 업계의 불문율을 깨고 경쟁을 시작한다. WWF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벗어나 흥행을 열기 시작했고, 흥행 비디오를 지역구 밖에서 판매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앙드레 더 자이언트, 로디 파이퍼와 같은 선수들이 맹활약했고, 일본에서 이미 스타였으나 AWA에서 테크니션이 아니라는 이유로 메인이벤터가 되지 못하던 선수를 영입해 단체의 탑 선역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선수가 바로 헐크 호건.
이렇게 세력을 불러오던 WWF는 1985년, 레슬링계의 슈퍼볼을 꿈꾸며 역사적인 첫 레슬매니아를 개최했다. 가수 신디 로퍼, 복서 무하마드 알리, 배우 미스터 T를 섭외해 헐크 호건, 웬디 릭터와 엮어 '락 앤 레슬링 커넥션'을 만들고, MTV로 대표되는 당대의 팝문화와 레슬링을 성공적으로 접목해 레슬매니아 1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후 전세계에 '프로레슬링 붐'이 일어 WWF는 세계적 관심을 받게 되어 1987년 레슬매니아 3은 무려 9만명이 넘는 관중을 동원하며 공식적인 최다 관중 동원 프로레슬링 흥행기록을 남기는 등[4][5] 성공가도를 달렸다.

한편 AWA는 WWF의 기세에 버티지 못해 결국 1991년 WWF에게 인수되었고, NWA는 WWF의 맹렬한 기세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설상가상 NWA의 가맹단체 GCW가 테드 터너 산하의 케이블 방송사 TBS에 방영하던 프로그램 WCW[6]를 1984년 빈스 맥맨이 인수하며[7] NWA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지만 빈스 맥맨의 WCW가 삽을 푸면서(...) 1985년 NWA의 짐 크로켓 프로모션즈가 탈환한다.

하지만 짐 크로켓 프로모션즈도 WWF를 당해내긴 역부족이였고, 결국 파산하면서 NWA는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지만...
테드 터너가 직접 나서 1988년 11월 짐 크로켓 프로모션즈를 인수했다.
또한 단체명 자체를 WCW로 바꾸어 본격적으로 WCW가 출범하였다.

2.1.5 스테로이드 파동과 새로운 시대, 월요일 밤의 전쟁의 시작(1992~1995)

하지만 식을 줄 모르던 1980년대의 프로레슬링 붐은 90년대에 이르러 식어가기 시작했다. 80년대의 여피족 문화는 1991년 너바나Nevermind로 종말을 맞이했고, 프로레슬링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헐크 호건의 바통을 받았던 얼티밋 워리어의 인기는 좋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고, 결국 헐크 호건이 다시 복귀 하는 등 WWF의 세대교체는 신통치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1992년 스테로이드 파동이 터지며 WWF의 이미지도 악화되었다.

상황은 WCW도 별반 다를게 없었는데, TBS의 인사들과 테드 터너는 프로레슬링에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초기엔 로보캅의 도움을 받는 스팅(...) 이때부터 시작된 스팅의 굴욕 등 정말 주옥같은 명장면(...)들이 탄생하고 있었다.

이렇게 위기를 맞던 와중, WWF는 상황을 바꿀 두가지 수를 두는데, 하나는 80년대의 선수들은 배제하고 새로운 선수들을 메인 이벤터로 올리는 것이었다. 이 시기 푸쉬를 받은 선수들이 브렛 하트, 숀 마이클스, 레이저 라몬, 디젤, 브리티쉬 불독, 렉스 루거 등이였는데, 이들은 모두 80년대의 스타들과는 다른 부류의 카리스마와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브렛 하트와 숀 마이클스는 당시까지의 WWF, 아니 역대 모든 프로레슬러 중에서도 탑 클래스의 경기력이라 심심하면 데이브 멜처에게 별 0개를 받던(...) 골든 제너레이션 시절에 비해 WWF는 경기 측면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두번째는 생방송으로 주간 프라임타임 시간대 레슬링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것이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레슬링 프로그램은 전부 사전녹화된 영상을 보여주고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나 PPV 홍보를 하는 식이였는데, 1993년 1월 WWF가 최초의 생방송 레슬링 쇼 RAW의 첫 에피소드를 방영하며 생방송 시대를 연 것이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RAW는 이전과는 모든게 달랐다. 선수와 관중은 서로 가까이 연결돼 있었고, 선수들은 매주마다 경기를 치뤘으며, PPV에서나 나타나던 챔피언이 매주 개근을 하는것이다!

이렇게 상황을 타파할 전략을 짠 WWF였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80년대의 검증받은 레슬러들이 소외됐던 것이다. WWF의 '뉴 제너레이션' 시대가 열리며 기존의 선수들은 기회를 받지 못했고, 헐크 호건을 시작으로 아직 충분한 능력이 있는데도 RAW 해설이나 보던(...) 랜디 새비지 등 많은 골든 제너레이션 시대의 메인급 선수들이 테드 터너의 자본에 힘입어 마구 선수들을 영업하던 WCW로 이적한것이다. 이는 WWF에게 뼈아픈 실수가 됐는데, 이미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베테랑들을 잃어 선수들의 네임벨류가 WCW에 비해 떨어지게 된것이다.[8]

이렇게 스팅, 릭 플레어, 헐크 호건, 랜디 새비지라는 다시 없을 메인이벤터 진에 더해 WCW는 테드 터너를 대신해 WCW를 총괄할 인물을 뽑게된다. 바로 에릭 비숍.
WCW의 부사장이 된 비숍은 경기장을 구식 경기장에서 세련되고 관객들과 가까운 경기장으로 이주하고, 본인 말로는 '전형적인 남부지역 레슬링 쇼'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남부 억양의 해설진을 갈아치우고 바비 '더 브레인' 히넌과 민 진 오클런드를 고용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개혁을 하고있었다. 그러던 중 1995년, WCW는 WWF의 RAW와 같은 생방송 레슬링 쇼 나이트로를 신설한다.

RAW와 똑같은 월요일에,
RAW와 똑같은 프라임 타임에.
북미 프로레슬링 양대 단체의 메인 쇼가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배치된 것이다!
이로써 두 단체의 사활을 건, 프로레슬링 역사상 다시는 없을, 아니 방송 역사상으로 따져도 다시는 없을 전무후무한 시청률 전쟁이 시작됐다.

2.1.6 ECW의 등장과 대격변, nWo애티튜드 시대 (1996~2001)

80년대 프로레슬링 붐 시기와 더불어,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
한 시대에 아이콘이 이나 탄생한 전무후무한 시기.

이 무렵, Eastern Championship Wrestling 이라는 필라델피아를 본거지로 하는 독특한 단체가 있었다. 폴 헤이먼의 주도하에 화려하고 하드코어한 경기를 선보이던 이들은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밥줄이였던 WCW에게 버림받은 NWA의 새 돈줄로 매니아들의 지지하에 소소한 흥행을 해오던 단체였는데...
1994년 8월 27일 모든게 달라졌다.

이 날 NWA 월드 챔피언십을 건 매치에서 승리한 셰인 더글러스는 대뜸 타이틀을 던져버리고는 "NWA는 죽은 단체이며 ECW 타이틀만이 세계 타이틀이다."란 폭탄 발언을 남겼다. 당시 운영자였던 토드 고든, 폴 헤이먼, 셰인 더글러스 세 사람이 짜고 NWA를 엿먹인것이다. 이후 이름의 Eastern을 Extreme으로 바꿔 Extreme Championship Wrestling을 출범한 후 NWA에서 탈퇴해버렸다.

이후 본격적으로 비주류의, 비주류에 의한, 비주류를 위한 단체의 길을 걷기 시작한 ECW는 비단 하드코어 레슬링 말고도 에디 게레로, 크리스 제리코, 크리스 벤와와 같은 북미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테크니션들과 메이저 단체에서 외면받던 선수들을 데려와 스타로 만들고, 북미에서 최초로 멕시코 루차 리브레 스타일을 선보이고, 프로레슬링에서 최초로 탭아웃 시스템을 도입하는등[9] 혁신적인 행보를 걸어왔고, 또한 아직 만화적인 각본과 기믹들이 난무하던 시기에 ECW는 현실적이고 날이 서있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각본과 기믹들을 선보였는데, 이를 1996년 WCW가 먼저 받아들인 후,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린다.
바로 nWo.

WWF의 간판스타였던 스캇 홀케빈 내쉬가 '아웃사이더즈'라는 이름으로 WCW의 침입자들처럼 데뷔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던 nWo 각본은, 헐크 호건의 악역 전환과 nWo 창단이란 충격적인 각본을 선보이며 WCW가 WWF를 압도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줬고, 이후 nWo의 충격적 행보와 스팅의 역대급 기믹 전환까지 합쳐지며 WCW는 83주동안 WWF를 시청률로 압도했다.

순수 레슬링 면에선 수많은 명경기를 선보이며, WCW를 압도했으나 각본면에선 귀족, 치과의사, 그냥 열혈청년(...)[10]등 어처구니없는 기믹을 선보이던 WWF도 스티브 오스틴을 시작으로 트렌드를 맞추기 시작해 원래부터 온갖 망나니짓은 다하던 숀 마이클스트리플 H, 차이나(프로레슬러)와 함께 DX를 결성해 더 막나가기 시작했고(...) 막가파 악역이였던 스티브 오스틴은 어느새 Bad Ass한 희대의 반항아로 변해있었으며, 영웅 브렛 하트는 이런 세태에 못마땅해 하더니 결국 냉혹한 독설가가 돼 버렸다.[11] 이렇게 변화를 해오며 WCW를 추격해왔지만 역부족이였던 WWF였는데...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일어났다.

평생을 WWF에 헌신해온 충신 브렛 하트가 배신을 당한것에 레슬링계는 충격에 빠졌고 백스테이지는 어수선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WWF의 대반격의 시발점이 되는데, 이왕 이렇게 된거 제대로 막나갔기 때문이다. 브렛을 엿먹인 역적 중 하나인 DX는 얘네가 과연 어디까지 막나가나 궁금할정도로 매주마다 방송사고급 만행(...)을 일삼았고, 남은 한명인 빈스 맥맨은 아예 그의 악덕 회장 이미지를 캐릭터화 시켜 스티브 오스틴과 전설적인 대립을 하며 초대박을 쳤다. 이 시기 WWF는 최고 시청률이 8%를 넘는등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고, 이 반격을 이겨내지 못한데다 추가로 자기들끼리 정치싸움에 삽질까지 한(...) WCW와 WWF와 WCW의 이중압박을 견디지 못한 ECW를 인수하면서 월요일 밤의 전쟁은 WWF의 승리로 끝이 났다.

2.1.7 인디 레슬링의 약진, WWE의 독주와 사건사고 (2002 ~ 2007)

2002년, WWF는 세계 야생동물 기금과의 소송에서 패소해 단체명을 WWE로 바꾼다. 비록 ECW는 사라졌지만, ECW 이후로 무수히 많은 인디 레슬링 단체들이 생겨났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게 ROH.

ECW의 후계격으로 시작한 이 단체는 CM 펑크, 대니얼 브라이언, AJ 스타일스, 사모아 조, 새미 제인, 케빈 오웬스, 세스 롤린스, 세자로와 같은 수많은 선수들과 CM 펑크와 사모아 조간의 60분 시간제한 매치와 같은 수많은 명경기를 배출했으며, 한때는 세상에서 경기력으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단체이기도 했다.

그리고 북미 내 2인자 자리를 수성해왔던 TNA도 빠질수 없다. 특색있는 육각 링과 한때 TNA를 먹여살리던 X 디비전 및 넉아웃 디비전, 리썰 락다운, 킹 오브 더 마운틴같은 고유한 경기 방식이 공존하던 특색있는 단체였으나 그분이 오고 나선.....
하지만 상업적인 면에선 경쟁상대가 없어진 WWE의 독주체재다. 쓸데없이 XFL로 돈 낭비하긴 했어도 이제 WWE는 명실상부한 업계의 No. 1 단체로 군림중이며, 더이상 WWE가 흔들릴 일은 없는듯 했으나... 크리스 벤와 사건이 터져버렸다.

사건 자체의 충격과 크리스 벤와의 뇌가 알츠하이머 환자 노인 수준이였다는 부검 결과로 WWE는 청문회에 끌려디녔고, 비단 WWE 뿐만 아니라 북미에서의 프로레슬링 자체가 흑역사로 남을 뻔했다. 이곳저곳서 잡음이 터지던 WWE는 이후 머리에 하는 체어샷과 같은 많은 기술을 봉인하고 시청등급을 TV-14에서 PG로 낮춘다.

2.1.8 TNA의 몰락, PG와 리얼리티 시대 (2008 ~ 현재)

현재 TNA는 그분의 맹활약덕에 망조가 들었고(...) ROH는 선수를 키우는 족족 WWE에 빼앗기며 주춤한 상태다. 현재 마니아팬들을 중심으로 해외진출을 하고있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정도를 제외하면 WWE와 조금이나마 맞먹을 단체 자체가 없는 상황이기에 WWE의 독주체재가 더욱 심화되었다.

PG로 등급을 내린 후 한동안 혹시나 역시나 존시나 존 시나에 의존해오던 WWE였으나 2011년 이후로 인디 출신 레슬러 CM 펑크, 대니얼 브라이언이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자 트리플 H의 주도로 인디 곳곳에서 선수를 영입하고 있다. 산하단체 NXT는 어느새 괴물집합소가 되어 WWE 메인 로스터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세스 롤린스, 딘 앰브로스, 세자로, 케빈 오웬스같은 인디 출신 레슬러들이 매주마다 맹활약중이다.

또한 WWE의 여성 디비전도 NXT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흥행중이다. 사실 메인 로스터는 이 분들 강점기지만 2014~2015년즈음 부터 주목받은 NXT 여성레슬러 4인방 샬럿, 사샤 뱅크스, 베키 린치, 베일리의 맹활약으로 계속 명경기를 만들며 팬들에게 'This is Wrestling' 챈트를 받는 등 엄청난 기세를 보이고 있다.

수정바람

2.2 일본

본격적으로 일본에 프로레슬링을 도입한 것은 물론 상투를 자르고 폐업한 전직 스모 역사인 모모타 미츠히로, 익히 알려진 역도산으로 우연히 만난 일본계 미국인 프로레슬러 해롤드 사카다와 술집에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모모타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해롤드 사카다에 의해 프로레슬러의 길을 걷게 된다. 하와이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얻은 인맥을 이용해 미국의 프로레슬링 연합인 NWA 프로모터 자격을 얻은 역도산은 일본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프로레슬링 단체인 일본 프로레슬링을 설립하며, 마찬가지로 인맥을 통해 섭외한 서양의 레슬러들을 초청해 격파하는 다분히 국뽕기 가득한(...) 경기를 보여주며 대히트를 치게 된다.

국뽕이라는 장난스러운 표현을 사용했지만, 실제 태평양 전쟁 패전으로 인해 패배주의로 충만해있던 쇼와의 일본인들에게 역도산의 퍼포먼스는 각별한 것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못살고 힘들었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김일박치기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역도산은 엄청난 부와 명예를 손에 넣었는데, 영화에서처럼 일본 황족이 그의 스파링을 구경하러 올 정도였으니 가히 국민적인 영웅이라고 할 만한 대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역도산 개인의 폭력적이고 충동적이며, 다른 이를 믿지 못해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려하던 성격때문에 일본 프로레슬링은 이미 내부에서부터 불안요소를 안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역도산이 술집에서의 시비 끝에 야쿠자의 칼에 맞아 결국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의 사후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엉망진창이었던 일본 프로레슬링 협회는 실권을 남아있던 수제자 오오키 킨타로, 즉 김일에게 위임하고 어떻게든 단체를 끌어가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안정궤도에 들어간 역도산의 두 제자 안토니오 이노키신일본 프로레슬링, 자이언트 바바전일본 프로레슬링에 밀려 쓸쓸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후 김일은 이 단체 저 단체를 전전하다 한국에서 시합을 벌이고 고국에서 역도산처럼 존경의 대상이 되는 대스타가 된다.[12]

신일본 프로레슬링전일본 프로레슬링은 이후 때론 협력하고 때론 경쟁하면서 일본 프로레슬링의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신일본은 이노키라는 대스타를 앞세워 괴물 외인들을 물리치는 동시에 무규칙 경기를 벌여 프로레슬링의 강함을 전달하면서 다양한 로스터와 섭외력을 발휘해 대진의 다양성 등으로 팬들을 불러모았고, 전일본 프로레슬링은 더욱 극적이고 흥미로운 정통 프로레슬링 경기를 팬들에게 선사하며 나란히 개가를 올린다. 양자의 노선 차이는 후대에 이르러 스트롱 스타일왕도 스타일이라는 다소 편의주의적인 구분으로 팬들에게 불리우게 된다.[13]

신일본은 일본의 메이저단체 중 처음으로 경량급[14]의 가치에 눈을 뜬 단체라고 할 수 있다. 당장 IWGP 2대 챔피언인 후지나미 타츠미는 경량급에서 활동하다가 그 능력을 인정받아 중량급으로 올라간 선수이며, 전설적인 초대 타이거 마스크 사야마 사토루가 다이너마이트 키드와 경이로운 명경기를 뽑아낸 것도 신일본이다. 경량급의 리빙 레전드인 야마다 케이이치씨수신 선더 라이거 등도 신일본 출신이다. 2010년대의 신일본이 경량급 디비전에 이상할 정도로 소홀한 것을 보면 꽤나 이색적이다.

안토니오 이노키의 실각[15] 이후에도 신일본은 이노키의 바로 다음 세대인 후지나미 타츠미와 초슈 리키를 앞세워 안정적으로 흥행을 이끌어나갔으며, 바로 그 이후의 세대인 투혼삼총사의 등장으로 1인자의 자리를 굳건히 했다. 그러나 이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나간 다음 새로운 세대교체가 필요해질 무렵 이노키를 등에 업은 오가와 나오야[16]와 투혼삼총사의 하시모토 신야가 극도로 투기화된, 프로레슬링 팬이 쉽게 납득하기 힘든 거친 경기를 벌이며 심지어 정통 레슬러인 하시모토가 압도적인 열세로 패배하고 만다. 신일본 내부에서는 정통 프로레슬링 세력이노키즘[17] 세력의 내부 갈등이 깊어지기 시작한다.

전일본 프로레슬링은 점보 츠루타와 텐류 겐이치로, 그리고 화려하고 강력한 외인 용병들을 기용해 경기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왕도 프로레슬링을 피력하며 순항해 간다. 세대교체 또한 마스크를 벗어 던진 미사와 미츠하루가 점보 츠루타와 스탠 핸선을 격파하며 초세대군의 기수로 나서면서 연착륙에 성공한다. 미사와 미츠하루, 코바시 켄타, 카와다 토시아키, 타우에 아키라의 이른바 사천왕은 시대를 대표하는 명 레슬러로 이름을 떨쳤으며, 이 네 명과 뒤늦게 합류한 무서운 후배 아키야마 준이 포함된 오강(五强)이 군림하던 시기 전일본은 정신나간 듯한 명경기를 정말 밥먹듯이 뽑아내며 세계적으로도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된다. 이 시기 데이브 멜처는 정말 일뽕이라도 맞은 듯이(...) 오강들에게 별점을 퍼주면서 최고의 레슬러들로 추켜세워줬는데, 이 시기 전일본의 경기력은 북미 단체와 비교하자면 한 차원이 아니라 몇 차원은 다른 수준이었기 때문에...[18] 그러나이 시기에 경기의 품질과는 별개로 전일본의 흥행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었는데, 이는 오강에게 너무 의존한 나머지 대진이 경직되고 경기가 점차 매니악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바 사후, 그 명성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만다. 새로이 사장이 된 미사와는 진정한 실세인 바바 모토코와의 갈등 끝에 전일본을 이탈하고 말았고, 그 미사와의 두터운 인망을 따라 전일본 오강 중 세명이 따라나오고 그 외에 준 메인, 미드카더들이 모조리 따라나오는 바람에 그야말로 기둥뿌리가 뽑히고 만다(...). 이에 대해서는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의 1차 이탈사건을 참고할 것.

이후 미사와는 새로운 단체 프로레슬링 NOAH를 개양하며 위풍당당하게 새출발을 시작했고, 전일본 시절의 왕도 레슬링을 그대로 계승하여 단체 개양 4년만에 도쿄돔 흥행을 성공시키는 등 탄탄대로를 걷는다.

한편 신일본이 지나치게 실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자 단체의 에이스이자 투혼 삼총사 무토 케이지는 위기감을 느낀다. 화려하고 과장되면서 에너지가 넘치는 프로레슬링이 특기였던 무토에게 단체의 투기화는 굉장히 불편한 것이었고, 이노키를 등에 업은 후지타 카즈유키 등의 격투가들이 차츰 이기는 부킹을 받으며 단체를 잠식해나가자 불만을 품고 신일본을 탈단하게 된다. 탈단한 무토는 미사와가 이탈하여 공석이 된 전일본의 사장이 되어 팬들을 충격에 빠트렸으며, 기존 전일본의 색과는 다른 본인의 화려하고 즐거운 프로레슬링을 전일본에 도입하여 팬들의 비난에도 직면하곤 했지만 꿋꿋하게 기둥뿌리부터 들려버린 전일본의 체질을 개선하기위해 노력했다. 이후 스와마나 타이요 케아 등을 본궤도에 올리면서 단체를 어느 정도 살려내는 데 성공했으니 무토의 능력을 의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오가와에게 굴욕적으로 패배한 하시모토 또한 불만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 또한 끝끝내 신일본을 탈단하고 자신의 단체 "Zero-1"을 설립하는데, 타 단체와의 활발한 교류,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오가와와의 태그팀인 "OH포" 등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려는 찰나 하시모토 신야 본인이 요절하면서 단체도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신일본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격투기와의 연계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 시기 하시모토의 요절, 무토의 이탈로 인해 얼굴을 잃어버린 신일본은 격투기 무대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올린 나가타 유지를 단체의 원톱으로 내세워 IWGP 10회 연속 방어[19]라는 무지막지한 위업을 챙겨주었으며, 그 나가타에게 타이틀을 뺏어 온 것은 마찬가지로 격투기를 병행하던 타카야마 요시히로였다. 혼돈은 계속되는 와중에 격투기 무대에서 얻어걸린 승리를 챙긴 평범하고 개성없는 미드카더 야스다 타다오가 IWGP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가, 밥 샙이 챔피언이 되었다가, 후지타가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텐잔을 1분여만에 초살하고 벨트를 뺏어온다던가, 그야말로 점입가경으로 접어들게 된다(...). 그 시기 NOAH는 전일본에서 하던 것처럼(...) 별 4~5개 경기를 무슨 틀로 찍어내듯이 줄줄 뽑아내고 있었으니 신일본의 인기가 막장까지 치달아가는 것은 안봐도 비디오.

세대교체를 위해 내세운 신 투혼삼총사도 문제가 많았다. 타나하시 히로시무토 케이지의 빈자리를 채울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경험이 일천하여 눈이 썩는 경기만 줄줄히 뽑아내고 있었고(...), 그나마도 정통 프로레슬러라는 이유로 격투기 스타일의 나카무라 신스케의 후순위였기 때문에 성장이 정체되어 있었다. 나카무라는 지금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는 정통 노력파 청년 캐릭터에 나쎄 뺨치는 파워 푸시를 받는 주제에 경기는 눈썩(...). 설상가상 시바타 카츠요리는 아예 격투기 하겠다고 탈단하고 만다. 그런 상황에서 프로레슬러들은 높아진 격투 무대의 수준에 연전연패하기 시작했고, 타이틀 10연속 방어에 빛나는 나가타 유지는 하이 레벨의 격투가들에게 그야말로 떡이 되도록 두들겨맞으며 위신을 구기고 말았다. 그야말로 개판. 이 시기 신일본은 그야말로 미래가 없는 단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NOAH 또한 불안한 상황. 전일본 오강 출신의 메인이벤터들은 80년대 말부터 풀타임으로 몸을 혹사했는데, 그 반동으로 빠르게 오강들의 노쇠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가장 연장자였던 타우에는 무릎과 목이 너덜너덜했으며, 미사와 또한 전신이 성한 곳이 없었다. 코바시는 70대 노인의 무릎이라는 충격적인 판정을 받으면서 암까지 발병하고, 아키야마는 공황장애로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 상황에서 후계주자로 밀었던 리키오와 모리시마는 선배들의 카리스마와 경기력에 범접할 수 없었기에 세대교체는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주니어급인 마루후지와 켄타, 스기우라가 두각을 드러내는 상황. 아무리 중량급과 경량급의 경계가 옅어졌다고 하지만 프로레슬링은 철저하게 헤비급 위주로 돌아가는 업계이며, 이들을 억지로 중량급 무대에서 활동하게 한 NOAH는 아무래도 무게감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20]

그 와중에 예전의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레슬링을 찾던 팬들은 미국에 눈을 돌려 WWE가 일본 레슬링의 부진을 틈타 인기를 끌고, 프라이드에서 축출된 타카다 노부히코는 뜬금없이 프로레슬링은 쇼다라는 내용을 담은 자서전을 내놓고 어그로를 끌더니, 그 어그로를 기믹으로 만든 악역 레슬러 타카다 총통(...)이 되어 극 엔터테인먼트 지향의 레슬링 단체 HUSTLE-1을 창립한다. 이 단체는 당시 인기를 끌던 개그맨 레이저라몬 HG를 영입해 프로레슬러로 써먹으며, 기존의 진지함으로 가득찬 카리스마적인 레슬러들에게 약이라도 빤 듯한 괴상한 기믹을 부여해가며 나름 흥행에서 선전한다.[21] [22]

그 와중에 미사와가 경기 중 사고로 목숨을 잃자, NOAH는 성장 동력을 잃고 정체기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타우에가 NOAH의 신임 사장으로 취임하였지만, 이후 내부의 부조리로 인한 갈등으로 인해 아키야마 준을 비롯한 몇몇 선수가 고향은 전일본으로 이적하는 탈단사건이 다시 한 번 발생하게 된다.

여기서 일본 프로레슬링 업계의 구원자로 등장한 것이 다름 아닌 부시로드다. 카드게임 만드는 회사가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인수하자 여기저기서 불안감을 표시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으나, 놀랍게도 부시로드는 대단한 수완을 발휘해 신일본을 제대로 된 프로레슬링 단체로 되돌리는 데 성공한다. 이미 오래전에 격투기와의 관계를 끊고 타나하시에게 본격적인 나쎄 푸시를 주며 구색을 갖추어가는 상황이었지만, 부시로드의 마케팅이 없었다면 그저그런 단체로 전락했을 신일본을 말 그대로 구원한 것.

부시로드는 이어 극비리에 NOAH마저 인수하여 신일본의 스즈키군을 침공시키는 스토리를 진행해 망해가는 NOAH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었으며, 은퇴한 코바시를 동원해 "미사와가 살아서 이 광경을 봤으면 땅을 치고 울 것이다"라며 NOAH의 골수팬을 자극하는 스토리라인을 진행중이다. NOAH가 2000년대 초반의 화려한 면모를 되찾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적어도 팬들의 관심을 붙잡아두는 데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신일본은 가히 업계 2위로 올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으로, 쌓인 관록과 카리스마에 절정의 경기력을 과시하는 에이스 타나하시 히로시를 필두로, 미친 존재감을 자랑하는 나카무라 신스케, 카리스마적인 뉴 페이스 오카다 카즈치카를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그야말로 명경기를 쏟아내며 연일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소속 프로레슬러들의 적극적인 예능 출연 등으로 인지도를 올린 덕분에 흥행력 또한 불이 붙은 상황.

2.3 멕시코

루차 리브레 참조

2.4 캐나다

추가바람

2.5 유럽

추가바람

3 엔터테인먼트 성향

과거에는 실전을 치렀다는 루머도 있는데, 애초 탄생 당시부터 각본과 워크가 난무했다. 이미 1930년대 무렵부터, "실전은 주차장과 라커룸에서나 벌어진다"든가, 루 테즈 등 실력파 레슬러가 맘에 안드는 상대에게 "실전으로 붙자"고 하면 상대가 겁먹고 내빼는(실력도 없이 기믹이나 외모, 덩치만으로 강자인 척하던 경우...) 일 등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기술의 특성상 실전으로 하면 사망이나 부상 사고가 다발할 수밖에 없다. 경기의 여건상 아예 '실전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닌데 선수가 시합중에 흥분한 탓에, 혹은 의도적으로 각본을 무시하고 난동을 부리는 것으로 일종의 '사고'이다.

올림픽 레슬링 등에서 벌이는 스포츠 시합으로서의 대결과 대조적으로, WWE 등의 프로레슬링은 시나리오를 정해놓는 엔터테인먼트가 주류이다. 이런 시나리오 방식은 뛰어난 시나리오와 연기력의 선수들이 모이면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점, 인기 좋고 몸값 높은 선수들을 시나리오상 필요한 만큼의 부상과 위험 부담만 주어 치료 기간을 줄여 다른 시합에도 출장하는 등 선수 생명을 지킬 수도 있다는 점 등의 장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역으로 이런 점에서 미스가 나면 기믹과 컨셉을 바꿀 때 레슬러의 캐릭터에 안 맞는 기믹을 배치했다며 반발을 사거나, 거꾸로 팬들이 오랫동안 좋아해줄 거라 생각하며 정한 패턴이 원 패턴 레슬러라며 금방 싫증을 내는 등 팬들이 봐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재미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시나리오와는 별도로 선수들끼리의 대결도 너무 티가 나게 치는 척만 하거나, 티 나게 그로기 연기를 하며 일부러 당해주는 모습 등은 시합의 박력을 떨어지게 만드는 단점을 유발시키기도 하였다.

이때문에 일명 프로레슬링은 쇼다!라는 사건으로 한국 프로레슬링이 급추락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대단한 사실왜곡이다. 이 사건에 대한 원로 프로레슬러의 사실 증언. 천규덕씨의 증언이다. 어떻게보면 당시 흥행에 안전문제로 참가한 경찰이 일으킨 권위주의/병폐 항목에 들어가도 할 말이 없다. 원인 제공은 현장에서의 돌발적 사건이었지만.

실제로 한국 프로레슬링은 이 사건 이후에도 인기스포츠였으며 그후 무려 10년이 지난 76년 한, 일 양국의 대표스타 김일과 안토니오 이노키가 대결을 벌이는 등 인기는 유지되었다. 그 후 김일 이후의 스타 선수가 사라지면서 쇠락.

프로레슬링 특유의 합을 맞춘 액션과 화려함, 그럼에도 최대한 선수의 안전을 지키고자 발달한 기술들과 낙법들은 가능한 한 안전하고 화려한 액션을 표방해야 하는 타 분야들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스턴트맨. 또한 선수들의 기믹과 마이크웍을 통해 재미와 흥행을 높이는 요소는 현대 종합격투기에서도 크게 벤치마킹하는 요소...이지만 아래에서도 언급되지만 사실 종합격투기와 프로레슬링의 역사를 분리해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말하자면 한 배에서 난 이란성 쌍둥이에 가깝기 때문.

스포츠나 실전을 추구한다는 컨셉을 내세운 레슬링 단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프로레슬링계에서는 비주류 흥행이다.

3.1 제발 따라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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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ever you want.

Whatever you do.
Please, Don't try this at home.

초창기 WWE를 시청할 때 나오는 경고 영상. 제발 따라하지 말라고 간곡하게 당부한다.
본래는 경고문을 위의 영상과 사진처럼 "Don't try this at home"으로 내보냈었는데, "그럼 집에서 안하면 되겠네?"라고 들은 무개념 팬들이 학교[23]나 체육관에서 따라하다 사고가 발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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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try this"로 바꾸었다.

한때 Don't try this at home으로 회귀했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Don't try this at home, school, or anywhere"로 바뀌어서 나온다.

결국 현역 선수들까지 발벗고 나와서는 "저희도 오래 훈련하고, 링 위에서 안전하게 진행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고가 터집니다. 제발 집이나 학교에서는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고 직접 말한다. 진짜 WWE에서 거금들여서 경고하는 이유가, 프로레슬링은 각본이 있어도 위험천만하다. 28년간 뛰었던 일본의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미사와 미츠하루조차도 낙법을 잘못해서 사망했다. #[24] 몇 년이나 썼던 기술을 실수해서 장애를 안은 선수도 많다. 심지어 양자간에 각본 짜놓고 그대로 예행연습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실제로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사망하거나 다친 사람이 기간이 같은데도 종합격투기 사망자&불구자보다 훨씬 많다.

사고가 안 생겨도, 계속 돈을 벌려고 자주 경기해서 몸이 망가지는 사람이 속출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도, 충격까지는 못 없앤다.[25] 이들은 무서운 고통을 참으면서 경기한다. 게다가 낙하 기술들은, 상대와 본인이 같이 충격받는다. 프로레슬링을 오래 한 사람이, 마약성 진통제까지 복용하는 사례도 많다. 그래서 프로레슬러들이 약물 중독으로 많이 급사한다. 켄 샴락도 자신이 그동안 했던 활동중 제일 고되고 힘든 게 프로레슬링이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26]

오죽하면 캐릭터를 지키느라 경기 도중 인대가 끊어지거나 심지어는 사망해도 계속 경기할 때도 존재한다. [27][1] 이외에도 해머링과 찹은 꽤 안전해 보이지만, 진심으로 쓰면 아주 위험하다. 게다가 머리나 뺨처럼, 위험한 부위가 많아서 더더욱 위험하다.

명심하자. 다 이유가 있어서 저 경고를 하는것이다.

3.2 종합격투기의 모태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프로레슬링이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이외의 일면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격투기로서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단체들도 존재했는데 이러한 실전지향 프로레슬링 지파들을 '슛'이라고 부른다. 세계 최초의 종합격투기 단체인 Shooto의 명칭은 여기서 비롯된 것.

이들은 레슬러간의 시합 이외에도 이종격투기 이벤트를 자주 개최했는데, 가장 오래된 공식적인 기록은 1936년에 있었던 프로레슬러 레이 스틸(Ray Steel, 본명 Peter Sauer)과 헤비급 복서 킹피쉬 레빈스키(Kingfish Levinsky)의 대결이다.[28] 이밖에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브라질의 루차 리브레 선수들은 1920년대부터 발리 투도에서 무규칙으로 싸웠다고 한다.

현대 종합격투기에서의 움직임은 '신일본 프로레스' 의 사장이자 선수였던 안토니오 이노키가 격투기의 고수들을 링으로 불러들여 경기를 했던 것을 그 시초로 하며, 특히 이노키 본인과 무하마드 알리와의 이종격투전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다만 룰을 제대로 확정시키지 못한 것도 있어서 출전시킨 일본인 프로레슬러가 처참하게 참패한 일이 대부분이었고,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주류는 아니지만 종합격투기 성격으로 실전 프로레슬링을 지향하는 단체인 UWF가 나타나는 배경이 된다.[29] 또한 그 뒤에 나타난 상업적 종합격투기 단체인 Pancrase, Rings, Shooto, PRIDE, SRC도 프로레슬링에서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아직도 종합격투기와 프로레슬링의 상호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베이스로 수련한 대상은 주로 90년대 ~ 00년대 일본 무대에서 활약하였던 일본 U-계열 선수들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사쿠라바 카즈시, 켄 샴락, 프랭크 샴락, 코사카 츠요시 등이 이쪽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다. 브라질의 루차 리브레는 1960년대 발리 투도 시절부터 활발하게 이종격투전을 벌였고 마르코 후아스, 헤나토 소브랄 등이 이름을 날렸다. 이밖에 영미식 캐치레슬링 출신의 조쉬 바넷도 좋은 활약을 보였다.

지금의 위상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제법 강세였고 참여인원도 많았다. 하지만 00년대 이후 기술체계가 발전하면서 MMA에서의 프로레슬링세는 크게 약화되었다. 특히 일본 U-계 선수들은 몇몇을 제외하면 별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해서 다시 프로레슬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에서는 아마레슬링 선수가 프로레슬링으로 전향하는 경우가 있어서 종목간의 이동이 잦은 편이다. 90년대 후반 UFC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많은 수의 MMA 파이터들이 WWF로 갈아탔던 것이 좋은 사례. 켄 샴락이나 댄 세번이 이런 케이스에 해당한다. 반면 UFC가 재정을 제대로 확보하고 MMA 시장이 조금씩 커지는 00년대 후반에는 WWE에서 인지도를 쌓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MMA 무대에 뛰어들기도 했다. 물론 이 경우는 순수한 프로레슬링보다는 아마레슬링 베이스로 보는 편이 옳다. 브록 레스너나 바비 래쉴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담이지만 일본의 실전지향 지파들은 기성파벌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우리는 진짜로 싸운다'는, 어떻게 보면 격부심에 가까운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양 진영 사이에는 매끄럽지 못한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여기에 이권에 얽힌 야쿠자가 꼬이면서 갈등은 더 한층 고조되었다.

여담이지만 프로레슬러가 약하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현역 프로레슬러 엇비슷한 경력을 가진 프로 혹은 대회 급[30] 격투가들이랑 vs놀이 할때나 나오는 말이다. 애초에 일반인이랑 전문 체육인은 기본적인 신체능력부터 야생동물과 고양이 수준의 차이가 난다. 다만 일반적인 체육인, 스포츠인과 비교했을떄 운동선수들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대한 부하를 줄이려는 반면, 프로레슬러는 연출과 기믹 때문에 쉬고싶어도 못쉬고 명 깎아먹고 위에도 나와있듯이 몸이 망가져 가는걸 참아가면서 연기를 한다. 스포츠에서는 은퇴할 나이를 훨씬 뛰어넘어서까지 을 하는 경우도 많고. 여러모로 안습

3.3

플롯 상으론 두 명 이상의 선수가 매트가 깔린 링 위에서 싸워서, 승패를 가르는것을 목적으로 한다.

승패는 크게 두가지로 갈린다.

  • 핀폴 : 상대방의 양 어깨를 땅에 닿게 해[31] 3카운트 이상을 얻는다.
  • 서브미션 : 상대방에게서 기권의 의사를 받아낸다.

그 외에도

  • 링 아웃(CO : Count out) : 경기 진행 중 링을 나간 상태로 심판이 10 카운트, 혹은 20카운트를 셀 동안 링 위로 복귀하지 않는다
  • 실격(DQ : Disqualification) : 반칙에 해당하는 행위를 주심이 5카운트를 셀 동안 멈추지 않거나, 기타 심판의 재량에 따라 정도가 심한 반칙을 범할 경우(경기 참여 선수 중 한명이 심판을 공격한 직후 그 심판이 쓰러지지 않을 경우, 허용되지 않은 무기사용 포함) 실격패(반칙패)가 주어질 수 있다.
  • 레프리 스톱 : 선수가 부상이나 실신 등의 이유로 경기 속행이 불가능할 경우.
  • KO : 어느 한 선수, 혹은 두 선수 다 카운트 10을 셀 때까지 일어서지 못할 경우.[32] 프로레슬링에서는 경기 특성상 더블 KO를 제외하면 잘 일어나지 않지만 드물게 KO로 승리해서 벨트가 이동한 경우도 있다. [33] 프로레슬링 경기 방식 중 하나인 라스트 맨 스탠딩 경기와 관련이 깊다.
  • NO CONTEST: 말 그대로 무효, KO와는 미묘하게 다르다.[34]사유는 레프리 스톱이나 타 선수의 난입으로 인해 경기가 개판(...)으로 흘러갔을 때 심판 재량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

등이 존재한다.[35]

반칙 참조.

3.4 프로레슬링의 링

프로레슬링의 링은 권투나 타 격투기에 가까운 링을 사용하지만 링을 사용하는 스포츠와는 달리 코너 포스트와 로프에서의 움직임에 큰 비중이 있어서 링을 구성하는 요소가 다른 링을 사용하는 스포츠와 상이한것이 특징이다. 또한 프로레슬링의 링은 지역, 단체의 특징에 따라 그 모습이 상이하기도 하다. 일반적인 사각의 링이 아닌 육각, 혹은 팔각의 링을 사용하는 단체 등이 존재하며, 링의 크기도 단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거의 대부분의 단체에서 한 변의 길이가 16피트의 링을 사용하지만, WWE의 경우에는 18피트 길이의 링을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차이점이다.

3.5 구조

선수들이 하나의 리그를 결성하는것이 아니라 하나의 단체에 묶이거나, 혹은 프리랜서로 참가하는 등 스포츠보다는 흥행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3.6 경기 방식

프로레슬링/경기방식 참조.

3.7 세계의 프로레슬링

전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며, 특히 성행하는 곳은 미국-캐나다, 일본, 멕시코.

현재 가장 성행하고 있는 단체는 WWE(세계구[36])가 있으며, 신일본 프로레슬링,전일본 프로레슬링, 프로레슬링 NOAH(일본), TNA(미국), AAA,CMLL(멕시코) 등이 존재한다. [37]

3.7.1 한국의 프로레슬링

한국의 프로레슬링 사정에 대해서는 프로레슬링/한국 항목을 참조.

3.7.2 일본의 프로레슬링

1800년대 후반부터 태평양 전쟁 이전에도 일본인 프로레슬러들이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활동했으며, 1920년에는 일본 최초의 프로레슬링 단체가 세워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시기 프로레슬링은 크게 인기를 얻지 못했으며, 현대 일본의 프로레슬링 기초를 만든 것은 재일교포 출신의 프로레슬러인 역도산이다. "프로레스"라고 줄여서 부르고 미국에서도 일본 특유의 프로레슬링을 'puroresu'라고 부르기도 한다.[38]

일본 프로레슬링의 특징은 과격함의 추구와 심각한 구타(…). 역도산이 심심하면 사람 패는 버릇(…)이 있다보니 그게 제자들에게 이어지고, 또 제자들에게 이어져서 훈련중에 구타가 상식이 돼버렸다.

또한 일본 프로레슬링은 선수와 임원들이 제 성질을 못 이기는 사람이 많다. 마에다 아키라처럼 링 위에서 실전(…)을 벌이는 선수가 나오는 것이 그 예. 이것도 역도산이 링 위에서 기무라 마사히코를 조져버린 것에 그 기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다보니 아주 단체를 박차고 뛰쳐나가는 경우도 많다. 이게 상대가 일본인이 아니라도 예외가 아니라 안토니오 이노키의 경우는 상대였던 그레이트 안토니오가 접수를 안하고 이노키의 공격을 무시하자 빡쳐서 진짜로 구타한적도 있다.

일본 프로레슬링 계에서는 선수가 대표 등의 임원을 겸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선수들과 사무 경영직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39]에, 그렇다보니 카리스마 적인 선수가 대표를 맡지 않으면 단체를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역도산,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등의 '선수 개인'을 중심으로 뭉치는 경향이 상당히 오랬동안 이어졌다. 2000년대 후반부터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전문 경영인을 영입했고 전일본 프로레슬링 역시 비(非) 레슬러 출신 사장을 기용했지만, 일반적으로 현역 선수 내지는 은퇴 선수가 사장이 되어 단체를 경영하고 있다.

사실 다른 나라의 프로레슬링 계에서도 상황은 비슷한 듯.그래서 빈스 회장은 오늘도 링에서 구르는 것이다.[40][41]

일본 프로레슬링의 또다른 특징으로, 한동안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가 웬만한 남자 프로레슬링 단체보다 훨씬 잘 나갔다. 흔히 '전녀'라고 부르는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이 전국적으로 붐을 일으킨 덕분에 많을 경우엔 연간 300회가 넘는 흥행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는 역대 일본 프로레슬링 단체를 통틀어 연간 최다 흥행 기록이다. 90년대 초반 WWF에서 전녀의 선수들을 대거 기용해 전녀의 흥행 시기를 카피하려 시도했었을 정도...

4 단체

더 많은 단체를 알고 싶다면 해당 위키문서를 참조하자 # 한국 단체는 안나와있다.

4.1 미국

4.1.1 메이저

  • WWE - 세계 최대의 프로레슬링 단체. 어지간한 일반에게는 프로레슬링 = WWE다. 메이저 단체 중에서도 넘사벽급.[42]

4.1.2 애매한 경우

  • TNA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WWE의 뒤를 잇는 명실상부 북미 2위 단체로 군림했으나, 최근 계속해서 위기를 맞으며 단체 존폐의 가로에 서있다.
  • ROH - 명실상부 북미 인디 중 1위 단체. 최근 방송 계약을 따내고 PPV[43]를 개최하는 등 메이저 단체로의 진입을 노리는 중. 다른 단체들과 달리 제법 빵빵한 모기업이 있긴 하지만 여기가 ROH에 제대로 투자를 안해서 위로 올라가진 못하고 있다.

4.1.3 인디

해당 문서가 직접 작성되기 전까지 다음 홈페이지를 참조하길 바란다.

  • 글로벌 포스 레슬링 - TNA의 설립자이자 프로레슬러 제프 제럿이 만든 신생단체. 메이저라기엔 애매한 규모지만 최근 방송계약을 따냈다. 다만 어디까지나 해외 방송권이고, 아직 미국 내 방송권은 따지 못해서 제대로 방송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PWG - 캘리포니아를 본거지로 하는 서부 미국을 대표하는 인디 단체. ROH와 동급 혹은 그보다 더한 수준의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다.
  • CHIKARA - 멕시코의 루차 스타일을 적용한 단체. 선수들 대부분이 마스크 레슬러인게 특징이다.
  • WWN - Evolve와 드래곤 게이트 USA가 연합하며 생긴 회사. 독자적인 네트워크 시청 시스템을 제공중이다. 최근 WWE와 제휴를 맺었다.
  • NWA - 본래는 미국 최대의 연합체였지만 WWE의 확장으로 몰락했다.
  • CZW - 북미를 대표하는 하드코어 레슬링 단체다.
  • OVW
  • WOWE - 전세계적으로 거의 드문 여성 프로레슬러 위주의 프로레슬링 단체. 한국에서도 KBS SKY 스포츠에서 WOWE의 판권을 사들여서 2003년 잠깐동안 방영한 적이 있었다.
  • SHIMMER - 북미 최대의 여성 프로레슬링 단체

4.1.4 도산한 단체

4.2 일본

해당 문서가 직접 작성되기 전까지 다음 홈페이지를 참조하길 바란다.

  • ZERO1 - 하시모토 신야가 세운 단체. 하시모토 신야 생전에는 나름 잘나갔지만 그가 사망하면서 단체가 급격히 기울었다. NWA처럼 각 나라에 지부를 세우곤 하는데 한국에는 조경호 선수가 ZERO1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세우고 활동 중이다.
  • 3 D - 일본 인디에서 가장 잘 나가는 세개의 단체를 일컫는 명칭. 전일본과 NOAH의 몰락으로 사실상 업계 2위를 다투는 중이다.
    • DDT
    • DRAGON GATE - 울티모 드래곤이 일본에 세운 수련 단체 토류몬 출신의 선수들이 토류몬 재팬이 문 내린 다음 결성한 단체. 울티모 드래곤의 제자들인 만큼 루차 리브레 스타일에 매우 능하다. 일본에서 최고의 태그팀 레슬링 단체로 군림 중. 엔터테이너 성으로도 매우 훌륭해 여성 팬들도 많은 편이다.
    • 대일본 프로레슬링 - Big Japan Pro Wrestling. 1995년 설립된 일본의 하드코어 프로레슬링 단체로 출범 당시에는 미국의 ECW, CZW와 비슷한 데스매치/하드코어 스타일의 경기를 구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신일본 식 스트롱 스타일 경기의 비중도 증가하고 있다.

4.3 멕시코

4.4 유럽

  • RPW - 신일본과의 협력으로 드림 매치들을 만들어내는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단체. 거점은 켄트 주 시팅본이지만 중요한 흥행은 런던의 요크 홀에서 개최한다.
  • PROGRESS 레슬링 - 런던을 본거지로 하는 영국의 단체. 일명 '펑크 록 스트롱 스타일'을 지향한다.
  • wXw - 독일에 거점을 둔 단체

4.5 한국

일본에서 이름값과 실력을 갖춘 여러 선수들을 초청해오고 국내의 젊은 프로레슬러들을 융합해 TV 방영권까지 따내고 한국 프로레슬링계를 바꿔보고자 야심차게 출범한 단체였으나... 망했어요. 무엇보다 서로를 죽일 놈 취급하며 파벌간 기싸움이 무시무시한 한국 프로레슬러들이 한 단체에 모일 리 만무했고, 단체 내 안정적으로 소속된 선수가 존재하지 않게 되니 수익성이고 발전가능성이고 하늘 저 멀리 날아가 외국 선수 초청이나 TV 방영권 등등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5 국제 대회

6 유명 프로레슬러

7 관련 게임

항목 참조.

8 관련 만화

9 프로레슬링의 기술

프로레슬링/기술 항목 참조.

10 관련 항목

10.1 주요 사건사고

스포츠 사건사고 프로레슬링 항목 참조
  1.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란 단어는 어디까지나 WWE의 빈스맥맨이 만든 독자적인 단어다. 당연히 타 단체들에게는 이런 단어들은 통용이 되지 않는다.
  2. 우리가 잘 아는 에이브러험 링컨도 프로레슬러 출신이었다.
  3. 아시다시피 플레어는 이시기 후로도 왕성히 활동하였고, 배클런드 또한 90년대 중반 WWF에 복귀했다.
  4. 비공식적으론 WCW의 북한 흥행이 15만명을 동원했지만, 관객들은 강제동원됐을 확률이 높고 반대로 관람이 자유롭지도 않아 인정되지 않았다.
  5. 이후 레슬매니아 32에서 공식 기록이 경신되었다.
  6. 이 시기 WCW는 그저 GCW의 프로그램 이름이였다.
  7. 이를 '프로레슬링의 검은 토요일'이라 부른다.
  8. 단, 이건 선후관계가 명확하지 않은데 헐크 호건 등 몇몇 기존의 베테랑 레슬러들이 WWF에서 스테로이드 사건에 대해 빈스 맥마혼에게 불리하게 증언한 다음 WCW에 거액의 돈을 받고 튀었다는 말도 있다. 또, WCW에서도 WWF의 유명 레슬러들을 돈으로 끌어모으기도 했고. 한마디로 빈스가 세데교체를 위해 베테랑을 내보냈다기보다는 대부분의 베테랑들이 돈을 좆아 WCW로 가는 바람에 2선급의 레슬러들을 급히 메인으로 올린 것이다.
  9. 이전까진 항복 개념은 있었지만 탭아웃 개념은 없어서 관절기에 걸린 선수가 링바닥을 마구 치고있는데 경기가 안끝나는 요즘 기준에선 묘한 광경을 볼 수 있다.
  10. 웃기게도 이들은 모두 기믹 변경 후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다.
  11. 실제로 브렛은 WWF의 애티튜드 정책을 못마땅해 했다 한다. 자기가 뼈빠지게 일해서 스테로이드 파동으로 개판인 회사 이미지 겨우 회복 시켜놨는데 스스로 다시 망치니 그럴만도...
  12. 김일이 귀국하여 경기를 가지던 시점에서 김일은 나라의 지원을 등에 업고 기존 자생한 프로레슬링 계파를 밀어낸 굴러온 돌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한국 프로레슬링 업계의 주류 계파가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현재 한국 프로레슬링 주류 계파는 역도산으로부터 내려온 일본 프로레슬링 협회의 진짜 성골 계파이며, WWA 등의 초라한 한국 프로레슬링 단체가 카네모토 코지나 마루후지 나오미치같은 거물들을 국내 흥행에 초청할 수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김일부터, 다른 이도 아닌 안토니오 이노키를 국내 흥행에 초청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13. 엄밀히 말하자면 왕도 스타일은 어느 정도 정의가 되는 용어이지만, 스트롱 스타일은 워낙에 중구난방으로 정의되는 용어라 양자가 명확하게 대립되는 명칭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14. 일본에서는 주니어 헤비급이라고 칭한다.
  15. 횡령 혐의. 그러나 표면상일 뿐 이후로도 이노키는 신일본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16. 올림픽 유도 은메달 리스트, 프라이드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격투가이기도 하다. 단, 프로레슬링 데뷔가 먼저.
  17. 말 그대로 프로레슬링이 실전에서도 최강이라는 판타지사상이다. 2010년대의 시각에서 바라보자면 정말 코웃음밖에 안 나올 주장이라 할 수 있다.
  18. 바로 이 시절의 레슬링을 오마쥬하려는 의도로 시작된 것이 초기의 ROH다. 팬들이 지독한 강성인 것도 물건너 일본의 레슬링을 찾아볼 정도의 레슬링 매니아들이 팬베이스이기 때문이다.
  19. 벨트를 만든 이노키 본인도 4회 연속방어밖에 못해본, 엄청난 위업이다. 이후 이 기록은 타나하시 히로시가 11회로 경신.
  20. 사실 원래부터 NOAH는 오강을 제외하면 헤비급보다 주니어 쪽이 더 재미있었던 단체였다.
  21. 특히 전일본에 끝끝내 남은 하드한 킬러 이미지의 사천왕 "데인저러스 K" 카와다 토시아키에게 변태스러운 옷을 입히고 "파라다이스 K"라는 기믹을 부여한 게 유명하다.
  22. 하지만 결국은 처음의 동력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오래 못가서 침몰하게 되었다.
  23. 학교대사전에서도 '"Don't try this at home"은 집이 아닌 학교에서는 해당사항이 안 되는 표현이다' 라고 서술해놨다.(...)
  24. 사실 미사와 미츠하루의 경우는 사망 전에도 워낙 격렬한 경기를 많이 펼쳤던 탓에 몸에 멀쩡한 구석이 거의 없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망 즈음에는 그가 이끌던 단체인 프로레슬링 NOAH의 경영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았던 탓에 명성 높은 그가 아픈 몸을 이끌고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25. 펀치 드렁크가 무슨 말인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26. 다만 이건 프로레슬링도 힘들지만, WWE 스케줄이 그 이상으로 빡센 것이 크다. WWE는 1년에 300일 가량 스케줄을 소화해야한다.
  27. 기사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당연하게도 사망한 사람이 경기를 계속했다는 게 아니라, 옆에서 사람이 사망했는데도 계속했다는 뜻.
  28. 스틸이 36초만에 승리했다고 한다. 자세한 룰이나 경기내용은 불명.
  29. 한가지 명심할 것은 UWF는 어디까지나 실전지향일 뿐 완전한 실전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진짜 격투기 시합을 치른 것은 Shooto, Rings, Pancrase 세 단체를 기점으로 하며 이들 역시 초창기에는 격투기와 프로레슬링이 혼합된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30. 최소 전국 체전 중량급. 이런 대회 준비하는 사람들의 미친 훈련량을 보면 납득이 갈 것이다.
  31. 그렇다고 덩그러니 누워 있을 때 카운트가 들어가는 건 아니다. 누르기가 인정돼야 카운트 시작한다.
  32. 꼭 카운트 10을 다 세지 않더라도 한쪽 선수가 경기 속행이 불가능할 경우 KO를 선언할 수도 있다. 권투와 마찬가지.
  33. 대표적으로 'NXT 테이크오버: 라이벌'에서 벌어진 새미 제인 vs 케빈 오웬스의 경기.
  34. 노 컨테스트는 말 그대로 무효시합으로 승이나 패로 카운트하지 않지만 KO는 승패가 발생하며 더블 KO는 무승부가 된다. 또 노 컨테스트는 무효시합이므로 당연히 벨트의 이동은 없지만 KO는 벨트의 이동도 가능하다.
  35. 보통 챔피언 벨트가 걸린 경기에서는 링 아웃이나 실격 등으로 이기더라도 벨트가 이동하지 않는다. 이동하는 경우는 미리 조건(링아웃이나 실격승을 거둬도 벨트가 이동한다는)을 걸고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36. 물론 미국에 기반을두고있다.
  37. 단 어디까지나 주요 단체만 보면 그렇고 인디 단체까지 포함하면 실제로는 훨씬 많은 숫자의 단체가 존재한다.
  38. 그래서 프로레스(PURORESU)는 일본에서 프로레슬링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이지만 미국에서는 일본식 프로레슬링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다. 따라서 위키백과 영문판에는 Professional Wrestling과 Puroresu가 별도의 문서로 있으며 영어판 Puroresu 문서에서 다른 언어 보기(일본어)로 가면 プロレス(프로레스) 문서로 연결되고 プロレス 문서에서 다른 언어 보기(영어)로 가면 Professional Wrestling 문서로 연결되는 웃기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Puroresu 문서에 일본어판은 따로 없다. プロレス(Professional Wrestling) 항목에서 같이 설명하기에....)
  39. 힘들게 시합 뛰는건 우리들인데 니들은 양복 입고 뭐 하느냐? vs 무식한 놈들이 경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뭐 이런 느낌.
  40. 빈스 맥마흔의 경우는 엄연히 프로모터 출신이다. 원래 WWE 이전에 대세였던 NWA나 AWA가 기업이라기보다는 프로모터 간의 길드나 다름없는 단체였는데 빈스는 여기서 탈퇴해서 단일 기업으로 만든 것이 WWE이다. 그렇지만 빈스의 뒤를 이을 것이 확실시되는 HHH는 선수 출신이고 또, 부커 T나 제리 롤러 같은 유명 선수들이 만든 단체도 있다. 결국은 케바케지만 비교적 대형 단체일수록 선수보다는 전문 경영인이나 프로모터가 주도하는 편이다.
  41. 단, 빈스 맥마혼이나 트리플 H는 경영 능력도 괜찮은 편이고 프로레슬링의 생리도 잘 아는 편이라 WWE라는 거대 단체를 이끌어 갈 수 있지만 경영 능력만 있고 이 바닥 생리를 모르면 WCW나 TNA처럼 거물급 선수들에게 휘둘리다가 망하는 경우도 생긴다.
  42. WWE에 발만 담근 적만 있어도 왠만한 인디 단체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할 정도고 신일본의 나카무라 신스케 정도의 거물도 나이를 꽤 먹은 상태에서도 WWE에 도전하고 싶어 할 정도다.
  43. iPPV가 아니다!!
  44. 현존하는 단체 중 가장 역사가 길다. 1933년에 창단되었다고 하니 미국에서 최초로 창단된 단체인 AWA 못지 않은 역사를 가졌다.
  45. 현재 진행형이자 가장 대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