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문서 : 절/한국
유네스코 세계유산 | ||||
width=100% | 이름 | 백제역사유적지구 | 영어 | Baekje Historic Areas |
국가 위치 | 대한민국 충청남도, 전라북도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등재연도 | 2015년 | |
등재기준 | (ii) 백제역사유적지구의 고고학 유적과 건축물은 한국과 중국 및 일본의 고대 왕국들 사이에 있었던 상호교류를 통해 이룩된 백제의 건축 기술의 발전과 불교 확산에 대한 증거를 보여준다. (iii) 백제역사유적지구에서 볼 수 있는 수도의 입지, 불교 사찰과 고분, 건축학적 특징과 석탑 등은 백제 왕국의 고유한 문화, 종교, 예술미를 보여주는 탁월한 증거이다. |
정림사의 복원도. 다만 이 복원도는 1942년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실제 모습과는 다르다. 하단의 절의 구조 항목 참조. |
1 개요
충청남도 부여군에 위치한, 지금은 터와 석탑 그리고 석불좌상만 남아있는 백제 시대의 절이며, 미륵사와 함께 백제를 대표하는 절이자, 사비백제 시대의 대표적인 불교유적이다. 현제 사적 301호로 지정되어있다.
2 역사
이 절이 정확히 언제 새워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성왕이 사비로 도읍을 옮기면서 도성 안을 중앙 동·서·남·북 등 5부로 구획하고 그 안에 왕궁과 관청, 사찰 등을 건립할 때 나성으로 에워싸인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정림사가 세워졌다고 한다. 다시말해 정림사는 사비백제 시대에 가장 중요한 절로서 여겨졌다는 이야기다. 절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래 그 이름도 잊혀졌지만, 1942년 일본인 후지사와 가즈오가 절터 발굴조사 중에 발굴한 기와조각에 ‘태평팔년무진정림사대장당초(太平八年戊辰定林寺大藏當草)’[1] 라는 명문이 적혀 있어, 정림사라는 이름이 밝혀졌다.[2] 폐사지가 된 시기도 불분명하지만, 앞의 내용을 토대로 해봤을때, 적어도 고려시대에는 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2008년 발굴조사를 한번 더 하게 되고, 이와 동시에 정림사의 유물을 보관하고 전시한 정림사지 박물관이 개장하였다.
3 절의 구조
1942년 후지사와 가스오의 발굴조사에 따르면 정림사의 가람배치는 중문, 석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상으로 놓여있으며, 강당 건물과 중문이 회랑으로 이어져있는 북위의 양식인 일탑식 가람배치 형식을 따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백제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아서 새워졌다고 알려진 일본의 시텐노지에서도 볼 수 있는 가람배치 형식으로, 이후의 연구에서도 사비백제시대의 절은 모두 이런 형식을 따르고 있다는 의견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2008년 정림사지를 재발굴 해본결과, 강당 좌우에 2구의 부속건물지와 금당뒤의 승방지가 발견되었다. 다시말해, 정림사의 가람배치 형식은 이전에 정설로 통하던 중문과 금당이 회랑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가 아닌 회랑이 각각 동회랑, 서회랑, 중문과 이어진 남회랑으로 분리되어있고, 동, 서회랑이 각각 금당 동, 서쪽에 위치한 부속건물에 이어져있는 형태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 발굴된 능산리 사지와 왕흥사지의 가람배치도 이런 형식의 가람배치 형식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정림사는 이후 사비백제시대 절의 가람배치 양식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3.1 정림사지 5층석탑
대한민국의 국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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